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려청자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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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고려청자요지
(康津高麗靑瓷窯址)
민족 일러 고려청자요지.png
대표명칭 강진고려청자요지
한자표기 康津高麗靑瓷窯址
이칭 강진고려청자도요지(康津高麗靑瓷陶窯址)
유형 가마터
시대 고려
지정번호 사적 제68호
지정일 1963년 01월 21일
소장처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용운리, 계율리, 수동리



정의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용운리·계율리·수동리 일대에 있는 고려시대의 청자요지군이다.[1]

내용

대구면 강진고려청자요지는 고려시대 전체에 걸쳐 시기별로 총망라되어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각 가마의 구조에서도 시기별 특색을 잘 보여 주고 있다.[2]

용운리(용문리) 가마

용운리(용문리) 가마터는 대부분 10세기 후반부터 11세기 중엽까지의 초기 가마터이다. 중국의 월주요(越州窯)·요주요(耀州窯)·유요(汝窯)와의 관계를 말해주는 파편들이 여러 곳에서 나왔다. 완전한 비색(翡色)에 이르지 못한 청자색과 월주요·요주요·유요 등과 비슷한 기형문양(器型文樣)을 찾아볼 수 있다.[3]

계율리 가마

계율리는 계치·청룡·난산·율촌마을을 총칭하는데, 현재 40여 개소의 가마터가 남아 있다. 일부는 계치의 동쪽 골짜기의 저수지에 수몰되고 논으로 변한 곳도 있으나, 대체로 잘 보존되어 있다. 계율리의 가마는 용운리와 같이 오래된 방식도 있으나 대체로 11세기부터 13세기까지의 가마로서 양식화된 상감청자 조각이 많이 발견되고 있어, 대구면 내의 가마가 땔나무를 찾아 아래, 위로 이동하였던 것을 나타낸다.[4]

수동리 가마

수동리는 사당리 남쪽에 위치하며, 5∼6개의 가마터가 있다. 대체로 14세기경의 것으로 일부는 하천에 침식되고, 일부는 전답으로 변하였다. 주로 대접·발(鉢)·접시·병·매병·잔·합·호·기와·향로 등의 청자류와 철회(鐵繪)·진사(辰砂)·철채·흑유·백자·퇴화청자 등 거의 모든 기법의 도자기 파편이 출토되었다.[5]

사당리 가마

사당리 가마터는 약 40여 개소로, 당전(堂前)과 백사(白沙) 부락의 용문천가에 있는 일부분이 하천의 침식으로 없어졌다. 전답으로 된 곳이 대부분이어서 그 보존상태도 매우 나쁘다.[6]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강진고려청자요지 고려청자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강진고려청자요지 월주요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강진고려청자요지 요주요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강진고려청자요지 유요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공간정보

  • 고려청자 유적지 전자지도

시각자료

가상현실

갤러리

영상

  • 대한뉴스 제 1171호-고려청자 재현(게시일: 2016년 12월 8일)

  • 대한뉴스 제 1347호-비색 천년의 옛터(게시일: 2016년 12월 8일)


주석

  1. "강진고려청자요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강진고려청자요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3. "강진 고려청자 요지", 『doopedia』online, 두산백과.
  4. "강진고려청자요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5. "강진 고려청자 요지", 『doopedia』online, 두산백과.
  6. "강진 고려청자 요지", 『doopedia』online, 두산백과.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1. 웹 자원

유용한 정보

  1. "강진 고려청자 요지", 대한민국 구석구석, 『대한민국 구석구석』online, 한국관광공사. 온라인 참조: "강진 고려청자 요지", 대한민국 구석구석,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2. "강진 고려청자 도요지", 한반도 해양문화, 『문화콘텐츠닷컴』online, 한국콘텐츠진흥원, 2010. 온라인 참조: "강진 고려청자 도요지", 문화원형백과-한반도 해양문화, 『네이버 지식백과』on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