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제(김이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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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제, 김이제(Kim, E-Je)가 한 사람이다. 김상임 전도사의 둘째 아들로 19세에 배재학당에서 수학하고 23세에 옙웟 청년회인 무어 청년회를 창설해 청년활동을 민족운동으로 연결시켰다. 이때 강화진위대장 출신으로 상해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기독교 사회주의자 이동휘가 무어 청년회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김우제(김이제) 목사를 만나 기독교에 입문하게 되어 강화중앙교회의 권사를 지냈다.
1903년 6월 14일 하와이 모쿨레이아 농장에서 전도사 김우제의 주례로 첫 예배를 보았으며, 같은 해 11월 10일 호놀룰루에 사는 동포들이 안정수, 우병길을 대표로 정하고 감리교회 감리사 피어슨을 만나 홍승하 목사의 지도로 '한인전도회'를 발족했다.
1905년 하와이 농업이민단에 합류해서 하와이 농장에서 이민 목회를 했다. [1] 하와이와 상해를 오가며 독립운동을 펼쳤고, 독립운동가 김동수 선생의 부친이다. 이준선생이 회장으로 취임한 국민 교육회를 발족했고 미국에서 대동보국회를 세웠다. 사후 김우제는 오아후 공동묘지에 묻혔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