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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반구와는 계절이 반대인 오스트레일리아는 대체로 온대기후에 속하지만, 국토면적이 한반도의 약 35배로 넓어 기후가 매우 다양한데 이는 주로 위도와 격해도(隔海度)에 의해 좌우된다. 국토의 60% 이상이 연강수량 50㎜ 이하인 사막기후지대이며, 나머지 10%는 연강수량 100㎜ 정도인 반건조기후지역이다. | 북반구와는 계절이 반대인 오스트레일리아는 대체로 온대기후에 속하지만, 국토면적이 한반도의 약 35배로 넓어 기후가 매우 다양한데 이는 주로 위도와 격해도(隔海度)에 의해 좌우된다. 국토의 60% 이상이 연강수량 50㎜ 이하인 사막기후지대이며, 나머지 10%는 연강수량 100㎜ 정도인 반건조기후지역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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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민기 이전=== | + | ===고대<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77785&cid=40942&categoryId=40718<출처> (두산백과) 오스트레일리아의 식민기 이전]</ref>=== |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지도에는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이 인도양의 남쪽에 있는 ‘미지의 대륙’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유럽인이 실제로 이 대륙에 들어온 것은 17세기부터이다. 1606년 네덜란드의 두이프겐(Duyfken)호가 대륙 북부의 카펀테리아만(灣)에 내항(來航)한 것이 최초로, 그로부터 가끔 네덜란드의 배가 오스트레일리아를 방문하게 되었다. 17세기를 통하여 네덜란드인은 이 대륙의 북안(北岸)·서안 및 태즈메이니아섬 등의 지역을 묶어 ‘신(新)홀란트(Nieu Holland)라고 불렀다. |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지도에는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이 인도양의 남쪽에 있는 ‘미지의 대륙’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유럽인이 실제로 이 대륙에 들어온 것은 17세기부터이다. 1606년 네덜란드의 두이프겐(Duyfken)호가 대륙 북부의 카펀테리아만(灣)에 내항(來航)한 것이 최초로, 그로부터 가끔 네덜란드의 배가 오스트레일리아를 방문하게 되었다. 17세기를 통하여 네덜란드인은 이 대륙의 북안(北岸)·서안 및 태즈메이니아섬 등의 지역을 묶어 ‘신(新)홀란트(Nieu Holland)라고 불렀다. | ||
영국인으로서 이 대륙에 최초로(1688) 온 사람은 영국의 항해가 W.댐피어였고, 지금까지 유럽인이 가보지 않은 동해안 전체를 자세히 조사하고 문명인이 살 수 있는 땅임을 밝혀 영국 영유(領有)에의 길을 연 사람은 제임스 쿡이었다. 그는 1777년 뉴질랜드에서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남동단에 이르러 시드니 쪽을 북상하여 보터니만(灣)에 상륙, 다시 북상하여 요크곶 부근의 한 섬에 영국 국기를 게양하고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동부의 영유를 선언하였다. 뉴사우스웨일스라는 명칭은 이때 생겼다. | 영국인으로서 이 대륙에 최초로(1688) 온 사람은 영국의 항해가 W.댐피어였고, 지금까지 유럽인이 가보지 않은 동해안 전체를 자세히 조사하고 문명인이 살 수 있는 땅임을 밝혀 영국 영유(領有)에의 길을 연 사람은 제임스 쿡이었다. 그는 1777년 뉴질랜드에서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남동단에 이르러 시드니 쪽을 북상하여 보터니만(灣)에 상륙, 다시 북상하여 요크곶 부근의 한 섬에 영국 국기를 게양하고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동부의 영유를 선언하였다. 뉴사우스웨일스라는 명칭은 이때 생겼다. | ||
− | ===식민기=== | + | ===중세<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77786&cid=40942&categoryId=40718<출처> (두산백과) 오스트레일리아의 식민기]</ref>=== |
1776년 미국독립혁명이 발발하여 그때까지 미국으로 보내고 있던 죄수를 처리하지 못하게 된 영국은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을 새로운 유형식민지로 이용하게 되었다. 1788년 1월 11척의 영국 선단(船團)이 1030명(그중 유형수는 726명)을 태우고 보터니만(灣)에 도착하였고, 개발의 근거지로서 시드니가 건설되었다. 1793년에는 최초의 자유이민 11명이 도착하였다. | 1776년 미국독립혁명이 발발하여 그때까지 미국으로 보내고 있던 죄수를 처리하지 못하게 된 영국은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을 새로운 유형식민지로 이용하게 되었다. 1788년 1월 11척의 영국 선단(船團)이 1030명(그중 유형수는 726명)을 태우고 보터니만(灣)에 도착하였고, 개발의 근거지로서 시드니가 건설되었다. 1793년에는 최초의 자유이민 11명이 도착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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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기의 대륙 개발은 이 금광에 의하여 촉진되었고, 금광 채굴자에게 식량을 공급하기 위한 밀의 재배 및 기타 농업이 발달하였다. 그후 이 나라의 농업은 영국 본국에 대한 중요한 식량 공급원이 되었으며, 낙농과 더불어 육류가공·냉동업도 발달하였다. 1880년대부터 백호주의정책이 제창되기 시작하였고, 1888년에는 중국인 이민의 제한이, 1896년에는 모든 유색인종의 배척이 결정되기에 이르렀다. | 제2기의 대륙 개발은 이 금광에 의하여 촉진되었고, 금광 채굴자에게 식량을 공급하기 위한 밀의 재배 및 기타 농업이 발달하였다. 그후 이 나라의 농업은 영국 본국에 대한 중요한 식량 공급원이 되었으며, 낙농과 더불어 육류가공·냉동업도 발달하였다. 1880년대부터 백호주의정책이 제창되기 시작하였고, 1888년에는 중국인 이민의 제한이, 1896년에는 모든 유색인종의 배척이 결정되기에 이르렀다. | ||
− | ===주권확립=== | + | ===근대<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77787&cid=40942&categoryId=40718<출처> (두산백과) 오스트레일리아의 주권확립]</ref>=== |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는 각 식민지는 영국 본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식민지 상호간의 연락도 원활하지 못하였으므로 자치권을 요구하는 소리가 높았고, 1823년 이래 입법원(立法院)의 설치가 각 식민지에서 차례로 인정되기에 이르렀다. 1840~50년대에는 권한이 더욱 확대되었다. |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는 각 식민지는 영국 본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식민지 상호간의 연락도 원활하지 못하였으므로 자치권을 요구하는 소리가 높았고, 1823년 이래 입법원(立法院)의 설치가 각 식민지에서 차례로 인정되기에 이르렀다. 1840~50년대에는 권한이 더욱 확대되었다. | ||
1855년에는 3권분립·양원제·책임내각제를 중심으로 하는 뉴사우스웨일스주의 헌법이 영국 본국의 인정을 받았고, 이어서 다른 각주가 같은 내용의 헌법을 제정하여 주권을 확립하게 되었다. 그러나 국방·이민·주(州)상호관세 등 각 주 공통의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기관이 필요하였다. | 1855년에는 3권분립·양원제·책임내각제를 중심으로 하는 뉴사우스웨일스주의 헌법이 영국 본국의 인정을 받았고, 이어서 다른 각주가 같은 내용의 헌법을 제정하여 주권을 확립하게 되었다. 그러나 국방·이민·주(州)상호관세 등 각 주 공통의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기관이 필요하였다. | ||
− | === | + | ===현대<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77788&cid=40942&categoryId=40718<출처> (두산백과) 오스트레일리아의 연방성립]</ref>=== |
오스트레일리아는 1893년 이래 각주 총리회의(總理會議)가 개최되면서 각주를 통일하는 연방을 설립하려는 기운이 성숙함에 따라 1900년에 연방헌법이 제정되었다. 1901년 1월 1일에는 영국의 자치령으로서 오스트레일리아연방이 발족되었다. | 오스트레일리아는 1893년 이래 각주 총리회의(總理會議)가 개최되면서 각주를 통일하는 연방을 설립하려는 기운이 성숙함에 따라 1900년에 연방헌법이 제정되었다. 1901년 1월 1일에는 영국의 자치령으로서 오스트레일리아연방이 발족되었다. | ||
연방헌법에 따라 연방의 수도가 잠정적으로 멜버른으로 정해졌으나 1911년에 오스트레일리아 수도주(首都地域:Australia Capital Territory)가 결정되었고, 그 중심에 해당하는 지역을 1913년에 캔버라로 명명하였다. 1922년에 최초의 연방의회가 열렸다. | 연방헌법에 따라 연방의 수도가 잠정적으로 멜버른으로 정해졌으나 1911년에 오스트레일리아 수도주(首都地域:Australia Capital Territory)가 결정되었고, 그 중심에 해당하는 지역을 1913년에 캔버라로 명명하였다. 1922년에 최초의 연방의회가 열렸다. | ||
− | ===연방성립 이후 | + | <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249365&cid=40942&categoryId=33493<출처> (두산백과) 오스트레일리아의 연방성립 이후]</ref>오스트레일리아연방은 영국 식민지시대부터 지배계급(정부관리·대농장주·상업자본가)과 피지배계급(유배죄수·하층계급)의 구분이 매우 강한 정치풍토에서, 영국식 내각책임제에 미국식 연방제도를 도입한 자유민주주의 국가 형태를 갖춰나갔다. 1927년 7월에 연방정부와 의회를 연방수도로 선정된 캔버라로 이동했고, 1931년 영국으로부터 완전자치 승인을 얻었다. 1986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 헌법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정당은 1909년 노동당, 1919년 국민당, 1944년 자유당, 1977년 민주당, 1992년 녹색당이 차례로 창당되었고, 진보를 대변하는 노동당과 보수정당인 자유당이 교대로 집권하면서 전형적인 양당 정치체제를 정착시켰다. |
− | 오스트레일리아연방은 영국 식민지시대부터 지배계급(정부관리·대농장주·상업자본가)과 피지배계급(유배죄수·하층계급)의 구분이 매우 강한 정치풍토에서, 영국식 내각책임제에 미국식 연방제도를 도입한 자유민주주의 국가 형태를 갖춰나갔다. 1927년 7월에 연방정부와 의회를 연방수도로 선정된 캔버라로 이동했고, 1931년 영국으로부터 완전자치 승인을 얻었다. 1986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 헌법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정당은 1909년 노동당, 1919년 국민당, 1944년 자유당, 1977년 민주당, 1992년 녹색당이 차례로 창당되었고, 진보를 대변하는 노동당과 보수정당인 자유당이 교대로 집권하면서 전형적인 양당 정치체제를 정착시켰다. | + | |
− | 대외적으로는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을 계기로 새로운 안보·경제적 필요성에 따라 영국 대신 미국과의 동맹관계로 대체하고 비영국계 유럽 이민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1967년 OECD(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에 이어 1971년 영국연방 5개국 방위협정을 체결했으며, 이어 백호주의정책을 폐지했다. 1980년대에는 아태지역의 경제발전과 교역증가, 다문화사회 지향, 아시아계 이민 증대 등에 따라 아시아 태평양 국가로 정책을 전환하였다. 2000년대 들어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의 독립과 불법 이민문제로 갈등을 겪었고, 국내에는 토착 원주민의 토지소유 문제 등이 불씨로 남아 있다. | + | 대외적으로는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을 계기로 새로운 안보·경제적 필요성에 따라 영국 대신 미국과의 동맹관계로 대체하고 비영국계 유럽 이민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1967년 OECD(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에 이어 1971년 영국연방 5개국 방위협정을 체결했으며, 이어 백호주의정책을 폐지했다. 1980년대에는 아태지역의 경제발전과 교역증가, 다문화사회 지향, 아시아계 이민 증대 등에 따라 아시아 태평양 국가로 정책을 전환하였다. 2000년대 들어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의 독립과 불법 이민문제로 갈등을 겪었고, 국내에는 토착 원주민의 토지소유 문제 등이 불씨로 남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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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0일 (화) 23:21 기준 최신판
국가 소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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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호 | 오스트레일리아, Australia |
수도 | 캔버라 |
인구 | 22,992,654명 |
정치 체제 | 입헌 군주제, 내각책임제 |
면적 | 7,741,220㎢ |
언어 | 영어 |
목차
지도
자연환경과 기후
북반구와는 계절이 반대인 오스트레일리아는 대체로 온대기후에 속하지만, 국토면적이 한반도의 약 35배로 넓어 기후가 매우 다양한데 이는 주로 위도와 격해도(隔海度)에 의해 좌우된다. 국토의 60% 이상이 연강수량 50㎜ 이하인 사막기후지대이며, 나머지 10%는 연강수량 100㎜ 정도인 반건조기후지역이다.
내륙은 사람이 살기 어려운 메마른 불모지이거나 반사막이어서 인구의 대부분이 해안지대에 살고 있다. 중위도 고기압대의 영향권에 있는 오스트레일리아는 남쪽에서부터 극전선의 침입을 받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지역은 남동무역풍과 편서풍의 영향을 주로 받으며 북부는 몬순의 영향을 받는다. 오스트레일리아 북부의 경우 여름에는 강수량이 충분하지만 열대성 강우대가 적도 쪽으로 이동하는 겨울에는 건조하다.
내륙으로 갈수록 강수량은 감소해서 중앙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서해안까지는 열대사막으로 덮여 있다. 사막과 사바나기후지역의 점이지대에는 스텝기후가 넓게 분포하고, 동부의 좁은 해안지역에는 온대기후가 나타난다. 태즈메이니아와 빅토리아 남부의 고지에는 툰드라 기후가, 그레이트오스트레일리아만(灣)의 양쪽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 남서부와 머리강(江)의 하구지역은 지중해성 기후가, 남동부지역은 연중 내내 강수량이 나타나는 습윤한 아열대 기후가 각각 나타난다.
역사
고대[1]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지도에는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이 인도양의 남쪽에 있는 ‘미지의 대륙’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유럽인이 실제로 이 대륙에 들어온 것은 17세기부터이다. 1606년 네덜란드의 두이프겐(Duyfken)호가 대륙 북부의 카펀테리아만(灣)에 내항(來航)한 것이 최초로, 그로부터 가끔 네덜란드의 배가 오스트레일리아를 방문하게 되었다. 17세기를 통하여 네덜란드인은 이 대륙의 북안(北岸)·서안 및 태즈메이니아섬 등의 지역을 묶어 ‘신(新)홀란트(Nieu Holland)라고 불렀다.
영국인으로서 이 대륙에 최초로(1688) 온 사람은 영국의 항해가 W.댐피어였고, 지금까지 유럽인이 가보지 않은 동해안 전체를 자세히 조사하고 문명인이 살 수 있는 땅임을 밝혀 영국 영유(領有)에의 길을 연 사람은 제임스 쿡이었다. 그는 1777년 뉴질랜드에서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남동단에 이르러 시드니 쪽을 북상하여 보터니만(灣)에 상륙, 다시 북상하여 요크곶 부근의 한 섬에 영국 국기를 게양하고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동부의 영유를 선언하였다. 뉴사우스웨일스라는 명칭은 이때 생겼다.
중세[2]
1776년 미국독립혁명이 발발하여 그때까지 미국으로 보내고 있던 죄수를 처리하지 못하게 된 영국은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을 새로운 유형식민지로 이용하게 되었다. 1788년 1월 11척의 영국 선단(船團)이 1030명(그중 유형수는 726명)을 태우고 보터니만(灣)에 도착하였고, 개발의 근거지로서 시드니가 건설되었다. 1793년에는 최초의 자유이민 11명이 도착하였다.
1813년 시드니 서쪽 블루산맥 너머에 광활하고 기름진 들판이 발견되었다. 그해부터 양모의 생산을 중심으로 하는 목축업이 시작되었고, 오스트레일리아 발전의 제l기가 시작되었다. 1830년대에는 호바트·브리즈번·멜버른·애들레이드 등에 새 식민지가 건설되었다. 에스파냐 원산인 메리노종(種)의 양이 도입되고 개량되어, 1807년에는 양모가 처음으로 런던에 수출되었다. 1810년에는 뉴사우스웨일스주(州)의 양 사육수가 늘었다.
이민과 자연증가로 인구도 늘어났다. 자유이민이 증가함에 따라 유형을 중지하라는 요구가 높아져서 1840년에는 태즈메이니아섬과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를 제외하고는 유형이 중지되었다. 1851년에는 뉴사우스웨일스주의 서부에서, 또 빅토리아주에서, 다시 1862년에는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에서도 금광이 발견되어 세계 각지에서 이민이 쇄도하였다.
제2기의 대륙 개발은 이 금광에 의하여 촉진되었고, 금광 채굴자에게 식량을 공급하기 위한 밀의 재배 및 기타 농업이 발달하였다. 그후 이 나라의 농업은 영국 본국에 대한 중요한 식량 공급원이 되었으며, 낙농과 더불어 육류가공·냉동업도 발달하였다. 1880년대부터 백호주의정책이 제창되기 시작하였고, 1888년에는 중국인 이민의 제한이, 1896년에는 모든 유색인종의 배척이 결정되기에 이르렀다.
근대[3]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는 각 식민지는 영국 본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식민지 상호간의 연락도 원활하지 못하였으므로 자치권을 요구하는 소리가 높았고, 1823년 이래 입법원(立法院)의 설치가 각 식민지에서 차례로 인정되기에 이르렀다. 1840~50년대에는 권한이 더욱 확대되었다.
1855년에는 3권분립·양원제·책임내각제를 중심으로 하는 뉴사우스웨일스주의 헌법이 영국 본국의 인정을 받았고, 이어서 다른 각주가 같은 내용의 헌법을 제정하여 주권을 확립하게 되었다. 그러나 국방·이민·주(州)상호관세 등 각 주 공통의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기관이 필요하였다.
현대[4]
오스트레일리아는 1893년 이래 각주 총리회의(總理會議)가 개최되면서 각주를 통일하는 연방을 설립하려는 기운이 성숙함에 따라 1900년에 연방헌법이 제정되었다. 1901년 1월 1일에는 영국의 자치령으로서 오스트레일리아연방이 발족되었다.
연방헌법에 따라 연방의 수도가 잠정적으로 멜버른으로 정해졌으나 1911년에 오스트레일리아 수도주(首都地域:Australia Capital Territory)가 결정되었고, 그 중심에 해당하는 지역을 1913년에 캔버라로 명명하였다. 1922년에 최초의 연방의회가 열렸다.
[5]오스트레일리아연방은 영국 식민지시대부터 지배계급(정부관리·대농장주·상업자본가)과 피지배계급(유배죄수·하층계급)의 구분이 매우 강한 정치풍토에서, 영국식 내각책임제에 미국식 연방제도를 도입한 자유민주주의 국가 형태를 갖춰나갔다. 1927년 7월에 연방정부와 의회를 연방수도로 선정된 캔버라로 이동했고, 1931년 영국으로부터 완전자치 승인을 얻었다. 1986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 헌법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정당은 1909년 노동당, 1919년 국민당, 1944년 자유당, 1977년 민주당, 1992년 녹색당이 차례로 창당되었고, 진보를 대변하는 노동당과 보수정당인 자유당이 교대로 집권하면서 전형적인 양당 정치체제를 정착시켰다.
대외적으로는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을 계기로 새로운 안보·경제적 필요성에 따라 영국 대신 미국과의 동맹관계로 대체하고 비영국계 유럽 이민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1967년 OECD(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에 이어 1971년 영국연방 5개국 방위협정을 체결했으며, 이어 백호주의정책을 폐지했다. 1980년대에는 아태지역의 경제발전과 교역증가, 다문화사회 지향, 아시아계 이민 증대 등에 따라 아시아 태평양 국가로 정책을 전환하였다. 2000년대 들어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의 독립과 불법 이민문제로 갈등을 겪었고, 국내에는 토착 원주민의 토지소유 문제 등이 불씨로 남아 있다.
오버워치 속 호주
캐릭터
호주 국적을 가진 캐릭터로는 돌격형 영웅인 로드호그가 있다.
호주 국적을 가진 캐릭터로는 수비형 영웅인 정크랫가 있다.
맵
아직 게임에 구현되지 않았음.
문화
각주
- ↑ <출처> (두산백과) 오스트레일리아의 식민기 이전
- ↑ <출처> (두산백과) 오스트레일리아의 식민기
- ↑ <출처> (두산백과) 오스트레일리아의 주권확립
- ↑ <출처> (두산백과) 오스트레일리아의 연방성립
- ↑ <출처> (두산백과) 오스트레일리아의 연방성립 이후
기여
국가별로 바라본 오버워치
Class
클래스 | 노드 |
---|---|
국가 | 미국, 멕시코, 브라질, 네팔, 인도, 일본, 중국, 한국, 나이지리아, 이집트, 호주, 독일, 러시아, 스웨덴, 스위스, 영국, 프랑스 |
맵 | 네팔, 하나무라, 도라도, 눔바니, 일리오스, 아누비스 신전, 볼스카야 인더스트리, 리장타워, 왕의 길, 할리우드, 감시기지 지브롤터, 66번 국도, 아이헨발데 |
캐릭터 | 겐지, 맥크리, 파라, 리퍼 , 솔저:76, 솜브라, 트레이서, 바스티온, 한조, 정크랫, 메이, 토르비욘, 위도우메이커, D.Va, 오리사, 라인하르트, 로드호그, 윈스턴, 자리야, 아나, 루시우, 메르시, 시메트라, 젠야타 |
문화 | 한국의 프로게이머, 일본의 닌자, 아시아의 용, 일본의 궁도, 중국의 하얼빈 빙등제, 중국의 야시장, 중국의 정원, 영국의 음식, 영국의 셜록홈즈, 러시아의 우주여행, 러시아의 로봇산업, 게르만족 혈통, 삼바축구, 독일연방군, 네팔의 수도사들, 호주의 쓰레기들, 브라질의 빈민가, 해킹, 프랑스 속 암살, 서부의 총잡이들, 스위스의 의료산업, 미국의 전쟁영웅, 전쟁 고아, UN세계평화기구, 스웨덴의 제조기술, 옴닉사태, 오리사 전승, 우제트, 인도의 전통춤, 젬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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