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 사기동(沙器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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沙器洞前水向 (사기동전수향)     사기동 마을 물은 동쪽으로 흐르고, 
李公節義弟兄 (이공절의제형) 이공의 절개심은 형제가 한 가지네.
家園喬木葱籠氣 (가원교목총롱기) 집 앞 정원 키 큰 나무 무성하게 자랐는데,
雨露光中海日 (우로광중해일) 이슬방울 빛이 나고 저녁노을 붉게 탄다.


○ 사기동(沙器洞)에는 이시원(李是遠)의 집이 있는데 병인년(1866) 난리에 공이 동생 군수공(郡守公) 이지원(李止遠)과 함께 연명상소를 올리고 약을 먹고 자결하였다. 일이 알려지자 상공을 추증 받고 충정공(忠貞公)이란 시호를 받았다. 아들 이상학(李象學)은 음사(蔭仕)하여 군수를 여러 번 역임하였다. 그 손자 이건창(李建昌)은 일찍이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이 참판에 이르렀으나 조정에서는 관찰사의 직책을 주어 3번이나 불렀지만 나아가지 않았다. 마침내 집에서 별세하였다.

인물

  • 이시원(1790(정조 14)∼1866(고종 3). 조선 후기의 문신·의사(義士).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직(子直), 호는 사기(沙磯). 정종의 별자(別子) 덕천군(德泉君)의 후손으로, 진사 면백(勉伯)의 아들이며, 건창(建昌)의 할아버지이다. 개성부유수, 형조판서, 함경도관찰사, 예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지냈다. 병인양요가 일어나 강화도가 함락되자, 아우 지원(止遠)과 함께 유서를 남기고 음독 자결하였다. 뒤에 영의정에 추증되고 충정(忠貞)의 시호가 내려졌다.
  • 이지원(?∼1866) 본관은 전주(全州). 군수를 지냈으며,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강화부를 점령하자, 형 시원(是遠)과 함께 유소(遺疏)를 올리고 자결하였다.
  • 이상학(1829년 출생)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사권(士勸), 이조판서 이시원의 아들, 이건창의 아버지이다.
  • 이건창(1852∼1898) 조선 말기의 문신·대문장가. 본관은 전주(全州). 소명(小名)은 송열(松悅). 자는 봉조(鳳朝, 鳳藻), 호는 영재(寧齋).


참고

  • 사기동(沙器洞) : 화도면 사기리로 큰사골과 작은사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