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氏禍福之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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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화복지변
- 天道福善而禍淫, 人道賞善而罰惡, 蓋由人操心有邪正, 行己有是非, 而禍福各以其類應之。詩曰: “求福不回”, 夫子曰, “獲罪於天, 無所禱也”, 蓋君子之於禍福, 正吾心而已, 修吾己而已, 福不必求而自至, 禍不必避而自遠, 故曰: “君子有終身之憂, 無一朝之患”。 禍苟有自外而至者, 順而受之而已, 如寒暑之過於前, 而吾無所與也。
- 하늘의 도(道)는 선한 이에게 복을 주고 멋대로 하는 이에게 화를 주며, 사람의 도는 선한 이에게 상을 주고 악한 이에게 벌을 주나니, 대개 사람이 마음가짐에 사특함과 바름이 있는 것과, 행동함에 옳고 그름이 있는 것을 따라서 화복이 각각 그 부류로 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경에, “복을 구하되 삿되게 하지 않는다.[1]” 하였으며 공자(孔子)께서는, “하늘에게 죄를 얻으면 빌 곳이 없다.[2]” 하였으니, 대개 군자는 화복에 대하여 자기 마음을 바르게 할 뿐이고 자기 몸을 닦을 뿐, 복은 구할 필요 없이 저절로 이르고, 화는 피할 필요 없이 저절로 멀어진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군자는 종신토록 할 근심은 있어도 하루 아침의 근심은 없다.[3]”고 한 것이다. 밖으로부터 화가 닥쳐오더라도 순응하여 그것을 받아들일 뿐이니, 마치 추위나 더위가 앞을 지나가도 나는 (그것과) 관여하지 않는 것과 같다.
- 彼佛氏則不論人之邪正是非, 乃曰: “歸吾佛者, 禍可免而福可得”。是雖犯十惡大憝者, 歸佛則免之, 雖有道之士, 不歸佛則不免也。假使其說不虛, 皆出於私心而非公道也, 在所懲之也。況自佛說興至今數千餘年, 其間事佛甚篤如梁武、唐憲者, 皆不得免焉, 韓退之所謂事佛漸謹, 年代尤促者, 此其說不亦深切著明矣乎?
- (그러나) 저 불씨는 사람의 사정(邪正)이나 시비는 논하지 않고 이에 말하기를, “우리 부처에게로 오는 자는 화를 면할 수 있고 복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비록 열 가지의 큰 죄악을 지은 사람일지라도 부처에게 귀의(歸依)하면 화를 면하게 되고, 비록 도(道)가 높은 선비일지라도 부처에게 귀의하지 않으면 화를 면할 수 없다는 말이다. [4] 가령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 할지라도 모두 사심(私心)에서 나온 것이요, 공도(公道)가 아니니 징계해야 할 것이다. 하물며 불설(佛說)이 일어났을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 천년이었는데, 그 사이에 부처 섬기기를 매우 독실하게 한 양무제(梁武帝)나 당헌종(唐憲宗)과 같은 이도 모두 화를 면하지 못하였으니, 한퇴지 [5]가 이른바, ‘부처 섬기기를 더욱 근실하게 할수록 연대(年代)는 더욱 단축되었다.’고 한 그 설 [6]이 또한 깊고도 간절하며 뚜렷하지 않은가?
주석
- ↑ 詩經, 「大雅_旱麓」, “莫莫葛藟、施于條枚。豈弟君子、求福不回。”
- ↑ 論語, 「八佾」, “王孫賈問曰:「與其媚於奧,寧媚於竈,何謂也?」子曰:「不然,獲罪於天,無所禱也。」”
- ↑ 孟子集注, 「離婁章句下」. 第二十八. “이렇기 때문에 군자는 종신토록 하는 근심은 있어도, 하루 아침의 걱정은 없는 것이다. 근심하는 바로 말하면 있으니, 순(舜)임금도 사람이며 나도 또한 사람인데, 순(舜)임금은 천하에 모범이 되어서 후세(後世)에 전할 만하시거늘, 나는 아직도 향인(鄕人)이 됨을 면치 못하였으니, 이는 근심할 만한 일이다. 근심하면 어찌하겠는가. 순(舜)임금과 같이 할 뿐이다. 군자(君子)의 걱정하는 바는 없으니, 인(仁)이 아니면 하지 않으며, 예(禮)가 아니면 행하지 않는다. 만일 하루 아침의 걱정이 있다 하더라도 군자(君子)는 걱정하지 않는다.… (…是故君子有終身之憂,無一朝之患也。乃若所憂則有之:舜人也,我亦人也。舜為法於天下,可傳於後世,我由未免為鄉人也,是則可憂也。憂之如何?如舜而已矣。若夫君子所患則亡矣。非仁無為也,非禮無行也。如有一朝之患,則君子不患矣。」…)
- ↑ 朱子語類, 「釋氏」. “…주희: 성인은 죽음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이미 죽었다면 다시 무엇을 말하겠는가. 성인은 태어난 이후와 죽기 전에 대해서 말했으며 반드시 그에게 정밀하고 세밀한 이해와 도리의 가르침을 주었다. 호명중(胡明仲) 시랑(侍郎)이 한 다음과 같은 말은 좋다. ‘사람은 살아있는 사물인데 부처는 삶을 말하지 않고 죽음을 말했으며, 사람의 일은 볼 수가 있는 것인데 부처는 드러난 것은 말하지 않고 드러나지 않은 것만 말했다.’ 석씨는 선악을 분간하지 않고 그(석가)를 높이는 사람은 곧 좋은 사람이며 그(석가)를 등지는 사람은 지옥에 간다고 한다. 살인을 한 도적일지라도 그(석가)를 높이면 천당에서 태어날 수 있다고 한다.…(…曰: 聖人不說死. 已死了, 更說甚事? 聖人只說旣生之後, 未死之前, 須是與他精細理會道理敎是. 胡明仲侍郎自說得好: ‘人, 生物也, 佛不言生而言死; 人事可見, 佛不言顯而言幽.’ 釋氏更不分善惡, 只尊向他底便是好人, 背他底便入地獄. 若是箇殺人賊, 一尊了他, 便可生天.…)”
- ↑ 중국역대인명사전. 한유(韓愈, 768-824) : 당나라 하남(河南) 하양(河陽) 사람. 자는 퇴지(退之)고, 창려선생(昌黎先生)으로도 불린다. … 수도의 장관을 탄핵했다가 덕종(德宗)의 노여움을 사 양산령(陽山令)으로 좌천되었다.
- ↑ 論佛骨表, “…漢明帝時,始有佛法,明帝在位,才十八年耳。其後亂亡相繼,運祚不長。宋、齊、梁、陳、元魏以下,事佛漸謹,年代尤促。惟梁武帝在位四十八年,前後三度捨身施佛,宗廟之祭,不用牲牢,晝日一食,止於菜果。其後竟為侯景所逼,餓死臺城,國亦尋滅。事佛求福,乃更得禍。由此觀之,佛不足事,亦可知矣。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