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순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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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는 이형상(李衡祥) 목사가 1702년에 제주 목사로 부임한 뒤에 제주목과 정의현, 대정현 등 세 고을을 순력(巡歷)한 상황을 41개 화폭(畫幅)에 그리게 하고, 그에 대한 서문을 덧붙여 수록한 화첩(畫帖) 또는 도첩(圖牒: 그림첩)이다. 『탐라순력도』는 (1702) 7월에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형상이 그 해 가을에 제주 방어(防禦)의 형지(形止)와 군민(軍民), 풍속(風俗) 따위를 친심(親 審)하기 위해 순력(巡歷)한 내용을, 화공 김남길(金南吉)에게 그림으로 그리게 하고 중요한 내용을 오씨 어른에게 글로 쓰게 해서 첩(帖)으로 만든 것이다.

그림 41면과 서문 2면 등 총 43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림 41면은 순력 행사 장면을 담은 그림 28면, 평상시의 행사 장면을 담은 11면, 제주도와 주변 도서 지도인 「한라장촉」, 후에 덧붙여진 「호연금서」 1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탐라순력도》는 화첩으로 장황되었으나 개별 화면은 조선 전기 정립된 계회도의 3단 구성(제목-그림-좌목)을 따르고 있다. 좌목에 해당하는 하단부에는 해당 행사 관련 정보를 상세히 기입하여 18세기 초 제주도의 행정·군사 시설 및 상황, 지형, 인구, 풍물 등을 자세히 알 수 있게 하였다.

조선 후기 지방관에 의해 제작된 화첩으로, 순력도라는 유일한 화제명을 가진 작품이자, 지방관의 순력 관행 및 18세기 당시 제주도의 실태·풍속 등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형상(李衡祥)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1653(효종 4)에 태어나서 1733(영조 9)에 세상을 떠났다. 1701년 11월 11일에 제주목사 벼슬이 내려져서, 1702년 7월에 제주목사로 부임해서2) 오래된 풍속〔陋俗〕을 고쳐서 유 교식 풍속〔儒俗〕으로 바꾸었다. 곧 석전제(釋奠祭)를 행하던 세 고을〔三邑: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의 성묘(聖廟: 문묘. 공자를 모신 사당)를 고치고, 명성이 있는 선비로서 선생을 정해 글을 가르치게 하였다.

이형상은 통정대부 행 제주목사 겸 병마수군절제사(通政大夫 行濟州牧使兼兵馬水軍節制使)의 품계와 직위를 가진 목민관으로서, 제주 의 학문을 진흥시키고 문화재와 고적을 수리하고 보존하고, 미신적인 인습 과 악습을 타파해 제주도민의 풍속을 교화하고 생활을 개선하는 데에 힘썼다.


사진

출처


참고문헌

오창명. (2014). “탐라순력도 탐색.” 제주발전연구원.

윤민용 (편집자). (2017).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79491 에서 검색된 날짜: 2019년 April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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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무스타파샤덴 한국문화학
편집 최여명 한국문화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