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신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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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정변 | |
한글명 | 갑신정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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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 | 甲申政變 |
시작시점 | 1884년 12월 4일(양력), 1884년 10월 17일(음력) |
종료시점 | 1884년 12월 6일(양력), 1884년 10월 19일(음력) |
주도자 |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서광범, 홍영식 |
기본 정보
- 갑신정변은 1884년(고종 21) 김옥균을 중심으로 한 급진 개화파가 민씨 집권 세력을 탄압하고 근대화를 목표로 일으킨 정변이다.
상세 정보
- 개화파에 호의를 보인 일본공사 다케조에(竹添進一郎)가 일본 공사관 병력 150명과 일화 3백만 엔을 빌려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이에 힘입어 개화파들의 거사계획은 급진되었다. 1884년 12월 4일 밤 개화파들은 우정국 건물 낙성을 축하하는 만찬회를 이용하여 부근 민가에 불을 지르고 고종이 거주하는 창덕궁 안팎에 화약을 터트렸다. 이러한 혼란을 예고했던 한규직, 이조연, 민태호,[1] 민영목, 조녕하 등을 살해하고 민영익[2]은 미수에 그쳤으며 고종에게 청군의 난동이라 속이며 그들을 포로로 만들었다. 갑신정변의 성패는 조선에 주둔한 청군의 동향에 달려 있었다. 개화파가 의지한 조선 주둔 일본군은 120명에 불과하였고 1,500명인 조선 주둔 청군에 비해 지나치게 열세했다. 갑신정변 3일째 되는 12월 6일 청군이 일본군을 공격하자 일본군은 패주했다. 위안스카이가 조선 국왕을 청군 진영으로 옮겨 갑신정변은 실패로 돌아갔다. 많은 개화파 지도자들과추종자들이 살해당하고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등 겨우 몇 사람만이 일본에 망명하여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