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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252. 능촌(陵村) 銀杏樹前532)細柳涯은행나무 아래 버들 늘어진 물가에, 三韓章甫舊居家 한씨 성의 세 선비가 옛집에 살고 있네. 逢言前日同...)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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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 능촌(陵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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銀杏樹前532)細柳涯은행나무 아래 버들 늘어진 물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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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銀杏樹前細柳'''涯''' (<small>은행수전세류'''애'''</small>)     은행나무 아래 버들 늘어진 물가에, <br />三韓章甫舊居'''家''' (<small>삼한장포구거'''가'''</small>)    한씨 성의 세 선비가 옛집에 살고 있네.<br />逢言前日同門誼 (<small>봉언전일동문의</small>)    동창생의 우정을 만나서 얘기하는데,<br />薇雨書窓爛熳'''花''' (<small>미우서창란만'''화'''</small>)    서재 창밖 비 맞은 장미가 꽃을 만발 하였네.
三韓章甫舊居家 한씨 성의 세 선비가 옛집에 살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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逢言前日同門誼 동창생의 우정을 만나서 얘기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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薇雨書窓爛熳花서재 창밖 비 맞은 장미가 꽃을 만발 하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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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사(進士) 한학수(韓學洙), 주사(主事) 한동수(韓東洙), 발해(發解) 한영수(韓英洙)는 내 동문의 아들들이고, 또 같이 노닐던 문인들이다. 그러므로 삼한(三韓)이 만나서 이야기를 하였다고 말하였으니 모두 삼괴정 한경린의 후손들이다.
○ 진사(進士) 한학수(韓學洙)533), 주사(主事) 한동수(韓東洙), 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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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發解) 한영수(韓英洙)는 내 동문의 아들들이고, 또 같이 노닐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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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들이다. 그러므로 삼한(三韓)이 만나서 이야기를 하였다고 말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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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으니 모두 삼괴정 한경린의 후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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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4.신현동(新峴洞)|삼괴정 한경린]]
532) 구창서발문본에는 ʻ前ʼ이 ʻ下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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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사(進士) 한학수(韓學洙): (1874년 출생)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이습(而習)이다. 1894년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 3등 395위로 합격하였다.
533) 한학수(1874년 출생)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이습(而習)이다. 18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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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사(主事) 한동수(韓東洙)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 3등 395위로 합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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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해(發解) 한영수(韓英洙)
불은면(佛恩面)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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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 고잔동(高盞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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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草堂村裡竹農家초당촌 안에 있는 죽농 선생 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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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창서발문본에는 제1구의 ʻ前ʼ이 ʻ下ʼ로 되어 있다.
話舊談新日欲斜옛 이야기 요즘 이야기 하면서 해가 저물어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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早識眞工傳世世참된 공부 일찍 알아 대대로 전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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滿架書香摠是花서가에 가득한 책이 모두가 꽃이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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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성 구씨는 강암공의 후손으로서 진사를 지낸 구심(具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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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행으로써 천거되어 제릉참봉(齊陵參奉)을 지냈다. 그 아들 구창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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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具昌徵)534)은 40세에 학문을 시작해서 큰 선비가 되었으며 진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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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하였기 때문에 그 동네 이름을 초당촌(草堂村)이라고 하였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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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대손 죽농(竹農) 구연승(具然昇)은 나와는 매우 친한 친구이기에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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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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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암공은 이름이 구강(具綱)인데 문과에 합격하였으며 한림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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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대각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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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 지천(芝川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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芝川一曲向東流지천이 한 번 굽어 동쪽 향해 흐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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羅列家基小洞幽작은 마을 그윽한 곳에 나씨 집들 모여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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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十年前書榻上30년 전부터 있어온 책상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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慇懃月色訂前遊은근한 달빛이 옛날 교유 일깨워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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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4) 구창징(1585년 출생) 본관은 능성(능성)이고 자는 덕형(德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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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5) 불은면 고릉리 고잔마을 지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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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 譯註 沁都紀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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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천(芝川)은 고잔동(高盞洞)의 작은 지명이다. 주사 나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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鎭國)과 정교 나홍교(羅鴻敎)는 나와 매우 친한 사이로서 오랫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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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노닐던 가문의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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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일찍이 30년 전에 한제수(韓霽洙)와 이곳에서 노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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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 곶내동(串內洞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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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世崔居串內洞곶내동에 대대로 살고 있는 최씨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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童蒙敎授兩旌門동몽교수 그 집안에 정려문이 두 개 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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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耕暮讀承承業아침 밭갈이 저녁 독서가 대를 이은 가업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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勉使兒孫覺有源자손들에게 연원이 있음을 깨닫도록 면려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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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곶내동(串內洞)은 작은 지명으로 조경리(朝耕里)이다. 최사과(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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司果)의 가문이 한 마을을 이루었는데 그 고조, 5대조는 일찍이 효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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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써 정려문을 내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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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24일 (수) 07:32 기준 최신판

銀杏樹前細柳 (은행수전세류)     은행나무 아래 버들 늘어진 물가에, 
三韓章甫舊居 (삼한장포구거) 한씨 성의 세 선비가 옛집에 살고 있네.
逢言前日同門誼 (봉언전일동문의) 동창생의 우정을 만나서 얘기하는데,
薇雨書窓爛熳 (미우서창란만) 서재 창밖 비 맞은 장미가 꽃을 만발 하였네.

○ 진사(進士) 한학수(韓學洙), 주사(主事) 한동수(韓東洙), 발해(發解) 한영수(韓英洙)는 내 동문의 아들들이고, 또 같이 노닐던 문인들이다. 그러므로 삼한(三韓)이 만나서 이야기를 하였다고 말하였으니 모두 삼괴정 한경린의 후손들이다.


인물

  • 삼괴정 한경린
  • 진사(進士) 한학수(韓學洙): (1874년 출생)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이습(而習)이다. 1894년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 3등 395위로 합격하였다.
  • 주사(主事) 한동수(韓東洙)
  • 발해(發解) 한영수(韓英洙)

참고

  • 구창서발문본에는 제1구의 ʻ前ʼ이 ʻ下ʼ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