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증동국여지승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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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해설

1530년(중종 25) 이행(李荇)·윤은보(尹殷輔)·신공제(申公濟)·홍언필(洪彦弼)·이사균(李思鈞) 등이 『동국여지승람』을 증수, 편찬한 책으로,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관찬지리서이다. 원래 『동국여지승람』은 1481년(성종 12) 50권으로 편찬되었는데, 1530년에 속편 5권을 합쳐 전 55권으로 완성, 이에 ‘신증(新增)’의 두자를 삽입하여 간행하였다. 임진왜란을 겪은 뒤 이 책은 더욱 희귀해져 일본 경도대학소장본이 유일하며, 1611년(광해군 3)에 복간한 목판본이 규장각도서 등 국내에 소장되어 있다.[1] [2]

아차산과의 관련성

신증동국여지승람 제 11권 양주목에 '아차산(峩嵯山)"이 주 남쪽 67리 지점에 있다"는 기록과, 아차산 봉수(峨嵯山烽燧)가 "북쪽으로 대이산(大伊山)을 응하고, 서쪽으로 서울 목멱산(木覓山 서울 남산) 첫째 봉을 응한다"는 기록이 있다. 제3권 한성부에서는 '목멱산 봉수(木覓山烽燧)'에 대하여 "동쪽의 첫째 것은 양주(楊州) 아차산(峩嵯山)과 응하니, 이것은 함경도와 강원도의 봉화[烽]요.." , 동잠실(東蠶室)에 대하여 "구잠실(舊蠶室)은 성 동쪽 아차산(峨嵯山) 아래에 있고, 신잠실(新蠶室)은 한강 원단동(圓壇洞)에 있는데, 모두 환관(宦官)들이 주관한다."는 기록에서도 아차산이 언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아차산 동쪽 산기슭에 은석사(銀石寺)와 범굴사(梵窟寺) 두 개의 절이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俱在峨嵯山東麓). 범굴사는 지금의 대성암을 이르며, 은석사는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관련 항목

이 문서 관계 관련 문서
신증동국여지승람 ~에 대한 기록이 있다 아차산, 아차산 봉수대지, 장한평
신증동국여지승람 ~에 만들어졌다 조선시대

주석

  1.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신증동국여지승람"
  2. 참조: 한국고전종합DB '신증동국여지승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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