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습록 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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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습록 上

이 페이지는 고려대 철학과 대학원 동양철학전공 원전 강독 세미나(의적단)의 일환으로 작성되었다.
전습록의 양이 많아 크게 상/중/하 세 파트로 나누는데, 이 페이지는 그 가운데 상편에 해당한다. 상편의 원문은 다음 링크를 이용할 것.[1]
형식이 일관되지 않은데, 일단 원문과 번역을 올리는 게 급하므로 형식은 나중에 한꺼번에 통일하기로 한다.

傳習錄序

門人有私錄陽明先生之言者。先生聞之,謂之曰:「聖賢教人,如醫用藥,皆因病立方,酌其虛、實、溫、涼、陰、陽、內、外而時時加減之。要在去病,初無定說。若拘執一方,鮮不殺人矣。今某與諸君不過各就偏蔽,箴切砥礪,但能改化,即吾言已為贅疣。若遂守為成訓,他日誤己誤人,某之罪過可復追贖乎?」 愛既備錄先生之教,同門之友有以是相規者。愛因謂之曰:「如子之言,即又『拘執一方』,復失先生之意矣。孔子謂子貢嘗曰:『予欲無言。』他日則曰:『吾與回言終日。』又何言之不一邪?蓋子貢專求聖人於言語之間,故孔子以無言警之,使之實體諸心以求自得;顏子於孔子之言,默識心通,無不在己,故與之言終日,若決江河而之海也。故孔子於子貢之無言不為少,於顏子之終日言不為多,各當其可而已。今備錄先生之語,固非先生之所欲。使吾儕常在先生之門,亦何事於此。惟或有時而去側,同門之友又皆離群索居,當是之時,儀刑既遠而規切無聞。如愛之駑劣,非得先生之言時時對越警發之,其不摧墮靡廢者幾希矣。吾儕於先生之言,苟徒入耳出口,不體諸身,則愛之錄此,實先生之罪人矣;使能得之言意之表,而誠諸踐履之實,則斯錄也,固先生終日言之之心也,可少乎哉?」錄成,因復識此於首篇以告同志。門人徐愛序。
  • 문인 중에 양명선생의 말씀을 개인적으로 기록한 자가 있었다. 선생께서 이를 들으시고는 말씀하셨다: “성현께서 사람을 가르치시는 것은 마치 의사가 약을 쓰는 것과 같아, 늘 병에 따라 처방을 만들어 병의 허실, 온량, 음양, 내외를 참작해 상황에 따라 더하기도 덜기도 하니, 핵심은 병을 제거하는 데 있지 애당초 정해진 설은 없다. 만약 하나의 처방에 집착한다면 환자를 죽이지 않는 경우가 드물 것이다. 지금 나와 제군은 각각 편폐한 부분에 대해 경계하고 연마하는 것에 불과하니, 편폐를 고쳐 변화할 수 있으면 곧 내 말은 이미 군더더기가 되어있을 것이다.[1] 만일 그런데도 내 말을 굳게 지켜 완성된 가르침으로 삼는다면, 훗날에는 나를 오도하고 남도 오도할 것이니, 내 잘못을 다시 속죄할 수 있겠는가?” 내가 선생의 가르침을 잘 기록해두었고 같은 문하의 벗이 이를 살펴보았기에, 내가 이를 가지고 말씀드렸다: “선생님의 말씀은 곧 또 하나의 처방에 집착하는 것이니 다시 선생님의 뜻을 어긴 것입니다. 공자께서 일찍이 자공에게 ‘나는 말하지 않으련다!’라고 하시고는,[2] 나중에 ‘나는 안회와 종일토록 말하였다’고 하셨으니,[3] 또 어째서 말이 한결같지 않은 것입니까? 대개 자공은 오직 말에서 성인을 구하고자 했기 때문에 공자께서 ‘말하지 않겠다’는 말로 경계하셔서 자공으로 하여금 마음에 실질적으로 체득하여 자득하기를 구하게 하셨고, 안자는 공자의 말씀에 대해 묵묵히 이해하고 마음으로 통달하여 자기에게 있지 않은 것이 없었으므로 공자께서 그와 종일토록 말씀하신 것이 마치 장강과 황하를 터서 바다로 가게 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자공에게 말씀하시지 않은 것은 적은 게 아니고, 안자와 종일토록 말씀하신 것은 많은 게 아니니, 각각 옳음에 맞았을 따름입니다. 지금 선생님의 말씀을 잘 기록한 것은 진실로 선생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닌데, 저희가 늘 선생님의 문하에 있다면 어찌 이를 일삼겠습니까? 혹시 때에 따라 선생님 곁을 떠나거나, 같은 문하의 벗들이 모두 문하를 떠나 독립하면[4] 이때 본보기(선생님)[5]는 멀고 훈계는 들을 수 없을 것이니, 노둔한 제가 선생님의 말씀을 얻어 때때로 대하여 경계하지 않는다면 꺾이고 쓰러지지 않는 경우가 드물 것입니다. 저희들이 선생님의 말씀에 대해 만약 그저 귀에 들어와 입으로 나갈 뿐 몸에 체득하지 않는다면, 제가 이를 기록한 것은 진실로 선생님의 죄인이 되는 짓이겠지만, 드러난 말에서 터득하여 실제적 실천에 충실하다면 이 기록은 진실로 선생님께서 종일토록 말씀하신 마음일 것이니, 적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전습록을 완성하고서 다시 이를 책의 첫머리에 기록하여 동지들에게 고한다. 문인 서애가 서문을 쓰노라.

徐愛引言

先生於《大學》「格物」諸說,悉以舊本為正,蓋先儒所謂「誤本」者也。愛始聞而駭,既而疑,已而殫精竭思,參互錯綜以質於先生。然後知先生之說若水之寒,若火之熱,斷斷乎「百世以俟聖人而不惑」者也。先生明睿天授,然和樂坦易,不事邊幅。人見其少時豪邁不羈,又嘗泛濫於詞章,出入二氏之學,驟聞是說,皆目以為立異好奇,漫不省究。不知先生居夷三載,處困養靜,精一之功固已超入聖域,粹然大中至正之歸矣。
  • 양명 선생께서는 《대학》 「격물」에 대한 여러 설 가운데 전적으로 구본을 정본으로 여기셨으니, 대개 선유(朱子)가 말했던 誤本이었다.[6] 내가 이를 처음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가 잠시후 의심이 들어, 이윽고 사려를 다해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7] 선생에게 질정하였는데, 그런 연후에야 선생의 설이 마치 물이 찬 것처럼 혹은 불이 뜨거운 것처럼 틀림없이 '백 세 이후의 성인을 기다리더라도 의심할 수 없는 것'[8]임을 알게 되었다. 선생의 총명은 타고나셨으나 화락하고 평이하셔서 겉치레를 신경 쓰지 않으셨다. 사람들은 선생이 어렸을 때 호탕하여 [규범에] 얽매이지 않았으며 또 일찍이 사장학에 빠지고 도불의 학문에 출입한 것을 보았기 때문에 선생의 설을 듣자마자 모두 손가락질하며 '기이한 설을 세우길 좋아하여 제멋대로일 뿐 반성하고 탐구할 줄 모른다'고 여겼지만, 선생께서 오랑캐 땅(귀주 용장)에 3년간 사시며 곤궁한 상황에서 고요함을 기르실 때 精一한 공부[9]가 진실로 이미 성인의 경지에 超入하여, 순수한 大中至正의 경지로 귀결되셨음을 알지 못한 것이다.
愛朝夕炙門下,但見先生之道,即之若易而仰之愈高,見之若粗而探之愈精,就之若近而造之愈益無窮,十餘年來,竟未能窺其藩籬。世之君子,或與先生僅交一面,或猶未聞其謦欬[10],或先懷忽易憤激之心,而遽欲於立談之間,傳聞之說,臆斷懸度,如之何其可得也!從遊之士,聞先生之教,往往得一而遺二,見其牝牡驪黃而棄其所謂千里者。故愛備錄平日之所聞,私以示夫同志,相與考而正之,庶無負先生之教云。門人徐愛書。
  • 내가 아침저녁으로 선생의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았지만, 선생의 도를 보건대, 다가가면 쉬운 것 같은데 우러르면 더욱 높아지고, 볼 때는 거친 것 같은데 더듬어보면 더욱 정밀하며, 향해보면 가까운 것 같은데 나아가보면 더욱 끝이 없으니,[11] 십여 년 동안 끝내 그 끝을 알 수 없었다. 세상의 군자들이 혹 선생과 겨우 일면식만 있거나, 혹 여전히 선생의 말씀을 듣지 못했거나, 혹 앞서 선생을 얕잡아 보거나 선생에 대해 분노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더라도, 잠깐 사이에 전해들은 설에 대해 근거없이 바로 억측하려고 하더라도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종유하는 선비들은 선생의 가르침을 받고 종종 하나만 얻고 둘은 빠뜨리며, 말의 성별이나 색깔은 보면서 이른바 '천리'라는 건 빠뜨렸다.[12] 그러므로 내가 평소에 들었던 바를 갖추어 기록하여 개인적으로 동지들에게 보이니, 함께 상고하여 바로잡는다면 아마도 선생의 가르침을 져버리지 않을 것이다. 문인 서애가 쓰노라.

以下門人徐愛錄

1.

愛問:「『在親民』,朱子謂當作新民。後章『作新民』之文似亦有據。先生以為宜從舊本『作親民』,亦有所據否」?
  • 서애가 물었다: "'在親民'에서 주자는 新民으로 고쳐야 한다고 하였는데, 뒷 장의 '作新民'이라는 글에 아마 근거가 있는 것 같습니다.[13] 선생께서는 의당 옛 판본의 '作親民'을 따라야한다고 여기시니, 역시 근거하시는 바가 있으시겠죠?"
先生曰:「『作新民』之『新』,是自新之民,與『在新民』之『新』不同。此豈足為據?『作』字卻與『親』字相對,然非『親』字義。下面治國平天下處,皆於『新』字無發明。如云『君子賢其賢而親其親。小人樂其樂而利其利』。『如保赤子』。『民之所好好之。民之所惡惡之。此之謂民之父母』之類,皆是『親』字意。『親民』猶孟子『親親仁民』之謂。親之即仁之也。百姓不親,舜使契為司徒,敬敷五教,所以親之也。堯典『克明峻德』便是『明明德』。『以親九族』,至『平章協和』,便是『親民』,便是『明明德於天下』。又如孔子言『修己以安百姓』。『修己』便是『明明德』。『安百姓』便是『親民』。說親民便是兼教養意。說新民便覺偏了」。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作新民'의 '新'은 스스로 새로워지려는 백성이니,[14] '在新民'의 '新'과는 같지 않다. 이것이 어찌 근거가 될 수 있겠는가? ['作新民'의] '作(진작시키다: 자발성을 인정하는 계도)'자는 ['在親民'의] '親(어루만지다: 자발성을 인정한 계도)'자와 상대되니, ['作'은 '在新民'의 ] '新(새롭게 만들다: 강제적 계도)'자의 뜻이 아니다. 아래의 治國平天下 부분은 모두 '新'자를 발명하는 점이 없다. 예를 들어, '군자는 어진 이를 어질게 대접하고 친한 이를 친애하지만, 소인은 즐거움을 즐기고 이익을 이롭게 여긴다'[15], '핏덩이를 보호하듯이 한다'[16], '백성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백성들이 싫어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 이것을 백성의 부모라고 한다'[17]는 말들은 모두 '親'자의 의미이다. '親民'은 맹자의 '어버이를 친애하고 백성을 어질게 대한다'[18]는 뜻과 같으니, 친애함은 곧 어질게 대함이다. 백성이 친애하지 않아 순이 설을 사도로 삼아 五教를 공순히 펴게 하셨으니,[19] [이것이 모두] 친애('親')하는 것이다. <요전>의 '능히 높은 덕을 밝힌다'는 것이 곧 '明明德'이고, '이로써 구족을 친애한다'에서 '[백성을] 고르게 밝혀서 [만방을] 조화롭게 한다'는 것이 '親民'이며 '明明德於天下'다.[20] 또 공자께서 '자신을 수양해 백성을 편안케 한다'[21]고 말씀하신 것의 경우, '자신을 수양함'은 '明明德'이고 '백성을 편안케 함'은 '親民'이다. 親民을 말하면 곧 가르치고(강제적 계도) 기르는(자발성을 인정하는 계도) 뜻을 겸하지만, 新民을 말하면 [강제적 계도 쪽에] 치우친 감이 있다."


2.

愛問:「『知止而後有定』,朱子以為『事事物物皆有定理』,似與先生之說相戾」。
  • 서애가 물었다: "'知止而後有定'에 대해 주자는 '각각의 사물에 모두 정해진 이치가 있다'[22]고 하였는데, 선생님의 설과 어긋나는 것 같습니다."
先生曰:「於事事物物上求至善,卻是義外也。至善是心之本體。只是明明德到至精至一處便是。然亦未嘗離卻事物。本注所謂『盡夫天理之極,而無一毫人欲之私』者,得之」。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각 사물에서 至善을 구하는 것은 義를 외부에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23] 至善은 마음의 본체이다. 그저 明德을 밝혀 지극히 精一한 경지에 이르면 된다(혹은 '이르면 바로 지선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지선은] 사물을 떠난 적이 없다. <대학장구>의 '천지의 표준을 다하고 한 터럭만큼의 자기중심적 인욕을 없게 한다'[24] 라는 말은 옳다."


3.

愛問:「至善只求諸心。恐於天下事理,有不能盡」。
  • 서애가 물었다: "[대학에서 말하는] 至善은 그저 마음에서 구할 뿐이니, 아마 천하의 事理에 대해서는 모두 파악하지 못하는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先生曰:「心即理也。天下又有心外之事,心外之理乎?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마음이 곧 理이다. 천하에 달리 마음 밖의 일, 마음 밖의 理가 있는가?"
愛曰:「如事父之孝,事君之忠,交友之信,治民之仁,其間有許多理在。恐亦不可不察」。
  • 서애가 물었다: "부모를 섬기는 효, 임금을 섬기는 충, 벗과 사귀는 신, 백성을 다스리는 인의 경우 그 사이에 수많은 도리가 있으니, 역시 살피지 않아선 안 될 것 같습니다."
先生嘆曰:「此說之蔽久矣。豈一語所能悟?今姑就所問者言之。且如事父,不成去父上求個孝的理?事君,不成去君上求個忠的理?交友治民,不成去友上民上求個信與仁的理?都只在此心。心即理也。此心無私欲之蔽,即是天理。不須外面添一分。以此純乎天理之心,發之事父便是孝。發之事君便是忠。發之交友治民便是信與仁。只在此心去人欲存天理上用功便是」。
  • 선생께서 한탄하셨다: "이런 설의 폐단이 오래되었다. 어찌 말 한 마디로 깨우칠 수 있는 것이겠는가! 지금은 우선 질문에 따라 대답해주겠다. 부모를 섬기는 경우 부모에게서 효라는 도리를 구할 수 있는가? 임금을 섬기는 경우 임금에게서 충이라는 도리를 구할 수 있는가? 벗을 사귀거나 백성을 다스리는 경우 벗이나 백성에게서 신과 인의 도리를 구할 수 있는가? 모두 마음에 달려있을 뿐이다. 마음이 곧 理이니, 이 마음에 사욕의 가림이 없다면 곧 천리이니, 밖에서 조금이라도 더해서는 안 된다. 이 순수한 천리의 마음을 부모 섬기는 데 발휘하면 효이고, 임금을 섬기는 데 발휘하면 충이며, 벗을 사귀거나 백성을 다스리는 데 발휘하면 신과 인이다. 그저 이 마음에서 인욕을 제거하고 천리를 보존하는 공부에 힘을 쓰면 된다."
愛曰:「聞先生如此說,愛已覺有省悟處。但舊說纏於胸中,尚有未脫然者。如事父一事,其間溫凊定省之類,有許多節目。不知亦須講求否」?
  • 서애가 물었다: "선생님의 이와 같은 설명을 들으니 저는 벌써 깨우친 바가 있는 것 같습니다만, 옛 설이 마음속을 얽매어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점이 있습니다. 부모를 섬기는 일에서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드리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드리며, 저녁에는 이부자리를 펴드리고 아침에는 문안은 여쭙는 것'[25] 등 수많은 절목이 있으니,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배워서 알아야하는 것이겠지요?"
先生曰:「如何不講求?只是有個頭腦。只是就此心去人欲存天理上講求。就如講求冬溫,也只是要盡此心之孝,恐怕有一毫人欲間雜。講求夏凊,也只是要盡此心之孝,恐怕有一毫人欲間雜。只是講求得此心。此心若無人欲,純是天理,是個誠於孝親的心,冬時自然思量父母的寒,便自要求個溫的道理。夏時自然思量父母的熱,便自要求個凊的道理。這都是那誠孝的心發出來的條件。卻是須有這誠孝的心,然後有這條件發出來。譬之樹木,這誠孝的心便是根。許多條件便枝葉。須先有根,然後有枝葉。不是先尋了枝葉,然後去種根。禮記言『孝子之有深愛者,必有和氣。有和氣者,必有愉色。有愉色者,必有婉容』。須是有個深愛做根,便自然如此」。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구체적 실천 절목을] 어찌 배워서 강구하지 않겠는가? 다만 핵심이 있으니, 그저 이 마음에서 인욕을 제거하고 천리를 보존한 상태에서 배워 알아야 한다. 가령 겨울에 따뜻하게 만드는 법을 배워 알더라도 그저 이 마음의 효를 다하여 한 터럭의 인욕도 뒤섞이지 않을까 걱정해야하고, 여름에 시원하게 하는 법을 배워 알더라도 그저 이 마음의 효를 다하여 한 터럭의 인욕도 뒤섞이지 않을까 걱정해야하니, 그저 이 마음을 배워 알아야한다. 이 마음에 인욕이 없어 순수하게 천리라서 진실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음이라면, 겨울에는 저절로 부모의 추위를 헤아려 곧 스스로 따뜻하게 해드릴 방도를 찾으려 할 것이고, 여름에는 저절로 부모의 더위를 헤아려 곧 스스로 시원하게 해드릴 방도를 찾으려 할 것이다. 이 모두는 저 효성스런 마음이 발현된 조목이니, 반드시 이 효성스런 마음이 있은 연후에 이 조목이 발현된다. 나무에 비유한다면, 효성스런 마음은 뿌리이고 수많은 조목은 지엽이다. 반드시 뿌리가 있은 연후에 지엽이 있는 것이지, 먼저 지엽을 찾은 연후에 뿌리로 가는 것이 아니다. 예기에서 '효자 가운데 깊은 애정이 있는 자는 반드시 온화한 기가 있고, 온화한 기가 있는 자는 반드시 즐거운 낯빛이 있으며, 즐거운 낯빛이 있는 자는 반드시 곡진한 태도가 있다.'[26]고 하니, 깊이 사랑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음이 있으면 틀림없이 저절로 이와 같이 된다."


4.

鄭朝朔問:「至善亦須有從事物上求者。」
  • 정조삭이 물었다: "至善은 그래도 사물에서 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先生曰:「至善只是此心純乎天理之極便是,更於事物上怎生求?且試說幾件看[27]。」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至善은 그저 이 마음이 천리의 지극함에 순수하면 되는 것이지, 달리 사물에서 무엇을 구하겠나? 한 번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게."
朝朔曰:「且如事親,如何而為溫凊之節,如何而為奉養之宜,須求個是當,方是至善;所以有學問思辨之功。」
  • 조삭이 말했다: "예를 들어 부모를 섬길 때 어떻게 해야 따뜻·시원하게 하는 절목이 되며, 어떻게 해야 적절한 봉양이 되겠습니까? 모름지기 적당한 것을 구해야 비로소 至善입니다. 그래서 學問하고 思辨하는 공부가 있는 것입니다."
先生曰:「若只是溫凊之節,奉養之宜,可一日二日講之而盡,用得甚學問思辨!惟於溫凊時也只要此心純乎天理之極,奉養時也只要此心純乎天理之極。此則非有學問思辨之功,將不免於毫釐千里之繆;所以雖在聖人,猶加『精一』之訓。若只是那些儀節求得是當,便謂至善,即如今扮戲子,扮得許多溫凊奉養的儀節是當,亦可謂之至善矣。」愛於是日又有省。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따뜻·시원하게 하는 절목, 적절한 봉양 정도라면 하루이틀 배우면 다 알 수 있으니, 무슨 학문이나 사변을 하겠나! 오직 따뜻·시원하게 할 때에 이 마음이 천리의 지극함에 순수하게 하고, 봉양할 때 이 마음이 천리의 지극함에 순수하게 해야하니, 이것은 학문이나 사변의 공부를 두지 않으면 장차 털끝만한 것이 천 리만큼 어긋남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28]그러므로 비록 성인의 경우에도 오히려 '精一'의 가르침을 더하셨던 것이다. 만일 그저 저 몇 가지 절차에서 적절한 것을 구하는 것을 至善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곧 오늘날의 연기자가 따뜻·시원하게 하거나 봉양하는 여러 절차를 적절하게 꾸미면 그 역시 至善하다고 할 수 있는 것과 같네." 내가 이 날에 또 반성하는 점이 있었다.


5.

愛因未會先生知行合一之訓,與宗賢、惟賢往復辯論,未能決,以問於先生。
  • 내가 선생의 知行合一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여 宗賢·惟賢과 변론을 주고 받았으나 해결하지 못해 선생께 물었다.
先生曰:「試舉看。」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한 번 예를 들어보라."
愛曰:「如今人盡有知得父當孝、兄當弟者,卻不能孝、不能弟,便是知與行分明是兩件。」
  • 내가 물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아버지에게는 효도해야하고 형에게는 공손해야함을 잘 아는데 도리어 효도하지 못하고 공손하지 못하다면, 이는 知와 行이 분명 두 가지인 것입니다."
先生曰:「此已被私欲隔斷,不是知行的本體了。未有知而不行者;知而不行,只是未知。聖賢教人知行,正是安復那本體,不是著你只恁的便罷。故《大學》指個真知行與人看,說『如好好色,如惡惡臭』。見好色屬知,好好色屬行。只見那好色時已自好了,不是見了後又立個心去好;聞惡臭屬知,惡惡臭屬行,只聞那惡臭時已自惡了,不是聞了後別立個心去惡。如鼻塞人雖見惡臭在前,鼻中不曾聞得,便亦不甚惡,亦只是不曾知臭。就如稱某人知孝、某人知弟,必是其人已曾行孝、行弟,方可稱他知孝、知弟;不成只是曉得說些孝、弟的話,便可稱為知孝、弟。又如知痛,必已自痛了方知痛;知寒,必已自寒了;知飢,必已自飢了。知行如何分得開?此便是知行的本體,不曾有私意隔斷的。聖人教人必要是如此,方可謂之知;不然,只是不曾知。此卻是何等緊切著實的工夫!如今苦苦定要說知行做兩個,是甚麼意?某要說做一個,是什麼意?若不知立言宗旨,只管說一個兩個,亦有甚用!」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이미 사욕에 의해 가려진 것이니, 知行의 본모습(本體)이 아니네. 알면서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知而不行)는 없으니, 알면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그저 알지 못하는 것이라네.성현께서 사람들에게 知行에 대해 가르치신 것은 바로 저 본모습(本體)을 편안히 여기고 회복하는 것이지 네가 그저 이러하면 그만이라는 것이 아니네. 그러므로 《大學》에서는 진정한 知行을 사람들에게 가리켜주었으니, 바로 '아름다운 이성을 좋아하듯, 악취를 싫어하듯'[29]이라고 말한 것이네. 아름다운 이성을 알아채는 것은 知에 속하고, 아름다운 이성을 좋아하는 것은 行에 속하는데, 그저 저 아름다운 이성을 봤을 때 이미 절로 좋아하는 것이지 본 이후에 따로 마음을 세워 좋아하는 것이 아니며, 악취를 맡는 것은 知에 해당하고 악취를 싫어하는 것은 行에 속하는데, 그저 저 악취를 맡았을 때 이미 절로 싫어하는 것이지 맡은 이후에 따로 마음을 세워 싫어하는 것이 아니네. 만약 코가 막힌 사람이 비록 앞에서 악취나는 것을 봤더라도 콧속으로 맡은 적이 없다면 또 무엇을 싫어하겠는가? 다만 맡을 줄 몰랐기 때문이네. 가령 어떤 사람이 효도를 알고 어떤 사람이 공손함을 안다고 한다면, 필시 그 사람은 이미 일찍이 효도를 행하고 공손함을 행했기 때문에 그가 효도를 알고 공손함을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 그저 효도·공손함에 대한 말 몇 가지를 안다고 해서 효도·공손함을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네. 또 고통을 아는 경우도 필시 이미 스스로 고통을 느껴야 비로소 고통을 알게 된 것이고, 추위를 아는 경우도 반드시 이미 스스로 추위를 느꼈을 것이며, 배고픔을 아는 경우도 반드시 이미 스스로 배고픔을 느꼈을 것이다. 知와 行을 어떻게 나누겠나? 이것이 바로 知行의 본모습(本體)이니, 일찍이 사욕이 막은 적이 없는 것이다. 성인께서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 반드시 이와 같아야 知라고 할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그저 일찍이 알지 못한 것이라고 [하셨다.] 이것이 얼마나 긴요하고 실질적인 공부인가! 만일 애써 知行을 둘로 나눠 말하려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내가 [知行을] 하나로 말하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만약 설을 만든 종지를 알지 못한다면 하나로 말하든 둘로 말하든 또 무슨 소용이겠는가!"
愛曰:「古人說知行做兩個,亦是要人見個分曉,一行做知的功夫,一行做行的功夫,即功夫始有下落。」
  • 내가 말했다: "옛 분들이 知行을 둘로 말한 것 역시 사람들로 하여금 분명하게 알게 하고자 한 것이니, 한 번 知공부를 하고 한 번 行공부를 하면 곧 공부에 비로소 결실이 있을 것입니다."
先生曰:「此卻失了古人宗旨也。某嘗說知是行的主意,行是知的功夫;知是行之始,行是知之成。若會得時,只說一個知,已自有行在,只說一個行,已自有知在。古人所以既說一個知,又說一個行者,只為世間有一種人,懵懵懂懂的任意去做,全不解思惟省察,也只是個冥行妄作,所以必說個知,方纔行得是;又有一種人,茫茫蕩蕩懸空去思索,全不肯著實躬行,也只是個揣摸影響,所以必說一個行,方纔知得真。此是古人不得已補偏救弊的說話,若見得這個意時,即一言而足。今人卻就將知行分作兩件去做,以為必先知了,然後能行,我如今且去講習討論做知的工夫,待知得真了,方去做行的工夫;故遂終身不行,亦遂終身不知。此不是小病痛,其來已非一日矣。某今說個知行合一,正是對病的藥,又不是某鑿空杜撰,知行本體原是如此。今若知得宗旨時,即說兩個亦不妨,亦只是一個;若不會宗旨,便說一個,亦濟得甚事?只是閑說話。」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이 말은 옛 분들의 종지를 잃어버린 것이다. 나는 일찍이 '知는 行의 내용(主意)이며 行은 知의 공부이고, 知는 行의 시작이며 行은 知의 완성이다'라고 하였으니, 이해했을 때에는 그저 知만 말해도 이미 저절로 行이 있으며, 그저 行만 말해도 이미 저절로 知가 있는 것이다. 옛 분들은 知를 말씀하셔놓고 또 行을 말씀하신 것은 다만, 세상에 어떤 사람은 멍청하게 제멋대로 행동할 뿐 전혀 생각하거나 성찰하지 않아 그저 冥行妄作일 뿐이라 반드시 知를 말해야 비로소 옳게 행동하기 때문이고, 또 어떤 사람은 고원하고 아득하게 허공에 매달려 사색하여 전혀 실제적으로 몸소 실천하려고 하지 않아 그저 '그림자를 더듬는 일(揣摸影響)'일 뿐이라 반드시 行을 말해야 비로소 제대로 알기 때문이다. 이것은 옛 분들이 부득이하게 편폐를 구제하기 위한 말이니, 이 의도를 안 때에는 한 마디면 충분하다. 요즘 사람들은 도리어 知行을 둘로 나눠 행해, '반드시 먼저 안 연후에 행할 수 있으니(先知後行), 나는 이제 우선 강습하고 토론해 知공부를 하고, 知가 제대로 갖춰지고서 비로소 行공부를 할 것이다'라고 여겨 마침내 종신토록 行하지 않고 또 마침내 종신토록 知하지도 못한다. 이는 작은 병통이 아니고, 그 후과도 하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지금 말하는 知行合一설은 바로 대증요법이지 내가 근거없이 지어낸 것이 더욱 아니니, 知行의 본모습이 원래 이와 같은 것이다. 만약 종지를 알았을 때에는 두 가지로 말해도 무방하니, 그렇게 하더라도 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만약 종지를 이해하지 못했다면, 똑같은 얘기를 하더라도 무슨 효과를 볼 수 있겠는가? 그저 쓸데없는 소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6.

愛問:「昨聞先生『止至善』之教,已覺功夫有用力處,但與朱子『格物』之訓,思之終不能合。」
  • 내가 물었다: "어제 선생님의 '止於至善'에 대한 가르침을 들어 공부에 힘쓸 곳이 생겼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가르침이] 주자의 '격물'설과 끝내 합치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先生曰:「『格物』是『止至善』之功,既知『至善』,即知『格物』矣。」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격물'은 '지어지선'의 공부이니, '至善'을 이해했다면 곧 '격물'을 이해한 것이다."
愛曰:「昨以先生之教推之『格物』之說,似亦見得大略。但朱子之訓,其於《書》之『精一』,《論語》之『博約』,《孟子》之『盡心知性』,皆有所證據,以是未能釋然。」
  • 내가 말했다: "어제 선생님의 가르침을 가지고 '격물'설을 미루어보니 그래도 대략은 알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주자의 설은 《서경》의 '精一', 《논어》의 '博約', 《맹자》의 '盡心知性'에서 모두 근거한 바가 있으니, 이때문에 명쾌하게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先生曰:「子夏篤信聖人,曾子反求諸己,篤信固亦是,然不如反求之切。今既不得於心,安可狃於舊聞,不求是當!就如朱子亦尊信程子,至其不得於心處,亦何嘗茍從?『精一』、『博約』、『盡心』本自與吾說吻合,但未之思耳。朱子『格物』之訓,未免牽合附會,非其本旨。精是一之功,博是約之功,曰仁既明知行合一之說,此可一言而喻。『盡心知性知天』是『生知安行』事,『存心養性事天』是『學知利行』事,『夭壽不貳,修身以俟』是『困知勉行』事。朱子錯訓『格物』,只為倒看了此意,以『盡心知性』為『物格知至』,要初學便去做『生知安行』事,如何做得!」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자하는 성인(공자)을 독실하게 믿었고 증자는 돌이켜 자신에게 구했는데,[30] 독실하게 믿는 것도 진실로 옳지만 돌이켜 구하는 절실함만 못하다. 마음에 얻지 못했는데 어찌 옛 가르침에 빠져 옳은 것을 구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주자의 경우도 정자를 높이고 믿었으나, 마음에 얻지 못해서는 또 어찌 일찍이 구차히 따르셨겠는가? 《서경》의 '精一', 《논어》의 '博約', 《맹자》의 '盡心知性'은 본래부터 내 설과 부합하니, 다만 그대가 생각해보지 않았을 뿐이네. 주자의 격물설은 견강부회를 면하지 못하니, 《대학》의 본지가 아니다. 精은 一의 공부이고 博은 約의 공부이니, 그대가 知行合一설을 이해했다면, 이것은 한 마디로 이해할 수 있네. 《맹자》의 '盡心知性知天'은 '生知安行'의 일이고, '存心養性事天'은 '學知利行'의 일이며, '夭壽不貳,修身以俟'는 '困知勉行'의 일이네. 주자가 '격물'을 잘못 풀이한 것은 그저 이 뜻을 거꾸로 보아 '盡心知性'을 '物格知至'로 보았기 때문이니, 초학자로 하여금 곧장 '生知安行'의 일을 하게 한다면 어떻게 해내겠나!"
愛問:「『盡心知性』何以為『生知安行』?」
  • 내가 물었다: "'盡心知性'이 어째서 '生知安行'의 일입니까?"
先生曰:「性是心之體,天是性之原,盡心即是盡性。惟天下至誠,為能盡其性,知天地之化育。『存心』者,心有未盡也。『知天』,如『知州』、『知縣』之『知』,是自己分上事,己與天為一。『事天』如子之事父,臣之事君,須是恭敬奉承,然後能無失,尚與天為二,此便是聖賢之別。至於『夭壽不貳其心』,乃是教學者一心為善,不可以窮通夭壽之故,便把為善的心變動了,只去修身以俟命,見得窮通壽夭有個命在,我亦不必以此動心。『事天』雖與天為二,已自見得個天在面前;『俟命』便是未曾見面,在此等候相似,此便是初學立心之始,有個困勉的意在。今卻倒做了,所以使學者無下手處。」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性은 心의 본체(體)이고, 天은 性의 근원이니, 盡心은 곧 盡性이다. '오직 천하의 至誠이라야 그 性을 다하여 천지의 화육을 알 수 있다.'[31] '존심'이라는 것은 心에 미진한 점이 있는 것이다. '지천'은 '知州'나 '知縣'의 '知'와 같으니, 자기본분상의 일로 자기와 天을 하나로 삼는 것이다. '사천'은 자식이 부모를 섬기고 신하가 임금을 섬김에 반드시 공경하고 받든 연후에야 잘못이 없을 수 있는 것과 같아 여전히 天과 둘이니, 이것이 곧 성인과 현인의 차이이다. '夭壽不貳其心'은 바로 배우는 자로 하여금 한마음으로 선을 행해 窮通/夭壽의 까닭으로 선을 행하는 마음을 바꾸거나 동요시켜선 안 되고, 오로지 수신하여 천명을 기다리고 窮通/夭壽가 천명에 달려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니, 나 또한 꼭 이것으로 마음을 동요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사천'은 비록 天과 둘이 되지만 이미 스스로 天이 눈앞에 있음을 본 것이고, '사명'은 본 적은 없으나 여기서 기다리는 것과 비슷하니, 이것이 바로 초학자가 立心하는 시작이니 '困勉'의 뜻이 있다. 지금 도리어 거꾸로 하여 배우는 자들에게 착수할 곳이 없게 하였다."
愛曰:「昨聞先生之教,亦影影見得功夫須是如此,今聞此說,益無可疑。愛昨曉思『格物』的『物』字,即是『事』字,皆從心上說。」
  • 내가 말했다: "어제 선생님의 가르침을 듣고서는 모호하게 '공부는 이렇게 해야한다'는 것을 알았는데, 지금 이 설명을 들으니 더이상 의심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저는 어제 '격물'의 '물'자가 곧 '事'자이니 모두 마음에서 말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先生曰:「然。身之主宰便是心,心之所發便是意,意之本體便是知,意之所在便是物。如意在於事親,即事親便是一物,意在於事君,即事君便是一物,意在於仁民、愛物,即仁民、愛物便是一物,意在於視、聽、言、動,即視、聽、言、動便是一物。所以某說無心外之理,無心外之物。《中庸》言『不誠無物』,《大學》『明明德』之功,只是個『誠意』。『誠意』之功,只是個『格物』。」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몸의 주재가 바로 心이고, 心이 발현된 것이 意며, 意의 핵심(本體)은 知이고, 意의 대상(所在)은 物이다. 意가 부모를 섬기는 데 있으면 곧 부모 섬김이 하나의 物이 되고, 意가 임금을 섬기는 데 있으며 임금 섬김이 하나의 物이 되며, 意가 仁民/愛物에 있으면 仁民/愛物이 하나의 物이 되고, 意가 視聽言動에 있으면 視聽言動이 하나의 物이 된다. 그러므로 내가 '마음 밖의 이치도 없고 마음 밖의 사물도 없다'고 말했던 것이다. 《중용》에서 말한 '不誠無物'[32]과 《대학》의 明明德 공부가 그저 '誠意'일 뿐이고, '誠意'공부는 '격물'일 뿐이다."

7.

先生又曰:「『格物』,如《孟子》『大人格君心』之格,是去其心之不正,以全其本體之正。但意念所在,即要去其不正,以全其正,即無時無處不是存天理,即是窮理。『天理』即是『明德』,『窮理』即是『明明德』。」
  • 선생께서 또 말씀하셨다: "'격물'은 《맹자》의 '오직 대인이라야 임금 마음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다'[33]의 '격(바로잡음)'과 같으니, 그 마음의 바르지 못한 것을 제거하여 바른 본모습(本體)을 온전히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의념이 있는 곳에 곧 그 바르지 못함을 제거해 그 바름을 온전히 해야하니, 그렇다면 곧 어느 때 어느 곳에서도 천리를 보존함이 아닌 것이 없을 것이니, 곧 '궁리'이다. '천리'는 곧 '명덕'이고, '궁리'는 곧 '명명덕'이다."

8.

又曰:「知是心之本體,心自然會知。見父自然知孝,見兄自然知弟,見孺子入井自然知惻隱,此便是『良知』,不假外求。若『良知』之發,更無私意障礙,即所謂充其惻隱之心,而仁不可勝用矣。然在常人,不能無私意障礙,所以須用『致知』、『格物』之功。勝私復理,即心之『良知』更無障礙,得以充塞流行,便是致其知。知致則意誠。」
  • 선생께서 또 말씀하셨다: "知(양지)는 마음의 본체이니, 마음은 자연히 知할 수 있다. 부모를 보면 저절로 효도할 줄 알고, 형을 보면 저절로 공경할 줄 알며, 어린아이가 우물로 기어가는 것을 보면 저절로 측은히 여길 줄 아니[34], 이것이 곧 '양지'로[35] 밖에서 구할 필요가 없다. 양지가 발하는 경우 달리 私意의 장애가 없으니, 곧 이른바 '측은지심을 확충하면 인을 이루다 쓸 수 없다'[36]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의 경우 私意의 장애가 없을 수 없으므로 치지·격물 공부를 해야한다. 私意를 이기고 理를 회복하는 것은 곧 마음의 양지에 더이상 장애가 없어 가득 채워 유행할 수 있는 것이니, 이것이 곧 '致其知'[37]이다. 知致하면 意誠하게 된다.[38]"

9.

愛問:「先生以『博文』為『約禮』功夫,深思之,未能得,略請開示。」
내가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박문'을 '약례'공부로 삼으셨는데,[39] 제가 깊이 생각해보았으나 잘 모르겠습니다. 조금만 알려주십시오."
先生曰:「『禮』字即是『理』字。『理』之發見可見者謂之『文』,『文』之隱微不可見者謂之『理』,只是一物。『約禮』只是要此心純是一個天理。要此心純是天理,須就『理』之發見處用功;如發見於事親時,就在事親上學存此天理;發見於事君時,就在事君上學存此天理;發見於處富貴貧賤時,就在處富貴貧賤上學存此天理;發見於處患難夷狄時,就在處患難夷狄上學存此天理;至於作止、語默,無處不然,隨他發見處,即就那上面學個存天理。這便是『博學之於文』,便是『約禮』的功夫。『博文』即是『惟精』,『約禮』即是『惟一』。」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예'자는 곧 '理'자이다. 理가 발현되어 볼 수 있는 것을 '문'이라 하고, '문'이 은미하여 볼 수 없는 것을 理라고 하니 한 가지일 뿐이다. '약례'는 다만 이 마음이 순수하게 천리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 마음이 순수하게 천리가 되도록 하려면 모름지기 理가 발현된 곳에서 공부해야 하니, 예를 들어 부모를 섬길 때 발현되면 부모를 섬기는 상황에서 이 천리를 보존하는 것을 배우고, 임금을 섬기는 때 발현되면 임금을 섬기는 상황에서 이 천리를 보존하는 것을 배우며, 富貴나 貧賤에 처했을 때 발현되면 富貴나 貧賤에 처한 상황에서 이 천리를 보존하는 것을 배우고, 患難이나 夷狄에 처했을 때 발현되면 患難이나 夷狄에 처한 상황에서 이 천리를 보존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일어서거나 앉거나, 말하거나 침묵하는 등 어떠한 경우에도 그렇지 않음이 없이 그것이 발현된 상황에 따라 거기에서 천리를 보존할 것을 배워야 한다.이것이 곧 '博學之於文'이요, 곧 '약례'공부이다. '박문'은 곧 '惟精'이고 '약례'는 곧 '惟一'이다."

10.

愛問:「『道心』常為一身之主,而『人心』每聽命;以先生『精一』之訓推之,此語似有弊。」
  • 내가 물었다: "'도심'은 늘 일신의 주재가 되고 '인심'은 매번 명령을 듣습니다. 선생님의 '精一'에 대한 가르침으로 미루어보자면, 이 말에는 병폐가 있는 것 같습니다."
先生曰:「然。心一也,未雜於人謂之『道心』,雜以人偽謂之『人心』。『人心』之得其正者即『道心』,『道心』之失其正者即『人心』,初非有二心也。程子謂『人心即人欲,道心即天理』。語若分析,而意實得之。今曰道心為主,而人心聽命,是二心也。『天理』、『人欲』不並立,安有『天理』為主,『人欲』又從而聽命者?」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마음은 하나지만, 인위에 뒤섞이지 않은 것을 '도심'이라 하고, 인위에 뒤석인 것을 '인심'이라고 한다. '인심' 가운데 그 바름을 얻은 것이 곧 '도심'이고, '도심' 가운데 그 바름을 잃은 것이 곧 '인심'이니 애당초 두 개의 마음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정자께서는 '인심은 곧 인욕이요, 도심은 곧 천리'라고 말씀하셨는데, 말을 잘 분석한다면 그 의미를 진실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도심이 주재가 되고 인심이 명령을 듣는다'고 한다면 이는 마음을 두 개로 여기는 것이다. 천리와 인욕은 병립할 수 없으니, 어찌 천리가 주재가 되고 인욕이 다시 이어서 명령을 듣는 경우가 있겠는가?"

11.

愛問文中子、韓退之。
  • 내가 문중자와 한퇴지에 대해 물었다.
先生曰:「退之;文人之雄耳;文中子,賢儒也。後人徒以文詞之故,推尊退之,其實退之去文中子遠甚。」
  • 선생께서 대답하셨다: "한퇴지는 문인 가운데 웅대한 자일 뿐이고, 문중자는 賢儒다. 후인들은 그저 글을 잘 지었다는 이유 때문에 한퇴지를 추존하니, 사실 한퇴지와 문중자 간의 차이는 매우 크다."
愛問:「何以有擬經之失?」
  • 내가 물었다: "[문중자는] 어째서 육경을 본뜨는 잘못을 저질렀습니까?"
先生曰:「擬經恐未可盡非。且說後世儒者著述之意與擬經如何?」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육경을 본뜨는 게 아마도 전부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우선 후세 유자들이 저술하는 의도와 [문중자가] 육경을 본뜬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말해보라."
愛曰:「世儒著述,近名之意不無,然期以明道;擬經純若為名。」
  • 내가 말했다: "세유들의 저술은 명예를 얻으려는 뜻이 없지 않지만, 도를 밝힐 것을 기약합니다. [문중자가] 육경을 본뜬 것은 순전히 명예를 위한 것입니다."
先生曰:「著述以明道,亦何所效法?」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저술하여 도를 밝힌다면, 무엇을 본받는가?"
曰:「孔子刪述《六經》以明道也。」
  • 내가 말했다: "공자께서 육경을 刪述하여 도를 밝히신 것을 본받습니다."
先生曰:「然則擬經獨非效法孔子乎?」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문중자가] 육경을 본뜬 것은 공자를 본받은 것이 아니란 말인가?"
愛曰:「著述即於道有所發明;擬經似徒擬其跡,恐於道無補。」
  • 내가 대답했다: "'저술'은 곧 도에 발명하는 점이 있는 것이고, '육경을 본뜨는 것(擬經)'은 그저 그 자취만 본뜨는 것 같으니 아마 도에 아무런 보탬이 없을 것입니다."
先生曰:「子以明道者,使其反樸還淳而見諸行事之實乎?抑將美其言辭而徒以譊譊於世也?天下之大亂,由虛文勝而實行衰也。使道明於天下,則《六經》不必述;刪述《六經》,孔子不得已也。自伏義畫卦,至於文王、周公,其間言《易》,如《連山》、《歸藏》之屬,紛紛籍籍不知其幾,《易》道大亂。孔子以天下好文之風日盛,知其說之將無紀極,於是取文王、周公之說而贊之,以為惟此為得其宗。於是紛紛之說盡廢,而天下之言《易》者始一。《書》、《詩》、《禮》、《樂》、《春秋》皆然。《書》自《典》、《謨》以後,《詩》自《二南》以降,如《九丘》、《八索》,一切淫哇逸蕩之詞,蓋不知其幾千百篇。禮、樂之名物度數,至是亦不可勝窮。孔子皆刪削而述正之,然後其說始廢。如《書》、《詩》、《禮》、《樂》中,孔子何嘗加一語。今之《禮記》諸說,皆後儒附會而成,已非孔子之舊。至於《春秋》,雖稱孔子作之,其實皆魯史舊文;所謂『筆』者,筆其舊,所謂『削』者,削其繁,是有減無增。孔子述《六經》,懼繁文之亂天下,惟簡之而不得,使天下務去其文以求其實,非以文教之也。《春秋》以後,繁文益盛,天下益亂。始皇焚書得罪,是出於私意,又不合焚《六經》;若當時志在明道,其諸反經叛理之說,悉取而焚之,亦正暗合刪述之意。自秦、漢以降,文又日盛,若欲盡去之,斷不能去;只宜取法孔子錄其近是者而表章之,則其諸怪悖之說,亦宜漸漸自廢。不知文中子當時擬經之意如何,某切深有取於其事,以為聖人復起,不能易也。天下所以不治,只因文盛實衰,人出己見,新奇相高,以眩俗取譽,徒以亂天下之聰明,塗天下之耳目,使天下靡然,爭務修飾文詞以求知於世,而不復知有敦本尚實,反樸還淳之行,是皆著述者有以啟之。」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그대가 '도를 밝힌다'고 하는 것은 순박한 상태로 돌아가[40] 행사의 실질을 드러내는 것인가? 아니면 그 언사를 꾸며 그저 그것으로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것인가?[41]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진 것은 虛文이 흥기하고 實行이 쇠했기 때문이네. 만약 도가 천하에 밝혀진다면 육경은 저술될 필요가 없을 것이니, 공자께서 육경을 刪述하신 것은 부득이하셔서라네. 복희가 괘를 그은 이후 문왕·주공에 이르는 가운데 《易》을 말하였는데 《連山》·《歸藏》 따위가 어지럽고 시끄러워 그 幾를 알 수 없었기에 《易》의 도가 크게 어지러워졌다. 공자께서는 천하의 꾸밈을 좋아하는 풍조가 날로 성해 그 설이 장자 끝이 없을 것을 아셨기 때문에, 이에 문왕과 주공의 설을 모아 주역을 편찬하셨으니, 이렇게 해야 그 종지를 얻는다고 생각하셨던 것이다. 이에 어지러운 설들이 모두 폐해졌고, 천하의 주역에 대해 말하는 것이 비로소 통일되었다. 《서》·《시》·《예》·《악》·《춘추》 모두 그러하여, 《서》는 典謨 이후, 《시》는 二南 이후 《구구》·《팔색》 같은 것은 모두 음탕하고 방탕한 말이니 몇 백 몇 천 편인지 알 수도 없었고, 예악의 명물도수는 이에 이르러 이루다 궁구할 수 없었는데, 공자께서 모두 산삭하고 바로잡으신 연후에 그 설들이 비로소 폐해지게 되었다. 《서》·《시》·《예》·《악》 가운데 공자께서 언제 한 글자라도 더하셨는가? 오늘날 《예기》의 여러 설은 모두 후세 유자들이 덧붙여 완성한 것이니, 이미 공자께서 만드신 옛 것이 아니다. 《춘추》의 경우 비록 공자께서 지으셨다고 하지만, 사실 모두 노나라 사관의 옛 글이다. 이른바 '筆'이란 그 옛 것을 썼다는 것이고, 이른바 '削'이란 그 번다한 것을 산삭했다는 것이니,[42] 이는 덜어낸 것만 있지 더한 것은 없는 것이다. 공자께서 육경을 저술하실 때, 번잡한 글이 천하를 어지럽힐까 걱정하셨다. 아무리 간략하게 하려고 해도 할 수 없어서, 천하사람들로 하여금 그 문식(文)을 제거하는 데 힘써 그 실질을 구하게 하셨으니, 문식(文)으로 가르치신 것이 아니다. 《춘추》 이후 번잡한 글이 더욱 성해 천하가 더욱 어지러워졌다. 시황제가 책을 불살라 죄를 얻은 것은 私意에서 나온 것으로 또한 육경을 태워서는 안 됐다. 만약 당시에 [시황제가] 도를 밝히는 데 뜻을 두어 경전과 이치에 반하는 설들을 모두 취해 태워버렸다면, 바로 [공자께서] 删述한 뜻에 암합했을 것이다. 진한 이후로 문식은 더욱 날로 성해졌으니, 만약 모두 없애버리려고 해도 결단코 없앨 수 없으니, 그저 공자를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 옳음에 가까운 것을 기록하여 표창한다면, 괴이한 설들은 또한 점점 절로 사라질 것이다. 문중자가 당시에 육경을 본뜬 의도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깊이 [과거의] 일에서 헤아려본 것이니, 성인께서 다시 나오신다고 해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천하가 잘 다스려지지 않는 까닭은 오직 문식이 성하고 실질이 쇠했기 때문이다. 너나할 것없이 튀어나와 신기한 것을 내세워 세속을 어지럽히고 명예를 구하니, 그저 천하 사람들의 총명을 어지럽히고 천하 사람들의 이목을 가려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바람에 휩쓸리는 것처럼 앞다퉈 문사를 꾸미는 데 힘써 세상에 알려지기를 구하고 더이상 근본을 두텁게 하고 실질을 숭상하며 순박한 상태로 돌아가는 행실을 알지 못하게 하니, 이는 모두 저술하는 사람들이 열어놓은 것이다."
愛曰:「著述亦有不可缺者,如《春秋》一經,若無《左傳》,恐亦難曉。」
  • 내가 말했다: "저술에서도 빠뜨려서는 안 될 것이 있으니, 《춘추》는 《좌전》이 없으면 아무래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先生曰:「《春秋》必待《傳》而後明,是歇後謎語[43]矣,聖人何苦為此艱深隱晦之詞。《左傳》多是魯史舊文,若《春秋》須此而後明,孔子何必削之?」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춘추》는 반드시 《전》에 의지한 연후에야 밝혀진다는 것은 歇後謎語이다. 성인께서 도대체 어째서 이 어렵고 은미한 말을 하셨겠는가? 좌전에는 노나라 사관의 옛 글이 많은데, 《춘추》가 반드시 이것이 있은 후에야 밝혀진다면, 공자께서 어찌 굳이 산삭하셨겠는가?"
愛曰:「伊川亦云:『《傳》是案,《經》是斷。』如書『弒某君』、『伐某國』,若不明其事,恐亦難斷。」
  • 내가 말했다: "이천도 '《전》은 참고하는 것이고, 《경》은 [시비를] 판단한 것이다'[44]라고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춘추》에 '어떤 임금을 시해했다'거나 '어떤 나라를 정벌했다'고 쓰여있는 경우, 만일 그 사건을 밝혀주지 않으면 아마도 [시비를] 판단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先生曰:「伊川此言恐亦是相沿世儒之說,未得聖人作經之意。如書『弒君』,即弒君便是罪,何必更問其弒君之詳?征伐當自天子出,書『伐國』,即伐國便是罪,何必更問其伐國之詳?聖人述《六經》,只是要正人心,只是要存天理、去人欲,於存天理、去人欲之事則嘗言之。或因人請問,各隨分量而說,亦不肯多道,恐人專求之言語,故曰『予欲無言』,若是一切縱人欲、滅天理的事,又安肯詳以示人?是長亂導奸也。故孟子云:『仲尼之門,無道桓、文之事者,是以後世無傳焉。』此便是孔門家法。世儒只講得一個伯者的學問,所以要知得許多陰謀詭計,純是一片功利的心,與聖人作經的意思正相反,如何思量得通?」因嘆曰:「此非達天德者未易與言此也!」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이천의 이 말은 아마도 세유의 설을 답습한 것으로, 성인께서 경전을 지은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예를 들어 《춘추》에 '임금을 시해했다'고 쓰여있다면, 임금을 시해한 것이 바로 죄니, 어찌 굳이 그 임금을 시해한 자세한 사정을 묻겠나? 정벌은 응당 천자로부터 나와야 하니,[45] '어떤 나라를 정벌했다'고 쓰여있다면, 그 나라를 정벌한 것이 바로 죄니, 어찌 굳이 그 나라를 정벌한 자세한 사정을 묻겠나? 성인께서 육경을 저술하신 것은 그저 인심을 바루고자 하신 것이요, 그저 천리를 보존하고 인욕을 없애려고 하신 것이니, 천리를 보존하고 인욕을 없애는 일에 대해서 일찍이 말씀하셨네. 간혹 학생들의 질문에 인해 그들의 역량에 따라 설명해주셨지만 역시 많이 말씀하려고 하시지는 않았으니, 아마 사람들이 오로지 말을 구하였기 때문에 '나는 말하지 않으련다!'고 말씀하신 것이니, 일체의 인욕을 방종하여 천리를 없애는 일에 대해 또 언제 자세히 사람들에게 보이셨는가? 이는 난리를 연장하고 간사함으로 이끄는 짓이다. 그러므로 맹자께서는 '중니의 문하에 제환공이나 진문공의 일을 말하는 자가 없었기 때문에 후세에 전해지는 바가 없습니다'[46]라고 말씀하셨으니, 이것이 바로 공문의 가법이다. 세유들은 그저 패자의 학문을 강론하므로 수많은 음모나 속임수를 알려고 하니, 순전히 공리의 마음으로 성인이 경전을 지은 생각과는 정반대이니, 어찌 이해할 수 있겠나!"
  • 이어서 탄식하시며 말씀하셨다: "이것은 천덕에 통달한 자가 아니면[47] 이에 대해 함께 말하기 쉽지 않다."
又曰:「孔子云:『吾猶及史之闕文也』。孟子云:『盡信《書》不如無《書》,吾於《武成》,取二三策而已』。孔子刪《書》,於唐、虞、夏四五百年間不過數篇,豈更無一事,而所述止此,聖人之意可知矣。聖人只是要刪去繁文,後儒卻只要添上。」
  • 또 말씀하셨다: "공자께서는 '나는 그래도 사관이 빠뜨리고 기록하지 않는 것을 보았다'[48]고 말씀하셨고, 맹자께서는 '《書》의 내용을 다 믿는 것은 《書》가 없느니만 못하다. 나는 《武成》편에서 두세 부분만 취할 뿐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공자께서 《書》를 산정하심에 당·우·하 450년간이 여러 편에 지나지 않으니, 어찌 달리 특별한 일이 없어 서술하신 것이 이에 그쳤겠는가? 성인의 뜻을 알 수 있다. 성인께서는 다만 번잡한 글을 산삭하려고 하셨고, 후유들은 도리어 그저 덧붙이려고 하였다."
愛曰:「聖人作經,只是要去人欲、存天理。如五伯以下事,聖人不欲詳以示人,則誠然矣。至如堯、舜以前事,如何略不少見?」
  • 내가 물었다: "성인께서 경전을 지으신 것은 그저 인욕을 없애고 천리를 보존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오패 이해의 일을 성인께서는 상세히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하지 않으신 것은 진실로 그러합니다. 요순 이전의 일에 대해선 어째서 생략하여 조금도 보여주지 않으신 겁니까?"
先生曰:「羲、黃之世,其事闊疏,傳之者鮮矣。此亦可以想見其時全是淳龐樸素、略無文采的氣象,此便是太古之治,非後世可及。」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복희·황제의 시대의 일은 희소하여 전한 자가 드물다. 여기에서도 당시에 전부 손박하여 조금의 꾸미려는 기상이 없었음을 알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태고의 다스림으로 후세가 미칠 바가 아니다."
愛曰:「如《三墳》之類,亦有傳者,孔子何以刪之?」
  • 내가 물었다: "《三墳》 따위도 전한 자가 있는데, 공자께서 어째서 산삭하신 겁니까?"
先生曰:「縱有傳者,亦於世變漸非所宜。風氣益開,文采日勝,至於周末,雖欲變以夏、商之俗,已不可挽,況唐、虞乎!又況羲、黃之世乎!然其治不同,其道則一。孔子於堯、舜則祖述之,於文、武則憲章之。文、武之法,即是堯、舜之道,但因時致治,其設施政令,已自不同,即夏、商事業施之於周,已有不合。故『周公思兼三王,其有不合,仰而思之,夜以繼日』。況太古之治,豈復能行。斯固聖人之所可略也。」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설령 전한 자가 있었더라도 세상의 변화에 점차 적합하지 않았을 것이다. 풍속이 더욱 열리고 문채가 더욱 발전해, 주나라 말기에 이르면 비록 하·상의 풍속으로 변화시키려고 해도 이미 손쓸 수가 없었으니, 하물며 당·우의 시대에 있어서랴! 하물며 복희·황제의 시대에 있어서랴! 그러나 그 다스림은 달랐지만, 그 도는 한 가지였다. 공자께서는 요순에 대해서는 조술하셨고, 문왕·무왕에 대해서는 헌창하셨다. 문왕·무왕의 법은 곧 요순의 도니, 다만 때에 따라 융통성있게 다스렸기 때문에 정령을 시행하는 것이 이미 절로 같지 않았으니, 하·상의 사업을 주나라에 시행했으면 이미 적합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주공은 삼왕을 겸하려고 하여, 삼왕과 부합하지 않는 것이 있으면 우러러 생각하여 밤으로 낮을 이었다'[49]고 하였다. 하물며 태고의 다스림을 어찌 다시 시행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성인께서 생략하실 수 있는 부분이다."
又曰:「專事無為,不能如三王之因時致治,而必欲行以太古之俗,即是佛、老的學術。因時致治,不能如三王之一本於道,而以功利之心行之,即是伯者以下事業。後世儒者,許多講來講去,只是講得個伯術。」
  • 또 말씀하셨다: "오로지 무위를 일삼으면 삼왕이 때에 따라 융통성 있게 다스린 것처럼 할 수 없으니, 굳이 태고의 풍속을 시행하려고 하는 것은 바로 불교·도가의 학술이다. 때에 따라 융통성 있게 다스림에 삼왕이 한결같이 도에 근본한 것처럼 하지 못하고 공리의 마음으로 행하는 것은 바로 패자 이하의 사업이다. 후세 유자들이 이리저리 수없이 떠들어대는 것은 그저 패술을 강론하는 것일 뿐이다."

12.

又曰:「唐、虞以上之治,後世不可復也,略之可也。三代以下之治,後世不可法也,削之可也。惟三代之治可行。然而世之論三代者,不明其本而徒事其末,則亦不可復矣。」
  • 또 말씀하셨다: "당·우 이전의 다스림을 후세에 회복할 수 없으니 생략하는 것이 옳고, 삼대 이후의 다스림을 후세에 본받을 수 없으니 산삭하는 것이 옳다. 오직 삼대의 다스림만 시행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서 삼대를 논하는 자들은 그 근본을 알지 못하고 그저 그 말단만 일삼으니, 역시 회복하지 못할 것이다."

13.

愛曰:「先儒論《六經》,以《春秋》為史。史專記事,恐與《五經》事體終或稍異。」
  • 내가 물었다: "선유들이 육경에 대해 논함에, 《春秋》를 역사서로 보았습니다. 역사서는 오로지 사건만 기록하니, 나머지 오경의 내용과 끝내 혹 조금 다를 것 같습니다."
先生曰:「以事言謂之史,以道言謂之經。事即道,道即事。《春秋》亦經,《五經》亦史。《易》是包犧氏之史,《書》是堯、舜以下史,《禮》、《樂》是三代史。其事同,其道同,安有所謂異!」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사건으로 말하면 역사서고, 도로 말하면 경전이지만, 사건이 곧 도이고 도가 곧 사건이니,[50] 《春秋》 역시 경전이고 나머지 오경 역시 역사서이다. 《易》은 복희씨의 역사서이고, 《書》는 요순 이하의 역사서이며, 《禮》와 《樂》은 삼대의 역사서이다. 그 사건이 같고 그 도가 같은데 어찌 다르다고 말할 것이 있겠는가?"

14.

又曰:「《五經》亦只是史。史以明善惡,示訓戒;善可為訓者,時存其跡以示法;惡可為戒者,存其戒而削其事以杜奸。」
  • 또 말씀하셨다: "오경 역시 그저 역사서일 뿐이다. 역사서는 선악을 밝히고 교훈을 드러낸다. 교훈이 될 만한 선함을 때로 그 자취를 보존하여 본보기로 보여주고, 경계할 만한 악함에 대해서는 그에 대한 경계를 보존하고 그 일은 산삭하여 간악함을 방지한다."
愛曰:「存其跡以示法,亦是存天理之本然;削其事以杜奸,亦是遏人欲於將萌否?」
  • 내가 물었다: "'그 자취를 보존하여 본보기로 보여준다'는 것 역시 천리의 본연을 보존하는 것이고, '그 일은 산삭하여 간악함을 방지한다'는 것 역시 인욕이 장차 싹트는 것을 막는 것 아닙니까?"
先生曰:「聖人作經,固無非是此意,然又不必泥著文句。」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성인께서 경전을 지으심에 진실로 이런 의도가 아닌 경우가 없었지만, 굳이 문구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愛又問:「惡可為戒者,存其戒而削其事以杜奸,何獨於《詩》而不刪鄭、衛?先儒謂惡者可以懲創人之逸志,然否?」
  • 내가 다시 물었다: "'경계할 만한 악에 대해서는 그에 대한 경계를 보존하고 그 일은 산삭하여 간악함을 방지한다'고 하셨는데, 어째서 공자께서는 유독 《詩》에서 정풍·위풍을 산삭하지 않으신 겁니까? 선유(주자)는 '《詩》 가운데 악한 것은 사람의 안일한 뜻을 경계할 수 있다'[51]고 하였는데, 정말 그렇습니까?"
先生曰:「《詩》非孔門之舊本矣。孔子云:『放鄭聲,鄭聲淫。』又曰:『惡鄭聲之亂雅樂也。』『鄭、衛之音,亡國之音也。』此是孔門家法。孔子所定三百篇,皆所謂雅樂,皆可奏之郊廟,奏之鄉黨,皆所以宣暢和平,涵泳德性,移風易俗,安得有此!是長淫導奸矣!此必秦火之後,世儒附會,以足三百篇之數。蓋淫泆之詞,世俗多所喜傳,如今閭巷皆然。惡者可以懲創人之逸志,是求其說而不得,從而為之辭。」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詩》는 공문의 옛 판본이 아니다. 공자께서는 '정나라 음악을 쫓아버려야 하니, 정나라 음악이 음란하기 때문이다"[52]라고 말씀하셨고, 또 '정나라 음악이 아악을 어지럽히는 것을 미워한다'[53] · '정나라·위나라의 음악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음악이다'[54]라고 말씀하셨으니, 이것이 공문의 가법이다. 공자께서 《詩》 삼백 편을 산정하신 것은 모두 이른바 '아악'이니, 모두 교묘·향당에서 연주할 수 있는 것으로 모두 화평한 것을 선양하고 덕성을 함양하며 풍속을 변화시키는 것이니, 어찌 이런 것이 있었겠나! 이런 것은 음란함을 연장시키고 간악함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이는 필시 진나라 분서갱유 이후 세유들이 억지로 갖다 붙여 '삼백 편'이라는 수를 채운 것이다. 대개 음일한 노래는 세속에서 대부분 전하기 좋아하니, 요즘 민간에서도 모두 그러하다. '《詩》 가운데 악한 것은 사람의 안일한 뜻을 경계할 수 있다'는 것은 주자가 그 설을 찾아보았으나 실패하여 그대로 그에 대한 설명으로 놔둔 것이다."

徐愛跋

愛因舊說汩沒,始聞先生之教,實是駭愕不定,無入頭處;其後聞之既久,漸知反身實踐,然後始信先生之學為孔門嫡傳,舍是皆傍蹊小徑、斷港絕河矣。如說『格物』是『誠意』的工夫,『明善』是『誠身』的工夫,『窮理』是『盡性』的工夫,『道問學』是『尊德性』的工夫,『博文』是『約禮』的工夫,『惟精』是『惟一』的工夫:諸如此類,始皆落落難合;其後思之既久,不覺手舞足蹈。
  • 나는 구설에 골몰해있었기 때문에 선생의 가르침을 처음 듣고서 실로 깜짝 놀라긴 했지만 시작할 곳이 없었는데, 그후 가르침을 오래 듣고 나서 점차 자신을 반성하고 실천할 줄 알게 된 연후에 비로소 선생의 학문이 공문의 적전이요 나머지는 모두 옆길이나 작은 길·분기된 하천임을 믿게 되었다. '격물은 성의의 공부이고, 명선은 성신의 공부이며, 궁리는 진성의 공부이고, 도문학은 존덕성의 공부이며, 박문은 약례의 공부이고, 유정은 유일의 공부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의 경우, 이러한 것들이 처음에는 모두 별개의 것이었지만, 이후 오래 생각해보자 손이 춤추고 발이 구르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55]
右曰仁所錄[56]
  • 이상은 서애(왈인)가 기록한 것이다.

以下門人陸澄錄

15.

陸澄問:「主一之功,如讀書則一心在讀書上,接客則一心在接客上,可以為主一乎?」
  • 육징이 물었다: "주일 공부의 경우, 책을 읽을 때에는 온 마음을 책 읽는 데 두고, 손님 대접할 때에는 온 마음을 손님 대접하는 데 둔다면 '주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先生曰:「好色則一心在好色上,好貨則一心在好貨上,可以為主一乎?是所謂逐物,非主一也。主一是專主一個天理。」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여색을 좋아할 때에는 온 마음이 여색을 좋아하는 데 있고, 재물을 좋아할 때에는 온 마음이 재물을 좋아하는 데 있다면, '주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는 이른바 '외물을 좇음(逐物)'[57]이니, '주일'이 아니다. '주일'은 오로지 천리에 집중하는 것이다."

16.

問立志。
  • '뜻을 세움(立志)'[58]에 대해 물었다.
先生曰:「只念念要存天理,即是立志。能不忘乎此,久則自然心中凝聚,猶道家所謂『結聖胎』也。此天理之念常存,馴至於美大聖神,亦只從此一念存養擴充去耳。」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그저 생각마다 천리를 보존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입지'이다. 이것을 잊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오래되면 자연히 마음속에 모여 쌓이니, 도가에서 말하는 '聖胎[59]를 맺는다'는 것과 같다. 이 천리에 대한 생각을 늘 보존하여 美·大·聖·神의 경지[60]에 순조롭게 이르는 것 역시 이 하나의 생각으로부터 존양·확충해 나가는 것일 뿐이다."


[참고] <왕문성공전집> 권7 <示弟立志說>
予弟守文來學,告之以立志。守文因請次第其語,使得時時觀省;且請淺近其辭,則易於通曉也。因書以與之。
  • 내 아우 수문(守文)이 와서 수학할 때, 나는 그에게 '뜻을 세우라(立志)"고 일러주었다. 수문은 이어서 자신이 때때로 반성할 수 있도록 나에게 그 말의 구체적 단계를 알려달라고 부탁했고, 또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을 천근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이 글을 지어 그에게 주었다.
夫學,莫先於立志。志之不立,猶不種其根而徒事培擁灌溉,勞苦無成矣。世之所以因循苟且,隨俗習非,而卒歸於汙下者,凡以志之弗立也。故程子曰:「有求為聖人之志,然後可與共學。」人苟誠有求為聖人之志,則必思聖人之所以為聖人者,安在非以其心之純乎天理而無人欲之私歟?聖人之所以為聖人,惟以其心之純乎天理而無人欲,則我之欲為聖人,亦惟在於此心之純乎天理而無人欲耳。欲此心之純乎天理而無人欲,則必去人欲而存天理。務去人欲而存天理,則必求所以去人欲而存天理之方。求所以去人欲而存天理之方,則必正諸先覺,考諸古訓,而凡所謂學問之功者,然後可得而講。而亦有所不容已矣。
  • 학문에서 "뜻을 세우는 것(立志)"보다 우선한 것은 없다. 뜻이 서지 않는 것은 뿌리를 심지 않고 그저 흙을 북돋아주고 물을 주는 것과 같으니, 아무리 고생하더라도 성취가 없다. 세상 사람들이 구차한 것을 맹종하고 습속을 좇아 잘못된 것을 익혀 결국 저급한 데로 빠지는 것은 대체로 뜻이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자께서는 "성인이 되고자 하는 뜻을 추구한 뒤에야 함께 학문할 수 있다"[61]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만약 진실로 성인이 되고자 하는 뜻을 추구한다면, 필시 성인이 성인이 될 수 있었던 까닭을 생각해 볼 것이니, '마음이 순수하게 천리에 [부합해서] 이기적인 인욕이 전혀 없는' 바가 아닌 것이 어디 있겠는가? 성인이 성인될 수 있는 까닭은 오직 마음이 순수하게 천리에 [부합해서] 인욕이 없기 때문이니, 그렇다면 내가 성인이 되고자 하는 것 또한 이 마음이 순수하게 천리에 [부합해서] 인욕이 없는 것에 달려있을 뿐이다. 이 마음이 순수하게 천리에 [부합해서] 인욕이 없고자 한다면, 필시 인욕을 없애고 천리를 보존하려고 할 것이고, 인욕을 없애고 천리를 보존하는 데 힘쓴다면, 필시 인욕을 없애고 천리를 보존하기 위한 방법을 탐구할 것이며, 인욕을 없애고 천리를 보존하기 위한 방법을 탐구한다면, 필시 선각자에게서 [배워 자신을] 바르게 하고 옛 가르침을 상고할 것이니, 대개 이른바 학문 공부라는 것을 이렇게 한 연후에야 강론할 수 있지만 역시 그만둘 수 없는 점이 있다.
夫所謂正諸先覺者,既以其人為先覺而師之矣,則當專心致志,惟先覺之為聽。言有不合,不得棄置,必從而思之;思之不得,又從而辯之;務求了釋,不敢輒生疑惑。故《記》曰:「師嚴,然後道尊;道尊,然後民知敬學。」苟無尊崇篤信之心,則必有輕忽慢易之意。言之而聽之不審,猶不聽也;聽之而思之不慎,猶不思也;是則雖曰師之,猶不師也。
  • 이른바 "선각자에게서 [배워 자신을] 바르게 한다"는 것은 남을 선각자로 여기고 스승으로 삼은 이상 마땅히 온 마음으로 뜻을 모아 선각자의 가르침만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승의] 말에 일관되지 않은 것이 있으면 버리지 말고 반드시 그에 대해 생각해보고, 생각해 보았는데도 잘 모르겠으면 다시 그에 대해 따져 봐서, 분명히 이해하려고 힘써야지 감히 의혹을 품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예기>에서는 "스승이 엄하게 한 뒤에야 도가 높아지고, 도가 높아진 뒤에야 백성이 공경히 배울 줄 안다"[62]고 말했다. 만일 학생에게 스승을 존숭하고 독실히 믿는 마음이 없다면, 필시 스승을 얕잡아보는 생각이 들 것이다. 스승이 말해주는데 자세히 듣지 않는 것은 아예 안 듣는 것과 같고, 듣더라도 신중히 생각해보지 않는 것은 아예 생각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렇다면 비록 '스승으로 삼았다'고 말한들 스승삼지 않은 것과 같다.
夫所謂考諸古訓者,聖賢垂訓,莫非教人去人欲而存天理之方,若《五經》、《四書》是已。吾惟欲去吾之人欲,存吾之天理,而不得其方,是以求之於此,則其展卷之際,真如饑者之於食,求飽而已;病者之於藥,求愈而已;暗者之於燈,求照而已;跛者之於杖,求行而已。曾有徒事記誦講說,以資口耳之弊哉!
  • 이른바 "옛 가르침을 상고한다"는 것은 성현이 내려준 가르침 가운데 사람들로 하여금 인욕을 없애고 천리를 보존하게 하는 방법이 아닌 것이 없으니, <오경>과 <사서> 같은 것이 이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인욕을 없애고 자신의 천리를 보존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이런 곳에서 방법을 찾는 것이니, 그렇게 한다면 책을 펼칠 때 진실로 굶주린 자가 음식을 배불리 먹고자 하는 것과 같을 것이고, 진실로 병든 자가 약을 먹고 낫고자 하는 것과 같을 것이며, 진실로 어둠 속에 있는 자가 등으로 비추고자 하는 것과 같을 것이고, 진실로 절름발이가 지팡이에 의지해 걷고자 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전에는 그저 외고 떠들기만 해서 구이지학의 병폐를 보조하는 자가 있었다!
夫立志亦不易矣。孔子,聖人也,猶曰:「吾十有五而志於學,三十而立。」立者,志立也。雖至於「不逾矩」,亦志之不逾矩也。志豈可易而視哉!夫志,氣之帥也,人之命也,木之根也,水之源也。源不浚則流息,根不植則木枯,命不續則人死,志不立則氣昏。是以君子之學,無時無處而不以立志為事。正目而視之,無他見也;傾耳而聽之,無他聞也。如貓捕鼠,如雞覆卵,精神心思凝聚融結,而不復知有其他,然後此志常立,神氣精明,義理昭著。一有私欲,即便知覺,自然容住不得矣。故凡一毫私欲之萌,只責此志不立,即私欲便退;聽一毫客氣之動,只責此志不立,即客氣便消除。或怠心生,責此志,即不怠;忽心生,責此志,即不忽;懆心生,責此志,即不懆;妒心生,責此志,即不妒;忿心生,責此志,即不忿;貪心生,責此志,即不貪;傲心生,責此志,即不傲;吝心生,責此志,即不吝。蓋無一息而非立志責志之時,無一事而非立志責志之地。故責志之功,其於去人欲,有如烈火之燎毛,太陽一出,而魍魎潛消也。
  • "뜻을 세우는 것"은 물론 쉽지 않다. 공자께서는 성인이신데도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뜻을] 세웠다"[63]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세웠다"고 말씀하신 것은 뜻을 세웠다는 것이다. 비록 "법도를 넘지 않았다"는 경지에 이르더라도 뜻이 법도를 넘지 않은 것이다. 뜻을 어찌 쉽게 볼 수 있겠는가? "뜻은 기의 우두머리이고",[64] 사람의 목숨이며, 나무의 뿌리이고, 강의 수원이다. 수원을 준설하지 않으면 물줄기가 끊어질 것이고, 뿌리를 북돋아주지 않는다면 나무는 말라버릴 것이며, 목숨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사람은 죽을 것이고, 뜻이 세워지지 않는다면 기는 어두워질 것이다. 그래서 군자의 학문은 때와 장소를 막론하고 뜻을 세우는 것을 일삼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시선을 바로하고 봐서 다른 데 돌리지 않고, 귀를 기울여 들어 다른 것을 듣지 않아, 마치 고양이가 쥐를 잡듯 닭이 알을 품듯 정신의 마음을 한 곳에 모아 다른 것이 있음을 더이상 알지 못하게 된 연후에야 이 뜻이 늘 확립되어, 神氣는 정명하고 의리는 밝게 드러날 것이다. 조금이라도 사욕이 있다면 곧장 알아채서 자연히 남아있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한 터럭의 사욕이 싹트는 모든 경우 그저 이 뜻이 세워지지 않았는지 따져보면 사욕은 곧장 물러날 것이다. 한 터럭의 객기가 망동함을 들었을 경우 그저 이 뜻이 세워지지 않았는지 따져보면 객기는 곧 없어질 것이다. 혹 게으른 마음이 생기더라도 이 뜻을 따져보면 곧 게을러지지 않을 것이고, 소홀한 마음이 생기더라도 이 뜻을 따져보면 곧 소홀해지지 않을 것이며, 불안한 마음이 생기더라도 이 뜻을 따져보면 곧 불안하지 않을 것이고, 질투심이 생기더라도 이 뜻을 따져보면 곧 질투하지 않을 것이며, 분노한 마음이 생기더라도 이 뜻을 따져보면 곧 분노하지 않을 것이고, 탐욕스런 마음이 생기더라도 이 뜻을 따져보면 곧 탐욕스럽지 않을 것이며, 오만한 마음이 생기더라도 이 뜻을 따져보면 오만하지 않을 것이고, 인색한 마음이 생기더라도 이 뜻을 따져보면 인색하지 않을 것이다. 대개 한 순간도 뜻을 세우거나 뜻을 따지지 않는 때가 없고, 어느 상황에서도 뜻을 세우거나 뜻을 따지지 않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뜻을 따지는 공부가 인욕을 없애는 데 열화가 털을 싹 태워버리고 태양이 한 번 솟아오르면 도깨비가 숨거나 사라지는 것과 같은 점이 있다.
自古聖賢因時立教,雖若不同,其用功大指無或少異。《書》謂「惟精惟一」,《易》謂「敬以直內,義以方外」,孔子謂「格致誠正,博文約禮」,曾子謂「忠恕」,子思謂「尊德性而道問學」,孟子謂「集義養氣,求其放心」,雖若人自為說,有不可強同者,而求其要領歸宿,合若符契。何者?夫道一而已。道同則心同,心同則學同。其卒不同者,皆邪說也。
  • 예로부터 성현은 상황에 따라 가르침을 세우셨으니, 비록 다른 것 같지만 공부의 요지는 조금의 차이도 없다. <서경>의 "오직 정일하게 한다", <주역>의 "경하여 내면을 곧게 하고, 의하여 외면을 방정하게 한다", 공자의 '격물·치지·성의·정심'과 '박문약례', 증자의 '충서', 자사의 '존덕성·도문학', 맹자의 '집의·양기·구방심'은 사람들이 각자 말한 것 같아 억지로 같게 여길 수 없을 것 같지만, 요점·요지를 탐구해보면 마치 부절처럼 들어맞는 것은 어째서인가? 도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도가 같다면 마음이 같고, 마음이 같다면 학문이 똑같다. 끝내 갖지 않은 것은 모두 삿된 설이다.
後世大患,尤在無志,故今以立志為說。中間字字句句,莫非立志。蓋終身問學之功,只是立得志而已。若以是說而合精一,則字字句句皆精一之功;以是說而合敬義,則字字句句皆敬義之功。其諸「格致」、「博約」、「忠恕」等說,無不吻合。但能實心體之,然後信予言之非妄也。
  • 후세의 큰 걱정거리는 더욱 뜻이 없는 데 있다. 그러므로 지금 "뜻을 세우는 것"으로 말하였다. 중간의 글자·구절마다 "뜻을 세우는 것"을 말하지 않는 것이 없다. 대개 죽을 때까지의 학문 공부는 뜻을 세우는 것일 뿐이다. 만일 이 말을 <서경>의 정일공부와 합한다면 글자·구절마다 모두 정일공부일 것이고, 이 말을 <주역>의 '경의'와 합한다면 글자·구절마다 모두 경의공부일 것이다. '격물·치지', '박문약례', '충서' 등의 설에 대해서도 합치되지 않는 것이 없다. 다만 진실한 마음으로 체득할 수 있게 된 연후에야 내 말이 거짓이 아님을 믿게 될 것이다.

17.

「日間工夫覺紛擾,則靜坐;覺懶看書,則且看書,是亦因病而藥。」
  • 평소에 공부하다가 어지러운 것 같거든 정좌하고, 독서에 게으른 것 같거든 그저 독서하는 것, 이 역시 병에 따라 약을 쓰는 것이다.

18.

「處朋友,務相下則得益,相上則損。」
  • 벗을 대할 때, 서로 낮추기에 힘쓴다면 유익하겠지만, 서로 높이는 데 힘쓴다면 손해가 될 것이다.

19.

孟源有自是好名之病,先生屢責之。一日警責方已,一友自陳日來工夫請正。源從傍曰:「此方是尋著源舊時家當。」
  • 맹원에게는 스스로를 옳게 여기고 명예를 탐내는 병폐가 있어 선생께서 누차 질책하셨다. 하루는 질책이 막 끝나고서, 한 벗이 스스로 [선생께] 근래의 공부를 아뢰고 질정을 구했다. 맹원이 곁에 있다가 말했다: "이것은 바로 내가 전에 [썼던] 방법을 찾는 것이로구나!"
先生曰:「爾病又發。」源色變,議擬欲有所辯。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네 병이 또 도졌구나!" 맹원은 안색이 변하며 변명하려고 하였다.
先生曰:「爾病又發。」因喻之曰:「此是汝一生大病根。譬如方丈地內,種此一大樹,雨露之滋,土脈之力,只滋養得這個大根;四傍縱要種些嘉榖,上面被此樹葉遮覆,下面被此樹根盤結,如何生長得成?須用伐去此樹,纖根勿留,方可種植嘉種。不然,任汝耕耘培壅,只是滋養得此根。」
  •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네 병이 또 도졌구나!" 이어서 말씀하셨다: "이것이 네 일생의 큰 병폐의 근원이다. 비유하자면, 사방 한 길의 땅 안에 큰 나무 한 그루를 심으면, 비나 이슬의 적심과 토양의 힘은 단지 이 큰 뿌리를 기를 뿐이이어서, 사방에 설령 오곡을 심더라도 위로는 이 나무의 잎에 가려지고, 아래로는 이 나무의 뿌리에 의해 얽혀질 것이니, 어떻게 자랄 수 있겠는가? 반드시 이 나무를 베어버려 약간의 뿌리도 남겨두지 말아야 비로소 오곡을 심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가 아무리 김매고 북돋아준들 이 뿌리만 기를 뿐이다."

20.

問:「後世著述之多,恐亦有亂正學。」
물었다: "후세의 많은 저술 가운데에도 正學을 어지럽히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先生曰:「人心天理渾然,聖賢筆之書,如寫真傳神,不過示人以形狀大略,使之因此而討求其真耳;其精神意氣,言笑動止,固有所不能傳也。後世著述,是又將聖人所畫,摹仿謄寫,而妄自分析加增,以逞其技,其失真愈遠矣。」
선생께서 대답하셨다: "사람의 마음은 혼연한 천리이니, 성현께서 저술하신 글은 초상화를 그리는 것(寫真傳神) 같아, 사람에게 대략적인 형태만 보여줘 이를 통해 실제 모습을 찾게 하는 것에 불과하니, 그의 정신(精神意氣)이나 말·웃음·행동거지 등은 진실로 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네. 후세의 저술은 다시 성인께서 그리신 것을 모방해 제멋대로 분석해 덧붙여 자신의 재주를 뽐낸 것이니, 실제 모습에서 더욱 멀다네."

21.

問:「聖人應變不窮,莫亦是預先講求否?」
물었다: "성인이 온갖 사태에 대응하면서도 곤경에 처하지 않는 것은 역시 미리 강구했기 때문이 아닙니까?"
先生曰:「如何講求得許多?聖人之心如明鏡,只是一個明,則隨感而應,無物不照;未有已往之形尚在,未照之形先具者。若後世所講,卻是如此,是以與聖人之學大背。周公制禮作樂以文天下,皆聖人所能為,堯、舜何不盡為之而待於周公?孔子刪述《六經》以詔萬世,亦聖人所能為,周公何不先為之而有待於孔子?是知聖人遇此時,方有此事。只怕鏡不明,不怕物來不能照。講求事變,亦是照時事,然學者卻須先有個明的工夫。學者惟患此心之未能明,不患事變之不能盡。」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수많은 것을 어떻게 [미리] 강구하겠나? 성인의 마음은 깨끗한 거울 같아서, 깨끗하기만 하다면 느끼는 바에 따라 응하여 어느 사물도 비추지 않음이 없으니, 이전의 형상이 여전히 남아있거나 아직 비추지 않은 형상이 미리 갖춰져 있는 것이 아니네. 후세 사람(주자)이 말한 것이 이와 같아(미리 대비) 성인의 학문과 크게 어긋나게 되었네. 주공께서 예악을 제정하셔서 천하에 형식을 갖추신 것은 성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니, 어째서 요순께서는 완성하시지 못하고 주공을 필요로 한 것인가? 공자께서 육경을 산술하여 만세에 가르침을 주신 것도 성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인데 어째서 주공은 먼저 하지 않고 공자를 필요로 한 것인가? 이로써 성인이 이러한 때를 만나면 이러한 일이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네. 단지 거울이 깨끗한지 아닌지만 걱정해야지 사물이 다가올 때 비추지 못할까 걱정해서는 안 되네. 사태를 강구하는 것 역시 비출 때의 일이지만, 배우는 자는 반드시 먼저 [거울 즉 마음을] 깨끗이 하는 공부를 해야 하네. 배우는 자는 오직 이 마음이 깨끗하지 못함을 걱정해야지, 사태에 온전히 대응하지 못할 것을 걱정해서는 안 되네."
曰:「然則所謂『沖漠無朕,而萬象森然已具』者,其言何如?」
물었다: "그렇다면 이른바 '텅 비어 아무런 조짐이 없지만 모든 형상은 빽빽하게 이미 갖춰져 있다'[65]는 말은 어떻습니까?(선생님의 가르침을 이 말로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曰:「是說本自好,只不善看,亦便有病痛。」
대답하셨다: "이 설명이 본래 좋긴 한데, 잘 보지 않으면 병통이 있게 된다.(미발 상태로만 이해할 수도 있다)"

22.

「義理無定在,無窮盡。吾與子言,不可以少有所得,而遂謂止此也。再言之十年、二十年、五十年,未有止也。」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의리는 한정 없이 무궁무진하다네. 내가 그대와 말할 때 조금 소득이 있다고 해서 결국 '여기서 그쳐야지'하고 생각해서는 안 되네. 내가 거듭 십 년동안, 이십 년동안, 오십 년동안 말하더라도 그쳐서는 안 되네."
他日,又曰:「聖如堯、舜,然堯、舜之上善無盡;惡如桀、紂,然桀、紂之下惡無盡。使桀、紂未死,惡寧止此乎?使善有盡時,文王何以『望道而未之見』?」
나중에 또 말씀하셨다: "聖스럽기가 요순같더라도 요순보다 훌륭한 선은 얼마든지 더 있고, 악함이 걸주와 같더라도 걸주보다 못된 악도 얼마든지 더 있네. 가령 걸주가 죽지 않았다면, 어찌 이 정도에 그쳤겠는가? 가령 선이 다하는 때가 있다면(선에 최대치가 있다면), 문왕께서 어찌 '도를 바라보시더라도 아직 보지 못한 것처럼'[66] 하셨겠는가?"

23.

問:「靜時亦覺意思好,才遇事便不同,如何?」
물었다: "별 일 없을 때에는 그래도 마음 상태가 괜찮은 것 같은데, 일을 접하자마자 달라지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先生曰:「是徒知養靜,而不用克己工夫也。如此,臨事便要傾倒。人須在事上磨,方立得住,方能靜亦定,動亦定。」
선생께서 대답하셨다: "이는 養靜(별 일 없을 때에만 함양)할 줄만 알고 극기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네. 이와 같으면 일을 접하자마자 엎어지게 되네. 사람은 반드시 일에서 연마해야 굳건하게 세울 수 있고, '별 일 없을 때에도 안정되고, 일을 접할 때에도 안정(靜亦定,動亦定)'[67]될 수 있네."

24.

問上達工夫。
上達[68]공부에 대해 물었다.
先生曰:「後儒教人,纔涉精微,便謂『上達』未當學,且說『下學』;是分『下學』、『上達』為二也。夫目可得見,耳可得聞,口可得言,心可得思者,皆『下學』也;目不可得見,耳不可得聞,口不可得言,心不可得思者,『上達』也。如木之栽培灌溉,是『下學』也;至於日夜之所息,條達暢茂,乃是『上達』。人安能預其力哉?故凡可用功、可告語者,皆『下學』,『上達』只在『下學』裏。凡聖人所說,雖極精微,俱是『下學』。學者只從『下學』裏用功,自然『上達』去,不必別尋個『上達』的工夫。」
선생께서 대답하셨다: "후세 유자가 사람들을 가르칠 때 조금만 정미한 것을 건드리면 '上達이니 배워선 안 된다'고 하고는 그저 '下學'을 말했으니, 이는 하학과 상달을 둘로 나누는 것이네. 대저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으며 입으로 말할 수 있고 마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하학이고,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고 입으로 말할 수 없고 마음으로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상달이요, [또] 나무를 북돋아주고 물 주는 것은 하학이며, 나무가 밤낮으로 자라 가지가 뻗고 무성해지는 것은 상달이니, 사람이 어찌 그 [나무를 자라게 하는] 힘에 간여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무릇 힘쓸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하학이고, 상달은 그저 하학 안에 있을 뿐이네. 무릇 성인께서 말씀하신 것은 비록 아무리 정미하다고 하더라도 모두 하학이네. 배우는 자가 그저 하학에서 노력한다면 저절로 상달할 것이니, 달리 상달 공부를 찾을 필요가 없네."
  • 《全書》本此條下有一條:「持志如心痛。一心在痛上,豈有功夫説閑話,管閑事。」因與第95條重出,故刪去。
『양명전서』본에는 이 조목 아래 "뜻을 지키는 것은 마음이 아픈 것처럼 해야 하니, 온 마음이 아프다면 어찌 공부해서 쓸 데 없는 말을 하거나 쓸 데 없는 짓을 하겠는가?" 구절이 있는데, 95조목과 중복해서 나왔기 때문에 산삭한다.
  • 又南本、施邦曜本(以下簡稱施本)、俞嶙本(以下簡稱俞本)此條後多一條:「『千古聖人只有這些子』。又曰『人生一世,惟有這件事』。」又參見第145條:「凡人為學,終身只為這一事,自少至老,自朝至暮,不論有事無事,只是做得這一件。所謂『必有事焉』者也。」
또 南本·施邦曜本(이하 施本으로 간략히 칭함)·俞嶙本(이하 俞本으로 간략히 칭함)에는 이 조목 아래 "'천고 성인은 그저 이것을 지니셨을 뿐이다.' 또 말씀하셨다: '사람이 태어나 평생토록 이 일만 있을 뿐이다.'"라는 구절이 더 있다. 또 145조목을 참고하라: "보통 사람의 학문은 종신토록 이 한 가지 일을 하는 것이니, 어렸을 때부터 늙을 때까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특별한 일이 있든 없든 그저 이것을 해야 하니, 이른바 '반드시 일삼는 바가 있다'[69]는 것이다."

25.

問:「『惟精』、『惟一』是如何用功?」
물었다: "'惟精'·'惟一'[70]은 어떻게 공부하는 겁니까?"
先生曰:「『惟一』是『惟精』主意,『惟精』是『惟一』功夫;非『惟精』之外,復有『惟一』也。『精』字從米,姑以米譬之:要得此米純然潔白,便是『惟一』意;然非加舂簸篩揀『惟精』之功,則不能純然潔白也。舂簸篩揀是『惟精』之功,然亦不過要此米到純然潔白而已。博學、審問、慎思、明辨、篤行者,皆所以為『惟精』而求『惟一』也。他如『博文』者,即『約禮』之功;『格物』、『致知』者,即『誠意』之功;『道問學』即『尊德性』之功;『明善』即『誠身』之功:無二說也。」
선생께서 대답하셨다: "'惟一'은 '惟精'의 주요 목표이고, '惟精'은 '惟一'의 공부 방법이니, '惟精' 밖에 따로 '惟一'이 있는 것이 아니다. '精'자는 '米'로 구성되어 있으니, 우선 쌀(米)로 비유해보겠다: 이 쌀이 티끌 없이 희게 만드는 것이 '惟一'의 뜻이지만, 찧고 키질 하며 체로 거르는 '惟精' 공부가 아니라면 티끌 없이 희게 될 수 없다. 찧고 키질 하며 체로 거르는 것은 '惟精' 공부지만, 이 쌀을 티끌 없이 희게 만드려고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博學'·'審問'·'慎思'·'明辨'·'篤行'이라는 것[71]은 모두 '惟精' 공부를 해서 '惟一'이라는 목표를 구하는 것이다. 이 밖에 '博文'의 경우는 '約禮'하기 위한 공부이고, '格物致知'라는 것은 '誠意'하기 위한 공부이며, '道問學'은 '尊德性'하기 위한 공부이고, '明善'은 '誠身'하기 위한 공부이니,[72] 두 가지로 나눠지는 설은 없다."

26.

「知者行之始,行者知之成。聖學只一個功夫,知、行不可分作兩事。」
앎(知)이란 실천(行)의 시작이고, 실천(行)은 앎(知)의 완성이다. 성인이 되기 위한 학문(聖學)은 그저 하나의 공부일 뿐이니, 앎(知)과 실천(行)을 두 가지 일로 나눠선 안 된다.

27.

「漆雕開曰:『吾斯之未能信。』夫子說之。子路使子羔為費宰,子曰:『賊夫人之子。』曾點言志,夫子許之。聖人之意可見矣。」
칠조개가 "저는 벼슬하는 것에 대해 아직 확신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니 공자께서 기뻐하셨고,[73] 자로가 자고로 하여금 費宰가 되게 하려고 하자 공자께서 "남의 자식을 망치는구나!"[74]라고 하셨으며, 증점이 자신의 지향을 말하자 공자께서는 그를 인정하셨으니,[75] [이 세 가지 일화에서 벼슬하지 말라는] 성인의 뜻을 알 수 있다.

28.

問:「寧靜存心時,可為『未發之中』否?」
물었다: "편안하고 고요하게 마음을 보존(存心)[76]하고 있을 때를 '未發之中'[77]이라 할 수 있습니까?"
先生曰:「今人存心,只定得氣。當其寧靜時,亦只是氣寧靜,不可以為『未發之中』。」
선생께서 대답하셨다: "요즘 사람들의 '存心'은 단지 기를 안정시키는 것일 뿐이다.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할 때에도 그저 기가 편안하고 안정될 것일 뿐이니, '未發之中'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曰:「未便是『中』,莫亦是求『中』功夫?」
물었다: "[편안하고 고요하게 마음을 보존하고 있을 때가] '未發之中'은 아니더라도, [이렇게 하는 것이] '中을 구하는 공부'[78]가 아니겠습니까?"
曰:「只要去人欲、存天理,方是功夫。靜時念念去人欲、存天理,動時念念去人欲、存天理,不管寧靜不寧靜。若靠那寧靜,不惟漸有喜靜厭動之弊,中間許多病痛,只是潛伏在,終不能絕去,遇事依舊滋長。以循理為主,何嘗不寧靜?以寧靜為主,未必能循理。」
대답하셨다: "오직 인욕을 제거하고 천리를 보존해야 비로소 공부이다. 靜時에도 인욕을 제거하고 천리를 보존할 것을 거듭 생각하고, 動時에도 인욕을 제거하고 천리를 보존할 것을 거듭 생각해야 하니, '편안하고 고요한지' 아닌지는 상관 없다. 만일 저 '편안하고 고요한 것'에 기댄다면 점차 靜을 좋아하고 動을 싫증내는 폐단이 생길 뿐만 아니라 중간에 수많은 병통이 그저 계속 잠복해있어, 끝내 [인욕을] 끊어버리지 못하고 사태를 접하면 여전히 [인욕이] 자라날 것이다. 이치를 따를 것(循理)을 주로 삼았다면 언제 편안하고 고요하지 않았겠는가? 편안하고 고요함을 주로 삼았다고 해서 반드시 이치를 따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9.

問:「孔門言志,由、求任政事,公西赤任禮樂,多少實用。及曾晳說來,卻似耍的事,聖人卻許他,是意何如?」
물었다: "공자의 제자들이 자신의 지향을 말했을 때, 자로와 염유는 정사를 자임했고, 공서적은 예악을 자임했으니, 꽤 실용적이었습니다. 증석이 말한 것의 경우는 노는 것 같은 일인데도 성인께서 그를 인정하셨으니, 성인의 생각은 무엇이었습니까?"
曰:「三子是有意必,有意必便偏著一邊,能此未必能彼。曾點這意思卻無意必,便是『素其位而行,不願乎其外,素夷狄行乎夷狄,素患難行乎患難,無入而不自得』矣。三子所謂『汝器也』,曾點便有『不器』意。然三子之才,各卓然成章,非若世之空言無實者,故夫子亦皆許之。」
대답하셨다: "세 제자에게는 '意(사의)'·'必(기필함)'[79]이 있었으니, '意'·'必'이 있으면 한 쪽으로 치우치게 되어 이것을 잘하더라도 저것을 반드시 잘하는 것은 아니다. 증석의 이 생각에는 '意'·'必'이 없으니, 곧 '현재 자기 자리에 따라 행하고 그 밖의 것을 원하지 않으며, 오랑캐 땅에 처해서는 오랑캐에 맞게 행하고, 환란에 처해서는 환란에 맞게 행해 어딜 가더라도 자득하지 않는 경우가 없다.'[80]는 것이다. 세 제자는 이른바 '너는 그릇이다.'[81]에 해당하고, 증석에게는 '그릇처럼 국한되지 않는다'[82]는 뜻이 있었다. 그러나 세 제자의 재주는 각각 탁월하게 문채를 이뤘으니, 세상에서 말만 하고 실질이 없는 자와는 같지 않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역시 그들도 인정하셨던 것이다."

30.

問:「知識不長進,如何?」
물었다: "앎이 발전하지 않으니, 어째서일까요?"
先生曰:「為學須有本原,須從本原上用力,漸漸『盈科而進』。仙家說嬰兒,亦善譬。嬰兒在母腹時,只是純氣,有何知識?出胎後,方始能啼,既而後能笑,又既而後能認識其父母兄弟,又既而後能立、能行、能持、能負,卒乃天下之事無不可能。皆是精氣日足,則筋力日強,聰明日開,不是出胎日便講求推尋得來。故須有個本原。聖人到『位天地,育萬物』也只從『喜怒哀樂未發之中』上養來。後儒不明格物之說,見聖人無不知、無不能,便欲於初下手時講求得盡,豈有此理?」
선생께서 대답하셨다: "학문하는 데 반드시 本原이 있어야 하니, 반드시 本原부터 힘써야 점차 '구덩이를 채우며 나아갈 것'[83]이다. 선가에서 말하는 아기(嬰兒)도 좋은 비유이다. 아기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에는 그저 純氣일 뿐이니 무슨 앎이 있었겠는가? 태반에서 나온 뒤에야 비로소 울 수 있고, 좀 지난 후에야 웃을 수 있으며, 또 좀 지난 이후에야 부모형제를 알아볼 수 있고, 또 좀 지난 이후에야 서고 걸으며 손으로 잡고 등에 질 수 있으며, 결국에는 천하의 일 가운데 해내지 못하는 것이 없게 되니, [이러한 것은] 모두 정기가 날로 충분해져 근력이 날로 강해지고 총명이 날로 트여서 그러한 것이지, 태반을 나온 날에 바로 강구하고 추론해 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本原이 있어야 한다. 성인이 '천지의 자리를 잡고 만물을 화육할 수 있는 것'은 '희노애락의 감정이 아직 발하지 않은 中'의 상태에서 함양했기 때문이다.[84] 후세 유자는 격물설을 이해하지 못하고 성인이 알지 못하는 것이 없고 해내지 못하는 것이 없는 것만 보고서 처음 공부에 착수할 때부터 모든 걸 강구하려고 드니, 어찌 이럴 리가 있겠는가?"
又曰:「立志用功,如種樹然。方其根芽,猶未有榦;及其有榦,尚未有枝;枝而後葉,葉而後花實。初種根時,只管栽培灌溉,勿作枝想,勿作葉想,勿作花想,勿作實想。懸想何益?但不忘栽培之功,怕[85]沒有枝葉花實?」
또 말씀하셨다: "뜻을 세우고 공부하는 것은 나무를 심는 것과 같다. 막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웠을 때에는 아직 줄기가 없고, 줄기가 생겼을 때에는 가지가 없으며, 가지가 난 뒤에 잎이 나고, 잎이 난 뒤에 꽃과 열매가 맺힌다. 처음 뿌리를 심었을 때에는 그저 북돋아주고 물을 대줘야지 가지 생각·잎 생각·꽃 생각·열매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상상한 들 무슨 보탬이 있겠는가? 북돋아주는 노력만 잊지 않는다면 어찌 가지·잎·꽃·열매가 나지 않겠는가?"

31.

問:「看書不能明,如何?」
물었다: "책을 봐도 이해할 수가 없으니, 어째서일까요?"
先生曰:「此只是在文義上穿求,故不明。如此,又不如為舊時學問。他到[86]看得多,解得去。只是他為學雖極解得明曉,亦終身無得;須於心體上用功。凡明不得、行不去,須反在自心上體當,即可通。蓋《四書》、《五經》不過說這心體,這心體即所謂道,心體明即是道明,更無二。此是為學頭腦處。」
선생께서 대답하셨다: "이는 단지 文義상에서 탐구했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예전에 학문하는 것만도 못하다. 옛 사람들은 도리어(倒) 많이 읽고서 이해했지만, 그들의 학문하면서 비록 지극히 분명하게 이해했더라도 종신토록 이득이 없었으니, 반드시 마음(心體)에서 공부해야 한다. 무릇 [책을] 이해할 수 없고 실천할 수 없다면 반드시 자기 마음으로 돌이켜 체득한다면 통달할 수 있다. 대개 사서나 오경은 이 마음(心體)을 설명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 이 마음(心體)은 곧 이른바 '도'이고 마음(心體)이 밝혀지는 것이 도가 밝혀지는 것이니, 달리 두 가지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학문하는 핵심이다."

32.

「虛靈不眛,眾理具而萬事出。心外無理,心外無事。」
[마음은] 허령하고 어둡지 않아 뭇 이치가 갖춰져 있고 온갖 일이 여기서 나온다.[87] 마음 밖에 이치가 없으며, 마음 밖에 일이 없다.

33.

或問:「晦庵先生曰:『人之所以為學者,心與理而已。』,此語如何?」
혹자가 물었다: "회암 선생(주자)이 '사람이 학문하는 것은 마음과 理일 뿐이다.'[88]라고 했는데, 이 말은 어떻습니까?"
曰:「心即性,性即理,下一『與』字,恐未免為二。此在學者善觀之。」
대답하셨다: "마음은 곧 性이고 性은 곧 理이니, '與'자를 쓴 것은 마음과 理를 둘로 만듦을 면하지 못할 듯하다. 이는 배우는 자가 잘 보기에 달려있다."

34.

或曰:「人皆有是心,心即理,何以有為善,有為不善?」
혹자가 물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마음을 가지고 있고, '마음은 곧 理'인데 어째서 선한 자가 있고 불선한 자가 있습니까?"
先生曰:「惡人之心,失其本體。」
선생께서 대답하셨다: "악인의 마음은 그 본모습(本體)을 잃어버린 것이다."

35.

問:「『析之有以極其精而不亂,然後合之有以盡其大而無餘』,此言如何?」
물었다: "'분석해서 그 정밀함을 지극하게 해 어지럽지 않게 한 연후에야 종합해 그 큰 것까지 다하여 남기지 않을 수 있다.'[89]는데, 이 말은 어떻습니까?"
先生曰:「恐亦未盡。此理豈容分析?又何須湊合得?聖人說『精一』,自是盡。」
선생께서 대답하셨다: "역시 미진한 듯하다. 이 理를 어찌 분석할 수 있겠는가? 또 어찌 종합할 수 있겠는가? 성인께서 '精一'이라고 말씀하신 것 자체로 충분하다."

36.

「省察是有事時存養,存養是無事時省察。」
省察은 有事時의 存養이고, 存養은 無事時의 省察이다.

37.

澄嘗問象山在人情事變上做工夫之說。
육징이 일찍이 상산의 "人情과 事變에 대해 공부한다"는 설[90]에 대해 물었다.
先生曰:「除了人情事變,則無事矣。喜、怒、哀、樂,非人情乎?自視、聽、言、動以至富貴、貧賤、患難、死生,皆事變也。事變亦只在人情裏。其要只在『致中和』,『致中和』只在『謹獨』。」
선생께서 대답하셨다: "人情과 事變 말고는 일삼을 것이 없다. 희노애락이 人情 아니겠는가? 보고 듣고 말하고 움직이는 것으로부터 부귀·빈천·환난·사생에 이르기까지 모두 事變이다. [그러나] 事變 역시 人情 안에 있을 뿐이다. 그(人情) 핵심은 '致中和'에 달려있고, '致中和'의 핵심은 '謹獨(愼獨)'에 달려있을 뿐이다."

38.

澄問:「仁、義、禮、智之名,因已發而有?」
육징이 물었다: "'인의예지'라는 명칭은 이미 드러난 것(已發)을 통해 있게 되는 것입니까?"
曰:「然。」
대답하셨다: "그렇다."
他日,澄曰:「惻隱、羞惡、辭讓、是非,是性之表德[91]邪?」
후에 육징이 물었다: "'측은지심·수오지심·사양지심·시비지심은 性의 별칭입니까?"
曰:「仁、義、禮、智,也是表德。性一而已:自其形體也,謂之天;主宰也,謂之帝;流行也,謂之命;賦於人也,謂之性;主於身也,謂之心。心之發也,遇父便謂之孝,遇君便謂之忠,自此以往,名至於無窮,只一性而已。猶人一而已,對父謂之子,對子謂之父,自此以往,至於無窮,只一人而已。人只要在性上用功,看得一性字分明,即萬理燦然。」
대답하셨다: "인의예지도 [性의] 별칭이다. 性은 하나일 뿐이지만, '형체'의 의미로 말하자면 '天'이라 하고, '주재한다'는 의미로 말하자면 '帝'라고 하며, '유행한다'는 의미로 말하자면 '命'이고, '사람에게 부여된다'는 의미로 말하자면 性이며, '몸을 주인이 된다'는 의미로 말하자면 心이다. 心이 발현되는 경우, 부모를 만나면 '孝'라고 하고, 임금을 만나면 '忠'이라고 하니, 이로부터 명칭은 끝없이 이어지지만 그저 하나의 性일 뿐이다. 이는 사람은 한 명인데 아버지에 대해서는 '子'라고 하고, 자식에 대해서는 '父'라고 하는데 이로부터 [명칭이] 끝없이 이어지지만 그저 한 사람일 뿐인 것과 같다. 사람이라면 그저 性에서 공부해야하니, 性자를 분명히 이해한다면 곧 온갖 이치가 찬란할 것이다."

39.

一日論為學工夫。
하루는 학문하는 공부에 대해 논하셨다.
先生曰:「教人為學,不可執一偏。初學時心猿意馬[92],拴縛不定,其所思慮,多是『人欲』一邊,故且教之靜坐、息思慮。久之,俟其心意稍定。只懸空靜守,如槁木死灰,亦無用,須教他省察克治。省察克治之功,則無時而可間,如去盜賊,須有個掃除廓清之意。無事時,將好色、好貨、好名等私,逐一追究搜尋出來,定要拔去病根,永不復起,方始為快。常如貓之捕鼠,一眼看著,一耳聽著,纔有一念萌動,即與克去。斬釘截鐵[93]<한어대사전> 不可姑容。[94],與他方便,不可窩藏[95],不可放他出路,方是真實用功,方能掃除廓清。到得無私可克,自有端拱[96]時在。雖曰『何思何慮』,非初學時事。初學必須思,省察克治即是思誠,只思一個天理,到得天理純全,便是『何思何慮』矣。」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들에게 학문을 가르칠 때 한쪽에만 집착해서는 안 된다. 처음 배울 때에는 마음이 산란해 꽉 붙잡지 못해 그가 사려하는 것이 대부분 '인욕'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다.] 그러므로 우선 그에게 정좌를 가르쳐 사려를 그치게 하고, 그렇게 함이 오래되어 마음이 조금 안정되길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헛되이 고요하게 지키기만 하는 것은 말라버린 나무나 식어버린 재와 같아 역시 쓸모가 없으니, 모름지기 그로 하여금 성찰하여 [사욕을] 다스리도록 해야 한다. 성찰하여 [사욕을] 다스리는 공부는 어느 때고 한가할 만한 적이 없으니, 마치 도적을 내쫓듯 모름지기 깨끗이 쓸어버리려는 뜻이 있어야 한다. 특별한 일이 없을 때에는 여색·재물·명예를 좋아하는 사욕(私)을 하나하나 좇아 찾아내 반드시 [그러한] 병의 뿌리를 뽑아 영원히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해야 비로소 좋을 것이다. 늘 고양이가 쥐를 잡듯 온 눈으로 보고 온 귀로 들어 한 사념이 싹트자마자 곧바로 제거해야 한다. 못을 베고 쇠를 끊듯 [사욕을 단호하게 끊어야지] 지나치게 관대해서는 안 되고, 다른 방편을 숨겨서도 안 되며, 그것(사욕)에 퇴로를 열어줘서도 안 되니, 그래야 비로소 진실하게 공부하게 되어 비로소 [사욕을] 깨끗이 쓸어버릴 수 있다. 극복할 만한 사욕이 없게 되면 절로 몸가짐이 바르게 될 때가 있을 것이다. 비록 [<주역>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근심하겠는가?(何思何慮)'[97]라고 하지만, 이는 처음 배울 때의 일이 아니다. 처음 배울 때에는 반드시 생각해야 하니, 성찰하여 [사욕을] 다스리는 것이 곧 [맹자께서 말씀하신] '思誠'[98]이니, 그저 천리만 생각해서 천리의 완전함(純全)에 이르는 것이 바로 '무엇을 생각하고 근심하겠는가?(何思何慮)'이다."

40.

澄問:「有人夜怕鬼者,奈何?」
육징이 물었다: "밤에 귀신을 무서워하는 자는 어떻게 합니까?"
先生曰:「只是平日不能『集義』,而心有所慊,故怕。若素行合於神明,何怕之有?」
선생께서 대답하셨다: "그저 평소에 '集義'[99]하지 못해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 두려운 것이다. 만일 평소의 행실이 신명에 부합한다면, 무슨 두려워할 것이 있겠는가?"
子莘曰:「正直之鬼不須怕;恐邪鬼不管人善惡,故未免怕。」
자신이 말했다: "정직한 귀신은 틀림없이 두려워할 필요가 없겠습니다만, 아마 사특한 귀신은 사람의 선악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두려움을 면할 수 없습니다."
先生曰:「豈有邪鬼能迷正人乎?只此一怕,即是心邪,故有迷之者,非鬼迷也,心自迷耳。如人好色,即是色鬼迷;好貨,即是貨鬼迷;怒所不當怒,是怒鬼迷;懼所不當懼,是懼鬼迷也。」
선생께서 대답하셨다: "어찌 사특한 귀신이 바른 사람을 미혹시킬 수 있겠는가? 단지 이 두려움은 마음이 사특한 것이므로, 미혹된 자가 있다면 귀신이 미혹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스스로 미혹된 것이다. 만약 사람이 여색을 좋아하면 곧 [마음의] 色鬼가 미혹한 것이고, 재물을 좋아하면 곧 [마음의] 貨鬼가 미혹한 것이며, 분노하지 말아야 할 것에 분노한다면 [마음의] 怒鬼가 미혹한 것이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에 두려워한다면 [마음의] 懼鬼가 미혹한 것이다."

41.

「定者,心之本體,天理也。動靜,所遇之時也。」
[<정성서>에서 말하는] '定'이라는 것은 마음의 본래 상태이니 천리이고, '動靜'은 마주치는 국면이다.[100]

42.

澄問《學》、《庸》同異。
육징이 <대학>과 <중용>의 同異에 대해 물었다.
先生曰:「子思括《大學》一書之義,為《中庸》首章。」
선생께서 대답하셨다: "자사께서 <대학>의 뜻을 개괄하여 <중용> 수장을 지으셨다."

43.

問:「孔子正名,先儒說『上告天子,下告方伯,廢輒立郢』,此意如何?」
물었다: "공자의 '正名'[101]을 선유는 '위로는 천자에게 고하고, 아래로는 방백에게 고해 첩(輒)을 폐하고 영(郢)을 옹립하고자 했다'[102]고 말했는데, 이 뜻은 어떻습니까?"
先生曰:「恐難如此。豈有一人致敬盡禮,待我而為政,我就先去廢他?豈人情天理?孔子既肯與輒為政,必已是他能傾心[103]委國而聽。聖人盛德至誠,必已感化衛輒,使知無父之不可以為人,必將痛哭奔走,往迎其父。父子之愛,本於天性,輒能悔痛真切如此,蒯聵豈不感動底豫[104]?蒯聵既還,輒乃致國請戮。聵已見化於子,又有夫子至誠調和其間,當亦決不肯受,仍以命輒。群臣百姓又必欲得輒為君。輒乃自暴其罪惡,請於天子,告於方伯諸侯,而必欲致國於父。聵與群臣百姓亦皆表輒悔悟仁孝之美,請於天子,告於方伯諸侯,必欲得輒而為之君。於是集命[105]於輒,使之復君衛國。輒不得已,乃如後世上皇故事,率群臣百姓尊聵為太公,備物致養,而始退復其位焉。則君君、臣臣、父父、子子,名正言順[106],一舉而可為政於天下矣。孔子正名,或是如此。」
선생께서 대답하셨다: "아마도 이와 같다고 하긴 어려울 것이다. 어떤 사람이 공경과 예를 다해 나를 기다려 정치를 하려고 하는데 어찌 내가 먼저 그를 폐할 리가 있겠느냐? [이것이] 어찌 인정이며 천리이겠느냐? 공자께서 첩과 정치하려고 하신 이상 필시 첩은 진심으로 나라를 맡기고 따랐을 것이다. 성인께서는 성대한 덕을 갖추시고 지극히 진실하시기 때문에(盛德至誠) 필시 이미 위나라 군주인 첩을 감화시켜 그로 하여금 아버지가 없으면 사람 노릇 할 수 없음을 알게 하셨을 것이니, [그러면 첩은] 필시 통곡하며 달려가 자기 아버지를 맞이했을 것이다. 부자 간의 사랑은 천성에 근본하니, 첩이 뉘우치고 진실하기가 이와 같을 수 있었다면 괴외(蒯聵)가 어찌 감동하여 기쁘지 않았겠느냐? 괴외가 돌아오고나면 첩은 곧 나라를 바치고 죽여달라고 청했을 것이다. 괴외는 이미 아들에게 감화된 데다가 공자께서도 부자 사이를 지극정성으로 화해시키셨을 것이니, 괴외는 응당 역시 절대로 임금의 자리를 받으려 하지 않고 첩에게 [임금 자리를 계속 맡으라고] 명했을 것이고, 뭇 신하와 백성들 또한 필시 첩을 임금으로 세우고자 했을 것이다. 첩은 이에 스스로 자신의 죄악을 드러내고 천자께 청하고 방백·제후에게 고하여 필시 아버지에게 나라를 바치려 했을 것이다. 괴외와 뭇 신하·백성들 또한 모두 첩이 뉘우치고 깨우친 仁孝한 미덕을 드러내 천자께 청하고 방백·제후에게 고하여 필시 첩을 임금으로 세우고자 했을 것이다. 이에 첩에게 명을 내려 그로 하여금 다시 위나라 임금이 되게 했을 것이다. 첩은 부득이하여 후세 상황의 고사[107]처럼 뭇 신하와 백성들을 거느리고 괴외를 태공으로 높이고 기물을 갖춰 지극히 봉양하고 나서야 비로소 물러나와 임금의 자리로 되돌아갔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져'[108] 명칭이 바르게 되고 말이 순통해져 일거에 천하를 다스릴 수 있게 됐을 것이다. 공자의 '정명'은 아마 이와 같았을 것이다."

44.

澄在鴻臚寺[109]倉居[110],忽家信至,言兒病危,澄心甚憂悶,不能堪。
육징이 홍려시 창거에 있을 때, 문득 집에서 아이가 병으로 위급하다는 편지가 왔다. 육징은 매우 걱정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先生曰:「此時正宜用功。若此時放過,閒時講學何用?人正要在此等時磨鍊。父之愛子,自是至情,然天理亦自有個中和處,過即是私意。人於此處多認做天理當憂,則一向憂苦,不知已是『有所憂患不得其正』。大抵七情所感,多只是過,少不及者。才過,便非心之本體,必須調停適中始得。就如父母之喪,人子豈不欲一哭便死,方快於心?然卻曰『毀不滅性』,非聖人強制之也,天理本體自有分限,不可過也。人但要識得心體,自然增減分毫不得。」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이럴 때야말로 공부해야하네. 이럴 때를 지나쳐버린다면, 한가할 때 강학한들 무슨 소용이겠나? 사람이라면 바로 이런 때에 연마해야하네. 아비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본디 지극히 [자연스런] 감정이지만, 천리에는 본디 적절(中和)한 것이 있는 법이니, 이를 지나치면 곧 사의라네. 사람이 이런 경우에 대부분 천리상 마땅히 걱정해야한다고 여겨서, 백이면 백 걱정하며 애를 태울 뿐 이미 ‘[마음에] 걱정거리가 있으면 바름을 얻지 못한’[111] 상태임을 알지 못하네. 대저 칠정[112]의 느낌은 대부분 지나친 것일 뿐, 미치지 못한 경우는 적네. 지나치자마자 마음의 본모습(心之本體)이 아니니, 반드시 조절하여 딱 맞게 해야 하는 것이네. 가령 부모의 상에서 자식이 어찌 한바탕 죽도록 곡을 해 성에 차기를 바라지 않겠는가마는, ‘[슬퍼하다가 몸을] 해치더라도 생명을 잃을 정도로는 하지 않는다’[113]고 하는 것은 성인께서 억지로 제정하신 것이 아니라 천리의 본체에 본래 한계가 있어 지나쳐서는 안 되는 것이네. 사람이 그저 마음의 본모습(心體)만 이해한다면 자연히 털끝만큼도 더하거나 덜어낼 수 없을 것이네.”

45.

「不可謂『未發之中』常人俱有。蓋體用一源,有是體即有是用,有『未發之中』,即有『發而皆中節之和』。今人未能有『發而皆中節之和』,須知是他『未發之中』亦未能全得。」
‘미발지중’은 범부(常人)라도 누구나 가지고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대개 ‘본체와 작용은 그 근원이 동일하기 때문에’[114] 본체가 있으면 작용이 있으니, ‘미발지중’이 있으면 곧 ‘발하여 절도에 맞는 和(發而皆中節之和)’가 있기 마련이다. 요즘 사람들은 ‘발하여 절도에 맞는 和(發而皆中節之和)’를 가지지 못하니, 그들의 ‘미발지중’ 역시 온전히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46.

「《易》之辭,是『初九,潛龍勿用』六字;《易》之象,是初畫;《易》之變,是值[115]其畫;《易》之占,是用其辭。」
『주역』 [「계사상」에서 말하는[116]] 辭(효사)란 ‘初九,潛龍勿用(초구: 잠겨있는 용이니, 쓰지 말라)’[117] 여섯 글자이고, 『주역』 [「계사상」에서 말하는] 象이란 첫 획(초구의 양획)이며, 『주역』 [「계사상」에서 말하는] 變이란 그 획을 만나는 것이고, 『주역』 [「계사상」에서 말하는] 占이란 그 辭(효사)를 활용하는 것이다.

47.

「『夜氣』,是就常人說。學者能用功,則日間有事、無事,皆是此氣翕聚發生處。聖人則不消說『夜氣』。」
‘야기’[118]는 범부의 차원에서 이야기한 것이다. 배우는 자가 능히 공부한다면 일상생활에서의 일이이 있든 없든 모두 이 야기(도덕적 기운)가 모여 발생한 것이다. 성인은 ‘야기’를 말할 필요도 없다.

48.

澄問「操存舍亡」章。
육징이 ‘操存舍亡’장[119]에 대해 질문했다.
曰:「『出入無時,莫知其鄉』,此雖就常人心說,學者亦須是知得心之本體亦元是如此,則操存功夫,始沒病痛。不可便謂出為亡,入為存。若論本體,元是無出無入的。若論出入,則其思慮運用是出。然主宰常昭昭在此,何出之有?既無所出,何入之有?程子所謂『腔子』[14],亦只是天理而已。雖終日應酬而不出天理,即是在腔子裏。若出天理,斯謂之放,斯謂之亡。」
[양명 선생께서] 대답하셨다: “‘[마음이] 나가고 들어옴에 일정한 때가 없으며 그 방향도 알 수 없다’는 것은 비록 범부의 차원에서 이야기 한 것이지만, 배우는 자도 [자신의] 마음의 본모습(本體)도 원래 이와 같음을 알아야 하니, 그러면 조존 공부에 비로소 병통이 없을 것이다. ‘[마음이] 나가면 없어지고 들어오면 있게 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본모습(本體)으로 말하자면 원래 나가는 것도 들어오는 것도 없지만, 드나듦으로 말하자면 그 사려가 작동하는 것이 나가는 것(出)이다. 그러나 [마음이라는] 주재는 늘 밝게 여기에 있으니, 무슨 나감이 있겠는가? 나간 것이 없는 이상 어찌 들어올 것이 있겠는가? 정자께서 말씀하신 ‘가슴속(腔子)’[120]라는 것도 그저 천리일 뿐이다. 비록 하루 종일 [외물과] 응수하더라도 천리를 벗어나지 않으면 곧 가슴속(腔子)에 있는 것이다. 만일 천리를 벗어나면 이것을 ‘놓쳤다’거나 ‘없어졌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又曰:「出入亦只是動靜,動靜無端,豈有鄉邪?」
또 말씀하셨다: “[마음의] 출입[이라는 표현도] 단지 [마음의] 동정[을 말하는 것일] 뿐이니, ‘동정에 끝이 없는데’[121] 어찌 방향이 있겠는가?”

49.

王嘉秀問:「佛以出離生死誘人入道,仙以長生久視誘人入道,其心亦不是要人做不好;究其極至,亦是見得聖人上一截,然非入道正路。如今仕者,有由科,有由貢,有由傳奉[122],一般做到大官,畢竟非入仕正路,君子不由也。仙、佛到極處,與儒者略同,但有了上一截,遺了下一截,終不似聖人之全;然其上一截同者,不可誣也。後世儒者,又只得聖人下一截,分裂失真,流而為記誦、詞章、功利、訓詁,亦卒不免為異端。是四家者,終身勞苦,於身心無分毫益,視彼仙、佛之徒,清心寡慾,超然於世累之外者,反若有所不及矣。今學者不必先排仙、佛,且當篤志為聖人之學。聖人之學明,則仙、佛自泯。不然,則此之所學,恐彼或有不屑,而反欲其俯就,不亦難乎?鄙見如此,先生以為何如?」
왕가수가 물었다: “불가에서는 생사를 벗어나는 것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여 道에 들어가게 하고, 도교에서는 장생(長生久視)[123]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여 道에 들어가게 하는데, 그 의도(心)가 물론 사람들로 하여금 나쁜 짓 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고, 그 지극한 것에 대한 탐구 역시 성인의 윗단계(上達)를 깨우치는 것이지만, 도로 들어가는 바른 길이 아닙니다. 벼슬하는 경우, 과거를 통하는 방법이 있고 향당의 천거를 받는 방법이 있으며 태감(太監)의 안배를 통하는 방법이 있어서 모두 높은 관직을 얻을 순 있지만, [태감의 안배를 통하는 傳奉은] 결국 벼슬하는 바른길이 아니기 때문에 군자는 [이런 방법을] 통해 [관직을 얻지] 않습니다. 도교나 불가가 지극한 경지에 이르는 것은 유가와 대략 같습니다만, 윗부분(上達)만 있고 아랫부분(下學)은 빠뜨려 끝내 성인의 완전함과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윗부분(上達)의 동일함만큼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후세 유자들은 또 그저 성인의 아랫부분(下學)만 얻고서 나뉘고 쪼개어져 참된 것을 잃어버리고는, 記誦·詞章·功利·訓詁로 흘러가버려 역시 끝내 이단이 됨을 면하지 못했습니다. 이 네 가지 부류는 종신토록 고생하지만 자기 마음에는 조금의 보탬이 없는데, 저 도교나 불가의 무리들이 마음을 맑게 하고 욕심을 줄여 세간의 속박 밖에서 초연한 것을 보면 도리어 [유자들이] 미치지 못하는 점이 있는 듯합니다. 지금 배우는 자들은 미리부터 도교와 불가 배척할 필요는 없고, 우선 성인의 학문에 대해 뜻을 돈독히 해야 할 것입니다. 성인의 학문이 밝혀진다면, 도교와 불가는 절로 민멸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성인지학이 밝혀지지 않는다면) 유자들의 학문을 저들은 아마 하찮게 여길 것이니, 도리어 저들이 굽히고 나오기를 바란들 어렵지 않겠습니까? 제 생각이 이러한데, 선생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先生曰:「所論大略亦是。但謂上一截、下一截,亦是人見偏了如此。若論聖人大中至正之道,徹上徹下,只是一貫,更有甚上一截、下一截?『一陰一陽之謂道』,但『仁者見之便謂之仁,知者見之便謂之智,百姓又日用而不知,故君子之道鮮矣』。仁、智豈可不謂之道?但見得偏了,便有弊病。」
양명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말한 것이 대체로 맞다. 그러나 ‘윗부분’·‘아랫부분’이라고 말한 것은 사람들의 견해가 치우쳤기 때문에 이와 같은 것이다. 만일 성인의 大中至正한 도를 논한다면, 상하를 꿰뚫어[124] 하나로 관통될 뿐이니,[125] 달리 무슨 ‘윗부분’·‘아랫부분’이 있겠는가? ‘한 번 음하고 한 번 양한 것을 도’라고 하지만, ‘인한 자는 이를 보고 인하다고 하고, 지혜로운 자는 이를 보고 지혜롭다고 하며, 백성은 또 이를 날마다 쓰면서도 알지 못하니, 그러므로 군자의 도를 [아는 자가] 적다.’[126] 仁이나 智를 어찌 도라고 부르지 못하겠는가? 다만 견해가 치우쳐 병폐가 있는 것일 뿐이다.”

50.

「蓍固是易,龜亦是易。」
시초점은 진실로 역이지만, 거북점 역시 역이다.

51.

問:「孔子謂武王未盡善,恐亦有不滿意?」
물었다: "공자께서 '무왕은 선을 다하지 못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127] 역시 만족스럽지 못했던 점이 있으셨던 거겠죠?"
先生曰:「在武王自合如此。」
양명 선생께서 대답하셨다: "무왕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으셨다."
曰:「使文王未沒,畢竟如何?」
물었다: "만약 문왕께서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요?"
曰:「文王在時,天下三分已有其二。若到武王伐商之時,文王若在,或者不致興兵,必然這一分亦來歸了。文王只善處紂,使不得縱惡而已。」
대답하셨다: "문왕께서 살아계실 때 이미 천하의 2/3를 다스리고 계셨다.[128] 만약 무왕이 은나라를 정벌할 때까지 문왕께서 살아계셨다면, 아마 군대를 일으키지는 않으셨을 것이고, 필시 남은 1/3 역시 문왕께 귀의했을 것이다. [문왕께서는] 다만 주왕을 선처해 멋대로 악행을 저지르지 못하게만 하셨을 것이다."

52.

問孟子言「執中無權猶執一」。
맹자께서 "중을 잡되 저울질함이 없는 것은 하나를 고집하는 것과 마찬가지다"[129]라고 말씀하신 것에 대해 물었다.
先生曰:「中只有天理,只是易。隨時變易,如何執得?須是因時制宜,難預先定一個規矩在。如後世儒者,要將道理一一說得無罅漏,立定個格式,此正是執一。」
양명 선생께서 대답하셨다: "'중'의 의미는 천리일 뿐이지만 변화할 따름이다. [천리는] 때에 따라 변화하는데 어떻게 고집할 수 있겠는가? 반드시 때에 따라 마땅한 방법을 세워야지 미리 하나의 규격을 정하는 것은 어렵다. 후세의 유자들은 도리에 대해 일일이 빈틈없이 설명해 격식을 굳게 세우려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를 고집하는 것'이다."

53.

唐詡問:「立志是常存個善念,要為善去惡否?」
당우가 물었다: "'뜻을 세움(立志)'이란 선한 의념을 늘 보존하여 선을 행하고 악을 제거하려는 것입니까?"
曰:「善念存時,即是天理。此念即善,更思何善?此念非惡,更去何惡?此念如樹之根芽,立志者,長立此善念而已。『從心所欲不踰矩』,只是志到熟處。」
양명 선생께서 대답하셨다: "선한 의념이 보존될 때 바로 천리에 [부합한 상태]다. 이 의념이 선한데 달리 무슨 선함을 생각하겠으며, 이 의념이 악하지 않은데 달리 무슨 악함을 제거하겠나? 이 의념은 나무의 뿌리나 싹과 같으니, '뜻을 세움(立志)'이란 이 선한 의념을 생장시켜 세우는 것일 뿐이다. '마음이 바라는 대로 하더라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는다'[130]는 것은 다만 뜻이 완숙한 경지에 이른 것이다."

54.

「精神、道德、言動,大率收歛為主,發散是不得已。天、地、人、物皆然。」
정신·도덕·언동은 대체로 수렴을 위주로 하니, 발산하는 경우는 부득이한 것이다. 천·지·인·만물도 모두 그렇다.

55.

問:「文中子是如何人?」
물었다: "문중자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先生曰:「文中子庶幾『具體而微』,惜其蚤死。」
양명 선생께서 대답하셨다: "문중자는 '성인의 전체를 갖추고 있었으나 미약한 것'[131]에 가까우니, 그가 일찍 죽은 게 안타깝다."
問:「如何卻有續經之非?」
물었다: "어째서 문중자는 경전을 본뜨는 잘못[132]을 저지른 겁니까?"
曰:「續經亦未可盡非。」
양명 선생께서 대답하셨다: "경전을 본떴더라도 다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請問。良久,曰:「『更覺良工心獨苦』。」
더 여쭈니, 한참 뒤에 말씀하셨다: "뛰어난 장인이 마음으로 홀로 괴로워했음을 다시 느끼노라.[133]"

56.

「許魯齋謂儒者以治生為先之說亦誤人。」
허노재(許衡, 1209-1281)가 '유자는 생업을 해결하는 것을 우선해야 한다'[134]고 말한 것 역시 사람들을 오도한다.

57.

問仙家元氣、元神、元精。
선가의 원기·원신·원정에 대해 물었다.
先生曰:「只是一件:流行為氣,凝聚為精,妙用為神。」
양명 선생께서 대답하셨다: "그저 하나일 뿐이다. 유행하는 것이 氣이고, 응취된 것이 精이며, 묘용이 神이다."

58.

「喜、怒、哀、樂本體自是中和的。纔自家著些意思,便過不及,便是私。」
희노애락의 본체는 본래 中·和한 것이다.[135] 자신이 약간의 생각을 쓰자마자 지나치거나 부족하게 되니, 이것이 바로 사욕(私)이다.

59.

問「哭則不歌」。
'[공자께서는] 그날 곡했으면 노래하지 않으셨다'[136]에 대해 물었다.
先生曰:「聖人心體自然如此。」
양명 선생께서 대답하셨다: "성인의 心體는 본래 이와 같으셨다."

60.

「克己須要掃除廓清、一毫不存方是。有一毫在,則眾惡相引而來。」
'극기'[137]의 경우, [자신의 사욕을] 깨끗이 쓸어버려 한 터럭만큼도 남지 않게 해야 한다. 한 터럭이라도 남아있으면 뭇 악이 서로 당겨 오게 된다.

61.

問《律呂新書》。
<율려신서>에 대해 물었다.
先生曰:「學者當務為急,算得此數熟亦恐未有用,必須心中先具禮、樂之本,方可。且如其書說多用管以候氣[138],然至冬至那一刻時,管灰之飛或有先後,須臾之間,焉知那管正值冬至之刻?須自心中先曉得冬至之刻始得。此便有不通處。學者須先從禮、樂本原上用功。」
양명 선생께서 대답하셨다: "배우는 자는 마땅히 힘써야 할 것을 우선해야 한다. 이 <율려신서>의 수를 능숙하게 계산할 수 있더라도 쓸모가 없을 것이니, 반드시 마음속에 예악의 근본을 먼저 갖춰야 한다. 예를 들어, 그 책에서는 율관으로 절기의 변화를 예측하지만, 동지가 되는 그 짧은 시간에 율관 속 재의 날림에 선후가 있으니, 잠깐 사이에 그 율관이 동지 시각에 딱 맞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반드시 자기 마음속으로 먼저 동지의 시각을 알고 있어야 한다. 여기에 바로 [<율려신서>가] 통하지 않는 점이 있다. 배우는 자는 마땅히 먼저 예악의 본원에서 공부해야 한다."

62.

曰仁云:「心猶鏡也,聖人心如明鏡,常人心如昏鏡。近世『格物』之說,如以鏡照物,照上用功,不知鏡尚昏在,何能照?先生之『格物』,如磨鏡而使之明,磨上用功,明了後亦未嘗廢照。」
왈인(서애)이 말했다: "마음은 거울과 같으니, 성인의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고, 범부의 마음은 어두운 거울과 같다. 근래의 '격물'설(주자의 격물설)은 마치 거울로 사물을 비추는 상황에서 비추는 것에만 힘쓰고 거울은 여전히 어두움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어찌 제대로 비출 수 있겠는가? 선생의 '격물'은 거울을 닦아서 밝게 만드는 것과 같아, 거울을 닦는 데 힘쓰고 거울이 밝아진 뒤에도 비춤을 폐한 적이 없다."

63.

問道之精粗。
도의 精粗에 대해 물었다.
先生曰:「道無精粗,人之所見有精粗。如這一間房,人初進來,只見一個大規模如此;處久,便柱壁之類,一一看得明白;再久,如柱上有些文藻,細細都看出來。然只是一間房。」
선생께서 대답하셨다: "도에는 精粗가 없고, 사람들이 보는 것에 精粗가 있다. 예를 들어 이 방 한 칸에 사람이 처음 들어오면 그저 대체적인 구조가 이와 같음만 보지만, 오래 머물면 기둥이나 벽 따위를 일일이 분명히 보고, 더 오래 머물면 기둥 위의 무늬 같은 것도 세세히 알아챌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방 한 칸일 뿐이다."

64.

先生曰:「諸公近見時,少疑問,何也?人不用功,莫不自以為已知為學,只循而行之是矣。[139]殊不知私欲日生,如地上塵,一日不掃便又有一層。著實用功,便見道無終窮,愈探愈深,必使精白無一毫不徹方可。」
양명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요즘 만났을 때 의문이 적으니 어째서인가? 사람이 공부하지 않으면 스스로 '이미 학문하는 법을 알고 있으니, 단지 이를 따라 실천하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없으니, 사욕이 날로 생기는 것이 마치 땅 위의 먼지와 같아 하루 쓸지 않으면 한 층의 먼지가 쌓임을 전여 알지 못하는 것이다. 착실이 공부한다면 도에는 끝이 없어 탐구할수록 깊어짐을 알게 될 것이다. 반드시 정밀하고 명백하게 공부하여 한 터럭만큼도 철저하지 못한 것이 없어야 한다."

65.

問:「知至然後可以言誠意。今天理、人欲知之未盡,如何用得克己工夫?」
물었다: "앎이 지극해진 연후에야 誠意를 말할 수 있습니다.[140] 지금 천리와 인욕을 온전히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극기공부를 할 수 있겠습니까?"
先生曰:「人若真實切己用功不已,則於此心天理之精微,日見一日;私欲之細微,亦日見一日。若不用克己工夫,終日只是說話而已,天理終不自見,私欲亦終不自見。如人走路一般,走得一段,方認得一段;走到歧路處,有疑便問,問了又走,方漸能到得欲到之處。今人於已知之天理不肯存,已知之人欲不肯去,且只管愁不能盡知。只管閒講,何益之有?且待克得自己無私可克,方愁不能盡知,亦未遲在。」
양명 선생께서 대답하셨다: "사람이 만일 진실하고 절실하게 끊임없이 공부한다면, 이 마음의 정미한 천리를 날마다 하루만큼 볼 것이고, 세미한 사욕도 날마다 하루만큼 볼 것이다. 그러나 극기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종일 하더라도 그저 말뿐이어서, 천리도 끝내 스스로 드러나지 않고 사욕도 끝내 스스로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마치 사람이 길을 가는 것과 같아, 한 구간을 가야 한 구간을 알 수 있고, 가다가 갈림길을 만났을 때 의심스러우면 묻고, 묻고 나서 다시 가야 점차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요즘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는 천리를 보존하려 하지도 않고 이미 알고 있는 인욕을 없애려 하지도 않고서, 그저 온전히 알지 못할 것만 근심해 쓸데없는 강설만 하니, 무슨 보탬이 있겠는가? 우선 자신을 이겨 이길 만한 사욕이 없은 뒤에 온전히 알지 못함을 근심하더라도 늦지 않다."

66.

問:「道一而已。古人論道,往往不同,求之亦有要乎?」
先生曰:「道無方體,不可執著;卻拘滯於文義上求道,遠矣。如今人只說天,其實何嘗見天?謂日、月、風、雷即天,不可;謂人、物、草、木不是天,亦不可。道即是天,若識得時,何莫而非道?人但各以其一隅之見,認定以為道止如此,所以不同。若解向裏尋求,見得自己心體,即無時無處不是此道。亙古亙今,無終無始,更有甚同異?心即道,道即天,知心則知道、知天。」
又曰:「諸君要實見此道,須從自己心上體認,不假外求,始得。」

67.

問:「名物度數,亦須先講求否?」
先生曰:「人只要成就自家心體,則用在其中。如養得心體,果有『未發之中』,自然『有發而中節之和』,自然無施不可。茍無是心,雖預先講得世上許多名物度數,與己原不相干,只是裝綴,臨時自行不去。亦不是將名物度數全然不理,只要『知所先後,則近道』。」
又曰:「人要隨才成就,才是其所能為。如夔之樂、稷之種,是他資性合下便如此。成就之者,亦只是要他心體純乎天理。其運用處,皆從天理上發來,然後謂之才。到得純乎天理處,亦能『不器』。使夔、稷易藝而為,當亦能之。」
又曰:「如『素富貴行乎富貴,素患難行乎患難』,皆是『不器』。此惟養得心體正者能之。」

68.

「與其為數頃無源之塘水,不若為數尺有源之井水,生意不窮。」時先生在塘邊坐,傍有井,故以之喻學云。

69.

問:「世道日降,太古時氣象如何復見得?」
先生曰:「一日便是一元。人平旦時起坐,未與物接,此心清明景象,便如在伏羲時遊一般。」

70.

問:「心要逐物,如何則可?」
先生曰:「人君端拱清穆,六卿分職,天下乃治。心統五官,亦要如此。今眼要視時,心便逐在色上;耳要聽時,心便逐在聲上。如人君要選官時,便自去坐在吏部;要調軍時,便自去坐在兵部。如此,豈惟失卻君體,六卿亦皆不得其職。」

71.

「善念發而知之,而充之;惡念發而知之,而遏之。知與充與遏者,志也,天聰明也。聖人只有此,學者當存此。」

72.

澄曰:「好色、好利、好名等心,固是私欲。如閒思雜慮,如何亦謂之私欲?」
先生曰:「畢竟從好色、好利、好名等根上起,自尋其根便見。如汝心中決知是無有做劫盜的思慮,何也?以汝元無是心也。汝若於貨[27]、色、名、利等心,一切皆如不做劫盜之心一般,都消滅了,光光只是心之本體,看有甚閒思慮?此便是『寂然不動』,便是『未發之中』,便是『廓然大公』。自然『感而遂通』,自然『發而中節』,自然『物來順應』。」

73.

問「志至氣次」。
先生曰:「『志之所至,氣亦至焉』之謂,非極至、次貳之謂。『持其志』,則養氣在其中;『無暴其氣』,則亦持其志矣。孟子救告子之偏,故如此夾持說。」

74.

問:「先儒曰:『聖人之道,必降而自卑。賢人之言,則引而自高。』如何?」
先生曰:「不然。如此卻乃偽也。聖人如天,無往而非天,三光之上,天也,九地之下亦天也,天何嘗有降而自卑?此所謂『大而化之』也。賢人如山嶽,守其高而已。然百仞者不能引而為千仞,千仞者不能引而為萬仞。是賢人未嘗引而自高也,引而自高則偽矣。」

75.

問:「伊川謂『不當於喜怒哀樂未發之前求中』,延平卻教學者『看未發之前氣象』,何如?」
先生曰:「皆是也。伊川恐人於未發前討個中,把中做一物看,如吾向所謂認氣定時做中,故令只於涵養省察上用功。延平恐人未便有下手處,故令人時時刻刻求未發前氣象,使人正目而視惟此,傾耳而聽惟此,即是『戒慎不睹,恐懼不聞』的工夫。皆古人不得已誘人之言也。」

76.

澄問:「喜怒哀樂之中、和,其全體常人固不能有。如一件小事當喜怒者,平時無有喜怒之心,至其臨時,亦能中節,亦可謂之中、和乎?」
先生曰:「在一時一事,固亦可謂之中、和,然未可謂之大本、達道。人性皆善,中、和是人人原有的,豈可謂無?但常人之心既有所昏蔽,則其本體雖亦時時發見,終是暫明暫滅,非其全體大用矣。無所不中,然後謂之『大本』;無所不和,然後謂之『達道』。惟天下之至誠,然後能立天下之『大本』。」
曰:「澄於『中』字之義尚未明。」
曰:「此須自心體認出來,非言語所能喻。『中』只是天理。」
曰:「何者為天理?」
曰:「去得人欲,便識天理。」
曰:「天理何以謂之中?」
曰:「無所偏倚。」
曰:「無所偏倚是何等氣象?」
曰:「如明鏡然,全體瑩徹,略無纖塵染著。」
曰:「偏倚是有所染著。如著在好色、好利、好名等項上,方見得偏倚;若未發時,美色、名、利皆未相著,何以便知其有所偏倚?」
曰:「雖未相著,然平日好色、好利、好名之心原未嘗無;既未嘗無,即謂之有;既謂之有,則亦不可謂無偏倚。譬之病瘧之人,雖有時不發,而病根原不曾除,則亦不得謂之無病之人矣。須是平日好色、好利、好名等項一應[28]私心,掃除蕩滌,無復纖毫留滯,而此心全體廓然,純是天理,方可謂之『喜怒哀樂未發之中』,方是『天下之大本』。」

77.

問:「『顏子沒而聖學亡』,此語不能無疑。」
先生曰:「見聖道之全者惟顏子。觀『喟然一嘆』可見。其謂『夫子循循然善誘人,博我以文,約我以禮』,是見破後如此說。博文、約禮如何是善誘人?學者須思之。道之全體,聖人亦難以語人,須是學者自修自悟。顏子『雖欲從之,末由也已』,即文王『望道未見』意。望道未見,乃是真見。顏子沒,而聖學之正派遂不盡傳矣。」

78.

問:「身之主為心,心之靈明是知,知之發動是意,意之所著為物,是如此否?」
先生曰:「亦是。」

79.

「只存得此心常見在,便是學。過去未來事,思之何益?徒放心耳。」

80.

「言語無序,亦足以見心之不存。」

81.

尚謙問孟子之不動心與告子異。
先生曰:「告子是硬把捉著此心,要他不動;孟子卻是集義到自然不動。」
又曰:「心之本體,原自不動。心之本體即是性,性即是理;性元不動,理元不動。集義是復其心之本體。」

82.

「萬象森然時,亦沖漠無朕;沖漠無朕即萬象森然。沖漠無朕者,『一』之父;萬象森然者,『精』之母。『一』中有『精』,『精』中有『一』。」

83.

「心外無物。如吾心發一念孝親,即孝親便是物。」

84.

先生曰:「今為吾所謂『格物』之學者,尚多流於口耳。況為口耳之學者,能反於此乎?天理、人欲,其精微必時時用力省察克治,方日漸有見。如今一說話之間,雖只講天理,不知心中倏忽之間,已有多少私欲。蓋有竊發而不知者,雖用力察之,尚不易見,況徒口講而可得盡知乎?今只管講天理來頓放著不循,講人欲來頓放著不去,豈『格物』、『致知』之學?後世之學,其極至,只做得個『義襲而取』的工夫。」

85.

問「格物」。
先生曰:「格者,正也。正其不正,以歸於正也。」

86.

問:「『知止』者,知至善只在吾心,元不在外也,而後志定?」
曰:「然。」

87.

問:「格物於動處用功否?」
先生曰:「格物無間動靜,靜亦物也。孟子謂『必有事焉』,是動靜皆有事。」

88.

「工夫難處,全在『格物』、『致知』上,此即『誠意』之事。意既誠,大段心亦自正,身亦自修。但『正心』、『修身』工夫亦各有用力處,『修身』是已發邊,『正心』是未發邊。心正則中,身修則和。」

89.

「自『格物』、『致知』至『平天下』,只是一個『明明德』,雖『親民』亦『明德』事也。『明德』是此心之德,即是仁。仁者以天地萬物為一體,使有一物失所,便是吾仁有未盡處。」

90.

「只說『明明德』而不說『親民』,便似老、佛。」

91.

「至善者,性也;性元無一毫之惡,故曰『至善』。止之,是復其本然而已。」

92.

問:「知至善即吾性,吾性具吾心,吾心乃至善所止之地,則不為向時之紛然外求,而志定矣。定則不擾擾而靜,靜而不妄動則安,安則一心一意只在此處,千思萬想,務求必得此至善,是能慮而得矣。如此說是否?」
先生曰:「大略亦是。」

93.

問:「程子云:『仁者以天地萬物為一體。』何墨氏兼愛,反不得謂之仁?」
先生曰:「此亦甚難言,須是諸君自體認出來始得。仁是造化生生不息之理,雖瀰漫周遍,無處不是,然其流行發生,亦只有個漸,所以生生不息。如冬至一陽生,必自一陽生而後漸漸至於六陽;若無一陽之生,豈有六陽?陰亦然。惟其漸,所以便有個發端處;惟其有個發端處,所以生;惟其生,所以不息。譬之木,其始抽芽,便是木之生意發端處;抽芽然後發幹,發幹然後生枝、生葉,然後是生生不息。若無芽,何以有幹、有枝葉?能抽芽,必是下面有個根在;有根方生,無根便死。無根何從抽芽?父子、兄弟之愛,便是人心生意發端處,如木之抽芽。自此而仁民,而愛物,便是發幹、生枝、生葉。墨氏兼愛無差等,將自家父子、兄弟與途人一般看,便自沒了發端處;不抽芽便知得他無根,便不是生生不息,安得謂之仁?孝、弟為仁之本,卻是仁理從裏面發生出來。」

94.

問:「延平云:『當理而無私心。』『當理』與『無私心』如何分別?」
先生曰:「心即理也,『無私心』即是『當理』,未『當理』便是私心。若析心與理言之,恐亦未善。」
又問:「釋氏於世間一切情欲之私,都不染著,似無私心。但外棄人倫,卻似未『當理』。」
曰:「亦只是一統事,都只是成就他一個私己的心。」

以下門人薛侃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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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1. 장자 외물 荃者所以在魚,得魚而忘荃;蹄者所以在兔,得兔而忘蹄;言者所以在意,得意而忘言。吾安得忘言之人而與之言哉?
  2. 논어 양화 子曰:「予欲無言。」子貢曰:「子如不言,則小子何述焉?」子曰:「天何言哉?四時行焉,百物生焉,天何言哉?」
  3. 논어 위정 子曰:「吾與回言終日,不違如愚。退而省其私,亦足以發。回也,不愚。」
  4. 《禮記‧檀弓上》 吾離群而索居,亦已久矣。
  5. 《詩‧大雅‧文王》: “儀刑文王, 萬邦作孚。”
  6. 대학혹문 曰、程子之改親爲新也何所據、子之從之又何所考、而必其然耶。且以己意輕改經文。恐非傳疑之義。奈何。曰、若無所考而輒改之、則誠若吾子之譏矣。今親民云者、以文義推之則無理。新民云者、以傳文考之則有據。程子於此其所以處之者亦已審矣。矧未嘗去其本文、而但曰某當作某、是乃漢儒釋經不得已之變例、而亦何害於傳疑耶。若必以不改爲是、則世蓋有承誤踵訛、心知非是、而故爲穿鑿附會、以求其說之必通者矣。其侮聖言而誤後學也益甚。亦何足取以爲法耶。
  7. 계사상 參伍以變,錯綜其數
  8. 중용장구 29장 百世以俟聖人而不惑。
  9. 상서 대우모 人心惟危,道心惟微,惟精惟一,允執厥中。
  10. 장자 서무귀 夫逃虛空者,藜、藋柱乎鼪、鼬之逕,踉位其空,聞人足音跫然而喜矣,而況乎兄弟親戚之謦欬其側者乎!久矣夫!莫以真人之言謦欬吾君之側乎!
  11. 논어 자한 顏淵喟然歎曰:「仰之彌高,鑽之彌堅;瞻之在前,忽焉在後。
  12. 회남자 도응훈 秦穆公謂伯樂曰:「子之年長矣。子姓有可使求馬者乎?」對曰:「良馬者,可以形容筋骨相也。相天下之馬者,若滅若失,若亡其一。若此馬者,絕塵弭轍。臣之子皆下材也,可告以良馬,而不可告以天下之馬。臣有所與供儋纏采薪者方九堙,此其于馬,非臣之下也。請見之。」穆公見之,使之求馬。三月而反報曰:「已得馬矣。在於沙丘。」穆公曰:「何馬也?」對曰:「牡而黃。」使人往取之,牝而驪。穆公不說。召伯樂而問之曰:「敗矣。子之所使求者。毛物、牝牡弗能知,又何馬之能知?」伯樂喟然大息曰:「一至此乎!是乃其所以千萬臣而無數者也。若堙之所觀者,天機也。得其精而忘其粗,在內而忘其外,見其所見而不見其所不見,視其所視而遺其所不視。若彼之所相者,乃有貴乎馬者!」馬至,而果千里之馬。故老子曰:「大直若屈,大巧若拙。」
  13. 대학장구 湯之盤銘曰:「苟日新,日日新,又日新。」 康誥曰:「作新民。」
  14. 대학장구 鼓之舞之之謂作,言振起其自新之民也。
  15. 대학장구 君子賢其賢而親其親,小人樂其樂而利其利
  16. 대학장구 康誥曰「如保赤子」
  17. 대학장구 詩云:「樂只君子,民之父母。」民之所好好之,民之所惡惡之,此之謂民之父母。
  18. 맹자 진심상 孟子曰:「君子之於物也,愛之而弗仁;於民也,仁之而弗親。親親而仁民,仁民而愛物。」
  19. 상서 우서 순전 帝曰:「契,百姓不親,五品不遜。汝作司徒,敬敷五教,在寬。」
  20. 상서 요전 曰若稽古帝堯,曰放勳,欽、明、文、思、安安,允恭克讓,光被四表,格于上下。克明俊德,以親九族。九族既睦,平章百姓。百姓昭明,協和萬邦。黎民於變時雍。
  21. 논어 헌문 子路問君子。子曰:「脩己以敬。」曰:「如斯而已乎?」曰:「脩己以安人。」曰:「如斯而已乎?」曰:「脩己以安百姓。脩己以安百姓,堯舜其猶病諸!」
  22. 대학혹문 知止云者、物格知至而於天下之事皆有以知其至善之所在。是則吾所當止之地也。能知所止、則方寸之閒、事事物物、皆有定理矣。
  23. 맹자 고자상 告子曰:「食色,性也。仁,內也,非外也;義,外也,非內也。」
  24. 대학장구 蓋必其有以盡夫天理之極,而無一毫人欲之私也。
  25. 예기 곡례상 凡為人子之禮:冬溫而夏凊,昏定而晨省,在醜夷不爭。
  26. 예기 제의 孝子之有深愛者,必有和氣;有和氣者,必有愉色;有愉色者,必有婉容。孝子如執玉,如奉盈,洞洞屬屬然,如弗勝,如將失之。嚴威儼恪,非所以事親也,成人之道也。
  27. 한어대사전 看: 13. 用在動詞或動詞結構後面, 表示先試試之意。
  28. 전습록 136조목. 來書云:「人之心體本無不明,而氣拘物蔽,鮮有不昏;非學、問、思、辨以明天下之理,則善、惡之機,真、妄之辨,不能自覺;任情恣意,其害有不可勝言者矣。」 此段大略似是而非,蓋承沿舊說之弊,不可以不辨也。夫問、思、辨、行,皆所以為學,未有學而不行者也。如言學孝,則必服勞奉養,躬行孝道,然後謂之學;豈徒懸空口耳講說,而遂可以謂之學孝乎?學射則必張弓挾矢,引滿中的;學書則必伸紙執筆,操觚染翰。盡天下之學,無有不行而可以言學者,則學之始固已即是行矣。篤者,敦實篤厚之意。已行矣,而敦篤其行,不息其功之謂爾。蓋學之不能以無疑,則有問,問即學也,即行也;又不能無疑,則有思,思即學也,即行也;又不能無疑,則有辨,辨即學也,即行也。辨既明矣,思既慎矣,問既審矣,學既能矣,又從而不息其功焉,斯之謂篤行。非謂學問思辨之後,而始措之於行也。是故以求能其事而言謂之學,以求解其惑而言謂之問,以求通其說而言謂之思,以求精其察而言謂之辨,以求履其實而言謂之行:蓋析其功而言則有五,合其事而言則一而已。此區區心、理合一之體,知、行並進之功,所以異於後世之說者,正在於是。今吾子特舉學、問、思、辨,以窮天下之理,而不及篤行,是專以學、問、思、辨為知,而謂窮理為無行也已;天下豈有不行而學者邪?豈有不行而遂可謂之窮理者邪?明道云:「只窮理便盡性至命。」故必仁極仁而後謂之能窮仁之理,義極義而後謂之能窮義之理。仁極仁則盡仁之性矣,義極義則盡義之性矣,學至於窮理,至矣,而尚未措之於行,天下寧有是邪?是故知不行之不可以為學,則知不行之不可以為窮理矣,知不行之不可以為窮理,則知「知、行」之合一並進,而不可以分為兩節事矣。夫萬事萬物之理,不外於吾心;而必曰窮天下之理,是殆以吾心之良知為未足,而必外求於天下之廣,以裨補增益之,是猶析心與理而為二也。夫學、問、思、辨、篤行之功,雖其困勉至於人一己百,而擴充之極,至於盡性、知天,亦不過致吾心之良知而已;良知之外,豈復有加於毫末乎?今必曰窮天下之理,而不知反求諸其心,則凡所謂善、惡之機,真、妄之辨者,舍吾心之良知,亦將何所致其體察乎?吾子所謂氣拘物蔽者,拘此蔽此而已。今欲去此之蔽,不知致力於此,而欲以外求,是猶目之不明者不務服藥調理以治其目,而徒倀倀然求明於其外;明豈可以自外而得哉?任情恣意之害,亦以不能精察天理於此心之良知而已。此誠毫釐千里之謬者,不容於不辨,吾子毋謂其論之太刻也。
  29. 대학장구 所謂誠其意者:毋自欺也,如惡惡臭,如好好色,此之謂自謙,故君子必慎其獨也!
  30. 맹자 공손추상 2. 孟施舍似曾子,北宮黝似子夏。夫二子之勇,未知其孰賢,然而孟施舍守約也。[집주] 子夏篤信聖人,曾子反求諸己。
  31. 중용장구 22장 唯天下至誠,為能盡其性;能盡其性,則能盡人之性;能盡人之性,則能盡物之性;能盡物之性,則可以贊天地之化育;可以贊天地之化育,則可以與天地參矣。
  32. 중용장구 25장 誠者物之終始,不誠無物。是故君子誠之為貴。
  33. 맹자 이루상 孟子曰:「人不足與適也,政不足間也。惟大人為能格君心之非。君仁莫不仁,君義莫不義,君正莫不正。一正君而國定矣。」
  34. 맹자 공손추상 所以謂人皆有不忍人之心者,今人乍見孺子將入於井,皆有怵惕惻隱之心。非所以內交於孺子之父母也,非所以要譽於鄉黨朋友也,非惡其聲而然也。由是觀之,無惻隱之心,非人也;
  35. 맹자 진심상 孟子曰:「人之所不學而能者,其良能也;所不慮而知者,其良知也。
  36. 맹자 진심하 人能充無欲害人之心,而仁不可勝用也;人能充無穿踰之心,而義不可勝用也。
  37. 대학장구 欲誠其意者,先致其知;
  38. 대학장구 知至而后意誠
  39. 논어 옹야 子曰:「君子博學於文,約之以禮,亦可以弗畔矣夫!」
  40. 《梁書‧明山賓傳》: “此言足使還淳反樸, 激薄停澆矣。”
  41. 장자 외편 지락 彼唯人言之惡聞,奚以夫譊譊為乎!
  42. 사기 공자세가 至於為春秋,筆則筆,削則削,子夏之徒不能贊一辭。弟子受春秋,孔子曰:「後世知丘者以春秋,而罪丘者亦以春秋。」
  43. 한어대사전 [歇後語] 用歇後法構成的一種熟語。 分兩種體式: (1)對於某一現成語句, 省卻其後面部分詞語, 只用前一部分來表示被省卻詞語的意思。
  44. 이정유서 15-151. 春秋, 傳爲案, 經爲斷.
  45. 논어 계씨 2. 孔子曰:「天下有道,則禮樂征伐自天子出;天下無道,則禮樂征伐自諸侯出。」
  46. 맹자 양혜왕상 7. 齊宣王問曰:「齊桓、晉文之事可得聞乎?」 孟子對曰:「仲尼之徒無道桓、文之事者,是以後世無傳焉。臣未之聞也。無以,則王乎?」
  47. 중용장구 27장. 苟不固聰明聖知達天德者,其孰能知之?
  48. 논어 위령공 25. 子曰:「吾猶及史之闕文也,有馬者借人乘之。今亡矣夫!」
  49. 맹자 이루하 20. 周公思兼三王,以施四事;其有不合者,仰而思之,夜以繼日;幸而得之,坐以待旦。
  50. 혹은 '사건은 도에 즉하고, 도는 사건에 즉한다.'
  51. 논어집주 위정 2. 凡詩之言,善者可以感發人之善心,惡者可以懲創人之逸志,其用歸於使人得其情性之正而已。
  52. 논어 위령공 10. 放鄭聲,遠佞人。鄭聲淫,佞人殆。
  53. 논어 양화 19. 子曰:「惡紫之奪朱也,惡鄭聲之亂雅樂也,惡利口之覆邦家者。」
  54. 예기 악기 鄭衛之音,亂世之音也,比於慢矣。桑間濮上之音,亡國之音也,其政散,其民流,誣上行私而不可止也。
  55. 맹자 이루상 27. 孟子曰:「仁之實,事親是也;義之實,從兄是也。智之實,知斯二者弗去是也;禮之實,節文斯二者是也;樂之實,樂斯二者,樂則生矣;生則惡可已也,惡可已,則不知足之蹈之、手之舞之。」
  56. 南本作「門人徐愛曰仁錄」,此後有小段文如下:曰仁所紀凡三卷,侃近得此數條,並兩小序,其餘俟求其家附錄之。正德戊寅(1518)春薛侃識。
  57. 장자 천하 惜乎!惠施之才,駘蕩而不得,逐萬物而不反,是窮響以聲,形與影競走也。悲夫!
  58. 맹자 만장하 1. 故聞伯夷之風者,頑夫廉,懦夫有立志。
  59. <한어대사전> 2. 道教金丹的別名。內丹家以母體結胎比喻凝聚精、氣、神三者所煉成之丹, 故名。
  60. 맹자 진심하 25. 曰:「可欲之謂善,有諸己之謂信。充實之謂美,充實而有光輝之謂大,大而化之之謂聖,聖而不可知之之謂神。」
  61. <이정유서> 25-58. 有求爲聖人之志, 然後可與共學; 學而善思, 然後可與適道; 思而有所得, 則可與立; 立而化之, 則可與權. 25-59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視聽言動一於禮之謂仁, 仁之於禮非有異也. 孔子告仲弓曰:「出門如見大賓, 使民如承大祭, 已所不欲, 勿施於人.」 夫君子能如是用心, 能如是存心, 則惡有不仁者乎? 而其本可以一言而蔽之曰「思無邪」.
  62. <예기> <학기> 凡學之道,嚴師為難。師嚴然後道尊,道尊然後民知敬學。是故君之所不臣於其臣者二:當其為尸則弗臣也,當其為師則弗臣也。大學之禮,雖詔於天子,無北面;所以尊師也。
  63. <논어> <위정> 4. 子曰:「吾十有五而志于學,三十而立,四十而不惑,五十而知天命,六十而耳順,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64. <맹자> <공손추상> 2. 夫志,氣之帥也;氣,體之充也。夫志至焉,氣次焉。故曰:『持其志,無暴其氣。』
  65. <이정유서> 15-78. 沖漠無朕, 萬象森然已具. 未應不是先, 已應不是後. 如百尺之木, 自根本至枝葉, 皆是一貫. 不可道上面一段事, 無形無兆, 却待人旋安排, 引入來, 敎入塗轍. 旣是塗轍, 却只是一箇塗轍.
  66. <맹자> <이루하> 20. 文王視民如傷,望道而未之見。
  67. <이정문집> 2-1. 所謂定者, 動亦定, 靜亦定, 無將迎, 無內外.
  68. <논어> <헌문> 37. 子曰:「不怨天,不尤人。下學而上達。知我者其天乎!」
  69. <맹자> <공손추상> 2. 必有事焉而勿正,心勿忘,勿助長也。
  70. <상서> <대우모> 人心惟危,道心惟微,惟精惟一,允執厥中。
  71. <중용장구> 20장. 博學之,審問之,慎思之,明辨之,篤行之。
  72. <중용장구> 20장. 在下位不獲乎上,民不可得而治矣;獲乎上有道:不信乎朋友,不獲乎上矣;信乎朋友有道:不順乎親,不信乎朋友矣;順乎親有道:反諸身不誠,不順乎親矣;誠身有道:不明乎善,不誠乎身矣。
  73. <논어> <공야장> 5. 子使漆雕開仕。對曰:「吾斯之未能信。」子說。
  74. <논어> <선진> 24. 子路使子羔為費宰。子曰:「賊夫人之子。」
  75. <논어> <선진> 25. 「點!爾何如?」鼓瑟希,鏗爾,舍瑟而作。對曰:「異乎三子者之撰。」子曰:「何傷乎?亦各言其志也。」曰:「莫春者,春服既成。冠者五六人,童子六七人,浴乎沂,風乎舞雩,詠而歸。」夫子喟然歎曰;「吾與點也!」
  76. <맹자> <진심상> 存其心,養其性,所以事天也。
  77. <중용장구> 1장. 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發而皆中節,謂之和。中也者,天下之大本也;和也者,天下之達道也。
  78. 이승환(2009), 정문(程門)의 ‘미발’설과 ‘구중’(求中) 공부-소계명(蘇季明)과 여여숙(呂與叔)에 대한 이천(伊川)의 비판을 중심으로-, 철학연구 38집.
  79. <논어> <자한> 4. 子絕四:毋意,毋必,毋固,毋我。
  80. <중용장구> 14장. 君子素其位而行,不願乎其外。素富貴,行乎富貴;素貧賤,行乎貧賤;素夷狄,行乎夷狄;素患難,行乎患難;君子無入而不自得焉。
  81. <논어> <공야장> 3. 子貢問曰:「賜也何如?」子曰:「女器也。」曰:「何器也?」曰:「瑚璉也。」
  82. <논어> <위정> 12. 子曰:「君子不器。」
  83. <맹자> <이루하> 18. 孟子曰:「原泉混混,不舍晝夜。盈科而後進,放乎四海,有本者如是,是之取爾。
  84. <중용장구> 1장. 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發而皆中節,謂之和。中也者,天下之大本也;和也者,天下之達道也。致中和,天地位焉,萬物育焉。
  85. <한어대사전> 4. 表示反詰。 猶難道, 豈。
  86. 南本「到」作「倒」。
  87. <대학장구> 明德者,人之所得乎天,而虛靈不昧,以具眾理而應萬事者也。
  88. <대학혹문> 曰: “然則子之爲學, 不求諸心, 而求諸迹, 不求之內, 而求之外, 吾恐聖賢之學, 不如是之淺近而支離也.” 曰: “人之所以爲學, 心與理而已矣. 心雖主乎一身, 而其體之虛靈, 足以管乎天下之理; 理雖散在萬物, 而其用之微妙, 實不外乎一人之心, 初不可以內外精粗而論也."
  89. <대학혹문> 蓋必析之有以極其精而不亂, 然後合之有以盡其大而無餘, 此又言之序也.
  90. <상산집> 권34 33장. 復齋家兄一日見問云: "吾弟今在何處做工夫?" 某荅云: "在人情事勢物理上做些工夫." 復齋應而已. 若知物價之低昂、與夫辨物之美惡真偽, 則吾不可不謂之能. 然吾之所謂做工夫, 非此之謂也."(복재[육구령] 형님께서 어느 날 나를 찾아와 물었다: "아우님은 요즘 어디를 공부하고 계신가?" 내가 대답했다: "人情·事勢·物理에 대해 공부 좀 하고 있습니다." 복재 형님께서는 가볍게 대꾸하실 뿐이었다. 물가가 높은지 낮은지 아는 것과 사물이 예쁜지 안 예쁜지,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별하는 것에 대해선 내가 능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내가 '공부한다'고 하는 것은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91. <한어대사전>北齊 顏之推 《顏氏家訓‧風操》: “古者, 名以正體, 字以表德。”後因以“表德”指人之表字或別號。
  92. <한어대사전> 比喻人的心思流蕩散亂, 如猿馬之難以控制。 亦指這種流蕩散亂難以控制的心神。
  93. <한어대사전> 比喻堅定不移或果斷利落。▶ 《景德傳燈錄‧道膺禪師》: “師謂眾曰: ‘學佛法底人, 如斬釘截鐵始得。 ’” ▶ 《朱子語類》卷五一: “看來, 惟是孟子說得斬釘截鐵。”
  94. 姑息寬容
  95. <한어대사전> 隱匿暗藏。
  96. <한어대사전> 1. 正身拱手。 指恭敬有禮, 莊重不苟。
  97. <주역> <계사하> 易曰:「憧憧往來,朋從爾思。」子曰:「天下何思何慮?天下同歸而殊塗,一致而百慮,天下何思何慮?」
  98. <맹자> <이루상> 12. 故誠者,天之道也;思誠者,人之道也。
  99. <맹자> <공손추상> 2. 「敢問何謂浩然之氣?」 曰:「難言也。其為氣也,至大至剛,以直養而無害,則塞于天地之閒。其為氣也,配義與道;無是,餒也。是集義所生者,非義襲而取之也。行有不慊於心,則餒矣。」
  100. <이정문집> <答橫渠先生定性書> 諭以'定性, 未能不動, 猶累於外物.' 此賢者慮之熟矣, 尙何俟小子之言? 然嘗思之矣, 敢貢其說於左右. 所謂定者, 動亦定, 靜亦定, 無將迎, 無內外. 苟以外物爲外, 牽已而從之. 是以已性爲有內外也.([보내주신 편지에서]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하는데(定性), 동요하지 않게 할 수 없고 오히려 외물이 얽매입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賢者께서 깊이 생각하신 것인데 어찌 제 말을 기다리십니까? 그러나 일찍이 생각해보았으니, 감히 그대께 그 설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이른바 '定'이라는 것(진정한 '定')은 動할 때에도 안정되고 靜할 때에도 안정되어, 將迎이나 內外의 [구분이] 없는 것입니다. 만일 외물을 外라고 여기신다면, [이는] 자기를 끌어다 외물을 따르게 하는 것이므로 이미 마음에 內外가 있게 됩니다.)
  101. <논어> <자로> 3. 子路曰:「衛君待子而為政,子將奚先?」 子曰:「必也正名乎!」
  102. <논어집주> <자로> 3. 胡氏曰:「衛世子蒯聵恥其母南子之淫亂,欲殺之不果而出奔。靈公欲立公子郢,郢辭。公卒,夫人立之,又辭。乃立蒯聵之子輒,以拒蒯聵。夫蒯聵欲殺母,得罪於父,而輒據國以拒父,皆無父之人也,其不可有國也明矣。夫子為政,而以正名為先。必將具其事之本末,告諸天王,請于方伯,命公子郢而立之。則人倫正,天理得,名正言順而事成矣。」(호씨가 말했다: "위나라 세자 괴외(蒯聵)는 자기 어머니 남자(南子)가 음란함을 부끄러워해 죽이려고 했으나 성공하지 못해 외국으로 달아났다. 영공은 [괴외의 동생인] 공자 영(郢)을 후임으로 세우려고 했으나 영이 사양하였다. 영공이 죽자 부인 남자가 영을 옹립했으나 영은 다시 사양했다. 이에 괴외의 아들인 첩을 옹립하고 괴외의 입국을 막았다. 괴외는 어머니를 죽이려 하여 아버지에게 죄를 얻었고, 첩은 위나라에 의지해 자기 아버지의 입국을 막았으니, 모두 아비가 없는 자들이므로 [이들이] 나라를 소유해선 안 됨이 명백하다. 공자께서 정치하려고 하실 때 '正名'을 우선하신 것은, 필시 그 일의 본말을 갖춰 천자에게 고하고 방백에게 청해 공자 영에게 명해 임금이 되게 하려는 것이니, [이렇게 되면] 인륜이 바르게 되고 천리에도 부합해 명칭이 바르게 되고 말도 순통해져 일이 이뤄지게 된다.")
  103. <한어대사전> 3. 盡心;誠心誠意。
  104. <한어대사전> 謂得到歡樂。▶ 《孟子‧離婁上》: “ 舜 盡事親之道, 而 瞽瞍 底豫。” ▶ 趙岐 注: “底, 致也。 豫, 樂也。”
  105. <한어대사전> 謂降大命於開國之君。▶ 《楚辭‧天問》: “皇天集命, 惟何戒之?” 王逸 注: “言皇天集祿命而與王者, 王者何不常畏懼而戒懼也。”
  106. <한어대사전> 謂名分或名義正當, 說起話來便順理, 道理也講得通。▶ 宋 蘇軾 《太常少卿趙瞻可戶部侍郎制》: “先王之論理財也, 必繼之以正辭, 名正而言順, 則財可得而理, 民可得而正。”
  107. <사기> <고조본기> 六年,高祖五日一朝太公,如家人父子禮。太公家令說太公曰:「天無二日,土無二王。今高祖雖子,人主也;太公雖父,人臣也。柰何令人主拜人臣!如此,則威重不行。」後高祖朝,太公擁篲,迎門卻行。高祖大驚,下扶太公。太公曰:「帝,人主也,柰何以我亂天下法!」於是高祖乃尊太公為太上皇。心善家令言,賜金五百斤。
  108. <논어> <안연> 11. 齊景公問政於孔子。孔子對曰:「君君,臣臣,父父,子子。」
  109. <한어대사전> 【鴻臚】 官署名。▶ 《周禮》官名有大行人之職, 秦 及漢初稱典客, 景帝六年,更名大行令,武帝太初元年,改稱大鴻臚, 主掌接待賓客之事。▶ 東漢 以後,大鴻臚主要職掌為朝祭禮儀之贊導。▶ 北齊始置鴻臚寺,唐 一度改為司賓寺,南宋 、金 、元廢, 明復之,清沿置。 主官或稱卿,或稱正卿,副職為少卿,屬官因各朝代而異,或有鳴贊、序班,或置丞、主簿。
  110. 陳榮捷, 『傳習錄詳註集評』, 83쪽 각주 2. “倉居, 暫時所居. 一云衛舍.”
  111. 『大學章句』 傳7章. 所謂脩身在正其心者,身有所忿懥,則不得其正;有所恐懼,則不得其正;有所好樂,則不得其正;有所憂患,則不得其正。【注】 程子曰:「身有之身當作心。」 …… 蓋是四者,皆心之用,而人所不能無者。然一有之而不能察,則欲動情勝,而其用之所行,或不能不失其正矣。
  112. 『禮記』 「禮運」 何謂人情?喜怒哀懼愛惡欲;七者,弗學而能。
  113. 『禮記』 「喪服四制」 三日而食,三月而沐,期而練,毀不滅性,不以死傷生也。
  114. 『二程文集』 8-5 《易傳序》 至微者理也, 至著者象也. 體用一源, 顯微無間.
  115. 『漢語大詞典』 1. 遇到(만나다);
  116. 『周易』 「繫辭上」 10. 易有聖人之道四焉;以言者尚其辭,以動者尚其變,以制器者尚其象,以卜筮者尚其占。(『주역』에서는 성인의 도가 네 가지 있다: 『주역』으로 말하는 자는 『주역』의 괘효사를 숭상하고, 『주역』으로 행동하는 자는 『주역』의 변화를 숭상하며, 『주역』으로 기물을 만드는 자는 그 괘효상을 숭상하고, 『주역』으로 점을 치는 자는 그 점사를 숭상한다.)
  117. 같은 책, 《乾》 初九:潛龍,勿用。
  118. 『孟子』 「告子上」 8. 雖存乎人者,豈無仁義之心哉?其所以放其良心者,亦猶斧斤之於木也,旦旦而伐之,可以為美乎?其日夜之所息,平旦之氣,其好惡與人相近也者幾希,則其旦晝之所為,有梏亡之矣。梏之反覆,則其夜氣不足以存;夜氣不足以存,則其違禽獸不遠矣。人見其禽獸也,而以為未嘗有才焉者,是豈人之情也哉?
  119. 같은 책, 같은 곳. 孔子曰:『操則存,舍則亡;出入無時,莫知其鄉。』惟心之謂與?
  120. 『二程遺書』 4-35. 滿腔子是惻隱之心. ; 같은 책, 7-10. 心要在腔子裏.
  121. 『程氏經說』 1-7. 道者一陰一陽也. 動靜無端, 陰陽無始, 非知道者, 孰能識之?
  122. 『漢語大詞典』 【傳奉】 明代不由吏部銓選,而由太監視進呈珍異的多寡,以諭旨直接任命官吏的做法。
  123. 『道德經』 59장. 治人事天莫若嗇。夫唯嗇,是謂早服;早服謂之重積德;重積德則無不克;無不克則莫知其極;莫知其極,可以有國;有國之母,可以長久;是謂深根固柢,長生久視之道。; 『漢語大詞典』 長久地活着。▶《呂氏春秋‧重己》: “無賢不肖, 莫不欲長生久視。” ▶高誘 注: “視, 活也。”
  124. 『二程遺書』 02上-02 「居處恭, 執事敬, 與人忠」, 此是徹上徹下語, 聖人元無二語.; 같은 책 14-03 「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何以言「仁在其中矣?」 學者要思得之, 了此, 便是徹上徹下之道.
  125. 『論語』 「里仁」 15. 子曰:「參乎!吾道一以貫之。」曾子曰:「唯。」子出。門人問曰:「何謂也?」曾子曰:「夫子之道,忠恕而已矣。」
  126. 『周易』 「繫辭上」 5. 一陰一陽之謂道,繼之者善也,成之者性也。仁者見之謂之仁,知者見之謂之知。百姓日用而不知,故君子之道鮮矣。【本義】 鮮,息淺反。仁陽知陰,各得是道之一隅,故隨其所見而目為全體也。日用不知,則莫不飲食,鮮能知味者,又其每下者也,然亦莫不有是道焉。
  127. <논어> <팔일> 25. 子謂韶,「盡美矣,又盡善也。」謂武,「盡美矣,未盡善也」
  128. <논어> <태백> 20. 三分天下有其二,以服事殷。周之德,其可謂至德也已矣。
  129. <맹자> <진심상> 26. 子莫執中,執中為近之,執中無權,猶執一也。
  130. <논어> <위정> 4.
  131. <맹자> <공손추상> 2. 昔者竊聞之:子夏、子游、子張皆有聖人之一體,冉牛、閔子、顏淵則具體而微。
  132. <전습록> 상권 11조목 참조.
  133. 唐 杜甫 《題李尊師松樹障子歌》詩 「已知仙客意相親,更覺良工心獨苦。」
  134. <허문정공유서> 為學者治生最為先務。苟生理不足,則於為學之道有所妨。
  135. <중용장구> 1장. 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發而皆中節,謂之和。中也者,天下之大本也;和也者,天下之達道也。
  136. <논어> <술이> 9. 子於是日哭,則不歌。
  137. <논어집주> <안연> 1. 己,謂身之私欲也。
  138. <한어대사전> 占驗節氣的變化。 古人將葦膜燒成灰, 放在律管內, 到某一節氣, 相應律管內的灰就會自行飛出, 據此, 可預測節氣的變化。
  139. 或斷句為:「莫不自以為已知,為學只循而行之是矣」
  140. <대학장구> 경1장. 物格而后知至,知至而后意誠,意誠而后心正,心正而后身脩,身脩而后家齊,家齊而后國治,國治而后天下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