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3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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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1893년 10월 28일)
식별자 L18931028UTOE
한글명칭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1893년 10월 28일)
영문명칭 Horace G. Underwood's Letter To Frank F. Ellinwood (Oct 28, 1893)
발신자 Underwood, Horace G.(원두우)
수신자 Ellinwood, Frank F.
작성연도 1893년
작성월일 10월 28일
작성공간 서울
자료소장처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번역문출처 김인수, 『언더우드 목사의 선교편지』,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2002.



Dr. Horace G. Underwood
Seoul, Korea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인물
한국, 서울공간
July 2, 1889 1893년 10월 28일
Dear Dr. Ellinwood, 엘린우드인물 박사님께,
On my return to Korea I found a number of matters in abeyance among which was that of a hymn book. When I was starting on my way to America I had a small hymn-book under way & this was turned over to a Com. When I got back, nothing had been done, we had no hymn-book, were singing from scrolls all with varying hymns & varying tunes.
한국에 돌아와 보니, 많은 일들이 이제껏 중단된 상태에 놓여 있었던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찬송가를 만드는 일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미국으로 떠나는 길에, 저는 작은 찬송가를 제작 중에 있었습니다. 이 일을 한 위원회에 넘겼었는데, 돌아와 보니 그동안 전혀 진전이 없었습니다. 찬송가가 한 권도 없어서 우리는 여러 찬송가가 서로 다른 곡조로 적힌 두루마리를 펼쳐 보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Mr. Moffett asked me to take up the matter. The Methodist member of the Com. was in China & as Committees generally delay matters I was urged by Mr. Moffett because a hymn book was needed at once to push the matter through alone. The term question exists in Korea as in China. The most common term for God used here is "Hana nim" or literally Honorable Heavens. This I used when I first came but gave up before I went home. I cannot conscientiously use this term. The question naturally arose as to what to do in the new Hymn book. I could not use the terms they wanted (and there are others who believe with me), I could not ask them all to use the term I desired, so I did not use any of the disputed terms at all but confined myself in the hymns only to terms that we all could use in reference to the Deity such as Lord, Father in Heaven, Almighty Lord & the use of God's name Jehovah. I had been considerably exercised as to what to do and after much prayer had been led to this decision.
마펫씨는 제게 이 일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위원회에 속한 감리교 사람은 중국에 있었고 대체로 위원회에서 작업을 지연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마펫씨는 ‘지금 당장 찬송가가 필요하니 혼자서라도 일을 끝까지 해냈으면 좋겠다’고 제게 재촉했습니다. 중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용어상의 문제가 있습니다. 영어의 ‘God'에 해당되는 말로 이곳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하나님”(Hana Nim) 즉 말 그대로 ‘영광스러운 하늘님’이라는 뜻의 단어입니다. 제가 처음에 여기 왔을 때 이 단어를 사용했었습니다만 제가 본국으로 가기 전에 더 이상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저는 양심상, 이 단어를 쓰지 못하겠습니다. ‘새로운 찬송가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하는 물음이 당연히 제게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말을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었습니다(저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제가 원하는 단어를 사용하자고 사람들에게 일일이 부탁할 수도 없는 노릇이므로 논란의 여지가 있는 말들은 전혀 쓰지 않았습니다. 찬송가 가사에서는, ‘유일하신 분’에 대해 우리가 다 같이 쓸 수 있는 말들만, 예를 들어 주님이나 하늘에 계신 아버지, 전능하신 주, 주님의 이름인 여호와 같은 말들만 사용하는 것으로 한정하였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깊이 생각하고 많이 기도한 후에,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I thought I was led of God to it in the interest of harmony. I thought that we had found a way by which despite our differences of opinion on the term question we could have one hymn-book in Korea. In no other could this be done. I therefore eliminated from the old hymns the disputed terms & thought that all would rejoice with me as (I) carried on the work. God has given me a gift in the hymn line in Korean almost all the old hymns were my own. As I went on with the work the spirit of song seemed in me and I was able to add almost fifty more hymns so that I had a (total) or 106 hymns most of which were my own translations. Mr. Bunker an expert in music has helped with his time. I did this working almost night and day when the other members of the Mission were upon their vacations. Knowing that there were no funds for the printing I determined to bear the whole cost myself and to make the matter a donation to the mission work in Korea of course leaving the Churches & missionaries to accept or reject when it came out. The Methodist Mission have confidence enough in me to order their one on Hymn-book to stop and although I offered to send them proof sheets they declined and said they knew it would be alright and they have determined to introduce the hymnal as their hymnal for their church. The cost of printing music is high and I am paying $250 silver per page per thousand copies. I did not hide anything, I gave round copies of the revised hymns, no one objected and the first thing I knew without a word having been said to me I was ordered to present the hymn book to the Editorial Com. The resolution was very carefully worded. It was ordered to be referred to Editorial Com. to receive its adoption as a Mission hymnbook. I moved that the resolution be adopted supposing it to mean when the whole thing was done. The resolution was somewhat changed in the minutes but you will see it there. I was quite surprised when I was asked for proof sheets and said they would hardly decide on that. (I) sent them however the proofs I had which were uncorrected first proofs. In all this not a word more was said to me. I did not know that the whole matter was being generally talked over in the whole mission and that I was being represented by two or three members as bringing discord into the mission. I found out simply through one member and the difficulty was that I had not used the distinctive terms for God they preferred; that I had eliminated the terms that I believe to refer to heathen gods. No objection was raised that I was using terms they could not accept but simply that I had not used their terms. No one of the parties objecting said a single word to me but the Editorial Com. consisting of Messrs. Gale & Moffett & Mrs. Gifford brought in a resolution appointing a Com. on hymn-book to report next year and asking me to serve as Chairman of that Com. 2nd forbidding the use of the hymns in their altered form pending the action of that Com.
하나 됨을 이룰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저를 인도하셔서 이러한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용어 문제에 대한 여러 가지 이견이 있지만, 한국에서 통일된 찬송가 한 권을 가질 수 있는 길을 찾아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이렇게 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전 찬송가들에서 논란이 되었던 단어들을 삭제했습니다. 제가 이 일을 이루어 가는 것을 보면서 모두들 저와 함께 기뻐하게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한국어 찬송가 가사에 대한 재능을 주셔서 예전 찬송가들의 거의 대부분이 저를 통해 완성된 것이었습니다. 제가 이 일을 해 나갈 때, 찬송의 영이 제 안에 임한 듯 했습니다. 거의 50여 곡의 찬송가를 추가하여서 찬송가가 전부 106곡이 되었는데 이들 대부분이 제가 번역한 것이었습니다. 음악 분야에 있어 전문가인 벙커 씨가 자신의 시간을 내어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선교부의 다른 사람들이 다 휴가를 보내고 있었을 때도 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출판 자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모든 비용을 제가 다 부담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찬송가가 나왔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것은 물론 여러 교회와 선교사들에게 맡겨 두고서, 이 일은 한국의 선교 사역에 기부하는 것으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감리교 선교 본부에서는 저를 무척 신뢰해서 그쪽에서 찬송가를 제작하던 중에 일을 중지시켰습니다. 제가 교정쇄(校正刷)를 보내주겠다고 했었지만 사양하면서, ‘아무런 문제가 없을 줄로 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감리교 선교부의 사람들은 이 찬송가를 감리교회의 찬송가로 사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악보를 인쇄하려면 돈이 많이 듭니다. 한 쪽을 천 장 복사하는 데에 250달러씩 지불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은밀히 한 게 없었습니다. 저는 개정된 찬송가의 완성된 사본을 사람들에게 주었고, 아무도 이에 대해 반대 의견을 말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게는 사전에 한 마디 말도 없었는데도, 제가 처음으로 알게 되었던 것은 ‘이 찬송가를 편집위원회에 제출하라’는 명령이 제게 내려 졌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결의문의 내용은 매우 자세히 적혀 있었습니다. ‘선교부의 찬송가로 채택되려면 편집위원회에 보내져야 한다’는 명령이 있었습니다. ‘모든 작업이 다 끝났을 때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라면, 저는 그 결의문의 지시사항을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결의문 내용은 회의록에 기록되면서 다소 변경되었는데, 박사님께서는 계신 곳에서 이것을 보시게 될 겁니다. 그 사람들에게서 ‘교정쇄를 제출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저는 무척 놀라서 ‘이런 결정이 내려졌으리라 생각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제가 가지고 있던 교정쇄를 보냈습니다. 그것은 첫 번째로 찍어낸 것이었는데 아직 수정작업을 하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이런 모든 과정에서 더 이상 어떤 언급도 제게 들려 온 바 없었습니다. ‘전체 선교부에서 이 모든 일들이 논의가 되고 있었으며 그 안의 두 세 사람은 내가 선교부 안에 불화를 일으킨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습니다. 단지 선교부의 한 사람을 통해서, 제가 그 사람들이 좋아하는 ‘God’에 대한 독특한 한국어 단어들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방신들을 지칭한다고 믿어지는 용어들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교부의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용어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사람들이 좋아하는 단어를 제가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기 때문에 ‘이를 거부해야 한다’는 주장은 없었습니다. 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제게 한 마디도 하지 않았었는데, 게일씨와 마펫씨와 기포드 여사로 구성된 편집 위원회에서는 ‘찬송가위원회’를 임명하는 결의문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위원회에서 내년에 보고하도록 하며 제가 그 위원회의 의장으로 일하기를 요청하였습니다. 또, 그 위원회의 조치를 기다리는 중에는 변형된 형태의 찬송가 사용을 금지하였습니다.
I did think that it was to say the least, rather out of the way when I had gone to the expense of printing a hymn-book when I had done it for the cause of Christ alone. strive to kill that by forbiding its use & 2nd to ask its author to serve on a Com to get out another hymnbook which was to be in opposition to his own. I at first refused, did not consider that the Mission has the right to restrict any minister in the use of term & wording of hymns in live services. Of course he has not right to teach heresy but this was not in the count. You I think know me as blue of the orthodox of the orthodox and yet upholding that liberty in details which I believe is the right of every Minister in the Presbyterian Church. They told me that they could have no hymn-book for the Mission did I not take up the work, that there was no one else in the Mission who seemed to have this gift. I do not know whether this is so but as, it would very materially hinder & retard the work of the Presbyterian Mission to have no hymn book I consented in the interest of harmony, to serve on that Com. if the second clause was changed to read

That we recommend that Ministers in charge of chapel & church services of the Mission be urged not to introduce these altered hymns without the sanction of a majority of the Church Session.

This after discussion was agreed to but it puts me in this position.
오직 주님을 위해 찬송가를 출판하는 비용을 대가면서 그렇게 했을 때, 적어도 ‘이런 일은 하기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사용되지 못하도록 하고, 그 제작자에게 자신이 만든 찬송가와 정반대의 새로운 찬송가를 만드는 위원회에서 일하라고 하면서 그것을 망쳐 놓으려-----. 저는 처음에는 거절했습니다. 선교부에서 목사에게 ‘실제 예배에서 불러지는 찬송가 가사에서 어떤 용어를 써서는 안 되고 어떤 표현은 해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제한 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목사도 이단 사상을 가르칠 권한은 없습니다만, 그 때 이러한 것은 고려사항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정통파의 정통 ---- 중에서도 보수적이라는 것을 박사님께서는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 해도 저는 ‘장로교회의 모든 목사들은 세세한 부분에서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사실’을 지지합니다. 저는 선교부에서 그 일을 맡지는 않고 있으며 선교부 안에 이런 재능을 가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것 같으니, 사람들은 ‘이러다간 찬송가집을 한 권도 갖지 못하겠다’고 제게 말했습니다.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찬송가 집이 한 권도 없다는 것은 장로교 선교부의 사역에 매우 큰 장애가 되며 그 발전을 저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화합’을 위해서, 그 두 번째 조항이 하단의 형식으로 변경된다면 그 위원회에서 일하는 데 동의하겠다고 했습니다.

교회 예배 및 선교부의 여러 교회 예식을 담당하고 있는 목사들이 당회 인원 과반수의 인준 없이는 이 개정된 찬송가들을 사용하지 않아야 할 것을 제안한다.

토의 후에 이것은 받아 들여졌고 저는 이 자리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The hymn-book has been contracted for with the printer & must come out or forfeit a heavy penalty. It is almost all set up. I am under contract with the Methodists to get this out as soon as possible. The present hymn book must then be published. The Methodists will use the hymn-book prepared by a Presbyterian; the Presbyterians will be without a hymn-book for at least a year and a half and then the Board will be asked to appropriate money for its publication, for I hardly think the Mission will ask me to bear this expense then. I shall of course do all I can for the new hymn book but at present I cannot go at the work with the same heartiness that I went at the other.
출판업자와 그 찬송가에 대해 계약을 맺어 놓았기 때문에 꼭 출판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는 엄청난 위약금을 물어야 합니다. 준비는 거의 다 되어 있습니다. 저는 ‘감리교회 사람들과도 가능한 한 빨리 출판하겠다’고 계약을 했습니다. 현재의 찬송가는 출판되어야만 합니다. 감리교인들은 한 장로교인이 마련해 놓은 찬송가를 사용하겠지만 장로교인들은 적어도 1년 반정도 찬송가 없이 지낸 후에, 본부에서는 ‘찬송가를 출판하도록 비용을 충당해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설마 그때 가서 선교부에서 제게 그 비용 부담을 요구할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는 위원회에서 새 찬송가를 만드는 일에 제 최선을 다하려 하지만, 현재로서는 제가 만든 것에 쏟았던 그 만큼의 열정을 가지고 일할 수는 없습니다.
When this was done another clause came up and with scarcely any discussion was passed. The Committee's report read: We recommend that all publications for general use be first referred to the Editorial Com.
이렇게 되었을 때, 또 다른 항목이 의제로 상정되었는데 별다른 토의도 없이 통과되었습니다. 위원회의 보고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습니다: 광범위하게 사용될 모든 출판물들은 먼저 편집위원회에 회부되어야 할 것을 제안한다.
I have copied this from the minutes. Our Standing rules before this and up to this time read Sec. E. II. All books & manuscripts which require Mission sanction proposed for printing shall be examined by this (Editorial) Committee etc.
저는 회의록에서 이것을 옮겨 적어 왔습니다.이전 및 이 시간까지의 우리의 현행 규정들은 E. II. 항에 적혀 있다. 출판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선교부의 인준을 받으려 하는 모든 서적 및 원고는 본 (편집) 위원회에서 심사하기로 한다 등
Now this is alright & very propper but the adoption of the above recommendation makes virtually another rule. The Mission adopted the recommendation and the rule then will read "All publications for general use must be first referred to the Editorial Com."
이렇게 하는 게 옳고 매우 적절한 일이지만, 위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은 사실상 또 다른 규정을 만드는 셈이 됩니다. 선교부에서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으며 그 규정은 “광범위하게 사용될 모든 출판물들은 먼저 편집위원회에 회부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될 겁니다.
In this cause I protested and entered notice of my appeal to the Board. Such a clause goes altogether too far. The Mission have the right to say what publication shall be published with Mission funds & they do this through their Editorial.Com
이러한 이유로 저는 이의를 제기하였고 본부에 제 항의문을 보낸 바 있습니다.이러한 조항은 너무 지나친 것입니다. 선교부에는 선교부의 기금으로 어떤 출판물이 출판되어야 할 것인지 결정할 권한이 있으며 편집위원회를 통해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The Mission have also the right to oversee & have under their direction "the work of the individual missionaries in general" (Board's Manual). This they do through their Apportionment Com. and their reception of the individual reports of the missionaries. So far too far only can they go and they have no right to pass any law or rule that would restrict the missionaries personal liberty in detail.
또한 선교부에는 “선교사 개개인의 사역을 총괄적으로 감독하고 그 지도하에 둘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본부의 지침서) 선교부에서는 분담위원회 및 선교사들의 개별적 사역보고의 수령을 통해 이런 일을 합니다. 지금까지 선교부의 사람들은 얼마든지 월권적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세세한 면에 있어 선교사들이 누릴 개인적 자유를 억제하는 법령이나 규정을 승인할 권한이 그들에게는 없습니다.
As a Minister at home, the Presbytery does not ask to see what I may publish at my own expense before I am allowed to publish. If I published anything to which I take exception then they have the right to deal with me according to church law. I will send my formal protest in detail next mail. The law ---- in a general form is particular in that it effects but one number of the Mission. If the Mission have not confidence in me as this seems to indicate I should be glad to know it.
본국에 있는 목사로서 장로회에서는 ‘출판 허락을 받기 전에 제가 자비로 무엇을 출판할 것인지’ 알아보려 하지 않습니다. 만일 그곳의 이의 제기를 받을 만한 어떤 것을 제가 출판했다고 하면, 그들은 교회법에 따라 저를 다룰 권한이 있습니다. 저는 다음 우편으로 상세한 내용을 담은 제 공식적인 항의문을 보낼 것입니다. 일반적인 형태에서------그 법이 선교부 내의 한 사람에게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이번 일이 시사해 주는 대로 선교부에서 저를 믿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 제가 그것을 분명히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But I must close. I regret (how?) this has to come, that as soon as I get back I have to appear as an element of discord but dear Doctor, I feel that I must protest against this action. I will write about other matters by next mail.
이만 줄여야겠습니다. 이런 일이 있게 되어 유감스럽습니다. 제가 이곳에 돌아오자마자 불화를 일으키는 요인이 된 것처럼 보입니다만 박사님, 저는 이러한 결정에 대해 항의해야겠습니다. 다음 번 우편으로, 다른 일들에 대해서도 적어 보내겠습니다.
Yours Sincerely, 안녕히 계십시오
Horace G. Underwood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인물 올림.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