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소재 외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던 조선왕실의 의궤이다. 외규장각은 병인양요 당시, 강화도에 상륙한 프랑스 군대의 방화로 전각이 소실되었다. 5,000여 권 이상의 책이 함께 소실되었고, 의궤를 비롯한 340여 도서가 약탈되었다. 그렇게 약탈된 외규장각의궤는 거의 1세기가 다 되어가는 기간 동안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베르사유 분관 폐지 창고에 버려지다시피 방치되어 있었다. 더욱이 중국책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1979년 파리국립도서관에 근무하고 있던 박병선이 비로소 외규장각의궤의 행적을 밝혀내어 이 사실을 한국에 알렸다.
박병선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도움을 받아 『조선조의 의궤』(1985)를 펴내 프랑스국립도서관의 의궤도서들의 서지사항을 제시하고 국내 기관에 수장된 의궤도서들과 비교하였다. 그리고 1989년에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의궤도서들에 대한 해제 작업을 더 발전시켜 『왕실의궤』 해제서를 내는 작업을 진행했다. 아울러 프랑스어로 원고를 작성하여 이를 출판하고자 하였다. 의궤도서의 중요성을 프랑스 학계에 알리기 위한 작업이었다. 1980년부터 시작된 해제 작업은 10년이 걸려 1990년에 끝났다. 그러나 상업성이 없어 프랑스에서 출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으나 1992년 서울대의 지원으로 불어판 해제서를 출판할 수 있었다. 간행 기관은 서울대학교 규장각과 박병선이 일하고 있던 프랑스의 학술원에 해당하는 콜레주 드 프랑스 두 기관 공동 출판으로 하여 의궤도서의 중요성을 프랑스 석학들에게 알리는 기회가 되도록 배려하였다.
1993년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이 TGV의 대한민국 고속철도 수주를 위해 방한하면서, 『휘경원원소도감의궤』 상 1권을 반환하며 프랑스 외규장각 도서의 전체 반환을 약속했지만, 양국이 합의점을 찾지 못했었다. 대한민국 정부와 민간단체에서는 서로 다른 방법으로 프랑스 정부에 계속해서 외규장각 도서의 환수를 요구해왔으며, 대한민국의 시민단체인 문화연대 주도로,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여 패소하기도 하였다. 이후 2010년 11월, 대한민국의 서울에서 열린 서울 G20 정상회담에서 프랑스와의 정상 회담 이후 외규장각을 5년마다 갱신 대여하는 것으로 합의하였다.
2011년 4월 14일, 1차분으로 75권이 환수되었다. 2011년 5월 환수가 완료되어, 7월부터 그 중 일부를 국립중앙박물관을 통해 공개하였다. 그러나 환수는 5년마다 갱신해야 하는 대여 방식으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미완의 환수라는 점이 분명하다. 조선 왕실 의궤는 국립박물관의 수장고에 보관되지만, 그 소유권은 실제 프랑스가 갖고 있다. 소유권이 없기 때문에 조선의 상징적 문화재인 의궤를 우리의 문화재로 등록할 수도 없다. 전시나 연구 등을 위해 의궤를 다른 기관에 대여하는 것 등도 프랑스 측의 승인을 받아야 할 판이다. 결국에 제국주의에 약탈당한 문화재의 대표 격인 외규장각 의궤를 이 땅으로 가져오는 데는 성공했으나, 남은 과제 또한 엄존하는 셈이다. 외규장각 도서의 온전한 환수를 위해선 소유권을 한국정부가 가질 수 있는 추가적 조치와 협상이 요구된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