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초상(전신상)
신임 초상(전신상) | |
한자명칭 | 申銋 肖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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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미상 |
제작시기 | 1719년 |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
유형 | 초상 |
크기(세로×가로) | 151.5×78.2㎝ |
목차
정의
조선시대 문신인 신임(1639∼1725)의 모습을 그린 초상.
내용
초상의 제작 및 보관
<신임 초상>은 화폭이 상당히 크고 장황되지 않은 상태이다. 신임의 81세 때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화면 맨 윗 부분에는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좌참찬을 지낸 충경공 한죽당 신선생의 초상(贈領議政 行左參贊 忠景公 寒竹堂 申先生眞.)”라고 적혀 있고 좌측 상단에는 “팔십일 세에 그리다(八十一歲寫.)“라고 쓰여 있다. 81세 때 1719년은 신임이 기로소에 들어간 해이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상단의 표제는 사 후 영의정에 추증 된 후 기록된 것이다.
<신임 초상>은 1710년작 〈심득경 초상〉과 함께 야복전신좌상의 이른 예이다. 또한 와룡관을 착용하고 불자를 든 자세, 형식, 적극적인 음영법의 사용 등 사대부 초상화 가운데 희귀한 형식의 초상으로 주목되는 작품이다.
초상에 묘사된 모습
<신임 초상>은 와룡관을 쓰고 옅은 녹포를 입고 의자에 앉아 있는 전신좌상이다. 안면은 좌안칠분면이고 몸체는 거의 구분면이다. 특이하게 손이 노출되어 있고 양손으로 불자를 들고 있다. 가는 손가락과 잘 다듬은 손톱이 너무 고와서 노인의 손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신발은 가죽에 비단을 댄 태사혜를 신고 있으며, 바늘땀을 일일이 그려 묘사하였다. 족좌대의 나무결은 몰골법으로 묘사하였다.[1] 안면은 윤곽선과 이목구비를 선묘로 그리고 선염으로 입체감을 주었다. 얼굴은 아주 마른 노인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눈은 푹 꺼져 있고 검버섯이 얼굴 전체에 퍼져 있다.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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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초상(전신상) | 초상 | A는 B에 해당한다 | A dcterms:type B |
신임 초상(전신상) | 신임 | A는 B를 묘사하였다 | A ekc:depicts B |
신임 초상(전신상) | 국립중앙박물관 |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 A edm:currentLocation B |
신임 초상(전신상) | 신임 초상(반신상)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신임 초상(전신상) | 심득경 초상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심득경 초상 | 심득경 | A는 B를 묘사하였다 | A ekc:depicts B |
심득경 초상 | 윤두서 | A는 B가 그렸다 | A dcterms:creator B |
심득경 | 윤두서 | A는 B와 교유하였다 | A foaf:knows B |
심득경 초상 | 국립중앙박물관 |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 A edm:currentLocation B |
좌안칠분면 | 신임 초상(전신상)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와룡관 | 신임 초상(전신상) | A는 B에 나타난다 | A ekc:isShownOn B |
녹포 | 신임 초상(전신상) | A는 B에 나타난다 | A ekc:isShownOn B |
불자 | 신임 초상(전신상) | A는 B에 나타난다 | A ekc:isShownOn B |
태사혜 | 신임 초상(전신상) | A는 B에 나타난다 | A ekc:isShownOn B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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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9년 | 신임 초상(전신상)이 제작되었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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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5238510 | 126.9804700 | 신임 초상(전신상)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시각자료
갤러리
신임 초상(전신상)[2]
주석
참고문헌
더 읽을거리
- 전시도록
- 국립중앙박물관, 『초상화의 비밀』, 국립중앙박물관,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