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5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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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1885년 8월 31일)
식별자 L18850831UTOE
한글명칭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1885년 8월 31일)
영문명칭 Horace G. Underwood's Letter To Frank F. Ellinwood (Aug 31, 1885)
발신자 Underwood, Horace G.(원두우)
수신자 Ellinwood, Frank F.
작성연도 1885년
작성월일 8월 31일
작성공간 서울
자료소장처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번역문출처 김인수, 『언더우드 목사의 선교편지』,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2002.



Dr. Horace G. Underwood
Seoul, Korea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인물
한국, 서울공간
August 31, 1885 1885년 8월 31일
To Frank F. Ellinwood 존경하는 엘린우드인물 박사님께,
Dear Mr. Ellinwood, 박사님,
I wrote you a letter as the treas. of the mission here dated the 29th and now I want to write a personal one to you in answer to yours of the 20th of June.
이곳 선교회의 재무 담당으로서 저는 지난 29일 박사님께 편지를 보내 드렸었습니다. 지금은 지난 6월 20일 보내주신 박사님의 편지자료에 대해 개인적으로 답신을 보내 드리려 합니다.
In this letter you will see that you referred to my wearing an Oxford coat and hoped that I was not wearing it still.
지난 번 편지에서 박사님께서는 제가 옥스포드 코트물품를 입는 것에 대해 언급하시며 예전처럼, 지금도 제가 그것을 입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When you spoke about this matter to me in N. Y. I at once took your advice and procured other clothes in case it should be advisable to wear the latter. Now when I am on the field it does seem to me that I ought to be able to judge as to what is best to wear and that seeing what was necessary I would do it and if the board have not enough confidence in me to believe this I do think that it is a pity that they did not send someone else to this new field. You may have heard that when I first landed in Korea I had on the Oxford coat and with reference to this I would add that I did so at the advice of Minister Foote who assure me when I saw him in Japan that there could not be the slightest harm in my wearing them.
뉴욕에서 박사님께서 이 문제에 대해 말씀을 해 주셨을 때 저는 그 즉시로 박사님의 충고를 받아 들여서, 다른 옷을 입는 게 좋을 경우를 생각해 옷 몇 벌을 마련했었습니다. 지금 이곳 사역 현장에서도 어떤 옷을 입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지 제가 스스로 잘 결정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무엇이 필요한 지를 살펴보고, 그 필요한 것을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본부에서 저에 대해 이러한 믿음을 갖지 못할 정도로 저를 신임하지 못한다면, 저 아닌 다른 사람을 이곳 새로운 사역지로 보내지 않았던 게 정말로 유감스러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옥스포드 코트물품를 입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푸트인물 공사의 권고를 받아 들여 그렇게 했다는 것을 덧붙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분을 일본에서 만났을 때, 제게 그 옷을 입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라고 분명히 말했었습니다.
I however on reaching Seoul saw that I was mistaken and before I had been there twelve hours I had changed them and of course have not had them on since.
그렇지만 제가 서울에 도착하자 곧 제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도착한지 12시간도 지나지 않아 다른 옷으로 갈아입었고 물론 그 이후로는 한 번도 입지 않았습니다.
You also say in the same letter something about my issuing circulars for revival meetings while in Japan.
박사님께서는 또한 그 편지에서, 제가 일본에 있었던 동안 부흥회의 안내장을 발송했던 것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I do not know where you got your information from but the facts of the case are these. When it was found that I was going to be in Japan for two months I was asked to conduct some extra services in connection with the Union Church of Yokohama. A committee was appointed to have the oversight of the meetings and the circulars were issued by the committee the first of which did not mention my name and it was in fact only the second one that did.
박사님께서 어떤 경로를 통해 소식을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실은 이렇습니다. 제가 두 달간 일본에 머무르게 되었을 때, 요코하마에 있는 연합교회공간와 연결된 몇몇 특별 예배를 인도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한 위원회에서 그 집회를 감독하는 책임을 맡게 되었고, 안내장은 그 위원회에 의해 발송되었던 것입니다. 첫 번째 안내장에는 제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았고, 두 번째 안내장에만 제 이름이 있었을 뿐입니다.
When I was asked to take this work I felt that it was a call which I had no right to refuse and even though (which is not the case) it had given me a name among the foreigners of Korea I should not then have felt that I had done wrong but would have been sure that in the end it would be all right.
제가 이 일을 담당하도록 요청 받았을 때, 이것은 제가 거부할 권한이 없는 부르심이라 느꼈습니다. 만일 이 일 때문에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 중에 제가 알려지게 되었다 해도-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저는 제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고, 결국에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을 겁니다.
A motion came up before us this morning to the effect that we send Dr. Allen to Fusan to look into the advisability of starting a station there. It is the only other field outside of Seoul that is likely to be of much importance as far as native work is concerned and as if occupied now it would in all probability pay its expenses it does seem as though it would be a wise step. At the same time I personally do not think that Dr. Allen is the one to go if this work is started. It seems to me that the work in Seoul as the Legations are there is the more important of the two (I refer to that among foreigners) and Dr. Allen has these but we do not know that Dr. Heron could keep them whole at the same time there is almost a certainly that whoever first gets to Fusan, as a missionary or not, will have all the foreign practice there as there is no foreign doctor there at all. In addition to this the hospital here was given to Dr. Allen on account of what he had done for the Koreans and this too might leave the hands of another missionary if it were placed in his hands. While it does seen to me that it would be a good move to occupy Fusan if possible, especially as Mr. Lovett of the customs is anxious for missionaries to come there. I do not agree with the second part of the suggestion that Dr. Allen be the one that is sent. The situation is somewhat different to what it was when Dr. Allen first wrote so strongly urging the need of Dr. Heron's speedy arrival here.
부산에서 새로운 지부를 시작하는 일의 적부(適否)를 조사해 보도록 알렌인물 의사를 부산에 보내라는 취지의 제안이 오늘 아침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현지인 사역에 관한 한, 그곳은 서울과 함께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역 현장이 되리라 예상되는 곳입니다. 그곳이 지금 선점(先占)된다면, 분명히 노력한 대가를 얻게 될 겁니다. 그곳으로 나아가는 것은 현명한 걸음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동시에, 저는 그곳 사역이 시작된다면 알렌인물 의사가 적임자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공사관에 관한 일을 생각해 볼 때 서울에서 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입니다. 둘 중 더 중요한 것이 있는 법입니다.(저는 외국인들 사이에 있는 그 일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알렌인물 의사에게는 이러한 면을 볼 수 있지만 헤론인물의사도 그러한지는 모르겠습니다. 동시에 선교사로든지 그렇지 않든지 부산으로 가는 사람은 누구나 그곳에 외국인 의사가 전혀 없기 때문에, 외국인으로서의 모든 개업권을 갖게 될 겁니다. 게다가, 알렌 의사가 한국인들을 위해 했던 일로 인해 이곳 병원은 알렌 의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그의 손에 맡겨진다면 이것은 다른 선교사의 손에서 떠나게 될 겁니다. 세관의 로벳인물씨는 선교사가 그곳에 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부산을 선점(先占)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 여겨집니다. 그렇지만 그 제안 중에서, 알렌 의사를 보내야 한다는 그 두 번째 부분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알렌 의사가 처음 편지를 보내서, 헤론 의사가 이곳으로 시급하게 와야 한다고 강력하게 요구했던 때와는 상황이 다소 다릅니다.
He was then if I mistake not entirely alone but now there is the Methodist Dr. here who could be called in to assist in difficult cases and in addition to this a Korean student has by this time progressed so rapidly that he can now do all the filling of prescriptions without any help while only a little while ago Dr. Allen had to first examine his patient and then put up the medication which was no very easy work when he was having seventy and over patients in an afternoon and after this was done having to go and see a good many Foreigners. It does at present look like rather a waste of forces to have three missionary Doctors in this one city.
제가 틀리지 않다면, 알렌인물 의사는 그때 혼자뿐이었지만 지금은 어려운 경우에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감리교인 ㅡㅡ의사가 있습니다. 게다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알렌인물 의사가 환자를 하루 오후에 70명 이상 씩 보고, 병원 일을 마친 후에는 많은 외국인들까지 진료하러 나가면서도, 환자들을 처음부터 검진하고 일일이 약을 내 주는 수고를 담당해야 했지만, 이제는 매우 신속하게 실력을 갖춘 한 한국인 학생이 완전히 혼자서 처방을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재로서는 이곳 한 도시에 의료 선교사를 세 명이나 둔다는 것은 인력의 낭비인 듯 싶습니다.
I suppose that Drs. Allen & Heron will give you all the pros and cons on this subject but I wanted you to know that I personally am in favor and think it would be a very good thing for the work to start a station at Fusan though at the same time I do think that if either of those on this field are to go it would be best for our work financially, that the man be Dr. Heron. I have written to my brother to get several things for me & he will send them round to Mr. Cutter to be forwarded. Trusting that you are now enjoying good health I remain,.
알렌인물 의사와 헤론인물 의사가 이 문제에 대한 찬․반 의견을 자세히 말씀드리리라 생각됩니다만, 저는 부산에서 새로운 지부를 시작하는 것에 개인적으로 찬성하고 좋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동시에 이곳에서 그 두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이 가게 된다면 우리 일에 재정적으로 크게 도움이 될 터인데, 가야 할 사람은 헤론인물 의사라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제 인물에게 필요한 몇 가지 물건을 구해달라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물건들은 커터인물씨 편에 기탁(寄託)되어 제게 보내질 것입니다. 이제 완전히 건강이 회복되셨기를 바랍니다.
Yours Truly,
안녕히 계십시오.
Horace G. Underw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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