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주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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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의 해독문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2016년에 개최한 특별전 '한글, 소통과 배려의 문자(2016.6.29~12.31)'의 도록 143쪽을 참고 활용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원문 중 옛 한글의 경우 웹브라우저 및 시스템의 문자세트(character set) 표현상 한계로 인해 표시가 불완전할 수 있으며, 각 내용상의 사소한 교정은 별도의 언급 없이 적용하였습니다. |
원문과 해석문
원문 | 해석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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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 원문이미지 참고 | 최영崔瑩이 신우辛禑 고려 우왕를 권해서 병력을 일으켜 요동을 치니, 우리 태조이성계가 회군하시어 왕씨를 도로 세우셨다. 좌사左使 조준趙浚과 정당政堂 정도전鄭道傳과 밀직사密直使 남은南誾 등이 천명과 인심을 알아 태조를 추대했다. 1392년공양왕4 3월에 태조가 말을 타다가 떨어지셨는데 수시중守侍中 정몽주鄭夢周가 대간을 시켜 조준·정도전·남은 등을 탄핵하여 귀양 보내게 하고, 김귀련金龜聯과 이반李蟠을 시켜 뒤따라가서 죽이려 하였다. 의안대군義安大君과 흥안군興安君 이제李濟가 태조께 사뢰니, 태조가 이르시기를, “죽고 사는 것은 천명이니 오직 순순히 받을 따름이다.” 의안대군이 흥안군을 시켜 휘하 조영규趙英珪에게 이르기를, “이씨가 왕실에 공로 있는 것을 사람마다 다 아는데 이제 남의 손에 꺼지면 후세에 누가 알리오? 휘하의 선비 가운데 하나도 힘쓸 이가 없는가?” 영규가 이르기를 “제가 마음을 다하겠습니다.” 하고, 조영규 무리가 길에서 몽주를 쳐 죽였다. 태조가 들으시고 몹시 노하셔서 병이 되시고 말씀을 못하게 되시었다. 공정대왕이 즉위하셔서, “몽주는 자기 섬기는 일에 두 마음 가지지 않는 이다.” 하시어 시호를 문충文忠이라 내리셨다. |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