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8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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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1888년 5월 21일)
식별자 L18880521UTOE
한글명칭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1888년 5월 21일)
영문명칭 Horace G. Underwood's Letter To Frank F. Ellinwood (May 21, 1888)
발신자 Underwood, Horace G.(원두우)
수신자 Ellinwood, Frank F.
작성연도 1888년
작성월일 05월 21일
작성공간 서울
번역문출처 김인수, 『언더우드 목사의 선교편지』,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2002.



Dr. Horace G. Underwood
Seoul, Korea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인물
한국, 서울공간
May 21, 1888 1888년 5월 21일
Dear Dr. Ellinwood, 엘린우드인물 박사님께,
Perhaps you will be surprised to see a letter(return?) from me headed from Seoul but there was a little difficulty here in Seoul & a prompt was deemed the best thing by the parties here in Seoul. The Romanists by their thoughtless & unwise action had aroused the ire(?) of the government & strict orders were issued by the authorities calling for the stopping of all religious teaching & asking the assistance of the Diplomatic & Consular authorities in the matter. To allay suspicion it was thought best to yield at once, not that we are willing to yield an inch but that by so doing we do not put off the day when freedom of religion shall be granted here. We do not know when this will be but we are hoping and praying for it. In the mean time we will continue our teaching quietly in the capital & baptise all fit applicants quietly. We will continue to sow the seed in the country by means of Koreans & will direct the work by an occasional visit. We feel that it is better to be able to take trips into the country & thus see the work & then direct it from Seoul, than to go ahead in open defiance of authority this time & thus deprive ourselves of the privilege of travelling in the country in the future.
서울에서 보내 드리는 제 편지를 받으시면 의아해 하실 것 같습니다. 이곳 서울에서 다소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곳 서울에 있는 동료들은 즉각 돌아오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습니다. 로마 카톨릭교회 사람들이 경솔하고 무분별한 행동을 함으로 인해 정부에서는 격노하였고 모든 종교적 교육은 중지되어야 한다는 엄중한 명령이 정부당국에 의해 내려졌습니다. 그리고 이 일에 있어 외교관과 영사관의 관계자들의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정부의 의혹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즉시 그 명령을 따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조금이라도 그렇게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이곳에서 종교의 자유가 허락될 날이 더 늦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언제 그렇게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를 위해 소망을 품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조심스럽게 가르치는 일을 계속해 나갈 것이며 세례를 받을 만한 사람들에게는 은밀히 세례를 줄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인들을 통해 이 나라에 씨를 뿌리는 일을 계속해 나갈 것이며, 한번씩 찾아가 보면서 사역을 감독하려 합니다. 지금 공개적으로 정부당국의 명령에 대항해서 앞으로 이 나라 곳곳을 마음껏 다닐 수 있는 특권을 상실해 버리는 것보다는 여행을 다니면서 사역의 상황을 살펴보고 서울에서 필요한 지시를 내리는 편이 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As soon as I got back from the country I called on Judge Denny & he assured me most emphatically that the order was not issued against anything that Mr. Appenzeller & I had done but that the governmen had to issue a general order. Others however told me differently & not a few of the non-christian foreigners tried to persuade me that the popular feeling was very strong against Mr. A. & myself. I at once sent men whom I knew I could trust to see & found it was not so. Then it was reported(?) that the government officials were all very much excited over what we were doing. This however was clearly proved to be false by the proposition made to me by one of the Korean government two days after my return. They have asked me to take charge of the Royal College. They said that the three teachers were to sent back & wanted to know whether I would undertake the work intimating that if I cared they would retain one of the present teachers to assist.
이곳에 돌아오자마자 저는 데니인물 판사를 찾아가 보았는데 그는 “아펜젤러와 제가 했던 일 때문에 이번 명령이 내려진 것이 전혀 아니고 정부에서는 일반적인 성격의 영(令)을 내려야만 했던 상황이었다”고 제게 힘주어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의 말은 이와 달랐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외국인들 중에서 여러 명이 “저와 아펜젤러에 대한 사람들의 감정이 몹시 좋지 않은 게 틀림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곧바로 믿을 만한 사람을 보내어서 사실여부를 알아보게 하였고, 그 외국인들의 말이 옳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정부 관리들이 우리가 하는 일 때문에 감정이 무척 격양된 상태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돌아온 지 이틀 후에 한국 정부측 사람이 제게 설명해 준 것을 보면 이것은 분명 사실과 다른 말이었습니다. 한국 정부에서는 제가 왕립학교공간를 맡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정부측 사람들은 “그 세 사람의 교사는 되돌아가야 한다”고 했고 제가 그 일을 맡아 줄 수 있는지 알고 싶어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원한다면 “현재 있는 교사들 중에서 한 사람은 남겨두고 돕게 할 수 있다”는 뜻도 내비쳤습니다.
I did not want to in any way injure the prospects of the three men who are all fine fellows & will if they put their shoulders to the wheel make something that will tell out of the school. I told them that I could not tell. They pressed me for an answer but I positively refused to answer till I had seen Mr. Dinsmore. I also urged & urged upon them the benefit of retaining the present teachers. They at once told me that the matter with reference to them was settled that they would go & that if I did not consent the school would fall through completely. I then said that I must see Mr. Dinsmore. I told him all & he asked me to in some way to delay matters & he would try & bring the matter before His Majesty again. The difficulty is that a man named Hutchison an Englishman of not very good morals not a Christian is working for this place & the delay might send the school into his hands. I however wrote to the representatives of the government again urging the retaining of the three men.
그 세 사람 다 모두 좋은 사람들인데 그들이 바라는 것을 제가 어떤 식으로든 막고 싶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면 학교에서 무언가 뜻 깊은 일을 해 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정부측 사람들에게 “저는 무어라 말씀드릴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꼭 답을 주셔야 한다고 계속 제게 말했습니다만 저는 딘스모어인물 씨를 만나 보기 전까지는 그에 대해 확답을 하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또한 저는 그 사람들에게 현재 있는 교사들을 그대로 일하게 하는 것이 매우 유익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그 세 사람과 관련된 문제는 이제 결정이 난 상황이어서 세 사람은 떠나게 될 것이고 제가 승낙하지 않는다면 학교 일은 다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딘스모어 씨를 만나 보아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딘스모어 씨에게 상황을 자세히 말하였더니 딘스모어 씨는 “제가 어떻게든 그 일들이 지연되도록 해 보라”고 하였고 “내가 왕에게 다시 한번 이 문제를 거론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어려운 점은 이것입니다. 허치슨인물이라는 영국 사람이 있는데 행실도 별로 좋지 않고 신앙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이곳에서 일하고 있어서, 일이 지연되면 그가 학교 일을 맡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저는 정부 대표자들에게 다시 서신을 보내어 그 세 사람을 그대로 두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였습니다.
There the matter now stands. They have not decided what they will do. If the will not keep the present teachers I shall feel that it will be best for me to do that work. I should not want to sever my connection with the mission. My time there would only be about 5 hours a day & it would simply be a change of place where I taught. I do not know at all what salary they would give but it would be more than what I now get from the Board & I should be glad if the Board would permit me to continue holding my connection with the Mission but to draw my salary from the government. This I believe has been done before. Outside of 4 or 5 hours work in school my time of course would be given to Christian work. What will be done we cannot at all tell. We do no know in the least what the government may decide. They said that they asked me because of my knowledge of Korean. I think from the way things now look that they are going to take my suggestion & keep on the three men.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직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습니다. 현재 있는 교사들을 유임시키지 않는다면 제가 그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좋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저는 선교부와 제 관계가 멀어지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곳에서 일하게 된다면 하루에 5시간을 일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제가 가르치는 일을 하는 장소만 바뀌는 셈입니다. 제가 사례비를 얼마나 받게 될 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제가 지금 본부에서 받는 것보다는 많이 받게 될 것 같습니다. 본부에서 제가 선교부와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학교에서 하루에 너 댓 시간 일하는 것 외에는, 첨언할 필요도 없이 저는 선교 사역에 제 시간을 드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일이 어떻게 될지 지금으로서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정부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정부측 사람들은 제가 한국어를 잘 하기 때문에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현재 상황으로 보아서는 그 사람들이 제가 제안한 것을 받아 들여서 그 세 사람을 유임할 것 같기도 합니다.
Mr. Bryant of the B. & F. (British and Foreign) Bible Society is now here with me. He is going to make the trip overland to China & has asked me to go with him. It will be a good excuse for my going without any attention being called to it & I can see what work has been done & then direct it from Seoul. I have to promise to do no Christian teaching (and) refrain from administering the ordinances but I can see how the work is going & then intelligently rule 6 govern it from Seoul. Mr. B. & I will then start on Thursday morning & I shall be gone for about 4 weeks. I hope to be able to see a good deal of what has been done. Yours about reinforcements has delighted us very much. We have heard from both Mr. Gifford & Gardiner & I have written them by this mail.
영국 및 해외성서공회의 브라이언트인물 씨가 지금 저와 함께 있습니다. 브라이언트 씨는 육로를 통해 중국으로 가려 하고 있는데 저도 함께 갔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제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않으면서 다녀 올 수 있는 좋은 구실이 될 것입니다. 어떤 일들이 이루어져 있는지 가서 볼 수 있고 나중에는 서울에서 필요한 지시사항을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독교에 대해 가르치지 않겠고 성례식을 집례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합니다만 저는 사역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보면서 상황을 잘 파악할 수 있을 것이고 그리고 나서 서울에서 사역을 지도하고 필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브라이언트 씨와 저는 목요일 아침에 출발할 예정이며 약 4주 동안 한국을 떠나 있게 될 겁니다. 지금까지 이루어 진 일들을 충분히 잘 살펴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박사님께서 힘을 불어넣어 주신 것이 우리에게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기포드(Gifford)인물 씨와 가디너 씨에게서 소식을 들었으며 이번 우편으로 그분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Remainder of letter missing ---) (편지의 나머지 부분은 유실됨)
Horace G. Underwood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인물 올림.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