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종
화엄종 (華嚴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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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화엄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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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華嚴宗 |
유형 | 단체 |
정의
불교의 한 종파.
내용
『화엄경(華嚴經)』을 근본 경전으로 불교의 한 종파이다. 두순(柱順)을 시조로 하고, 제 2조 지엄(智嚴)을 거쳐, 제 3조인 법장(法藏)에 이르러 대성하였다. 그 뒤를 이어 징관(澄觀)과 종밀(宗密)이 종단을 선양하여 두순, 지엄, 법장, 징관(4조), 종밀(5조)을 화엄 5조라고 한다. 또 인도의 마명(馬嗚)과 용수(龍樹)를 화엄의 비조(鼻祖)로 보고 화엄 7조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 후 선종(禪宗)과 가까워지다가 점차 쇠퇴했다.[1]
한국에서는 화엄사상을 신라의 원효(元曉), 의상(義湘) 등이 크게 선양하였는데, 원효의 『화엄경소(華巖經疏)』는 법장의 『탐현기(探玄記)』에 인용될 만큼 영향을 끼쳤다. 특히 의상은 지엄에게서 화엄 교학을 배운 적이 있고, 부석사(浮石寺)를 창건하여 화엄의 종지(宗旨)를 널리 편 이래 해동화엄종을 개창한 사람으로 숭앙되고 있다. 그의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는 『화엄경』을 요약한 것으로 화엄학 연구에 큰 영향을 끼쳤다.[2]
또한 신라의 심상(審祥)은 당나라 도선(道璿)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화엄학을 전달하기도 하였다. 통일신라시대에는 ‘화엄십찰(華嚴十刹)’이라 하여 화엄학 연구의 중요한 사찰을 헤아리기도 하였다. 통일신라 말 화엄학은 부석사(浮石寺)를 중심으로 하는 희랑(希朗)과, 화엄사(華嚴寺)를 중심으로 하는 관혜(觀惠)의 두 파로 갈라져 논쟁이 치열하였다. 고려에 이르러 균여(均如)는 이를 조화시켰으며, 의천(義天)은 고려 불교의 통합이라는 관점에서 화엄(華嚴)·선(禪)·천태(天台)를 융합하였다.[3]
지식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화엄종 | 두순 | A는 B에 의해 설립되었다 | A ekc:founder B |
화엄종 | 지엄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화엄종 | 법장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화엄종 | 원효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화엄종 | 의상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화엄종 | 의천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화엄종 | 영주 부석사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화엄종 | 구례 화엄사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주석
- ↑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종교학대사전』, 한국사전연구사, 1998. 온라인 참조: "화엄종", 종교학대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 ↑ "화엄종",
『두산백과』online . - ↑ "화엄종",
『두산백과』online .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