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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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이 지역은 고려시대 개성지역과 왕래하던 전통적인 포구지역이었으며, 갑곶나루와 함께 강화도에서 배를 댈 수 있는 몇 안되는 지역이다. 현 당산리 박촌마을 동쪽 끝자락 언덕 위에 있었다는 말이 전한다. 19세기 중엽에 그려진「강화관방도」에 따르면 승천보에는 동헌과 내사, 삼문이 모두 갖추어져 있었는데 동헌은 3칸의 기와지붕으로, 내사는 ‘ㄱ’자 건물로 꾸몄다. 효종 8년(1657) 신설되었던 승천보에는 종9품의 별장과 군관 25명에 토졸 16명을 배치시켰으며, 휘하에 석우, 빙현, 소우, 숙룡, 낙성돈대 등 모두 5개의 돈대를 관할하였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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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1.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성곽봉수편, 승천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