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8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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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1888년 3월 5일)
식별자 L18880305UTOE
한글명칭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1888년 3월 5일)
영문명칭 Horace G. Underwood's Letter To Frank F. Ellinwood (March 5, 1888)
발신자 Underwood, Horace G.(원두우)
수신자 Ellinwood, Frank F.
작성연도 1888년
작성월일 3월 5일
작성공간 서울
번역문출처 김인수, 『언더우드 목사의 선교편지』,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2002.

Dr. Horace G. Underwood
Seoul, Korea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인물
한국, 서울공간
March 5, 1888 1888년 3월 5일
To Dr . Ellinwood 엘린우드인물 박사님께,
I have been intending to write the Board about one matter for some time past but have waited to be really sure of what I wanted to say. After giving it a fair trial of more than two years I find that I cannot live on the Salary that I am getting, that I am gradually getting more & more in debt. I have used up quite a little money that I originally had of my own & this together with sums that I have received from time to time from home has all disappeared.
Were it possible to obtain board & lodging here I could live more cheaply & keep within my Salary but this is not only impossible but even though it were possible I could not do the work that I am doing here without a house of my own. Koreans are coming to see me at all times & some of them must be seen by themselves.
It costs almost as much to keep house as a single man as though I were married & in fact in many ways it would cost less in the latter case as there would then be some one to see that the continual "squeezing" or robbing was not done in the kitchen.
본부단체에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제가 정확히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분명히 알게 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2년이 넘도록 열심히 노력해 보았지만 제가 받는 사례비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제가 빚진 돈의 액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원래 제게 있었던 꽤 많은 돈을 다 써 버려서 이전에는 간혹 집에서 돈을 전해 받기도 했습니다만 이제는 그렇게 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숙식 문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제 사례비 금액 내에서 어렵지 않게 살아갈 수 있겠지만 이런 도움을 받는 일은 있을 수 없을뿐더러 저는 따로 제 집이 없으면 이곳에서 하는 일들을 해 나갈 수가 없습니다. 식사를 제공하는 하숙을 얻을 수 있다면 저는 보다 검소하게 살수 있을 것이고 제 사례비로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설사 가능하다 하더라도 제 집 없이 이곳에서 하는 일을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때를 가리지 않고 저를 만나러 찾아옵니다. 그런 사람들 중에서는 개별적으로 만날 필요가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는 혼자서 살고 있지만 생활비로 지출되는 돈은 거의 기혼자의 생활비 수준입니다. 사실 결혼을 하면 여러 면에서 생활비가 절약될 것입니다. 지나치게 궁핍하게 살지도 않고 낭비하지도 않게 되도록 살림을 꾸려 줄 사람이 있을 테니 말입니다.
The allowance of freight & duties between here & Japan or China in no way puts us on a level with the Missionaries there. We are not able to go & select what we want, we are only able to send a letter & they then send us what they think will suit. We are at their mercy. As one instance of this, in Nov of '86 I sent to Mackenzie & Co. for “a few cheap Christmas cards" & when they got here they had sent me $16.00 worth. Of course we can send things back as we are continually doing but even then we do not know that we will get what we want. I simply cite this to show that the (amount) allowed for Freight & Duties while it is a wonderful help by no means places us on a level with the Missionaries in Japan & China. Everything here is very dear. The Winters are very cold. Wood is very costly. My bills for wood alone this winter were $20. & $25. per month & in addition to this I have already used up over eleven tons of coal. We must keep warm. It is acknowledged by all that we are here, that this is the most costly place in the east to live. My salary is less than the lowest "tide-waiter" in the customs service which they say they can hardly live on. I cannot nor do I think the Board would as me to, live as these men do. I do not want you to simply take my statement of the matter but would suggest that you enquire (next line virtually impossible to read) all tell you that it is impossible for a man to live out here on $800.00 a year. I do not ask for the Salaries that there are getting. I do not ask for a Salary that will allow me to lay up money but I do ask for a Salary that will enable me to meet expenses. I know your rule about unmarried men's Salaries being two thirds that of a married man & the only way that I can see to remedy the difficulty is to make an exception to the rule. I think that were my Salary $1,000.00 a year I could live on it but I cannot live on less.
여기서 일본공간이나 중국공간으로 물건을 보내고 받을 때 필요한 수송비용과 관세를 고려해 보면 우리는 그곳의 선교사들과 대등한 처지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가서 고르지도 못합니다. 편지를 보낸 후에, 그쪽 사람들 생각에 적당하게 여겨지는 것을 보내주면 그것을 받습니다. 그저 우리는 그 사람들 처분에 따를 뿐입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 86년 11월, 저는 맥킨지상회[1]에 비싸지 않은 크리스마스 카드 몇 장을 보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보내 준 카드를 받아 보니, 제가 지불해야 할 돈이 16달러나 되었습니다. 물론 그런 경우에 우리는 물건을 되돌려 보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해도 다음 번에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이렇게라도 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수송비용과 관세로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우리가 일본이나 중국에 있는 선교사들과 같은 처지에 있지 않다는 점을 알려 드리고 싶어 이 말씀을 드립니다. 이곳에서는 필요한 물건들이 다 귀합니다. 겨울은 무척 춥고 돈을 꽤 많이 주어야 장작을 구할 수 있습니다. 이번 겨울에 장작을 구하느라 쓴 돈만 해도 달마다 20~25달러나 되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석탄도 11톤 이상 썼습니다. 이곳 겨울이 몹시 추워서 난방을 잘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있는 이곳이 동양에서 생활비용이 가장 많이 드는 곳이라는 사실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저의 사례비는 세관에서 일하는 최하급 세관 일꾼의 봉급보다도 적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이 봉급으로는 못살겠다”고 말들 합니다. "본부단체에서 “이런 사람들이 사는 정도로만 살아가라”고 제게 하시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이 문제에 대해 드리는 말씀을 박사님께서 그냥 받아들이시기보다는 ______________조사를 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박사님께 “이곳에서 일년에 800달러만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다른 사람들과 똑 같은 액수의 사례비를 달라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저축을 하며 살수 있을 만한 사례비는 바라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필요한 생활비 액수만큼의 사례비를 보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미혼자의 사례비는 기혼자의 사례비의 2/3가 되게 한다는 것이 박사님께서 세워두신 규정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 해결되기 위해서는 그 규정에 대한 예외적 적용이 있어야만 합니다. 제 사례비가 연간 1,000달러가 되면 그 돈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그 이하가 되면 생활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Trusting to hear from you shortly in regard to the matter I remain,
곧 이 문제에 대한 박사님의 말씀을 듣게 되기 바랍니다.
Yours Sincerely, 안녕히 계십시오.
Horace G. Underwood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인물 올림.


  1. 1859년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한 스코틀랜드 출신 무역상인 케네스 맥킨지(kenneth ross mackenzie 1801~1873)의 무역회사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