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삼충단(三忠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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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事蒼黃昔丙 (국사창황석병)     나라일 다급했던 지나간 병자·정축난 때, 
諸公義烈劍頭 (제공의렬검두) 많은 사람 의열심에 창칼 들고 맞섰네.
表忠壇上靑苔石 (표충단상청태석) 표충단 위 바위는 푸른 이끼 덮였는데,
點點如斑月日 (점점여반월일) 얼룩진 반점은 해·달·별처럼 빛나네.


○ 표충단(表忠壇)은 갑곶진 위 당고개<堂峴> 남쪽 산기슭에 있었다. 황선신(黃善身), 구원일(具元一), 강흥업(姜興業)이 순절한 곳이다. 처음에는 삼충단(三忠壇)이라고 하였다. 후에 동시에 죽은 이들을 함께 배향하여 제사를 지냈으니 파총 안몽상(安夢祥)·이참(李參), 초관 이사후(李嗣後), 기패관 이광원(李光遠), 출신 서언길(徐彦吉), 교사 고의겸(高義謙), 정병 차명세(車命世), 철곶첨사 김득남(金得男), 수군 송영춘(宋榮春) 등 모두 9명이다.

○ 유수 이유(李瑜)는 그들이 순절한 날에 합동제사를 지내고 비석을 세워 그 일을 기록하면서 표충단이라고 이름하였다.

○ 유수 정실(鄭宲)이 축문을 지었다. 그 축문은 다음과 같다.

“한 때의 순절은 천고의 강령이네(一時殉節 千古樹綱) 제삿날에 이르러서 삼가 제물 올리나니(玆以夫日 敬薦豆觴)”

부일(夫日)은 『예기』에 “죽은 날이다.”라고 하였다.


인물

  • 정실(1701∼1776)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공화(公華), 호는 염재(念齋).


참고

  • 구창서발문본에는 ʻ表忠壇ʼ으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