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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

요약

  • 중국 송(宋) ·명(明)나라 때 학자들에 의하여 성립된 학설.

내용

  • 도학(道學)·이학(理學)·성명학(性命學) 또는 이것을 대성시킨 이의 이름을 따서 정주학(程朱學)이라고도 한다. 유학(儒學)은 중국 사상의 주류를 이루는 것으로, 그것이 성립되던 상대(上代)에는 종교나 철학 등으로 분리되지 않은 단순한 도덕사상이었으며, 그 대표적 인물에 공자(孔子)맹자(孟子)가 있다. 공자는 춘추시대(春秋時代)의 어지러운 사회를 바로잡으려고 천하를 주유(周遊)하면서 인(仁)예(禮)를 설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 고향에 돌아와 육경(六經:詩·書·禮·樂·易·春秋)을 제자에게 가르치며 도리(道理)를 후세에 전하였다.
  • 선진시대(先秦時代)에 이르러 유학은 도덕 실천의 학으로서 크게 일어났으나, 시황제(始皇帝)의 분서갱유(焚書坑儒)로 큰 시련을 겪은 다음 한·당대(漢唐代)에는 경전(經典)을 수집·정리하고, 그 자구(字句)에 대한 주(注)와 해석을 주로 하는 소위 훈고학(訓學)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송·명 시대에 이르러 유학은 정치적 또는 종교적 사회체제의 변화에 따라 노불(老佛) 사상을 가미하면서 이론적으로 심화되고 철학적인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 즉, 북송(北宋)의 정호(程顥)는 천리(天理)를 논하였고 그 아우 정이(程)는 ‘성즉리(性卽理)’의 학설을 폈으며, 그 밖에 주돈이(周敦頤)·장재(張載)·소옹(邵雍) 등이 여러 학설을 편 것을 남송(南宋)의 주희(朱熹:朱子)가 집성(集成)·정리하여 철학의 체계를 세운 것이 성리학으로, 일명 주자학(朱子學)이라고도 한다. 한편, 이와는 달리 육상산(陸象山)은 ‘심즉리(心卽理)’를 주장하였는데, 이것을 왕양명(王陽明)이 계승하여 육왕학(陸王學)을 정립, 이것 역시 성리학이라 하나 대개의 경우는 성리학이라 하면 주자학을 가리킨다.
  • 성리학은 (理)·(氣)의 개념을 구사하면서 우주(宇宙)의 생성(生成)과 구조(構造), 인간 심성(心性)의 구조, 사회에서의 인간의 자세(姿勢) 등에 관하여 깊이 사색함으로써 한·당의 훈고학이 다루지 못하였던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내성적(內省的)·실천철학적인 여러 분야에서 새로운 유학사상을 수립하였다. 그 내용은 크게 나누어 태극설(太極說)·이기설(理氣說)·심성론(心性論)·성경론(誠敬論)으로 구별할 수 있다.

참고 자료

네이버 지식백과 성리학

201310212 이지형

주리론

정의

  • 성리학의 이기론(理氣論)에서 이(理)의 우위를 주장하는 이론.

내용

  • 「주리」라는 말은 퇴계 이황이 기대승에게 보낸 편지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고, 이후 대체로 영남학파 의해 계승, 발전되었다. 처음 이황이 이와 기가 서로 작용한다는 이기호발설(理氣互發設)]을 통해 이의 우위와 능동성을 주장한 이후 영남학자들은 별다른 논란 없이 이를 받아들였는데, 기호학자들이 율곡 이이의「기발이승도설(氣發理乘途設)」에 따라 이의 무능동성과 기의 능동성을 주장하자, 이기론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황의 학설을 옹호하는 학파의 성격을 강화해갔다. 그것은 이황이 죽은 뒤 100년이 지난 17세기후반 이현일(李玄逸)에서 시작되었는데, 그는 이이의 성리설을 19조목으로 비판했다.
  • 그의 아들 이재(李栽)는 한걸음 더 나아가 기의 작용을 기다리지 않고 이만으로도 이미 만물의 체용(體用)을 갖추고 있음을 주장했다. 이상정(李象靖)을 거쳐 유치명(柳致明)에 이르면 주리론은 한층 강화되어, 이가 우주의 주체이자 마음의 본체라는 데까지 나아가게 된다. 기호학파의 일부 학자들도 주리론을 주장했는데, 이항로(李恒老)는 이의 우위를 인정하는 입장이었고, 기정진(奇正鎭)은 일반적인 주리론에서 더 나아가 기가 이에 포함된다는 극단적인 「유리론(唯理論)」으로까지 발전시켰다. 주리론은 주기론과 조선 후기 내내 학문적·정치적으로 대립, 발전했으며, 정치 및 사회사상에 큰 영향을 끼쳤다.

참고 자료

네이버 지식백과 : 주리론

201310212 이지형

주기론

요약

  • 주기파(主氣派)는 ‘심즉기(心卽氣)’를 주장하는 이이가 기발설(氣發說)을 옹호한 조선시대 성리학의 2대 분파중의 하나이다. 경기·호남지방에서 성행하였으므로 기호학파(畿湖學派)라고도 한다.

내용

  • 조선왕조 성리학계의 일찍이 주기론(主氣論)을 주창한 것은 화담 서경덕(花潭 徐敬德)이었다. 그후 얼마 동안은 그의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이와 그를 이은 율곡학파가 이황의 이기호발설을 공격하자 퇴계학파는 이기호발설을 옹호하며 율곡학파를 ‘주기파’라고 불렀다. 그뿐 아니라, 율곡학파도 이기호발설을 공격하며 자파의 이론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기(氣)를 중심으로 보는 입장이 선명해져서 마지막에는 주기설을 주장하는 단계에까지 도달하였다. 이리하여 이이는 최초로 ‘심시기(心是氣)’라는 말을 사용했다. 곧 이이는 ‘심(心)의 주된 작용은 허령불매(虛靈不昧)한 지각(知覺)에 있으며, 이 지각은 이가 아니라 기에 속하는 것’이라 하여 ‘심시기’라고 하였다. 그후에 송시열은 이이의 해석을 따라 ‘심의 허령은 분명히 기’라고 하였고, 한원진(韓元震)은 ‘성(性)과 심을 구별하여 성이 이에 속한다고 한 이상 심은 기에 속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또한 임성주(任聖周)는 ‘심즉기’가 진리일 뿐 아니라 심과 성은 둘이면서도 하나이므로 성도 기라는 입장을 취하고 우주나 심의 본체가 오로지 기 하나 뿐이라고 주장하여 주기론의 정점을 이루었다.
  • 주기론에 속하는 학자는 임성주(任靖周)·임노(任魯)·임헌회(任憲晦) 등이다.

참고 자료

위기피디아 주기파

201310212 이지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