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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生曰:「擬經恐未可盡非。且說後世儒者著述之意與擬經如何?」
 
:先生曰:「擬經恐未可盡非。且說後世儒者著述之意與擬經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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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曰:「唐、虞以上之治,後世不可復也,略之可也。三代以下之治,後世不可法也,削之可也。惟三代之治可行。然而世之論三代者,不明其本而徒事其末,則亦不可復矣。」
  
 
===13.===
 
===13.===

2019년 4월 29일 (월) 17:43 판

전습록 上

이 페이지는 고려대 철학과 대학원 동양철학전공 원전 강독 세미나(의적단)의 일환으로 작성되었다.
전습록의 양이 많아 크게 상/중/하 세 파트로 나누는데, 이 페이지는 그 가운데 상편에 해당한다. 상편의 원문은 다음 링크를 이용할 것.[1]

傳習錄序

門人有私錄陽明先生之言者。先生聞之,謂之曰:「聖賢教人,如醫用藥,皆因病立方,酌其虛、實、溫、涼、陰、陽、內、外而時時加減之。要在去病,初無定說。若拘執一方,鮮不殺人矣。今某與諸君不過各就偏蔽,箴切砥礪,但能改化,即吾言已為贅疣。若遂守為成訓,他日誤己誤人,某之罪過可復追贖乎?」 愛既備錄先生之教,同門之友有以是相規者。愛因謂之曰:「如子之言,即又『拘執一方』,復失先生之意矣。孔子謂子貢嘗曰:『予欲無言。』他日則曰:『吾與回言終日。』又何言之不一邪?蓋子貢專求聖人於言語之間,故孔子以無言警之,使之實體諸心以求自得;顏子於孔子之言,默識心通,無不在己,故與之言終日,若決江河而之海也。故孔子於子貢之無言不為少,於顏子之終日言不為多,各當其可而已。今備錄先生之語,固非先生之所欲。使吾儕常在先生之門,亦何事於此。惟或有時而去側,同門之友又皆離群索居,當是之時,儀刑既遠而規切無聞。如愛之駑劣,非得先生之言時時對越警發之,其不摧墮靡廢者幾希矣。吾儕於先生之言,苟徒入耳出口,不體諸身,則愛之錄此,實先生之罪人矣;使能得之言意之表,而誠諸踐履之實,則斯錄也,固先生終日言之之心也,可少乎哉?」錄成,因復識此於首篇以告同志。門人徐愛序。
  • 문인 중에 양명선생의 말씀을 개인적으로 기록한 자가 있었다. 선생께서 이를 들으시고는 말씀하셨다: “성현께서 사람을 가르치시는 것은 마치 의사가 약을 쓰는 것과 같아, 늘 병에 따라 처방을 만들어 병의 허실, 온량, 음양, 내외를 참작해 상황에 따라 더하기도 덜기도 하니, 핵심은 병을 제거하는 데 있지 애당초 정해진 설은 없다. 만약 하나의 처방에 집착한다면 환자를 죽이지 않는 경우가 드물 것이다. 지금 나와 제군은 각각 편폐한 부분에 대해 경계하고 연마하는 것에 불과하니, 편폐를 고쳐 변화할 수 있으면 곧 내 말은 이미 군더더기가 되어있을 것이다.[1] 만일 그런데도 내 말을 굳게 지켜 완성된 가르침으로 삼는다면, 훗날에는 나를 오도하고 남도 오도할 것이니, 내 잘못을 다시 속죄할 수 있겠는가?” 내가 선생의 가르침을 잘 기록해두었고 같은 문하의 벗이 이를 살펴보았기에, 내가 이를 가지고 말씀드렸다: “선생님의 말씀은 곧 또 하나의 처방에 집착하는 것이니 다시 선생님의 뜻을 어긴 것입니다. 공자께서 일찍이 자공에게 ‘나는 말하지 않으련다!’라고 하시고는,[2] 나중에 ‘나는 안회와 종일토록 말하였다’고 하셨으니,[3] 또 어째서 말이 한결같지 않은 것입니까? 대개 자공은 오직 말에서 성인을 구하고자 했기 때문에 공자께서 ‘말하지 않겠다’는 말로 경계하셔서 자공으로 하여금 마음에 실질적으로 체득하여 자득하기를 구하게 하셨고, 안자는 공자의 말씀에 대해 묵묵히 이해하고 마음으로 통달하여 자기에게 있지 않은 것이 없었으므로 공자께서 그와 종일토록 말씀하신 것이 마치 장강과 황하를 터서 바다로 가게 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자공에게 말씀하시지 않은 것은 적은 게 아니고, 안자와 종일토록 말씀하신 것은 많은 게 아니니, 각각 옳음에 맞았을 따름입니다. 지금 선생님의 말씀을 잘 기록한 것은 진실로 선생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닌데, 저희가 늘 선생님의 문하에 있다면 어찌 이를 일삼겠습니까? 혹시 때에 따라 선생님 곁을 떠나거나, 같은 문하의 벗들이 모두 문하를 떠나 독립하면[4] 이때 본보기(선생님)[5]는 멀고 훈계는 들을 수 없을 것이니, 노둔한 제가 선생님의 말씀을 얻어 때때로 대하여 경계하지 않는다면 꺾이고 쓰러지지 않는 경우가 드물 것입니다. 저희들이 선생님의 말씀에 대해 만약 그저 귀에 들어와 입으로 나갈 뿐 몸에 체득하지 않는다면, 제가 이를 기록한 것은 진실로 선생님의 죄인이 되는 짓이겠지만, 드러난 말에서 터득하여 실제적 실천에 충실하다면 이 기록은 진실로 선생님께서 종일토록 말씀하신 마음일 것이니, 적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전습록을 완성하고서 다시 이를 책의 첫머리에 기록하여 동지들에게 고한다. 문인 서애가 서문을 쓰노라.

徐愛引言

先生於《大學》「格物」諸說,悉以舊本為正,蓋先儒所謂「誤本」者也。愛始聞而駭,既而疑,已而殫精竭思,參互錯綜以質於先生。然後知先生之說若水之寒,若火之熱,斷斷乎「百世以俟聖人而不惑」者也。先生明睿天授,然和樂坦易,不事邊幅。人見其少時豪邁不羈,又嘗泛濫於詞章,出入二氏之學,驟聞是說,皆目以為立異好奇,漫不省究。不知先生居夷三載,處困養靜,精一之功固已超入聖域,粹然大中至正之歸矣。
  • 양명 선생께서는 《대학》 「격물」에 대한 여러 설 가운데 전적으로 구본을 정본으로 여기셨으니, 대개 선유(朱子)가 말했던 誤本이었다.[6] 내가 이를 처음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가 잠시후 의심이 들어, 이윽고 사려를 다해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7] 선생에게 질정하였는데, 그런 연후에야 선생의 설이 마치 물이 찬 것처럼 혹은 불이 뜨거운 것처럼 틀림없이 '백 세 이후의 성인을 기다리더라도 의심할 수 없는 것'[8]임을 알게 되었다. 선생의 총명은 타고나셨으나 화락하고 평이하셔서 옷차림을 일삼지 않으셨다. 사람들은 선생이 어렸을 때 호탕하여 [규범에] 얽매이지 않았으며 또 일찍이 사장학에 빠지고 도불의 학문에 출입한 것은 보았기 때문에 선생의 설을 듣자마자 모두 손가락질하며 기이한 설을 세우길 좋아하여 제멋대로일 뿐 반성할 줄 모른다고 여겼지만, 선생께서 오랑캐 땅에 3년간 사시며 곤궁함에 처해 고요함을 기르실 때 精一한 공부[9]가 진실로 이미 성인의 경지에 超入하여, 순수한 大中至正의 경지로 귀결되셨음을 알지 못하였다.
愛朝夕炙門下,但見先生之道,即之若易而仰之愈高,見之若粗而探之愈精,就之若近而造之愈益無窮,十餘年來,竟未能窺其藩籬。世之君子,或與先生僅交一面,或猶未聞其謦欬[10],或先懷忽易憤激之心,而遽欲於立談之間,傳聞之說,臆斷懸度,如之何其可得也!從遊之士,聞先生之教,往往得一而遺二,見其牝牡驪黃而棄其所謂千里者。故愛備錄平日之所聞,私以示夫同志,相與考而正之,庶無負先生之教云。門人徐愛書。
  • 내가 아침저녁으로 선생의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았지만, 선생의 도를 보건대, 다가가면 쉬운 것 같은데 우러르면 더욱 높아지고, 볼 때는 거친 것 같은데 더듬어보면 더욱 정밀하며, 향해보면 가까운 것 같은데 나아가보면 더욱 끝이 없으니,[11] 십여 년 동안 끝내 그 끝을 알 수 없었다. 세상의 군자들이 혹 선생과 겨우 일면식만 있거나, 혹 여전히 선생의 말씀을 듣지 못했거나, 혹 앞서 선생을 얕잡아 보거나 선생에 대해 분노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더라도, 잠깐 사이에 전해들은 설에 대해 근거없이 바로 억측하려고 하더라도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종유하는 선비들은 선생의 가르침을 받고 종종 하나만 얻고 둘은 빠뜨리며, 말의 성별이나 색깔은 보면서 이른바 '천리'라는 건 빠뜨렸다.[12] 그러므로 내가 평소에 들었던 바를 갖추어 기록하여 개인적으로 동지들에게 보이니, 함께 상고하여 바로잡는다면 아마도 선생의 가르침을 져버리지 않을 것이다. 문인 서애가 쓰노라.

以下門人徐愛錄

1.

愛問:「『在親民』,朱子謂當作新民。後章『作新民』之文似亦有據。先生以為宜從舊本『作親民』,亦有所據否」?
  • 서애가 물었다: "'在親民'에서 주자는 新民으로 고쳐야 한다고 하였는데, 뒷 장의 '作新民'이라는 글에 아마 근거가 있는 것 같습니다.[13] 선생께서는 의당 옛 판본의 '作親民'을 따라야한다고 여기시니, 역시 근거하시는 바가 있으시겠죠?"
先生曰:「『作新民』之『新』,是自新之民,與『在新民』之『新』不同。此豈足為據?『作』字卻與『親』字相對,然非『親』字義。下面治國平天下處,皆於『新』字無發明。如云『君子賢其賢而親其親。小人樂其樂而利其利』。『如保赤子』。『民之所好好之。民之所惡惡之。此之謂民之父母之類』。皆是『親』字意。『親民』猶孟子『親親仁民』之謂。親之即仁之也。百姓不親,舜使契為司徒,敬敷五教,所以親之也。堯典『克明峻德』便是『明明德』。『以親九族』,至『平章協和』,便是『親民』,便是『明明德於天下』。又如孔子言『修己以安百姓』。『修己』便是『明明德』。『安百姓』便是『親民』。說親民便是兼教養意。說新民便覺偏了」。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作新民'의 '新'은 스스로 새로워진 백성이니,[14] '在新民'의 '新'과는 같지 않다. 이것이 어찌 근거가 될 수 있겠는가? '作'자는 '親'자와 상대되지만 '親'자의 뜻은 아니다. 아래의 治國平天下 부분은 모두 '新'자를 발명하는 점이 없다. 예를 들어, '군자는 어진 이를 어질게 대접하고 친한 이를 친애하지만, 소인은 즐거움을 즐기고 이익을 이롭게 여긴다'[15], '핏덩이를 보호하듯이 한다'[16], '백성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백성들이 싫어하는 것을 싫어한다'[17]는 말들은 모두 '親'자의 의미이다. '親民'은 맹자의 '어버이를 친애하고 백성을 어질게 대한다'[18]는 뜻과 같으니, 친애함은 곧 어질게 대함이다. 백성이 친애하지 않아 순이 설을 사도로 삼아 五教를 공순히 펴게 하시니,[19] 그래서 백성이 친애하게 된 것이다. 요전의 '능히 높은 덕을 밝힌다'는 것이 곧 '明明德'이고, '이로써 구족을 친애한다'에서 '[백성을] 고르게 밝혀서 [만방을] 조화롭게 한다'는 것이 '親民'이며 '明明德於天下'다.[20] 또 공자께서 '자신을 수양해 백성을 편안케 한다'[21]고 말씀하신 것의 경우, '자신을 수양함'은 '明明德'이고 '백성을 편안케 함'은 '親民'이다. 親民을 말하면 곧 가르치고 기르는 뜻을 겸하지만, 新民을 말하면 치우침을 알 수 있다."


2.

愛問:「『知止而後有定』,朱子以為『事事物物皆有定理』,似與先生之說相戾」。
  • 서애가 물었다: "'知止而後有定'에 대해 주자는 '각각의 사물에 모두 정해진 이치가 있다'[22]고 하였는데, 선생님의 설과 어긋나는 것 같습니다."
先生曰:「於事事物物上求至善,卻是義外也。至善是心之本體。只是明明德到至精至一處便是。然亦未嘗離卻事物。本注所謂『盡夫天理之極,而無一毫人欲之私』者,得之」。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각 사물에서 至善을 구하는 것은 義를 외부에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23] 至善은 마음의 본체이다. 그저 明德을 밝혀 지극히 精一한 경지에 이르면 된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사물을 떠난 적은 없다. 대학장구의 '천지의 표준을 다하고 한 터럭만큼의 자기중심적 인욕을 없게 한다'[24] 라는 것이 맞다."


3.

愛問:「至善只求諸心。恐於天下事理,有不能盡」。
  • 서애가 물었다: "至善은 그저 마음에서 구할 뿐이니, 아마 천하의 事理에 대해서는 모두 파악하지 못하는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先生曰:「心即理也。天下又有心外之事,心外之理乎?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마음이 곧 理이다. 천하에 달리 마음 밖의 일, 마음 밖의 理가 있는가?"
愛曰:「如事父之孝,事君之忠,交友之信,治民之仁,其間有許多理在。恐亦不可不察」。
  • 서애가 물었다: "부모를 섬기는 효, 임금을 섬기는 충, 벗과 사귀는 신, 백성을 다스리는 인의 경우 그 사이에 수많은 도리가 있으니, 역시 살피지 않아선 안 될 것 같습니다."
先生嘆曰:「此說之蔽久矣。豈一語所能悟?今姑就所問者言之。且如事父,不成去父上求個孝的理。事君,不成去君上求個忠的理。交友治民,不成去友上民上求個信與仁的理。都只在此心。心即理也。此心無私欲之蔽,即是天理。不須外面添一分。以此純乎天理之心,發之事父便是孝。發之事君便是忠。發之交友治民便是信與仁。只在此心去人欲存天理上用功便是」。
  • 선생께서 한탄하셨다: "이런 설의 폐단이 오래되었다. 어찌 말 한 마디로 깨우칠 수 있는 것이겠는가! 지금은 우선 질문에 따라 대답해주겠다. 부모를 섬기는 경우 부모에게서 효라는 도리를 구할 수 없고, 임금을 섬기는 경우 임금에게서 충이라는 도리를 구할 수 없으며, 벗을 사귀거나 백성을 다스리는 경우 벗이나 백성에게서 신과 인의 도리를 구할 수 없으니, 모두 마음에 달려있을 뿐이다. 마음이 곧 理이니, 이 마음에 사욕의 가림이 없다면 곧 천리이니, 밖에서 조금이라도 더해서는 안 된다. 이 순수한 천리의 마음을 부모 섬기는 데 발현시키면 효이고, 임금을 섬기는 데 발현시키면 충이며, 벗을 사귀거나 백성을 다스리는 데 발현시키면 신과 인이다. 그저 이 마음에서 인욕을 제거하고 천리를 보존하는 공부에 힘을 쓰면 된다."
愛曰:「聞先生如此說,愛已覺有省悟處。但舊說纏於胸中,尚有未脫然者。如事父一事,其間溫凊定省之類,有許多節目。不知亦須講求否」?
  • 서애가 물었다: "선생님의 이와 같은 설명을 들으니 저는 벌써 깨우친 바가 있는 것 같습니다만, 옛 설이 마음속을 얽매어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점이 있습니다. 부모를 섬기는 일에서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드리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드리며, 저녁에는 이부자리를 펴드리고 아침에는 문안은 여쭙는 것'[25] 등 수많은 절목이 있으니,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배워서 알아야하는 것이겠지요?"
先生曰:「如何不講求?只是有個頭腦。只是就此心去人欲存天理上講求。就如講求冬溫,也只是要盡此心之孝,恐怕有一毫人欲間雜。講求夏凊,也只是要盡此心之孝,恐怕有一毫人欲間雜。只是講求得此心。此心若無人欲,純是天理,是個誠於孝親的心,冬時自然思量父母的寒,便自要求個溫的道理。夏時自然思量父母的熱,便自要求個凊的道理。這都是那誠孝的心發出來的條件。卻是須有這誠孝的心,然後有這條件發出來。譬之樹木,這誠孝的心便便是根。許多條件便枝葉。須先有根,然後有枝葉。不是先尋了枝葉,然後去種根。禮記言『孝子之有深愛者,必有和氣。有和氣者,必有愉色。有愉色者,必有婉容』。須是有個深愛做根,便自然如此」。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어떻게 배워서 알지 않겠는가? 다만 핵심이 있으니, 그저 이 마음에서 인욕을 제거하고 천리를 보존한 상태에서 배워 알아야 한다. 가령 겨울에 따뜻하게 만드는 법을 배워 알더라도 그저 이 마음의 효를 다하여 한 터럭의 인욕도 뒤섞이지 않을까 걱정해야하고, 여름에 시원하게 하는 법을 배워 알더라도 그저 이 마음의 효를 다하여 한 터럭의 인욕도 뒤섞이지 않을까 걱정해야하니, 그저 이 마음을 배워 알아야한다. 이 마음에 인욕이 없어 순수하게 천리라서 진실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음이라면, 겨울에는 저절로 부모의 추위를 헤아려 곧 스스로 따뜻하게 해드릴 방도를 찾으려 할 것이고, 여름에는 저절로 부모의 더위를 헤아려 곧 스스로 시원하게 해드릴 방도를 찾으려 할 것이다. 이 모두는 저 효성스런 마음이 발현된 조목이니, 반드시 이 효성스런 마음이 있은 연후에 이 조목이 발현된다. 나무에 비유한다면, 효성스런 마음은 뿌리이고 수많은 조목은 지엽이다. 반드시 뿌리가 있은 연후에 지엽이 있는 것이지, 먼저 지엽을 찾은 연후에 뿌리로 가는 것이 아니다. 예기에서 '효자 가운데 깊은 애정이 있는 자는 반드시 온화한 기가 있고, 온화한 기가 있는 자는 반드시 즐거운 낯빛이 있으며, 즐거운 낯빛이 있는 자는 반드시 곡진한 태도가 있다.'[26]고 하니, 깊이 사랑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음이 있으면 틀림없이 저절로 이와 같이 된다."


4.

鄭朝朔問:「至善亦須有從事物上求者。」
  • 정조삭이 물었다: "至善은 그래도 사물에서 구하는 것입니다."
先生曰:「至善只是此心純乎天理之極便是,更於事物上怎生求?且試說幾件看[27]。」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至善은 그저 이 마음이 천리의 지극함에 순수하면 되는 것이지, 달리 사물에서 무엇을 구하겠나? 한 번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게."
朝朔曰:「且如事親,如何而為溫凊之節,如何而為奉養之宜,須求個是當,方是至善;所以有學問思辨之功。」
  • 조삭이 말했다: "예를 들어 부모를 섬길 때 어떻게 해야 따뜻·시원하게 하는 절목을 실행하며, 어떻게 해야 적절히 봉양하겠습니까? 모름지기 적당한 것을 구해야 비로소 至善입니다. 그래서 學問하고 思辨하는 공부가 있는 것입니다."
先生曰:「若只是溫凊之節,奉養之宜,可一日二日講之而盡,用得甚學問思辨!惟於溫凊時也只要此心純乎天理之極,奉養時也只要此心純乎天理之極。此則非有學問思辨之功,將不免於毫釐千里之繆;所以雖在聖人,猶加『精一』之訓。若只是那些儀節求得是當,便謂至善,即如今扮戲子,扮得許多溫凊奉養的儀節是當,亦可謂之至善矣。」愛於是日又有省。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따뜻·시원하게 하는 절목, 적절한 봉양 정도라면 하루이틀 배우면 다 알 수 있으니, 무슨 학문이나 사변을 하겠나! 오직 따뜻·시원하게 할 때에 이 마음이 천리의 지극함에 순수하게 하고, 봉양할 때 이 마음이 천리의 지극함에 순수하게 해야하니, 이것은 학문이나 사변의 공부가 있지 않더라도 장차 털끝만한 것이 천 리만큼 어긋남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성인의 경우에도 오히려 '精一'의 가르침을 더하셨던 것이다.만일 그저 저 몇 가지 절차에서 적절한 것을 구하는 것을 至善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곧 오늘날의 연기자가 따뜻·시원하게 하거나 봉양하는 여러 절차를 적절하게 꾸미면 그 역시 至善하다고 할 수 있는 것과 같네." 내가 이 날에 또 반성하는 점이 있었다.


5.

愛因未會先生知行合一之訓,與宗賢、惟賢往復辯論,未能決,以問於先生。
  • 내가 선생의 知行合一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여 宗賢·惟賢과 변론을 주고 받았으나 해결하지 못해 선생께 물었다.
先生曰:「試舉看。」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한 번 예를 들어보라."
愛曰:「如今人盡有知得父當孝、兄當弟者,卻不能孝、不能弟,便是知與行分明是兩件。」
  • 내가 물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아버지에게는 효도해야하고 형에게는 공손해야함을 잘 아는데 도리어 효도하지 못하고 공손하지 못하다면, 이는 知와 行이 분명 두 가지인 것입니다."
先生曰:「此已被私欲隔斷,不是知行的本體了。未有知而不行者;知而不行,只是未知。聖賢教人知行,正是安復那本體,不是著你只恁的便罷。故《大學》指個真知行與人看,說『如好好色,如惡惡臭』。見好色屬知,好好色屬行。只見那好色時已自好了,不是見了後又立個心去好;聞惡臭屬知,惡惡臭屬行,只聞那惡臭時已自惡了,不是聞了後別立個心去惡。如鼻塞人雖見惡臭在前,鼻中不曾聞得,便亦不甚惡,亦只是不曾知臭。就如稱某人知孝、某人知弟,必是其人已曾行孝、行弟,方可稱他知孝、知弟;不成只是曉得說些孝、弟的話,便可稱為知孝、弟。又如知痛,必已自痛了方知痛;知寒,必已自寒了;知飢,必已自飢了。知行如何分得開?此便是知行的本體,不曾有私意隔斷的。聖人教人必要是如此,方可謂之知;不然,只是不曾知。此卻是何等緊切著實的工夫!如今苦苦定要說知行做兩個,是甚麼意?某要說做一個,是什麼意?若不知立言宗旨,只管說一個兩個,亦有甚用!」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이미 사욕에 의해 가려진 것이니, 知行의 본모습(本體)이 아니네. 알면서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知而不行)는 없으니, 알면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그저 알지 못하는 것이라네.성현께서 사람들에게 知行에 대해 가르치신 것은 바로 저 본모습(本體)을 편안히 여기고 회복하는 것이지 네가 그저 이러하면 그만이라는 것이 아니네. 그러므로 《大學》에서는 진정한 知行을 사람들에게 가리켜주었으니, 바로 '아름다운 이성을 좋아하듯, 악취를 싫어하듯'[28]이라고 말한 것이네. 아름다운 이성을 알아채는 것은 知에 속하고, 아름다운 이성을 좋아하는 것은 行에 속하는데, 그저 저 아름다운 이성을 봤을 때 이미 절로 좋아하는 것이지 본 이후에 따로 마음을 세워 좋아하는 것이 아니며, 악취를 맡는 것은 知에 해당하고 악취를 싫어하는 것은 行에 속하는데, 그저 저 악취를 맡았을 때 이미 절로 싫어하는 것이지 맡은 이후에 따로 마음을 세워 싫어하는 것이 아니네. 만약 코가 막힌 사람이 비록 앞에서 악취나는 것을 봤더라도 콧속으로 맡은 적이 없다면 또 무엇을 싫어하겠는가? 다만 맡을 줄 몰랐기 때문이네. 가령 어떤 사람이 효도를 알고 어떤 사람이 공손함을 안다고 한다면, 필시 그 사람은 이미 일찍이 효도를 행하고 공손함을 행했기 때문에 그가 효도를 알고 공손함을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 그저 효도·공손함에 대한 말 몇 가지를 안다고 해서 효도·공손함을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네. 또 고통을 아는 경우도 필시 이미 스스로 고통을 느껴야 비로소 고통을 알게 된 것이고, 추위를 아는 경우도 반드시 이미 스스로 추위를 느꼈을 것이며, 배고픔을 아는 경우도 반드시 이미 스스로 배고픔을 느꼈을 것이다. 知와 行을 어떻게 나누겠나? 이것이 바로 知行의 본모습(本體)이니, 일찍이 사욕이 막은 적이 없는 것이다. 성인께서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 반드시 이와 같아야 知라고 할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그저 일찍이 알지 못한 것이라고 [하셨다.] 이것이 얼마나 긴요하고 실질적인 공부인가! 만일 애써 知行을 둘로 나눠 말하려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내가 [知行을] 하나로 말하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만약 설을 만든 종지를 알지 못한다면 하나로 말하든 둘로 말하든 또 무슨 소용이겠는가!"
愛曰:「古人說知行做兩個,亦是要人見個分曉,一行做知的功夫,一行做行的功夫,即功夫始有下落。」
  • 내가 말했다: "옛 분들이 知行을 둘로 말한 것 역시 사람들로 하여금 분명하게 알게 하고자 한 것이니, 한 번 知공부를 하고 한 번 行공부를 하면 곧 공부에 비로소 결실이 있을 것입니다."
先生曰:「此卻失了古人宗旨也。某嘗說知是行的主意,行是知的功夫;知是行之始,行是知之成。若會得時,只說一個知,已自有行在,只說一個行,已自有知在。古人所以既說一個知,又說一個行者,只為世間有一種人,懵懵懂懂的任意去做,全不解思惟省察,也只是個冥行妄作,所以必說個知,方纔行得是;又有一種人,茫茫蕩蕩懸空去思索,全不肯著實躬行,也只是個揣摸影響,所以必說一個行,方纔知得真。此是古人不得已補偏救弊的說話,若見得這個意時,即一言而足。今人卻就將知行分作兩件去做,以為必先知了,然後能行,我如今且去講習討論做知的工夫,待知得真了,方去做行的工夫;故遂終身不行,亦遂終身不知。此不是小病痛,其來已非一日矣。某今說個知行合一,正是對病的藥,又不是某鑿空杜撰,知行本體原是如此。今若知得宗旨時,即說兩個亦不妨,亦只是一個;若不會宗旨,便說一個,亦濟得甚事?只是閑說話。」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이 말은 옛 분들의 종지를 잃어버린 것이다. 나는 일찍이 '知는 行의 내용(主意)이며 行은 知의 공부이고, 知는 行의 시작이며 行은 知의 완성이다'라고 하였으니, 이해했을 때에는 그저 知만 말해도 이미 저절로 行이 있으며, 그저 行만 말해도 이미 저절로 知가 있는 것이다. 옛 분들은 知를 말씀하셔놓고 또 行을 말씀하신 것은 다만, 세상에 어떤 사람은 멍청하게 제멋대로 행동할 뿐 전혀 생각하거나 성찰하지 않아 그저 冥行妄作일 뿐이라 반드시 知를 말해야 비로소 옳게 행동하기 때문이고, 또 어떤 사람은 고원하고 아득하게 허공에 매달려 사색하여 전혀 실제적으로 몸소 실천하려고 하지 않아 그저 '그림자를 더듬는 일(揣摸影響)'일 뿐이라 반드시 行을 말해야 비로소 제대로 알기 때문이다. 이것은 옛 분들이 부득이하게 편폐를 구제하기 위한 말이니, 이 의도를 안 때에는 한 마디면 충분하다. 요즘 사람들은 도리어 知行을 둘로 나눠 행해, '반드시 먼저 안 연후에 행할 수 있으니(先知後行), 나는 이제 우선 강습하고 토론해 知공부를 하고, 知가 제대로 갖춰지고서 비로소 行공부를 할 것이다'라고 여겨 마침내 종신토록 行하지 않고 또 마침내 종신토록 知하지도 못한다. 이는 작은 병통이 아니고, 그 후과도 하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지금 말하는 知行合一설은 바로 대증요법이지 내가 근거없이 지어낸 것이 더욱 아니니, 知行의 본모습이 원래 이와 같은 것이다. 만약 종지를 알았을 때에는 두 가지로 말해도 무방하니, 그렇게 하더라도 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만약 종지를 이해하지 못했다면, 똑같은 얘기를 하더라도 무슨 효과를 볼 수 있겠는가? 그저 쓸데없는 소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6.

愛問:「昨聞先生『止至善』之教,已覺功夫有用力處,但與朱子『格物』之訓,思之終不能合。」
  • 내가 물었다: "어제 선생님의 '止於至善'에 대한 가르침을 들어 공부에 힘쓸 곳이 생겼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가르침이] 주자의 '격물'설과 끝내 합치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先生曰:「『格物』是『止至善』之功,既知『至善』,即知『格物』矣。」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격물'은 '지어지선'의 공부이니, '至善'을 이해했다면 곧 '격물'을 이해한 것이다."
愛曰:「昨以先生之教推之『格物』之說,似亦見得大略。但朱子之訓,其於《書》之『精一』,《論語》之『博約』,《孟子》之『盡心知性』,皆有所證據,以是未能釋然。」
내가 말했다: "어제 선생님의 가르침을 가지고 '격물'설을 미루어보니 그래도 대략은 알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주자의 설은 《서경》의 '精一', 《논어》의 '博約', 《맹자》의 '盡心知性'에서 모두 근거한 바가 있으니, 이때문에 명쾌하게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先生曰:「子夏篤信聖人,曾子反求諸己,篤信固亦是,然不如反求之切。今既不得於心,安可狃於舊聞,不求是當!就如朱子亦尊信程子,至其不得於心處,亦何嘗茍從?『精一』、『博約』、『盡心』本自與吾說吻合,但未之思耳。朱子『格物』之訓,未免牽合附會,非其本旨。精是一之功,博是約之功,曰仁既明知行合一之說,此可一言而喻。『盡心知性知天』是『生知安行』事,『存心養性事天』是『學知利行』事,『夭壽不貳,修身以俟』是『困知勉行』事。朱子錯訓『格物』,只為倒看了此意,以『盡心知性』為『物格知至』,要初學便去做『生知安行』事,如何做得!」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자하는 성인(공자)을 독실하게 믿었고 증자는 돌이켜 자신에게 구했는데,[29] 독실하게 믿는 것도 진실로 옳지만 돌이켜 구하는 절실함만 못하다. 마음에 얻지 못했는데 어찌 옛 가르침에 빠져 옳은 것을 구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주자의 경우도 정자를 높이고 믿었으나, 마음에 얻지 못해서는 또 어찌 일찍이 구차히 따르셨겠는가? 《서경》의 '精一', 《논어》의 '博約', 《맹자》의 '盡心知性'은 본래부터 내 설과 부합하니, 다만 그대가 생각해보지 않았을 뿐이네. 주자의 격물설은 견강부회를 면하지 못하니, 《대학》의 본지가 아니다. 精은 一의 공부이고 博은 約의 공부이니, 그대가 知行合一설을 이해했다면, 이것은 한 마디로 이해할 수 있네. 《맹자》의 '盡心知性知天'은 '生知安行'의 일이고, '存心養性事天'은 '學知利行'의 일이며, '夭壽不貳,修身以俟'는 '困知勉行'의 일이네. 주자가 '격물'을 잘못 풀이한 것은 그저 이 뜻을 거꾸로 보아 '盡心知性'을 '物格知至'로 보았기 때문이니, 초학자로 하여금 곧장 '生知安行'의 일을 하게 한다면 어떻게 해내겠나!"
愛問:「『盡心知性』何以為『生知安行』?」
  • 내가 물었다: "'盡心知性'이 어째서 '生知安行'의 일입니까?"
先生曰:「性是心之體,天是性之原,盡心即是盡性。惟天下至誠,為能盡其性,知天地之化育。『存心』者,心有未盡也。『知天』,如『知州』、『知縣』之『知』,是自己分上事,己與天為一。『事天』如子之事父,臣之事君,須是恭敬奉承,然後能無失,尚與天為二,此便是聖賢之別。至於『夭壽不貳其心』,乃是教學者一心為善,不可以窮通夭壽之故,便把為善的心變動了,只去修身以俟命,見得窮通壽夭有個命在,我亦不必以此動心。『事天』雖與天為二,已自見得個天在面前;『俟命』便是未曾見面,在此等候相似,此便是初學立心之始,有個困勉的意在。今卻倒做了,所以使學者無下手處。」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性은 心의 본체(體)이고, 天은 性의 근원이니, 盡心은 곧 盡性이다. '오직 천하의 至誠이라야 그 性을 다하여 천지의 화육을 알 수 있다.'[30] '존심'이라는 것은 心에 미진한 점이 있는 것이다. '지천'은 '知州'나 '知縣'의 '知'와 같으니, 자기본분상의 일로 자기와 天을 하나로 삼는 것이다. '사천'은 자식이 부모를 섬기고 신하가 임금을 섬김에 반드시 공경하고 받든 연후에야 잘못이 없을 수 있는 것과 같아 여전히 天과 둘이니, 이것이 곧 성인과 현인의 차이이다. '夭壽不貳其心'은 바로 배우는 자로 하여금 한마음으로 선을 행해 窮通/夭壽의 까닭으로 선을 행하는 마음을 바꾸거나 동요시켜선 안 되고, 오로지 수신하여 천명을 기다리고 窮通/夭壽가 천명에 달려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니, 나 또한 꼭 이것으로 마음을 동요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사천'은 비록 天과 둘이 되지만 이미 스스로 天이 눈앞에 있음을 본 것이고, '사명'은 본 적은 없으나 여기서 기다리는 것과 비슷하니, 이것이 바로 초학자가 立心하는 시작이니 '困勉'의 뜻이 있다. 지금 도리어 거꾸로 하여 배우는 자들에게 착수할 곳이 없게 하였다."
愛曰:「昨聞先生之教,亦影影見得功夫須是如此,今聞此說,益無可疑。愛昨曉思『格物』的『物』字,即是『事』字,皆從心上說。」
  • 내가 말했다: "어제 선생님의 가르침을 듣고서는 모호하게 '공부는 이렇게 해야한다'는 것을 알았는데, 지금 이 설명을 들으니 더이상 의심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저는 어제 '격물'의 '물'자가 곧 '事'자이니 모두 마음에서 말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先生曰:「然。身之主宰便是心,心之所發便是意,意之本體便是知,意之所在便是物。如意在於事親,即事親便是一物,意在於事君,即事君便是一物,意在於仁民、愛物,即仁民、愛物便是一物,意在於視、聽、言、動,即視、聽、言、動便是一物。所以某說無心外之理,無心外之物。《中庸》言『不誠無物』,《大學》『明明德』之功,只是個『誠意』。『誠意』之功,只是個『格物』。」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몸의 주재가 바로 心이고, 心이 발현된 것이 意며, 意의 핵심(本體)은 知이고, 意의 대상(所在)은 物이다. 意가 부모를 섬기는 데 있으면 곧 부모 섬김이 하나의 物이 되고, 意가 임금을 섬기는 데 있으며 임금 섬김이 하나의 物이 되며, 意가 仁民/愛物에 있으면 仁民/愛物이 하나의 物이 되고, 意가 視聽言動에 있으면 視聽言動이 하나의 物이 된다. 그러므로 내가 '마음 밖의 이치도 없고 마음 밖의 사물도 없다'고 말했던 것이다. 《중용》에서 말한 '不誠無物'[31]과 《대학》의 明明德 공부가 그저 '誠意'일 뿐이고, '誠意'공부는 '격물'일 뿐이다."

7.

先生又曰:「『格物』如《孟子》『大人格君心』之格,是去其心之不正,以全其本體之正。但意念所在,即要去其不正,以全其正,即無時無處不是存天理,即是窮理。『天理』即是『明德』,『窮理』即是『明明德』。」

8.

先生又曰:「『格物』如《孟子》『大人格君心』之格,是去其心之不正,以全其本體之正。但意念所在,即要去其不正,以全其正,即無時無處不是存天理,即是窮理。『天理』即是『明德』,『窮理』即是『明明德』。」

9.

愛問:「先生以『博文』為『約禮』功夫,深思之,未能得,略請開示。」
先生曰:「『禮』字即是『理』字。『理』之發見可見者謂之『文』,『文』之隱微不可見者謂之『理』,只是一物,『約禮』只是要此心純是一個天理。要此心純是天理,須就『理』之發見處用功;如發見於事親時,就在事親上學存此天理;發見於事君時,就在事君上學存此天理;發見於處富貴貧賤時,就在處富貴貧賤上學存此天理;發見於處患難夷狄時,就在處患難夷狄上學存此天理;至於作止、語默,無處不然,隨他發見處,即就那上面學個存天理。這便是『博學之於文』,便是『約禮』的功夫。『博文』即是『惟精』,『約禮』即是『惟一』。」

10.

愛問:「『道心』常為一身之主,而『人心』每聽命;以先生『精一』之訓推之,此語似有弊。」
先生曰:「然。心一也,未雜於人謂之『道心』,雜以人偽謂之『人心』。『人心』之得其正者即『道心』,『道心』之失其正者即『人心』,初非有二心也。程子謂『人心即人欲,道心即天理』。語若分析,而意實得之。今曰道心為生,而人心聽命,是二心也。『天理』、『人欲』不並立,安有『天理』為主,『人欲』又從而聽命者。」

11.

愛曰:「世儒著述,近名之意不無,然期以明道;擬經純若為名。」
先生曰:「著述以明道,亦何所效法?」
曰:「孔子刪述《六經》以明道也。」
先生曰:「然則擬經獨非效法孔子乎?」
愛曰:「著述即於道有所發明;擬經似徒擬其跡,恐於道無補。」
先生曰:「子以明道者,使其反樸還淳而見諸行事之實乎?抑將美其言辭而徒以譊譊於世也?天下之大亂,由虛文勝而實行衰也。使道明於天下,則《六經》不必述;刪述《六經》,孔子不得已也。自伏義畫卦,至於文王、周公,其間言《易》,如《連山》、《歸藏》之屬,紛紛籍籍不知其幾,《易》道大亂。孔子以天下好文之風日盛,知其說之將無紀極,於是取文王、周公之說而贊之,以為惟此為得其宗。於是紛紛之說盡廢,而天下之言《易》者始一。《書》、《詩》、《禮》、《樂》、《春秋》皆然。《書》自《典》、《謨》以後,《詩》自《二南》以降,如《九丘》、《八索》,一切淫哇逸蕩之詞,蓋不知其幾千百篇。禮、樂之名物度數,至是亦不可勝窮。孔子皆刪削而述正之,然後其說始廢。如《書》、《詩》、《禮》、《樂》中,孔子何嘗加一語。今之《禮記》諸說,皆後儒附會而成,已非孔子之舊。至於《春秋》,雖稱孔子作之,其實皆魯史舊文;所謂『筆』者,筆其舊,所謂『削』者,削其繁,是有減無增。孔子述《六經》,懼繁文之亂天下,惟簡之而不得,使天下務去其文以求其實,非以文教之也。《春秋》以後,繁文益盛,天下益亂。始皇焚書得罪,是出於私意,又不合焚《六經》;若當時志在明道,其諸反經叛理之說,悉取而焚之,亦正暗合刪述之意。自秦、漢以降,文又日盛,若欲盡去之,斷不能去;只宜取法孔子錄其近是者而表章之,則其諸怪悖之說,亦宜漸漸自廢。不知文中子當時擬經之意如何,某切深有取於其事,以為聖人復起,不能易也。天下所以不治,只因文盛實衰,人出己見,新奇相高,以眩俗取譽,徒以亂天下之聰明,塗天下之耳目,使天下靡然,爭務修飾文詞以求知於世,而不復知有敦本尚實,反樸還淳之行,是皆著述者有以啟之。」
愛曰:「著述亦有不可缺者,如《春秋》一經,若無《左傳》,恐亦難曉。」
先生曰:「《春秋》必待《傳》而後明,是歇後謎語矣,聖人何苦為此艱深隱晦之詞。《左傳》多是魯史舊文,若《春秋》須此而後明,孔子何必削之?」
愛曰:「伊川亦云:『《傳》是案,《經》是斷。』如書『弒某君』、『伐某國』,若不明其事,恐亦難斷。」
先生曰:「伊川此言恐亦是相沿世儒之說,未得聖人作經之意。如書『弒君』,即弒君便是罪,何必更問其弒君之詳?征伐當自天子出,書『伐國』,即伐國便是罪,何必更問其伐國之詳?聖人述《六經》,只是要正人心,只是要存天理、去人欲,於存天理、去人欲之事則嘗言之。或因人請問,各隨分量而說,亦不肯多道,恐人專求之言語,故曰『予欲無言』,若是一切縱人欲、滅天理的事,又安肯詳以示人?是長亂導奸也。故孟子云:『仲尼之門,無道桓、文之事者,是以後世無傳焉。』此便是孔門家法。世儒只講得一個伯者的學問,所以要知得許多陰謀詭計,純是一片功利的心,與聖人作經的意思正相反,如何思量得通?」因嘆曰:「此非達天德者未易與言此也!」又曰:「孔子云:『吾猶及史之闕文也』。孟子云:『盡信《書》不如無《書》,吾於《武成》,取二三策而已』。孔子刪《書》,於唐、虞、夏四五百年間不過數篇,豈更無一事,而所述止此,聖人之意可知矣。聖人只是要刪去繁文,後儒卻只要添上。」
愛曰:「聖人作經,只是要去人欲、存天理。如五伯以下事,聖人不欲詳以示人,則誠然矣。至如堯、舜以前事,如何略不少見?」
先生曰:「𦏁、黃之世,其事闊疏,傳之者鮮矣。此亦可以想見其時全是淳龐樸素、略無文采的氣象,此便是太古之治,非後世可及。」

愛曰:「如《三墳》之類,亦有傳者,孔子何以刪之?」

先生曰:「縱有傳者,亦於世變漸非所宜。風氣益開,文采日勝,至於周末,雖欲變以夏、商之俗,已不可挽,況唐、虞乎!又況𦏁、黃之世乎!然其治不同,其道則一。孔子於堯、舜則祖述之,於文、武則憲章之。文、武之法,即是堯、舜之道,但因時致治,其設施政令,已自不同,即夏、商事業施之於周,已有不合。故『周公思兼三王,其有不合,仰而思之,夜以繼日』。況太古之治,豈復能行。斯固聖人之所可略也。」又曰:「專事無為,不能如三王之因時致治,而必欲行以太古之俗,即是佛、老的學術。因時致治,不能如三王之一本於道,而以功利之心行之,即是伯者以下事業。後世儒者,許多講來講去,只是講得個伯術。」

12.

愛問文中子、韓退之。
先生曰:「退之;文人之雄耳;文中子,賢儒也。後人徒以文詞之故,推尊退之,其實退之去文中子遠甚。」
愛問:「何以有擬經之失?」
先生曰:「擬經恐未可盡非。且說後世儒者著述之意與擬經如何?」
又曰:「唐、虞以上之治,後世不可復也,略之可也。三代以下之治,後世不可法也,削之可也。惟三代之治可行。然而世之論三代者,不明其本而徒事其末,則亦不可復矣。」

13.

14.

주석

  1. 장자 외물 荃者所以在魚,得魚而忘荃;蹄者所以在兔,得兔而忘蹄;言者所以在意,得意而忘言。吾安得忘言之人而與之言哉?
  2. 논어 양화 子曰:「予欲無言。」子貢曰:「子如不言,則小子何述焉?」子曰:「天何言哉?四時行焉,百物生焉,天何言哉?」
  3. 논어 위정 子曰:「吾與回言終日,不違如愚。退而省其私,亦足以發。回也,不愚。」
  4. 《禮記‧檀弓上》 吾離群而索居,亦已久矣。
  5. 《詩‧大雅‧文王》: “儀刑文王, 萬邦作孚。”
  6. 대학혹문 曰、程子之改親爲新也何所據、子之從之又何所考、而必其然耶。且以己意輕改經文。恐非傳疑之義。奈何。曰、若無所考而輒改之、則誠若吾子之譏矣。今親民云者、以文義推之則無理。新民云者、以傳文考之則有據。程子於此其所以處之者亦已審矣。矧未嘗去其本文、而但曰某當作某、是乃漢儒釋經不得已之變例、而亦何害於傳疑耶。若必以不改爲是、則世蓋有承誤踵訛、心知非是、而故爲穿鑿附會、以求其說之必通者矣。其侮聖言而誤後學也益甚。亦何足取以爲法耶。
  7. 계사상 參伍以變,錯綜其數
  8. 중용장구 29장 百世以俟聖人而不惑。
  9. 상서 대우모 人心惟危,道心惟微,惟精惟一,允執厥中。
  10. 장자 서무귀 夫逃虛空者,藜、藋柱乎鼪、鼬之逕,踉位其空,聞人足音跫然而喜矣,而況乎兄弟親戚之謦欬其側者乎!久矣夫!莫以真人之言謦欬吾君之側乎!
  11. 논어 자한 顏淵喟然歎曰:「仰之彌高,鑽之彌堅;瞻之在前,忽焉在後。
  12. 회남자 도응훈 秦穆公謂伯樂曰:「子之年長矣。子姓有可使求馬者乎?」對曰:「良馬者,可以形容筋骨相也。相天下之馬者,若滅若失,若亡其一。若此馬者,絕塵弭轍。臣之子皆下材也,可告以良馬,而不可告以天下之馬。臣有所與供儋纏采薪者方九堙,此其于馬,非臣之下也。請見之。」穆公見之,使之求馬。三月而反報曰:「已得馬矣。在於沙丘。」穆公曰:「何馬也?」對曰:「牡而黃。」使人往取之,牝而驪。穆公不說。召伯樂而問之曰:「敗矣。子之所使求者。毛物、牝牡弗能知,又何馬之能知?」伯樂喟然大息曰:「一至此乎!是乃其所以千萬臣而無數者也。若堙之所觀者,天機也。得其精而忘其粗,在內而忘其外,見其所見而不見其所不見,視其所視而遺其所不視。若彼之所相者,乃有貴乎馬者!」馬至,而果千里之馬。故老子曰:「大直若屈,大巧若拙。」
  13. 대학장구 湯之盤銘曰:「苟日新,日日新,又日新。」 康誥曰:「作新民。」
  14. 대학장구 鼓之舞之之謂作,言振起其自新之民也。
  15. 대학장구 君子賢其賢而親其親,小人樂其樂而利其利
  16. 대학장구 康誥曰「如保赤子」
  17. 대학장구 詩云:「樂只君子,民之父母。」民之所好好之,民之所惡惡之,此之謂民之父母。
  18. 맹자 진심상 孟子曰:「君子之於物也,愛之而弗仁;於民也,仁之而弗親。親親而仁民,仁民而愛物。」
  19. 상서 우서 순전 帝曰:「契,百姓不親,五品不遜。汝作司徒,敬敷五教,在寬。」
  20. 상서 요전 曰若稽古帝堯,曰放勳,欽、明、文、思、安安,允恭克讓,光被四表,格于上下。克明俊德,以親九族。九族既睦,平章百姓。百姓昭明,協和萬邦。黎民於變時雍。
  21. 논어 헌문 子路問君子。子曰:「脩己以敬。」曰:「如斯而已乎?」曰:「脩己以安人。」曰:「如斯而已乎?」曰:「脩己以安百姓。脩己以安百姓,堯舜其猶病諸!」
  22. 대학혹문 知止云者、物格知至而於天下之事皆有以知其至善之所在。是則吾所當止之地也。能知所止、則方寸之閒、事事物物、皆有定理矣。
  23. 맹자 고자상 告子曰:「食色,性也。仁,內也,非外也;義,外也,非內也。」
  24. 대학장구 蓋必其有以盡夫天理之極,而無一毫人欲之私也。
  25. 예기 곡례상 凡為人子之禮:冬溫而夏凊,昏定而晨省,在醜夷不爭。
  26. 예기 제의 孝子之有深愛者,必有和氣;有和氣者,必有愉色;有愉色者,必有婉容。孝子如執玉,如奉盈,洞洞屬屬然,如弗勝,如將失之。嚴威儼恪,非所以事親也,成人之道也。
  27. 한어대사전 看: 13. 用在動詞或動詞結構後面, 表示先試試之意。
  28. 대학장구 所謂誠其意者:毋自欺也,如惡惡臭,如好好色,此之謂自謙,故君子必慎其獨也!
  29. 맹자 공손추상 2. 孟施舍似曾子,北宮黝似子夏。夫二子之勇,未知其孰賢,然而孟施舍守約也。[집주] 子夏篤信聖人,曾子反求諸己。
  30. 중용장구 22장 唯天下至誠,為能盡其性;能盡其性,則能盡人之性;能盡人之性,則能盡物之性;能盡物之性,則可以贊天地之化育;可以贊天地之化育,則可以與天地參矣。
  31. 중용장구 25장 誠者物之終始,不誠無物。是故君子誠之為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