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녀봉
Meta Data
- 타입: 논산 8경 중 하나
- 한글명: 옥녀봉(玉女峰)
- 별칭 : 강경산(江景山)
- 소재지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북옥리
내용
옥녀봉은 논산 8경 중 하나로, 송재정(정자)과 봉수대에서 강경읍내나 금강을 조망하기에 좋다. 옥녀봉의 봉수는 조선 전기의 기록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도 기록이 되어 있는 바, 전라북도 익산시 용안면 광두원산(廣頭院山)의 봉수를 받아 논산 황화산성(黃華山城)과 논산 노성산성(魯城山城)으로 연락하였고, 노성산성 봉수대는 북쪽 공주 월성산(月城山) 봉수대로 전달했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 편찬된 지리지인 『여지도서(輿地圖書)』 은진현 산천조에는 “강경산은 은진현 관아에서 서쪽으로 20리 거리에 있고, 임천과의 경계에 있으며, 강변에 홀로 우뚝 솟아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나지막한 야산인 강경산이 역사적으로 주목받은 이유는 금강의 수로에 자리 잡고 있고, 평야 지대에 솟은 산으로서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에는 “은진의 강경 한 마을만은 충청도·전라도의 바다와 육지 사이에 있어 금강 남쪽 기슭의 평야 가운데에서 하나의 큰 도회를 이룬다.”고 하였고, 1808년 서영보·심상규 등이 펴낸 『만기요람(萬機要覽)』 재용 편에서도 전국의 가장 큰 시장의 하나로 강경장을 꼽을 만큼 강경산 주변은 번화한 지역이었다.
옥녀봉 정자에서 바라보면 사방이 거칠 것이 없이 훤하고, 논산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또 부여와 익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고, 평야와 강이 조화를 이루고 저멀리 산이 배경처럼 서 있어 한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한다. 옛날 이 산 아래로 흐르는 강물은 아주 맑았고, 산은 숲으로 우거져 있었으며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진 넓은 들이 있어 경치가 더없이 좋았다고 한다. 때문에 옥녀봉은 달 밝은 보름날 하늘나라 선녀들이 이 산마루에 내려와 경치의 아름다움을 즐겼고 맑은 강물에 목욕을 하며 놀았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옥녀봉 봉수대는 전북 익산 광두원산의 봉수를 받아 황화산성, 노성봉수로 연락을 취하던 곳이다. 송재정 바로 아래편에는 국내 최초의 침례교회 예배터인 강경침례교회가 자리하고 있어 성지순례지로도 유명하다.
옥녀봉이란 이름의 봉우리는 강경 옥녀봉외에도 거제 옥녀봉이 확인된다. 거제 옥녀봉은 경상남도 거제시에 있는 조선시대 거제현 옥림산 정상에 위치한 봉우리로 봉수대가 위치하고 있다.거제 옥녀봉 봉수대도 1993년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봉수대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보면, 거제현에는 봉화가 가라산 한 곳뿐이었다.
봉수는 봉(烽:횃불)과 수(燧:연기)로써 급한 소식을 전하던 전통시대의 통신제도이다. 전근대 국가의 가장 중요하고 보편적인 통신방법이었다. 높은 산에 올라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하였다. 주로 국가의 정치·군사적인 전보기능으로 이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가락국의 수로왕이 봉화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그 연원이 깊다. 거화를 통한 통신 방법의 확정, 전국 차원의 봉수선로 설정, 시설 확충 및 요원 배치, 관장 기관의 설립 등 국가의 통신체계로 확실하게 정비된 시기는 고려 중엽이며 이 틀은 대부분 조선시대로 이어졌다.
한국침례교회는 1889년 독립선교사로 한국을 방문한 말콤 펜윅 선교사에 의하여 창립되었다. 그는 1895년에 파울링(E.C. Pauling) 선교사 부부와 함께 서울에 도착하여 선교 거점을 충남 공주와 논산, 부여 등으로 정하고 선교 활동을 착수하였다. 강경침례교회의 역사는 1896년 아울링 선교사 일행이 한국 최초의 침례교회 성도인 지병석 씨 댁에서 첫 예배를 드리고 선교를 시작하였는데 그 예배처소가 강경읍 북옥리에 위치하고 있다.
촬영대상(계획)
옥녀봉 |
구 강경침례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