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 정포동(井浦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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客馬來尋井浦 (객마래심정포)     말을 탄 나그네가 정포 누각 찾아가니, 
鎭雲散盡海長 (진운산진해장) 진보 구름 흩어지고 바다는 멀리 흐르네.
却推許老詩中意 (각추허로시중의) 허씨 노인 지은 시의 속뜻을 생각하니,
城月光輝又一 (성월광휘우일) 성터의 밝은 달빛 속에 또 한해가 지나가네.


○ 위량면(位良面) 정포동(井浦洞)은 강화부 관아의 서쪽 30리 지점에 있다.

○ 허봉(許葑)402)의 ʻ정포의 성루(城樓)ʼ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獨坐城樓晩 (독좌성루만)     늦도록 성루에 혼자서 앉아 있자니 
棲烏無數 (서오무수훤) 시끄럽던 까마귀 둥지에 드는구나.
海山籠霧暗 (해산롱무암) 바다 산은 안개에 싸여있어 어둡고
沙浦帶潮 (사포대조혼) 사장의 포구는 조수 밀려 흐리구나.
作客空愁思 (작객공수사) 손이 되어 속절없이 근심하고 생각하니
還家只㒱 (환가지몽혼) 집으로 돌아가는건 꿈속의 혼이라네.
塹城壇上望 (참성단상망) 참성단에 올라서 주변을 바라보면
應見國正 (응견국정문) 이 나라로 들어오는 정문을 볼 수 있으리.


이 시로써 미루어 보건대 옛날에는 성루가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옹성 여러 곳이 있는데 “광해세자가 이곳에 구금되었다.”라고들 전한다.

○ 옛날에는 진보가 있어서 수군 만호를 두었으며 현종 병오년(1666, 현종 7)에 유수 서필원(徐必遠)403)이 아뢰어서 수군을 교동으 로 옮기고 별장을 두었다. 기유년(1669, 현종 10)에는 유수 김휘(金徽)404)가 도로 만호를 두었다. 숙종 무오년(1678, 숙종 4)에는 윤이제(尹以濟)405)가 아뢰어서 장봉도로 옮겼지만 다시 별장을 두었다.

○ 제방은 서필원이 쌓은 것이다.


인물

  • 허봉(1551∼1588) 조선 중기의 문인. 자는 미숙(美叔), 호는 하곡(荷谷). 본관은 양천(陽川).
  • 서필원(1614∼1671) 본관은 부여(扶餘). 자는 재이(載邇), 호는 육곡(六谷).
  • 김휘(1607∼1677) 본관은 안동. 자는 돈미(敦美), 호는 사휴정(四休亭)·만은(晚隱
  • 윤이제(1628∼1701)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여즙(汝楫).


참고

  • 위량면은 1914년 내가면과 양도면으로 나뉘어 편입되었다.
  • 정포동(井浦洞) : 내가면 외포2리 정포마을로, 외포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