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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표지에 '<span style="font-family:함초롬돋움">병인꼐춘 댱져고리 쟈근져고리 토쥬 초 뎌포 의ᄉᆡᆼ 반ᄎᆞ도</span>'라는 기록이 있어 그 용처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본 발기는 기존의 한지에 기록한 발기자료와는 달리 장지에 기름을 먹여 분판(粉板)처럼 글씨를 수정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병인년 계춘은 1866년(고종3) 3월이다. 1866년으로 추정되는 이유는 1882년(임오년) [[순종|왕세자 척]]이 혼례를 할 때 기록한 <[[임오이월가례시대전나인상격발기]](壬午二月嘉禮時大殿內人賞格件記)>에서 상격을 받은 상궁 및 나인들의 한자 이름이 본 발기에 수록된 한글 이름과 대부분 일치하기 때문이다. | |
− | 표지에 '<span style="font-family:함초롬돋움">병인꼐춘 댱져고리 쟈근져고리 토쥬 초 뎌포 의ᄉᆡᆼ 반ᄎᆞ도</span>'라는 기록이 있어 그 용처를 | + | 즉, [[고종 명성황후 가례]]를 치를 때 상궁 및 나인들에게 당저고리와 작은저고리를 해 입을 수 있도록 필요한 옷감을 하사한 것으로 보인다. 본 발기의 기록에 따르면, 상궁과 나인을 비롯해 양색장, 양보기, 안소주방, 밖소주방, 생것방, 세수간, 세답방, 봉보부인, 아지에게는 당저고리와 볼동이를 만들 수 있는 옷감을 하사하였다. 침실상궁과 나인, 양색장, 아랫사람 14인, 봉보부인, 아지에게는 토주, 생초, 저포 등 옷감을 하사하였다. 또 봄에 입을 수 있도록 송화색 명주 저고리 옷감, 흰색 깨끼저고리 옷감, 저포 1필, 목면 1필을 하사하였다. <REF>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216쪽.</REF> |
− | 즉, [[고종 명성황후 가례]]를 치를 때 상궁 및 나인들에게 당저고리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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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시대 국혼·명절·탄일·진찬·제향 등의 왕실 행사에서 소요될, 혹은 소요된 물품목록을 적은 문서가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데, 문서의 제목에는 한글로 <span style="font-family:함초롬돋움">'ᄇᆞᆯ기', '건긔', '단자'</span>, 한자로는 '발기(發記)', '건기(件記)', '단자(單子)' 등으로 | + | 조선시대 국혼·명절·탄일·진찬·제향 등의 왕실 행사에서 소요될, 혹은 소요된 물품목록을 적은 문서가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데, 문서의 제목에는 한글로 <span style="font-family:함초롬돋움">'ᄇᆞᆯ기', '건긔', '단자'</span>, 한자로는 '발기(發記)', '건기(件記)', '단자(單子)' 등으로 적혀 있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왕실[[발기]]는 한지 두루마기에 쓴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얇고 질이 떨어지는 종이에 메모하듯이 써 놓은 것들도 있다. |
− | <ref>주영하, 「1882년 왕세자 척의 혼례 관련 왕실음식발기 연구」, | + | <ref>주영하, 「1882년 왕세자 척의 혼례 관련 왕실음식발기 연구」, 『고문서연구』 48, 한국고문서학회, 2016, 339쪽.</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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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저고리는 [[당의]]라고도 불린다. 저고리보다 길어 입었을 때 무릎 근처까지 닿는다. 보통 겉은 초록색이나 연두색 | + | 당저고리는 [[당의]]라고도 불린다. 저고리보다 길어 입었을 때 무릎 근처까지 닿는다. 보통 겉은 초록색이나 연두색 비단으로 하고 고름은 자주색을 달았다. 소매끝은 흰색으로 둘렀다. 궁중에서는 평상복으로 입었고 흉배를 붙여 소례복(작은 예식에 입는 옷)으로 입기도 하였다. |
<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80374&cid=40942&categoryId=32079 당의]", 두산백과, <html><online style="color:purple"> 『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 <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80374&cid=40942&categoryId=32079 당의]", 두산백과, <html><online style="color:purple"> 『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 ||
[[소주방]]은 궁궐의 음식을 만드는 곳이다. 안소주방은 주로 일상음식을 담당하고 밖소주방은 잔치음식을 담당한다. [[생과방]]은 음료수·죽·다식·약과·전과 등을 만드는 곳이다. 세답방은 빨래·다듬이질·염색 등을 담당하는 곳이다. [[세수간]]은 왕의 세숫물과 목욕물, 수건·요강·타구·매우틀(변기)을 담당하는 곳이다. 복이처는 아궁이에 불을 때고, 등촉(燈燭)·납촉(蠟燭 : 촛불)을 담당하는 곳이다. | [[소주방]]은 궁궐의 음식을 만드는 곳이다. 안소주방은 주로 일상음식을 담당하고 밖소주방은 잔치음식을 담당한다. [[생과방]]은 음료수·죽·다식·약과·전과 등을 만드는 곳이다. 세답방은 빨래·다듬이질·염색 등을 담당하는 곳이다. [[세수간]]은 왕의 세숫물과 목욕물, 수건·요강·타구·매우틀(변기)을 담당하는 곳이다. 복이처는 아궁이에 불을 때고, 등촉(燈燭)·납촉(蠟燭 : 촛불)을 담당하는 곳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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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2일 (화) 20:28 기준 최신판
왕실 의복 반사도 | |
한자명칭 | 丙寅季春衣次頒賜圖 |
---|---|
영문명칭 | A list of clothes paid to the servants in the public office |
작자 | 미상 |
간행시기 | 1866년 |
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청구기호 | 2-5039 |
유형 | 고서 |
크기(세로×가로) | 37.2×13.0cm |
판본 | 필사본 |
수량 | 1첩 |
표기문자 | 한글 |
목차
정의
1866년(조선 고종 3)에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를 치를 때 상궁 및 나인들에게 당저고리와 작은 저고리를 지어 입을 수 있도록 옷감을 내려보낸 발기이다.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표지에 '병인꼐춘 댱져고리 쟈근져고리 토쥬 초 뎌포 의ᄉᆡᆼ 반ᄎᆞ도'라는 기록이 있어 그 용처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본 발기는 기존의 한지에 기록한 발기자료와는 달리 장지에 기름을 먹여 분판(粉板)처럼 글씨를 수정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병인년 계춘은 1866년(고종3) 3월이다. 1866년으로 추정되는 이유는 1882년(임오년) 왕세자 척이 혼례를 할 때 기록한 <임오이월가례시대전나인상격발기(壬午二月嘉禮時大殿內人賞格件記)>에서 상격을 받은 상궁 및 나인들의 한자 이름이 본 발기에 수록된 한글 이름과 대부분 일치하기 때문이다. 즉, 고종 명성황후 가례를 치를 때 상궁 및 나인들에게 당저고리와 작은저고리를 해 입을 수 있도록 필요한 옷감을 하사한 것으로 보인다. 본 발기의 기록에 따르면, 상궁과 나인을 비롯해 양색장, 양보기, 안소주방, 밖소주방, 생것방, 세수간, 세답방, 봉보부인, 아지에게는 당저고리와 볼동이를 만들 수 있는 옷감을 하사하였다. 침실상궁과 나인, 양색장, 아랫사람 14인, 봉보부인, 아지에게는 토주, 생초, 저포 등 옷감을 하사하였다. 또 봄에 입을 수 있도록 송화색 명주 저고리 옷감, 흰색 깨끼저고리 옷감, 저포 1필, 목면 1필을 하사하였다. [1]
발기
조선시대 국혼·명절·탄일·진찬·제향 등의 왕실 행사에서 소요될, 혹은 소요된 물품목록을 적은 문서가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데, 문서의 제목에는 한글로 'ᄇᆞᆯ기', '건긔', '단자', 한자로는 '발기(發記)', '건기(件記)', '단자(單子)' 등으로 적혀 있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왕실발기는 한지 두루마기에 쓴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얇고 질이 떨어지는 종이에 메모하듯이 써 놓은 것들도 있다. [2]
왕실 의복 반사도의 용어
당저고리는 당의라고도 불린다. 저고리보다 길어 입었을 때 무릎 근처까지 닿는다. 보통 겉은 초록색이나 연두색 비단으로 하고 고름은 자주색을 달았다. 소매끝은 흰색으로 둘렀다. 궁중에서는 평상복으로 입었고 흉배를 붙여 소례복(작은 예식에 입는 옷)으로 입기도 하였다. [3] 소주방은 궁궐의 음식을 만드는 곳이다. 안소주방은 주로 일상음식을 담당하고 밖소주방은 잔치음식을 담당한다. 생과방은 음료수·죽·다식·약과·전과 등을 만드는 곳이다. 세답방은 빨래·다듬이질·염색 등을 담당하는 곳이다. 세수간은 왕의 세숫물과 목욕물, 수건·요강·타구·매우틀(변기)을 담당하는 곳이다. 복이처는 아궁이에 불을 때고, 등촉(燈燭)·납촉(蠟燭 : 촛불)을 담당하는 곳이다. [4] 봉보부인과 아지는 궁궐의 유모들을 말한다. [5]
연계 자원 보러 가기 |
• 왕실 의복 반사도 (해독) |
지식 관계망
- 왕실 의복 반사도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고종 명성황후 가례 | 왕실 의복 반사도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고종 | 고종 명성황후 가례 | A는 B에 참여하였다 | A edm:isRelatedTo B |
명성황후 | 고종 명성황후 가례 | A는 B에 참여하였다 | A edm:isRelatedTo B |
명성황후 | 고종 | A는 B의 아내이다 | A ekc:hasHusband B |
가례 | 왕실 의복 반사도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왕실 의복 반사도 | 봉보부인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왕실 의복 반사도 | 소주방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왕실 의복 반사도 | 당저고리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왕실 의복 반사도 | 생과방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왕실 의복 반사도 | 세답방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왕실 의복 반사도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A는 B에 소장되었다 | A edm:currentLocation B |
고종 명성황후 가례 | 왕실 의복 반사도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고종 | 고종 명성황후 가례 | A는 B에 참여하였다 | A edm:isRelatedTo B |
명성황후 | 고종 명성황후 가례 | A는 B에 참여하였다 | A edm:isRelatedTo B |
명성황후 | 고종 | A는 B의 아내이다 | A ekc:hasHusband B |
가례 | 왕실 의복 반사도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왕실 의복 반사도 | 봉보부인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왕실 의복 반사도 | 소주방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왕실 의복 반사도 | 당저고리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왕실 의복 반사도 | 생과방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왕실 의복 반사도 | 세답방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왕실 의복 반사도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A는 B에 소장되었다 | A edm:currentLocation B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
1866년 | 왕실 의복 반사도가 저술되었다. |
1866년 | 고종 명성황후 가례가 시행되었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7.39197 | 127.054387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은 왕실 의복 반사도을 소장하였다 |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216쪽.
- ↑ 주영하, 「1882년 왕세자 척의 혼례 관련 왕실음식발기 연구」, 『고문서연구』 48, 한국고문서학회, 2016, 339쪽.
- ↑ "당의",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 ↑ 김동현·김용숙, "궁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이영숙, "봉보부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더 읽을 거리
- 단행본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 『우리 한글의 멋과 아름다움』, 다할미디어, 2004.
유용한 정보
- "병인계츈의차반사도(丙寅季春衣次頒賜圖))",
『왕실도서관 장서각 디지털 아카이브』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