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9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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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1889년 5월 26일)
식별자 L18890526UTOE
한글명칭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1889년 5월 26일)
영문명칭 Horace G. Underwood's Letter To Frank F. Ellinwood (May 26, 1889)
발신자 Underwood, Horace G.(원두우)
수신자 Ellinwood, Frank F.
작성연도 1889년
작성월일 05월 26일
작성공간 서울
번역문출처 김인수, 『언더우드 목사의 선교편지』,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2002.

Dr. Horace G. Underwood
Seoul, Korea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인물
한국, 서울공간
May 26, 1889 1889년 5월 26일
Dear Dr. Ellinwood, 엘린우드인물 박사님께,
Here we are back in Seoul safe & sound & indeed thankful to the good Lord for the way in which He has led us. If our trip has done nothing else I believe it has at least taught us to realize more than we ever did before that the Lord will protect & take care of us. My wife has told you in her letter about the work in Euiju. I had promised not to "Baptise or teach" while travelling with Mr. Dinsmore's passport but I had a passport with me for China & when I reached Euiju I simply crossed the river, met the people there on Chinese soil & preached & Baptised. A glorious work is going on there. It badly needs that someone should go up & teach & instruct them. I had hoped that perhaps we could return in the summer & work there for vacation but as I look at the work here I see that I cannot leave it for so long & I want if the way seems open to take a trip South & see the work that is doing there. I do not know yet how it is but we have a colporteur there who sends good reports. What shall be done about this field I do not know but feel that two months there would start a work that it would take almost a year to do here. At the same time this is the capital & I am needed here. I do not know which way to go. We were greatly blessed in the matter of wedding presents & my wife has given one half of the King's munificent gift for a place of worship in Euiju.
우리는 이곳 서울에 무사히 돌아 왔습니다. 선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해 주셨던 것을 진심으로 감사 드리고 있습니다. 혹 이번 여행의 성과가 별다른 것이 없었다고 해도, 적어도 우리는 이번 여행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돌보신다는 사실을 그 어느 때보다 더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 아내는 박사님께 보내 드린 편지에서 북쪽에 있는의주공간에서의 사역에 대해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저는 딘스모어인물씨의 통행증으로 여행을 하는 동안 세례를 주거나 기독교에 대해 가르치지 않겠다고 약속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에게는 중국으로 갈 수 있는 통행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의주에 도착했었을 때 저는 강을 건너 중국 땅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세례를 주었습니다.[1] 매우 놀라운 일들이 지금 그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누군가가 그곳으로 가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교육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입니다. 우리가 여름에 다시 그곳으로 가서 휴가 동안 사역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이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들을 보니 그렇게 오랫동안 이곳의 자리를 비울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직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에 권서 한 사람인물이 있어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여기서라면 1년 정도 걸리겠지만 그곳에서는 2개월 정도면 사역을 시작할 수 있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곳은 수도이며 제가 이곳에서 일하는 게 필요한 형편입니다. 저는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결혼 선물을 너무도 풍족히 받는 은혜를 누렸는데 제 아내는 왕이 내려 준 후한 선물 중에서 그 반절을 의주에 있는 예배처소에 주었습니다.
We now find that there have not been wanting those who spoke of us as taking a wedding trip on mission funds. The trip was in every sense a mission trip but to avoid all chance of their having anything to say against the work we have decided to pay the cost of my wife's chairmen which was the exact extra cost of her going. I had to go married or not to do the work. By this means we remove all chance of anything of the kind being said. I have been able also to pay off all my debts & this is a great burden off my shoulders.
이제는 “우리가 선교 기금으로 신혼 여행을 다녀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 여행은 전적으로 선교 여행이었습니다. 그리고 혹 사람들이 이 일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할지도 몰라서, 제 아내를 위해 수고했던 가마꾼들에게 지급하는 비용은 우리가 지불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비용이 정확히, 제 아내의 여행비용 중에서 초과되었던 금액입니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이 말할 수 있는 소지를 모두 없애 버렸습니다. 또한 저는 그 동안 제가 빚지고 있던 돈을 모두 갚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정말로 제 어깨에서 무거운 짐을 벗게 해주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We thus start fairly & will be able to keep out of debt in the future.
이렇게 해서 우리는 떳떳하게 시작했습니다. 앞으로는 빚을 지는 일이 없을 겁니다.
When we got back here the other day I was very much surprised to find that Christian services had been ordered to be stopped on the Presbyterian compound & that our Christians were meeting from house to house.
며칠 전 이곳에 돌아 왔었을 때, 장로교의 주거구역 내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는 지시가 내려진 것을 알고서 무척 놀랐습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집 저 집에서 모임을 갖고 있었습니다.
Dr. Heron had given the order because he considers that the"Presbyterian Mission should not be associated with law-breaking". Now Mr. Dinsmore has decided that Christian teaching public or private is contrary to the law & if the above is carried out we must stop all our work, we cannot feed our Christians we can do nothing, The difficulty is not so much with the government as with our Minister. The Korean government has said nothing further on the subject at all. Mr. Dinsmore asserts that they know what we are doing & if this is so then does it not seem that they are willing for us to go on as they do not say anything further. It seems to me that the scriptures teach that we have a higher law than human to go by & that we must do so. I do not believe in scouting opposition, I believe in caution but when I am told to stop work both private & public that, as a minister of the Gospel, I cannot do.
이렇게 지시한 사람은 헤론인물의사였습니다. 헤론인물의사는 “장로교 선교에 있어 위법적 요소가 개입 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딘스모어인물씨는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기독교에 대해 가르치는 것은 법에 저촉(抵觸)되는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된다면 우리는 모든 사역을 중단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성장하도록 도울 수도 없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게 됩니다. 상황을 어렵게 하는 문제는 정부에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우리측 공사에게 있습니다. 한국 정부측에서는 이 일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한 바가 전혀 없습니다. 그렇지만 딘스모어인물씨는 정부측 사람들은 우리가 무얼 하는지 다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비록 더 이상 아무런 말이 없다고는 해도 이곳에서 우리의 목적을 이루어 가는 것 자체를 거부당하게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성경말씀에서는 사람의 말보다 더 높은 권위를 지닌 법을 따라야 한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에서 가르쳐 주는 대로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반대 요소를 무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적으로든 공적으로든 모든 사역을 중단해야 한다고 하면,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서 저는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An incident shedding some light on the ideas of some of the officials came to hand the other day. One of the students in the Hospital School is a Christian & talked with his fellows about Christ. A few months later 4 of his classmates waited on the President of the Hospital, Yi Pansa(?), one of the Foreign Office Vice Pres, & said that Mr. Cho was a Christian, was associated with missionary work & that they could not-study with him. The old President replied "What of it? Is he any worse for it? Your teacher is a missionary. If you do not care to study with him you can leave." They left & it might be as well to say that it was a well known fact that Mr. Cho was the best student & hardest worker in his class.
몇몇 관리들의 생각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일이 며칠 전 있었습니다. 의학교 학생들 중에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어느 한 학생은 그의 친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몇 달 후 그의 동급생 4명은 병원 원장이자 외부 부대신 중 한 명인 이 판서 (Yi Pansa?)를 방문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들은 “조 씨는 기독교인이고 선교 사역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와 함께 공부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분별 있는 병원장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래서 어떻다는 건가? 조 씨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여타 학생들에 비해 못한 점이 있기라도 한가? 자네들 스승 역시 선교사일세. 자네들이 조 씨와 같이 공부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이 학교를 떠나도 좋네.” 그 말을 듣고서 그 학생들은 물러갔는데, 조 씨는 그 학급에서 가장 우수하며 가장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라 널리 알려져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Now about the news of Dr. Heron. Dear Dr. Ellinwood, as you know we have been like brothers but I regret to say that of late there has been a great change in the Doctor. The Missionaries here all notice it & some have asked me why it is that he now faces the opposite way to what he did a little over a year ago. I am afraid it is the Foreign practice that is spoiling him. I think as a mission we would be better without it. He would then be able to do all the mission work & another Physician would not be needed if we the amt. taken pay for the keeping of an extra man here. I do wish that your suggestion about another man coming to take the outside work if he were a Christian man could be carried out. Dr. Heron is a fine man but do not let him be spoilt by the Foreign Practice.
이제 헤론인물의사에 대한 소식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엘린우드인물 박사님께서 아시는 대로 헤론인물의사와 저는 그 동안 형제처럼 지냈습니다. 그렇지만 요즘은 헤론인물의사가 예전과는 많이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이곳의 선교사들이 모두 그렇게 느끼고 있고 ‘왜 헤론인물의사가 저렇게 일년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느냐’고 제게 묻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외국인 의사로서 그가 개업한 일 때문에 그가 부정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선교사로서 그런 일은 하지 않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헤론 의사는 모든 선교 사역을 다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새로운 의사도 필요치 않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곳에 한 사람 더 두기 위해 필요한 비용을 _______. 새로운 사람이 와서 주변적인 일들을 맡게 했으면 좋겠다고 박사님께서 해 주신 제안이, 새로 올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렇게 실행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헤론인물의사는 좋은 사람이지만, 개업한 일 때문에 좋지 않은 모습으로 변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됩니다.
The school work has been carried on during our absence, in the Orphanage by Miss Hayden, who did this in addition to her other work, & in the Hospital School by Mr. Gifford one hour &Mr. Hulbert one hour a day.
우리가 없는 동안에도 학교 일은 계속 진행되어 나갔습니다. 고아원공간에서는 하이든 양이 맡고 있는 다른 사역과 더불어 일을 맡아보았고 제중원의학당공간에서는 기포드(Gifford)인물씨와 헐버트인물씨가 하루에 한 시간씩 일했습니다.
Mr. Bunker is away & Mr. Gifford is also teaching 2 hours a day in the government school. The Orphanage must have more attention than it has had & what can be done about the New School. It has occurred to me that our Mission could do nothing better than have Mr. Gilmore out here in charge of that school. I do not know whether the Board asks men to come out or not but Mr. Gilmore is a good teacher, a good worker, a scholar & a fine linguist. He knows a good deal about the language now & could get right to work as soon as he gets here. I do not know whether he would come but I do know that his wife would like to be back here in Korea. It is not necessary for me to speak of him as a man, as you doubtless have seen a good deal of him since his return, but he has a good deal of good sound common sense.
번커 씨는 이곳에 있지 않으며 기포드인물씨는 공립학교에서 하루에 2시간씩 가르치고 있습니다. 고아원공간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새 학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 선교부단체에서 길모어 씨가 이곳에 와 학교 일을 담당하게 하는 것처럼 좋은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부단체에서 사람들이 이곳에 오도록 요청을 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길모어인물씨는 훌륭한 교사이고 사역자일 뿐 아니라 뛰어난 학자이고 어학에도 능통합니다. 현재 한국어를 잘 할 수 있기 때문에 이곳에 도착하는 대로 즉시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겁니다. 길모어씨 본인이 오려고 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의 부인이 한국에 다시 오고 싶어한다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제가 새삼스럽게 그를 천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가 돌아간 이후로 박사님께서 틀림없이 길모어 씨를 충분히 보셨으리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가 건전한 상식을 풍부히 갖춘 사람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The Mission would gain much bu having a clear-headed man like Mr. Gilmore in it & also by having a man who could get to work at once. If he is willing & could be out here by Fall & at once take charge of the school it would indeed be the best thing for the mission. Will not the Board then ask Mr. Gilmore to come out here for this purpose to take charge of this school.
길모어 씨처럼 명석한 판단력을 갖추고 있을 뿐더러 즉시 사역에 착수할 수 있는 사람을 맞게 된다면 이곳 선교부(에 큰 힘이 될 겁니다. 길모어씨가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 가을쯤 이곳에 와 학교 일을 담당하게 된다면 선교부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길모어씨가 이곳 학교 사역의 책임자가 되도록 본부에서 길모어씨에게 요청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I am sorry to say that there are some rumors among the Koreans about Dr. Power. We will at once look into them but Koreans are such arrant lyers that we want to be very sure before we take a step. Mrs. Heron is now quite sick again & is very poorly. She is unable to attend to the women & so my wife will look after that work until she is able to resume.
한국인들 사이에 파워 의사에 대한 몇 가지 소문이 퍼져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게 되어 유감스럽습니다. 우리는 즉시 이 소문들에 대해 자세히 조사해 보려 합니다. 그렇지만 한국인들은 워낙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조치를 취하기 전에 상황 파악을 매우 정확하게 하려 합니다. 현재 헤론여사인물의 건강상태는 다시 매우 악화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헤론 여사는 여성들을 돌보는 일을 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제 아내가 헤론 여사가 건강해 질 때까지 그 일을 맡아보려 합니다.
Do not be alarmed if reports reach you of harm done by our private letters. A little over a year ago, my letter in the "Review" came back & was translated into Korean but no harm came of it. It has been asserted that this caused the "interdict" but it was the copy of it in the "Christian" that was translated & it did not reach here till after the Edict was issued. In addition to this, the reports among the Koreans of our work are so exaggerated that when our reports reach them it seems but small & no wonder is excited. At present, there is no excitement among the Koreans at all. It is simply on the part of Foreigners.
‘우리의 사적인 편지로 인해 야기된 문제’에 대한 보고서를 받아 보시게 되어도 놀라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일년 전쯤에, 제 편지가 평론(Review)에 소개되었고 그것이 한국어로 번역되었는데 그것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금지 명령”을 촉발시켰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번역되었던 것은 “그리스도인란(欄)” 안에 있는 제 편지에 대한 사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칙령이 내려진 후에야 이곳에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우리 일을 하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그 보고서는 지나치게 침소봉대(針小棒大) 되어서 ‘우리가 보낸 보고’를 그 사람들이 볼 때도, 놀라워하는 경우는 볼 수 없습니다. 현재, 한국인들 사이에는 동요하는 어떤 모습도 없습니다. 일부 외국인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Your Most Sincerely, 안녕히 계십시오.
Horace G. Underwood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인물 올림.


  1. 언더우드가 황해도 전역을 순방할 때 한국 최초 자생적 교회인 소래교회(송천교회)를 방문하였다. 서경조, 최명오, 정공빈 외 신자들에게 세례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