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대묘동(大廟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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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武祠傳大廟 (장무사전대묘)     장무사는 대묘촌에 전하여 오는데, 
在前列屋摠雲 (재전렬옥총운) 앞에 있는 열 지은 집에 후손이 모여 사네.
枝枝葉葉春風氣 (지지엽엽춘풍기) 가지마다 잎새마다 봄바람 기운 가득,
盡帶皇天雨露 (진대황천우로) 모두 다 왕실의 은혜를 입었을 터.


○ 대묘동(大廟洞)은 고려 때에 사당을 세운 곳이다.

○ 지촌(芝村) 장무공(莊武公) 황형(黃衡)의 사당이 이곳에 있고 그 자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 장무공 황형의 아들 황침(黃琛)은 무과에 급제해서 관직이 한성 판윤을 지냈다. 황침의 동생 황기(黃琦)282)는 문과에 급제해서 관 직이 경기 관찰사까지 이르렀다. 황기의 아들 황치경(黃致敬)283)은 황침의 후사가 되었는데 문과에 급제하여 전라 감사를 지냈다. 황치경의 아들 황수(黃瀡)284)는 문과에 급제해서 목사를 지냈고 ʻ진해루 상량문ʼ과 ʻ강화부 향안문ʼ을 지었다. 황수의 아들 황호(黃㦿)285)는 호가 만랑(漫浪)이며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이 대사성까지 이르렀고 그의 문집이 세상에 유포되어 있다. 지금 그의 자손들은 대대로 문과와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가거나 진사, 음서로 관직에 나아가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인물

  • 황기(1498∼1539).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중온(仲韞). 공조판서 형(衡)의 아들이다.
  • 황치경(1554∼1627)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이직(而直), 호는 몽죽(夢竹).
  • 황수(1587년 출생) 자는 행원(行源). 본관은 창원(昌原). 목사를 지냈다.
  • 황호(1604∼1656)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자유(子由), 호는 만랑(漫浪).


참고

  • 대묘동(大廟洞) : 강화읍 월곶리의 대묘마을로 대묵골이라고도 불린다. 고려 강화도읍기에 태묘를 두었다 전한다.
  • 구창서발문본에는 제 4구의 ʻ天ʼ이 ʻ恩ʼ로 되어 있다.
  • 天 :下平1 先韻(平水韻)
  • 恩, 孫, 村 : 上平13 元韻(平水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