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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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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강이 보이는 성산의 정상부근을 돌로 둘러쌓은 산성이다. 온달산성은 고구려 평원왕(재위 559∼590)의 사위인 온달장군의 이야기가 이 지방에 전해오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성이 언제 쌓아졌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조선 전기에 이미 성산성이란 이름으로 있었던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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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강]]이 보이는 성산의 정상부근을 돌로 둘러쌓은 산성이다. 온달산성은 고구려 [[평원왕]](재위 559∼590)의 사위인 [[온달|온달장군]]의 이야기가 이 지방에 전해오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성이 언제 쌓아졌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조선 전기에 이미 성산성이란 이름으로 있었던 기록이 있다.
  
벽의 안팎을 모두 비슷한 크기의 돌로 가지런히 쌓아 올린, 둘레 683m의 소규모 산성이다. 성 안에는 삼국시대의 유물이 출토되며, 우물터가 남아있고, 성벽 바깥부분에는 사다리꼴 모양의 배수구가 있다. 남서쪽 문터의 형식과 동문의 돌출부는 우리나라 고대 성곽에서 드물게 보이는 양식으로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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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의 안팎을 모두 비슷한 크기의 돌로 가지런히 쌓아 올린, 둘레 683m의 소규모 산성이다. 성 안에는 [[삼국시대]]의 유물이 출토되며, 우물터가 남아있고, 성벽 바깥부분에는 사다리꼴 모양의 배수구가 있다. 남서쪽 문터의 형식과 동문의 돌출부는 우리나라 고대 성곽에서 드물게 보이는 양식으로 주목할 만하다.
  
성의 북동쪽 남한강의 강변 절벽 아래에는 온달굴이라는 석회암 동굴이 있고, 성을 바라보는 북쪽 강 건너의 산에도 온달과 관계되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성벽의 보존 상태가 좋아, 축성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유적이다.<ref>[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3,02640000,33 문화재청 검색 온달산성]</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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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달과 온달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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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달산성의 축성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다.[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60600&cid=46618&categoryId=46618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둘레 1,523척, 높이 11척의 석축성으로 우물이 1개소 있다”고 하였고,[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81270&cid=46618&categoryId=46618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온달]]이 을아조(乙阿朝)를 지키기 위해 축조하였다”는 전설이 소개되어 있다. ‘을아조’는 [[단양군]] 영춘(永春)의 옛 지명인 ‘을아단(乙阿旦)’으로,[[삼국사기|『삼국사기』]]에서 “[[온달]]이 [[아단성]] 아래에서 신라군과 싸우다 유시(流矢)에 맞아 사망하였다”고 한 내용과도 관련된다. 하지만 [[아단성]]을 [[서울특별시]] [[아차산성|아차산성(阿且山城)]]으로 보는 견해가 있기도 하다.<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 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검색 온달산성]</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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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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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16일 (목) 17:43 기준 최신판


개요

  • 정의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에 있는 신라시대 산성.[1]

  • 내용

남한강이 보이는 성산의 정상부근을 돌로 둘러쌓은 산성이다. 온달산성은 고구려 평원왕(재위 559∼590)의 사위인 온달장군의 이야기가 이 지방에 전해오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성이 언제 쌓아졌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조선 전기에 이미 성산성이란 이름으로 있었던 기록이 있다.

벽의 안팎을 모두 비슷한 크기의 돌로 가지런히 쌓아 올린, 둘레 683m의 소규모 산성이다. 성 안에는 삼국시대의 유물이 출토되며, 우물터가 남아있고, 성벽 바깥부분에는 사다리꼴 모양의 배수구가 있다. 남서쪽 문터의 형식과 동문의 돌출부는 우리나라 고대 성곽에서 드물게 보이는 양식으로 주목할 만하다.

성의 북동쪽 남한강의 강변 절벽 아래에는 온달굴이라는 석회암 동굴이 있고, 성을 바라보는 북쪽 강 건너의 산에도 온달과 관계되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성벽의 보존 상태가 좋아, 축성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유적이다.[2]

  • 온달과 온달산성

온달산성의 축성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다.『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둘레 1,523척, 높이 11척의 석축성으로 우물이 1개소 있다”고 하였고,『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온달이 을아조(乙阿朝)를 지키기 위해 축조하였다”는 전설이 소개되어 있다. ‘을아조’는 단양군 영춘(永春)의 옛 지명인 ‘을아단(乙阿旦)’으로,『삼국사기』에서 “온달아단성 아래에서 신라군과 싸우다 유시(流矢)에 맞아 사망하였다”고 한 내용과도 관련된다. 하지만 아단성서울특별시 아차산성(阿且山城)으로 보는 견해가 있기도 하다.[3]

지도

갤러리

관련 링크

관련 항목

이 문서 A 관련 문서 B 관계
온달산성 온달 A는 B와(과) 관련이 있다.
온달산성 온달성재밟기 A에서 B을(를) 벌인다.
온달산성 고구려 A는 B때 만들어였다.
온달산성 단양군 A는 B에 위치한다.

클래스

  • 유적

기여

출처

  1. 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검색 온달산성
  2. 문화재청 검색 온달산성
  3. 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검색 온달산성
  4. 그림출처: 한국관광공사 검색 온달산성
  5. 그림출처: 한국관광공사 검색 온달산성
  6. 그림출처: 한국관광공사 검색 온달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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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그림출처: 한국관광공사 검색 온달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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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그림출처: 한국관광공사 검색 온달산성
  15. 그림출처: 한국관광공사 검색 온달산성
  16. 그림출처: 한국관광공사 검색 온달산성
  17. 그림출처: 한국관광공사 검색 온달산성
  18. 그림출처: 한국관광공사 검색 온달산성
  19. 그림출처: 한국관광공사 검색 온달산성
  20. 그림출처: 한국관광공사 검색 온달산성
  21. 그림출처: 한국관광공사 검색 온달산성
  22. 그림출처: 한국관광공사 검색 온달산성
  23. 그림출처: 한국관광공사 검색 온달산성
  24. 그림출처: 한국관광공사 검색 온달산성
  25. 그림출처: 한국관광공사 검색 온달산성
  26. 그림출처: 한국관광공사 검색 온달산성
  27. 그림출처: 한국관광공사 검색 온달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