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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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도감
(大藏都監)
민족팀 일러 관청.png
대표명칭 대장도감
한자표기 大藏都監
유형 제도
관련개념 재조대장경



정의

고려시대 재조대장경(再雕大藏經)의 판각 업무를 담당한 관청이다.[1]

내용

설치 및 운영

1232년(고려 고종 19) 몽골의 침략으로 대구 부인사(符仁寺)에 소장하고 있던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이 소실되었다. 조정에서는 대장경을 다시 조판하기 위해 1236년에 대장도감을 설치하였다. 피난의 도읍인 강화에 본사(本司)를 설치하여 업무를 주관하고 진주(晉州) 관내인 남해현(南海縣)에 분사(分司)를 두어 일을 분담하였다. 2016년에는 지금의 경북 김천시 개령면 일대에 '개령분사대장도감'이 설치됐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분사(分司)가 남해뿐만이 아닌 전국 여러 곳에 위치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2]

폐지

고려사』1309년 3월 기록에는 대장도감에 관한 내용이 있다.

Quote-left.png 전농사(典農司)에서 거두어들인 여러 사사전(寺社田) 및 문서[卷]가 있는 공신전(功臣田)의 조(租)는 모두 되돌려주게 하고, 그 나머지 전조(田租)는 용문창(龍門倉)으로 옮겨 보관하되, 쌀[米] 300석(石)은 대장도감(大藏都監)과 선원사(禪源社)에 나누어 주도록 하라. Quote-right.png
출처: "1309년 3월 미상(음)", 『고려시대 史料 데이터베이스』online, 국사편찬위원회.


이로 미루어볼 때 대장도감은 판각사업을 마친 뒤 대장경판당의 경판 관리와 인출업무를 맡는 정도로 기구가 대폭 축소되어 존립하였던 듯하다.[3] 이후 1318년 대장경판당을 선원사(禪源寺)로 옮기면서 관리 기능도 넘겨주게 된다.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에서는 대장도감 폐지에 대해 언급한다.

Quote-left.png 도당(都堂)에서 대장 도감(大藏都監)을 폐지하기를 청하였다. Quote-right.png
출처: "태조 1년 임신(1392) 8월 2일(신해)", 『한국고전종합DB』online, 한국고전번역원.


같은 날 조선 최초의 도감인 공신도감(功臣都監)이 설치되었는데, 이는 불교국가인 고려에서 유교국가인 조선으로 바뀌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이기 위한 조치라 추정할 수 있다.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재조대장경 대장도감 A는 B에 의해 제작되었다 A dcterms:creator B
고려대장경 재조대장경 A는 B를 포함한다 A dcterms:hasPart
고려대장경 초조대장경 A는 B를 포함한다 A dcterms:hasPart
고려대장경 교장 A는 B를 포함한다 A dcterms:hasPart
재조대장경 합천 해인사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A edm:currentLocation B

주석

  1. 천혜봉, "대장도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이강일, "팔만대장경 김천에서도 판각했다", 『연합뉴스』, 2016년 6월 30일.
  3. 천혜봉, "대장도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1. 단행본
    • 강명관,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천년의상상, 2014.
  2. 웹자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