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 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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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 Data
- 타입 : 인물
- 이름 : 최치원(崔致遠)
- 생년 : 857
- 몰년 : ?
- 역할 : 문묘 18현
- 편자 : 필암서원 201313086 김원주
내용
9세기 통일신라 말기의 학자이다. 중국 당 나라에서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으로 문장가로서 이름을 떨쳤으며, 신라로 돌아온 뒤에는 진성여왕에게 시무책을 올려 정치 개혁을 추진하였다. 유교(儒敎)ㆍ불교(佛敎)ㆍ도교(道敎)에 모두 이해가 깊었고, 유ㆍ불ㆍ선 통합 사상을 제시하였다. 수많은 시문(詩文)을 남겨 한문학의 발달에도 기여하였다.
최치원은 개혁이 좌절된 뒤에 신라 말기의 혼란 속에서 은둔 생활로 삶을 마쳤다. 하지만 유교(儒敎) 정치이념을 기반으로 골품제도라는 신분제의 사회적 문제를 극복하려고 했던 그의 사상은 후대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최언위(崔彦撝), 최승로(崔承老) 등은 고려에서 유교 정치이념이 확립되는 데 기여했으며, 새로운 국가체제와 사회질서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때문에 최치원은 조선시대에 와서도 태인(泰仁) 무성서원(武成書院), 경주(慶州)의 서악서원(西岳書院), 함양의 백연서원(柏淵書院), 영평(永平)의 고운영당(孤雲影堂) 등에 제향(祭享)되는 등 유학자들에게 계속해서 숭앙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