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9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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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1889년 4월 8일)
식별자 L18890408UTOE
한글명칭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1889년 4월 8일)
영문명칭 Horace G. Underwood's Letter To Frank F. Ellinwood (April 8, 1889)
발신자 Underwood, Horace G.(원두우)
수신자 Ellinwood, Frank F.
작성연도 1889년
작성월일 4월 8일
작성공간 서울
자료소장처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번역문출처 김인수, 『언더우드 목사의 선교편지』,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2002.

Dr. Horace G. Underwood
Seoul, Korea
한국, 허천
April 8, 1889 1889년 4월 8일
Dear Dr. Ellinwood, 엘린우드 박사님께,
Her we are right down in the midst of Korea. We have had a good many hardships & not a little trouble. We almost found ourselves in the midst of a mob the other day & then in the same afternoon had to cross a mountain pass said to be 3000 ft high in the midst of a blinding snow storm (&) with the feeling that any moment we might slip on the ice & snow & be dashed to pieces. It was not the easiest work getting down but the Good Lord brought us through safely to kind friends at the Magistracy here. I am sorry to have to write to you on this paper but we have run short of our own paper & this is some native letter paper that was presented to me at one of the magistracies.
우리는 지금 한국의 한 가운데 있는 곳에 내려와 있습니다. 극심한 어려움을 많이 겪었으며 고통스러운 문제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지난 며칠 전에는 폭도에게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날 오후에는 앞을 볼 수 없게 하는 눈보라를 맞으며 높이가 3000피트나 된다고 하는 산을 넘어가야 했습니다. 얼음길 위에서 단 한순간 발을 잘못 딛으면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져 산산조각 날 거라는 두려움에 우리 모두가 시달렸습니다. 그 산길을 내려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선하신 주님께서는 우리를 도우셔서 이곳 관할 구역에 있는 마음 따뜻한 분들에게까지 이르게 해 주셨습니다. 이런 종이 위에 글을 적어 박사님께 보내드리는 것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종이는 다 떨어졌고 이것은 이곳의 한 관리가 준 한국산 편지지입니다.
You heard we were not allowed to come down without promising first not to “teach or Baptise." I am keeping strictly to my promise. That is to say to the letter. When Mr. Dinsmore exacted the promise he first wanted me to promise to do no “Christian work." I replied that medical work was Christian work & he was satisfied when I promised not to "teach or Baptise".
가르치는 일을 하지 않고 세례를 주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않으면 우리가 내려오는 것을 허가할 수 없다는 말을 박사님께서도 들으셨습니다. 저는 이 약속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그 말 그대로 정확히 그렇게 지키고 있습니다. 딘스모어 씨가 제게 이렇게 약속해야 한다고 부득불 강요하면서, 처음에는 제게 기독교 사역은 일체 안 하겠다는 약속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저는 의료 사역이 우리가 하는 기독교 사역이라고 답했고 제가 가르치는 일이나 세례 주는 일을 전혀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자 그제야 만족감을 나타내었습니다.
I have looked into the matter of the work of our colporteurs & can see what they are doing. I have meant to write to you long ago but our hands are so full. We are meeting with calls for medicine on a very extended scale. We have now treated almost 250 patients. My wife's fame as the Queen's Physician has won for her an entrance to several of the families of the Magistrates & in several places she has been able to speak a word for Christ to the Magistrate himself & to his wife. We are scattering seeds all along the road. I sold over a hundred Gospels at Song bo alone and at this place my wife asked permission to send the Gospel of Mark to the Magistrate's wife & the Magistrate said all right. I have met the Christians in different places & together we have worshipped. I have examined 19 candidates for Bap. & of these four have passed a very good examination & were recommended by our colporteurs for Baptism. At the next stopping place that we reach I am expecting great things but must go out to see. It is at Kang Ki where we had heard that work was going along well a year & a half ago but to which I was then unable to go. One of our elders has been up there for six months & more instructing & teaching those who are there. He reports that interest is great & that numbers are waiting to be baptised. It is no use speaking of numbers until we see the work. With the Oriental freedom the Koreans are prone to exaggerate numbers & we do not place reliance upon their definite statements. Perhaps however it is a difference in opinion as to what constitutes a Christian. We are extremely strict & severe in our examinations & will thus I am afraid send many of our adherents to the Methodist but this is better than having non-Christians baptised. (I am afraid that you will have a good deal of bother reading this but I am sitting on the floor trying to write.)
저는 권서들이 활동하고 있는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았고 그들이 일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박사님께 편지를 드리려 했습니다만, 그 동안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현재 치료를 요하는 사람들의 수가 대단히 증가한 상태에 있습니다. 현재 우리는 거의 250명의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습니다. 제 아내가 뛰어난 여의사라는 소문이 퍼져서 아내는 이곳의 몇몇 관리들의 가정에도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관리와 그의 아내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했던 적도 몇 번 있었습니다. 우리는 길에 계속 씨를 뿌리고 있습니다. 저는 송도 한 곳에서만 100권이 넘는 복음서를 팔았고, 이곳에서는 제 아내가 한 관리의 아내에게 마가 복음서를 보내어 줄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행정관이 그렇게 해도 좋다고 했습니다. 저는 여러 곳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만났고, 함께 예배도 드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세례를 받을 수 있을 만한 사람 19명을 문답했습니다. 그 중에서 네 명은 아주 훌륭하게 대답을 하여서 우리 권서들이 세례를 받게 했으면 좋겠다고 추천하였습니다. 다음번에 들르게 될 곳에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리라 기대하고 있는데 그러한 일들을 보기 위해서는 앞으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1년 반전에 사역이 잘 진행이 되고 있다고 들었던 곳은 강계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때는 그곳으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장로들 중에서 한 사람이 그곳에서 지금까지 6개월 넘게 있으면서 지도하고 가르치는 일을 했습니다. 그가 전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곳 사람들의 영적인 관심이 대단하며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으려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직접 그 사역현장을 보기 전에 그런 사람들이 정확히 얼마나 많이 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동양인들에게는 사실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한국 사람들도 인원수를 과장하곤 합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자격에 대한 의견 차이일 수도 있습니다. 세례 후보자들을 문답할 때, 우리는 대단히 엄격하며 철저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을 감리교회로 보내게 되는 것은 아닌가 염려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비그리스도인들에게 세례를 주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렇게 하는 편이 낫습니다. (저는 지금 마루에 앉아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박사님께서 제 글씨를 알아보기가 무척 힘드실 것 같아 죄송스럽습니다.)
When I get to the Chinese border if there are Korean believers I shall just cross over into China & Baptise them. I have a pass port with me for this purpose. In Euiju also I hear that the work is opening up finely & I sincerely trust that it is.
제가 중국 국경 변방에 있는 지역에 가게 될 때, 그곳에 한국인 신자들이 있는 것을 알게 된다면 저는 중국으로 건너가서 그 사람들에게 세례를 줄 것입니다. 저는 통행증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의주에도 사역의 길이 환히 열리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진실로 그러할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Our experiences have been varied & not at all times the pleasantest. The crowds that gather are always kind but very curious but at times not the best to meet. We had the worst time the night before we got here. The building where we were was stoned by boys enraged because they were not allowed to poke holes in the paper windows of our bedroom. In the morning one rough broke open the window, one of our chair coolies at once seized him & proceeded to punish him but having regard to the size of the crowd I went down & had the man released. By this time the crowd were thoroughly aroused & it was only by getting some of the leaders in the village to be near us till we reached the river that we managed to keep their curiosity within bounds.
우리는 다양한 일들을 겪습니다. 물론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몰려드는 사람들은 친절하긴 하지만 호기심 어린 눈으로 우리를 무척 신기하게 바라봅니다. 그리고 우리를 괴롭게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곳에 오기 전 날 밤에는 정말로 힘든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 침실의 창호지로 된 창문에 구멍을 뚫지 못하게 했더니, 화가 난 소년들이 우리가 있던 곳으로 돌을 던졌습니다. 아침에는 거친 돌 하나가 날아 와 창문을 깨뜨렸습니다. 그러자 우리의 가마꾼 한 사람이 곧 그 녀석을 붙잡아서 혼을 내주었습니다. 그렇지만 몰려든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저는 그 소년을 보내게 했습니다. 이때쯤 모여 있는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하며 웅성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강가에 이를 때까지 그 마을의 관리 몇 사람이 우리 곁에 있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호기심을 가라앉히지 못했을 겁니다.
Here all is very pleasant & we have had a good days rest. But I must be closing. We have a long day's journey before us tomorrow & must be up before daylight & start at sunrise.With kind regards from my wife I close, Yours Most Sincerely,
지금은 이곳의 모든 것이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우리는 휴식도 충분히 취했습니다. 이제 그만 줄여야겠습니다. 내일 오랜 시간 여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새벽이 되기 전 일어나서 동틀 때 출발해야 합니다. 제 아내도 박사님께서 늘 평안하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H. G. Underwood 언더우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