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해미읍성(瑞山海美邑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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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성곽. 사적 제116호. 현존하는 읍성으로 가장 잘 남아 있다.

유형 유적
시대 조선/조선 전기
성격 성곽, 읍성
크기 둘레 2,000m
규모(면적) 19만 4083㎡
소재지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16
소유자 국유, 사유
관리자 서산시
문화재 지정번호 사적 제116호
문화재 지정일 1963년 1월 21일

내용

사적 제116호. 지정면적 194,083㎡, 둘레 2,000m. 현재 남문인 진남문(鎭南門)과 동문·서문이 있고, 성내에 동헌(東軒)·어사(御舍)·교련청(敎鍊廳)·작청(作廳)·사령청(使令廳) 등의 건물이 있다.

본래 해미는 1414년(태종 14) 덕산(德山]에서 충청병마절도사영이 이곳으로 이설된 뒤 1651년(효종 2) 청주로 옮겨질 때까지 군사의 중심지였다.

이 성은 1491년(성종 22)에 축성하여 영장(營將)을 두고 서해안 방어를 맡았던 곳이다. 『여지승람』에 의하면, 당시 절도사영은 해미현의 동쪽 3리에 있었으며, 석성으로 둘레 3,172척, 높이 15척, 우물 세 군데, 군창이 설비되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편, 읍지에는 읍성의 둘레가 6,630척, 높이 13척, 치성(雉城: 성벽에서 돌출시켜 쌓은 성벽)이 380첩(堞), 옹성(甕城: 성문의 앞을 가리어 적으로부터 방어하는 작은 성)이 두 곳, 남문은 3칸이며 홍예(虹霓: 무지개 모양의 문)를 틀었고, 2층의 다락을 지었으며, 동문·서문도 3칸이나 북문은 없고, 우물이 여섯 군데이며, 성밖에 호(壕)는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으로 미루어, 조선 초기의 병마절도사영과 읍성과는 별개의 것으로 보이는데, 이 병마절도사영에는 이순신(李舜臣)이 1579년(선조 12)에 훈련원봉사(訓鍊院奉事)로 잠깐 근무한 적이 있다.

해미읍성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읍성으로는 가장 잘 남아 있어서 대표적인 표본으로 삼기 위하여 성안의 민가와 학교 등을 철거하고 성벽의 보수 등 연차적인 보수공사를 실시하였다.

즉, 1974년에 동문·서문이 복원되었고, 1981년 성내 일부를 발굴한 결과 현재의 동헌 서쪽에서 객사(客舍)와, 현재의 아문(衙門) 서쪽 30m 지점에서 옛 아문지가 확인되었고, 관아(官衙)를 둘러쌌던 돌담의 자취가 발견되었다.

사진 및 도면

사진

도면

관련 사이트

참고문헌

  • 『문화재대관(文化財大觀)』(충청남도, 1985)
  • 『해미읍성내건물지발굴보고서(海美邑城內建物址發掘報告書)』(충남대학교박물관, 1981)
  • 『문화재대관(文化財大觀) -사적편(史蹟篇)-』(문화재관리국, 1976)
  • 『서산군지(瑞山郡誌)』(서산군지편찬위원회, 1975)
  • [네이버 지식백과] 해미읍성 [海美邑城]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27030&cid=46656&categoryId=46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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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문화재청, 문화재정보
  2. 문화재청, 문화재정보


기여

역할 이름 전공
편집 김지선 인문정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