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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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 data

  • 타입: 인물
  • 한글항목명 : 김안로
  • 한자항목명 : 金安老
  • 편자: 심곡서원팀 [송유빈 KU |송유빈]

내용

  • 이름 : 김안로[金安老]
  • 생년 : 1481
  • 몰년 : 1537
  • 역할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 연안(延安). 자 이숙(頤叔). 호 희락당(希樂堂) ·용천(龍泉) ·퇴재(退齋). 1506년(중종 1)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갑과로 급제한 뒤,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고 대사간을 지냈다. 1519년 기묘사화 때는 조광조(趙光祖) 등과 함께 유배되었다. 1522년에 부제학(副提學)이 되고, 1524년에는 대사헌을 거쳐 이조판서가 되었다. 아들 희(禧)가 장경왕후의 딸인 효혜공주(孝惠公主)와 결혼한 뒤부터 권력 남용이 잦아 영의정 남곤(南袞), 대사헌 이항(李沆) 등의 탄핵을 받고 경기 풍덕(豊德)에 유배되었다.

1527년 남곤이 죽고 그 일파가 실각되자, 1529년에 풀려나와, 1531년에 다시 등용되었다. 이조판서를 거쳐, 1534년에는 우의정이 되고, 이듬해 좌의정에 이르렀다. 정적(政敵)에 대해서는 종친(宗親) ·공경(公卿)이라 할지라도 이를 축출하여 살해하는 등 무서운 공포정치를 펼쳤다. 정적이었던 문정왕후(文定王后)의 폐위를 도모하다가 중종의 밀령을 받은 윤안임(尹安任)과 대사헌 양연(梁淵)에 의해 체포되어 전라남도 진도로 유배형을 받았고, 이어 사사(賜死)되었다. 허항(許沆) ·채무택(蔡無擇)과 함께 정유삼흉(丁酉三凶)으로 일컬어진다. 저서에 《용천담적기(龍泉淡寂記)》가 있다.



요약

조선 전기의 문신. 잦은 권력 남용으로 탄핵을 받고 유배되기도 하였으나 다시 기용되었다. 정적에 대해서 무서운 공포정치를 한 끝에, 문정왕후의 폐위를 도모하다가 체포되어 유배되고 사사되었다. 허항 ·채무택과 함께 정유삼흉으로 일컬어진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