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산서원"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잔글 (판 1개) |
|
(차이 없음)
|
2017년 3월 5일 (일) 08:32 기준 최신판
Metadata
- 타입: 문화유산
- 한글항목명: 병산서원
- 한자항목명: 屛山書院
- 영문항목명: Byeongsan Confucian Academy
-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병산길 386
- 편자: 김미정 김지명
목차
병산서원(屛山書院)
서애 류성룡(西厓 柳成龍)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 대형 누각(樓閣)인 만대루(晩對樓)는 자연경관을 병풍 안에 담아 놓은 듯하여 서원 경관의 백미를 이룬다.
- 경상북도 안동시
- 1613년(광해군 5년) 설립
- 병산서원의 연혁[1]
설립
병산서원(屛山書院)은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30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류성룡 (西厓 柳成龍) (1542~1607)과 류진(修巖 柳袗)(1582~1635)을 배향하고 있다. 고려 시대부터 사림의 교육기관이었던 풍악서당(豊岳書堂)을 풍산현에서 1572년 선조 5년 류성룡이 안동으로 이전해 온것을 기원으로 한다.
그 이전에는 풍산류씨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던 사찰이었다가 서당을 거쳐 서원으로 발전한 경우이다. 1563년(명종 8)에 건립되었으며 국가에서 학전(學田)을 지급했다는 『영가지』의 기록은 당시 풍악서당의 지역적 위상을 알 수 있게 해준다.
1620년(광해군12) 병산서원은 호계서원(虎溪書院)의 전신인 여강서원(廬江書院)에 류성룡의 위패를 합향 시킴으로써, 한 동안 서원의 기능이 중지되기도 했지만 1629년(인조 7)에 다시 위패가 돌아오면서 종전의 서원 기능이 회복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류성룡의 3자인 류진도 추향함으로써 지금까지 병산서원은 主享 류성룡, 從享 류진의 구도로 운영되고 있다.
사액서원과 서원훼철
병산서원은 도산서원․호계서원과 더불어 안동권의 대표적인 서원이었으나, 서원의 위세와 영향력에 비해 정치적인 문제로 비교적 늦은 시기사액(賜額)이 이루어졌다. 이는 서원의 주향자가 남인(南人)의 영수였던 류성룡이었기 때문이다.
광해군 연간에는 그의 정적이었던 정인홍 (鄭仁弘)(1535-1623) 일파가 집권하였기에 사액이 어려웠으며, 이후에는 서인(西人)이 집권하였기에 사액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1863년(철종 14)이 되어서야 ‘병산 (屛山)’으로 사액될 수 있었던 것이다.
병산서원의 위상은 고종 초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서원 훼철기에도 지속되었다. 당시 안동 지역에서 훼철을 피했던 서원은 병산서원이 유일하였다. 그 결과 서원 건물이 지금까지 고스란히 존립되어, 1969년에는 병산서원이 사적 제260호로 지정될 수 있었다. 한편, 병산서원의 공식 명칭은 2011년 11월부로 ‘안동 병산서원’으로 변경된 상태이다.
소장 자료 현황
병산서원은 창건 초기부터 많은 책자들을 수집하였고, 사액 이후에는 다수의 내사본(內賜本)을 소장할 수 있었다. 당시 병산서원 소장 전적들은 서원 강당인 입교당(入敎堂) 오른쪽에 위치한 서재(西齋) 안 장서실( 藏書室)에 보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병산서원 소장 전적은 그 후 서애 류성룡의 유물 전시관인 영모각(永慕閣)으로 이전되었다. 병산서원 소장 전적 자료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것은 단연 배향자인 서애 류성룡이 저술한 것들이다. 특히 국보로 지정된 『징비록』과 보물로 지정된 『난후잡록』『진사록』『군문등록』 등은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과 도체찰사 등을 역임하였던 류성룡이 전란 때 겪었던 사건과 군사 정책 등을 수록해 놓은 자료이다. 이는 전란 당시의 상황을 상세하게 전해주는 것으로 매우 높은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책자와 고문서
병산서원은 교육적 기능뿐만 아니라 안동권과 경상좌도 (慶尙左道)에서 큰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에 소장된 「院任錄」「奉安錄」「執事錄」 「焚香錄」「入院錄」 등의 자료에서 확인 할 수 있는 당대 명사의 이름은 이러한 대외적 영향력을 짐작케 한다. 국보 제132호인 『징비록』 필사본, 『진사록 』과 『군문등록』 등 보물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현재 병산서원에서 소장하고 있던 전적 자료 및 고문서, 그 외 현판을 비롯한 각종 책판등은 한국국학진흥원에 위탁된 상황이다.
영모각
영모각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1965년 건립되었는데, 서애 류성룡의 종택인 [하회마을] 충효당(忠孝堂) 옆에 위치하고 있다. 당시 관리의 편의를 위해 류성룡 집안 대대로 수집한 전적과 고문서, 각종 유물들을 이곳으로 옮겨 보관하였는데, 병산서원 소장 자료도 이곳으로 옮겨진 것이다. 영모각에 소장되었던 서책 자료의 목록은 1969년 국회도서관에서 간행한 이조서원문고목록의 ‘병산서원’ 편에 모두 수록되어 있는데 총 1,071종 3,039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국보 징비록
현재 병산서원에서 소장하고 있던 전적 자료 및 고문서, 그 외 현판을 비롯한 각종 책판등은 한국국학진흥원에 위탁된 상황이다. 2008년에 국보 제132호인 『징비록』 필사본, 『진사록 』과 『군문등록』 등 보물 자료를 포함해 6,174점이 위탁되었으며, 2009년에는 전적 및 현판 3,689점을 위탁하였다. 따라서 과거 병산서원이 보관하고 있다가 영모각으로 이전되었던 책판, 전적, 고문서 등은 현재 한국국학진흥원에 모두 보관되어 있다.
자료제공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영모각 소장 자료에 대하여 ‘유교넷’에서 원문․이미지․텍스트․해제 등을 제공하고 있으며,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도 『고문서집성』에 수록되었던 자료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어, 후속되는 연구에 있어 큰 일조가 되고 있다.
발간사업
병산서원 자료 중 『징비록』과 같이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자료는 일찍이 여러 종의 단행본으로 발간되었다. 그러나 방대한 자료에 비해 다른 주요 자료에 대한 영인본 및 번역서 발간은 미흡한 편이다. 이러한 자료에 대한 영인과 번역은 단순히 연구를 위한 기본 자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선조들의 삶과 문화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밑바탕이 될 것이다.
바깥 링크
- 병산서원 (공식)
참고문헌
출처
소수서원, 도산서원, 도동서원, 옥산서원과 함께 한국 5대 서원에 포함된다.
소수서원, 도산서원, 필암서원, 돈암서원, 도동서원, 남계서원, 무성서원, 옥산서원과 더불어 유네스코 등재 예정인 9개 서원에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