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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24일 (금) 20:40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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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아차산 고구려 보루군은 발굴조사된 유적의 구조나 농기구와 간이대장간 등의 시설물의 존재, 출토 유물의 수량으로 보아 비교적 오랫동안 고구려군이 주둔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백제가 점차 세력을 회복하는 6세기가 되면, 금강 유역의 고구려 성곽은 석축 성벽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폐기되면서 고구려백제의 경계선이 한강 유역으로 북상하게 되는데, 이 시기에 아차산 고구려 보루군이 목책에서 석축단계로 전환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6세기대 백제 유물이 아직까지 서울 인근에서 출토된 사례가 없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한강 유역은 여전히 고구려 영역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방어를 위해 한강 이남보다는 이북에 대규모 보루군을 축조했을 가능성이 있다.


고구려 토기 편년에 따르면 아차산 고구려 보루군에서는 대부분 6세기대에 해당하는 유물만 확인되고 있는데, 2005년 홍련봉 2보루에서 520년에 비정되는 ‘庚子’명 토기편이 출토되어 이러한 연대관의 명확한 근거가 되고 있다. 475년 백제의 수도 한성을 공함한 고구려 군은 500년 무렵까지 한강 이남의 몽촌토성에 주둔하였으며, 한강 북안의 아차산 고구려 보루군은 500년 무렵에 축조되어 551년까지 사용된 것이다.

지도

클래스

  • 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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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련봉 2보루 ‘庚子’명 토기편 A는 B시대에 만들어졌다 고구려

주석

  1. 아래 사진출처: '아차산에서 고구려 가마터 추정 유물 발견', 오마이뉴스, 2005년 8월 17일 기사

참고

  • 최종택, 「아차산 고구려 보루 발굴 10년, 성과와 의의」, 한국사 시민강좌, 44, 199-216쪽.

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