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氏慈悲之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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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자비지변
- 天地以生物爲心, 而人得天地生物之心以生. 故人皆有不忍人之心, 此卽所謂仁也. 佛雖夷狄, 亦人之類耳, 安得獨無此心哉? 吾儒所謂惻隱, 佛氏所謂慈悲, 皆仁之用也. 其立言雖同, 而其所施之方則大相遠矣. 蓋親與我同氣者也, 人與我同類者也, 物與我同生者也. 故仁心之所施, 自親而人而物, 如水之流盈於第一坎而後達於第二第三之坎. 其本深, 故其及者遠, 擧天下之物, 無一不在吾仁愛之中. 故曰, “親親而仁民, 仁民而愛物”, 此儒者之道, 所以爲一爲實爲連續也.
- 하늘과 땅은 만물을 生하는 것을 心으로 삼았는데, [1] 사람은 하늘과 땅의 [이러한] 만물을 生하는 心을 얻어서 태어났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두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을 지니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곧 이른바 仁이다. [2] 불씨는 비록 오랑캐이지만, 또한 사람의 부류일 뿐이니, 어찌 혼자만 이러한 마음이 없다고 하겠는가? 우리 유가가 말하는 측은지심과 불씨가 말하는 자비는 모두 仁의 작용이다. 仁의 작용에 대해 말한 것은 비록 같지만, 시행하는 방법에 있어선 매우 거리가 멀다. 대개 부모님은 나와 같은 氣를 가진 사람이고, 남은 인은 나와 [인간이라는] 동류이며, 외물은 나와 같이 生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仁한 마음을 베푸는 바가 부모님으로부터 타인과 외물에까지 미치는 것은 마치 물이 흘러서 첫 번째 구덩이에 찬 뒤에 두 번째, 세 번째 구덩이에 도달하는 것과 같다. 마음의 뿌리가 깊기 때문에 [仁心이] 멀리까지 미치는 것이니, 온 천하의 만물은 모두 내가 仁愛하는 가운데 있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맹자에서] “부모님을 친애한 뒤에 백성들을 인애하고, 백성들을 인애한 뒤에 만물을 사랑한다”[3]고 하였으니, 이것이 유학의 도가 하나이고 실제적이며, 연속되는 까닭이다.
- 佛氏則不然. 其於物也, 毒如豺虎, 微如蚊蝱, 尙欲以其身餧之而不辭; 其於人也, 越人有飢者, 思欲推食而食之, 秦人有寒者, 思欲推衣而衣之, 所謂布施者也. 若夫至親如父子, 至敬如君臣, 必欲絶而去之, 果何意歟? 且人之所以自重愼者, 以有父母妻子爲之顧藉也, 佛氏以人倫爲假合, 子不父其父, 臣不君其君, 恩義衰薄. 視至親如路人, 視至敬如弁髦, 其本源先失. 故其及於人物者, 如木之無根, 水之無源, 易致枯竭, 卒無利人濟物之效.
- [그러나] 불씨는 그렇지 않다. 그는 외물에 대해서는 그 표독함이 승냥이와 호랑이 같고 하찮기로는 모기나 등에 같은데 오히려 자신의 몸을 뜯어 먹이면서도 사양하지 않고 남에 대해서는 월나라 사람이 굶주리고 있으면 음식을 건네주어 먹이고자 하며, 진나라 사람이 추위에 떨면 옷을 건네주어 입히고자 하니, [이것이] 이른바 보시(布施)라는 것이다. [그런데] 부자(父子)처럼 매우 가까운 육친(肉親)이나, 군신처럼 매우 공경해야 할 관계는 필시 끊어버리고자 하니, 과연 무슨 의미인가? 또 사람이 스스로 신중히 하는 것은 부모와 처자가 있어서 그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돌아보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顧藉]인데, 불씨는 인륜이 일시적으로 합쳐진 것이라 여기기에 자식은 자신의 아버지를 아버지로 대하지 않고, 신하는 자신의 군주를 군주로 대하지 않으니, 은혜와 의리가 쇠잔하고 각박하다. 육친 보기를 길 가는 사람과 같이 하며, 지극히 공경해야 할 자 보기를 변변찮은 존재와 같이 하니, 그 본원을 먼저 잃은 것이다. 그러므로 [자비를] 남과 외물에까지 미치는 것은 마치 뿌리 없는 나무와 수원(水源)없는 물이 쉽게 말라버리는 것과 같으니, [불씨의 자비는] 끝내 사람을 이롭게 하고, 만물을 구제하는 공효가 없는 것이다.
- 而拔劍斬蛇, 略無愛惜, 地獄之說, 極其慘酷, 反爲少恩之人, 向之所謂慈悲者, 果安在哉? 然而此心之天, 終有不可得而昧者. 故雖昏蔽之極, 一見父母則孝愛之心油然而生, 盍亦反而求之, 而乃曰, “多生習氣未盡除, 故愛根尙在”, 執迷不悟, 莫此爲甚. 佛氏之敎, 所以無義無理, 而名敎所不容者此也.
- 칼을 뽑아 뱀을 베는 데는 약간의 애석함도 없고, [불씨의] 지옥설은 매우 참혹하여 도리어 은혜가 적은 사람이 되니, 앞에서 말한 ‘자비’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러나 이 마음의 천리는 끝내 어둡게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둠에 가려진 지극한 상태일지라도 부모를 한번 뵙고 나면 효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기게 되는 것인데, 어찌하여 또한 돌이켜 구하지 않고서 “윤회의 習氣을 아직 다 제거하지 못했기에 애욕의 뿌리가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 [4]고 말하는가? 미혹되어 깨닫지 못함이 이보다 더 심할 수 없다. 불씨의 가르침에는 義理가 없는 까닭에 유가[名敎]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이러하다.
주석
- ↑ 『周易』, 「復_彖」. “復, 其見天地之心乎. ” 【傳】 “其道, 反復往來, 迭消迭息. 七日而來復者, 天地之運行, 如是也. 消長相因, 天之理也. 陽剛君子之道長, 故利有攸往. 一陽復於下, 乃天地生物之心也. 先儒, 皆以靜爲見天地之心, 蓋不知動之端, 乃天地之心也. 非知道者, 孰能識之. ”
- ↑ 주자는 인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인은 천지가 만물을 생하는 마음이면서 사람이 얻어 생하는 것이다(仁者, 天地生物之心, 而人得以生者)’, ‘인은 천지가 만물을 생하는 마음이면서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仁, 乃天地生物之心, 而在人者)’, ‘인은 천지가 만물을 생하는 마음이면서 사람이 얻어 마음으로 삼는 것이다(仁者, 天地生物之心, 而人之所得以爲心).’” 주자의 이러한 이해, 곧 “만물을 생하는 심을 인으로 연결하는 것도 실은 정이에게서 연원한 것이다. ‘심은 생도이다. 이 심이 있으면 이 형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난다. 측은지심은 사람의 생도이다(心生道也, 有是心, 斯具是形以生, 惻隱之心, 人之生道也).’ ‘생도’란 사물을 생하는 심에 불과하고, 측은지심은 인의 단서이다. 정이는 ‘심은 예를 들면 곡식의 종자와 같다. 생의 성은 곧 인이다(心譬如穀種, 生之性, 便是仁也)’라고도 말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심은 만물을 생하는 심이다. 이 심은 예를 들면 곡식의 종자와 같은 것으로서, 생으로 향하는 의지를 내재한다. 생으로 향하는 의지는 본래성이며 인이다.” (오하마 아키라, 범주로 보는 주자학(이형성 옮김), 415쪽 및 439쪽)
- ↑ 孟子集註 「盡心章句上」. “孟子曰, 君子之於物也, 愛之而弗仁, 於民也, 仁之而弗親, 親親而仁民, 仁民而愛物.” 【注】 “物謂禽獸草木. 愛謂取之有時, 用之有節. 程子曰, 仁推己及人, 如老吾老, 以及人之老, 於民則可, 於物則不可. 統而言之, 則皆仁, 分而言之, 則有序. 楊氏曰 其分不同. 故所施, 不能無差等, 所謂理一而分殊者也. 尹氏曰, 何以有是差等, 一本故也, 無僞也.”
- ↑ 전거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