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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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김광섭(金珖燮, 1905년 9월 22일 ~ 1977년 5월 23일)은 대한민국의 시인, 번역문학가, 문학평론가, 독립운동가이다. 호는 이산(怡山)이다.
일생과 업적
- 이승만 대통령 공보비서관, 경희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했고, 중앙문화협회, 조선문필가협회를 창립했다. 대표작으로 「성북동 비둘기」가 있다.
- 1905년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어난 김광섭은 어린시절 한약방을 경영하시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북간도로 가족이 이주한다.
이후 1932년 일본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모교인 서울의 중동학교로 부임하여 후진양성에 힘쓰게 된다.
이 시기에 <극예술연구회>에서 활동하고 문인들과 교류하며 각종 신문에 시와 평론을 발표하며 문학 활동을 한다.
- 광복 전에 쓰여진 김광섭의 초기 시는 현실 부정과 자기 연민, 기다림 등으로 일관되어 있는데
이는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시대 상황으로 인한 지식인의 우수와 비애를 그린 것이다.
이 시기에는 시대적 배경으로 인한 고독과 불안, 허무 의식이 반영된 시를 발표한다.
비평을 통해 민족 문학의 건설을 강력히 주장한다. 말년에는 회고와 삶에 대한 초월을 주제로 시를 썼다.
- 1938년에 첫 집인 《동경》을 냈다. 1941년에는 학생들에게 민족 사상을 고취한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3년 8개월동안 수감하였다.
- 그의 대표작으로는 <저녁에>와 <성북동 비둘기>가 있는데
<저녁에>는 1969년 <월간중앙>에 발표된 작품이다. 이 시는 김광섭의 후기 작품으로, 화려한 시적 표현을 절제하여 한 폭의 수묵화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인간의 존재에 대한 성찰을 통해 인생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에 이르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그린 작품으로 별을 시의 제재로 삼아 관조적, 사색적 어조로 인간의 숙명적인 고독과 운명으로 노래한 상징적 성격의 서정시이다. 1970년 서양화가 김환기는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을 화제로 작품을 그렸다. 그는 질병, 가난, 시대적 상황 등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참된 인간의 의지와 정신력이 깃든, 건강하고 생명력 있는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성북동 비둘기>는 파괴되어가는 자연에 대한 향수와 문명 비판하는 자유시로, 교과서에 반드시 수록될 정도로 유명한 그의 대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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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만 전대통령의 '입' 역할을 하는 청와대 대변인은 시인 김광섭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1948녀 7월 24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취임한 이승만 대통령의 첫 공보비서관으로 그해 8월 임명되었다. 시인으로 일제 식민지 때 교육자와 언론인으로 활동한 그는 광복 후 미군정청 공보국장을 하다 발탁되었다. 당시 대통령비서관 적제에는 비서관장(현재의 대통령실장에 해당) 밑에 정무 3명, 공보, 서무, 문서 각 1명씩 등 8명의 비서관이 있었다. 당시 대통령 비서실 사무분담 규정안에 따르면, 공보비서관은 공보에 관한 사항뿐 아니라 대통령에게 접수된 진정서, 건의서 검토, 사상대책과 정보수집 등 민정에 관한 사항까지 맡았다. 김광섭 전 비서관은 유신체제가 등장한 이후인 1974년 '대통령'이라는 시를 써 우회적으로 박정희 정권의 장기집권을 비판하기도 했다.
- 그의 사후 그의 정신과 문학을 기리기 위해 1989년에 이산문학상이 만들어져 〈문학과지성사〉주관으로 시행되고 있다.
황순원과의 관계
황순원과 함께 경희대학교 국문과 조교수로 전임하여 김광섭, 주요섭, 조병화 등 동료 문인들과 함께 어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