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ckquote> 작품에서 상당수의 사물이 시장의 분주함을 표현하는 데에 직결되어 있다. 이에 '분주함' 노드에 '표현(expresses)' 엣지로 연결된 경우가 가장 많았다. 그 다음으로 '호기심'과 '아름다움'의 감정이 많이 연결되어 있었다. 당대 서울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그 가운데에서 아름다움을 느낀 인상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한가로운 일반 백성의 삶은 물론, 분주한 시장의 풍경까지를 한양의 주된 풍경으로 묘사하였다.</blockqu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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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공간정보(place)와 감정(impression) 사이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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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유각집출력4.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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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ckquote> 파란 장소 노드를 보면 당연하게도 서울에서 뻗어나간다. 그리고 연결되는 감정은 '애국심' 노드가 가장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여전히 분주함과 놀라움까지 보인다. 쓸쓸함과 한가로움의 감정 역시 유의미한 분량을 확인할 수 있다. 박제가는 북학파로도 이름이 널리 알려진 학자로, 좌상단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작품 전반에서 중국을 수 차례 언급한 바 있다. 이는 중국의 대도시와 서울을 단순히 비교한 것으로 해석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북학을 중시하면서도, 이미 상당 수준으로 발전한 서울의 도시적 면모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양의 발전 잠재성과 가능성을 통찰하였다고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는 박제가의 '정유각집'에 언급된 세 작품, '出惠化門 循城而卥二里 有倉曰城北屯。居民皆種桃 紅霧蒸成。隔岡有破寺 所謂北寺洞者。(이하 '출혜화문')', '北屯桃花下拈韻_同泠齋諸子 (이하 '북둔도화하점운')', '城市全圖應令 (이하 '성시전도')'를 연구 대상으로 한다. '출혜화문'과 '북둔도화하점운'은 성북동의 도화와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다. 한편 '성시전도응령'은 박제가가 활동하던 18세기 후반 성북동을 포함한 한양의 공간이 다양하게 언급되어 있는 작품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각 공간에서 백성들의 풍속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이와 더불어 단순히 그 외적인 양상만을 서술한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박제가의 생각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연구의 핵심은 "당시 서울 백성에 대한 박제가의 인상이 어떠하였는가?"라는 질문에 디지털 데이터를 바탕으로 답을 하는 과정으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강좌의 주요 프로젝트인 '성북동 소재 한문학 자원 데이터 모델'과 연결지어, 작품을 파악하고자 한다. 다만, '성시전도'에 성북동을 언급한 문장이 단 하나에 불과하므로,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 '出惠化門...(하략)', ' 北屯桃花下拈韻_同泠齋諸子'를 함께 참고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성시전도에서 성북동이 다른 지역과 비교했을 때 특히 강조되는 부분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백성들의 행위를 상세하게 다루기 위해, 각 구절에서 주어와 서술어, 즉 인물과 행동/생각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이 관계성을 분석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Neo4j를 활용하여 각 데이터 간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주된 초점은 각 노드에 대한 박제가의 인상(impression)이 어떻게 표현(expresses)되는지 파악하는 데에 있다.
연구 대상이 운문작품이니 시어를 통한 박제가의 시풍 분석에 중점을 둘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대 작가의 입장에서 같은 시어나 표현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것은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닐 것이라 생각하였다. 작품 전반에서 일관되면서도 반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요소가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다 내린 결론이 바로 '인상'이다. 서자 출신의 실학자 박제가의 시각에서 서울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흥미로운 공간이었으리라 예상한다. 또한 북학파 학자로서 서울의 발전에 대한 인사이트(insight)가 풍부했을 것도 예상할 수 있다.
흐름 '정유각집' 서문 중 이런 문구가 있다. 苟能學古而能變 創新而能典 今之文猶古之文也 (만약 능히 옛것을 배우되 변화할 줄 알고, 창신하되 능전할 수 있다면, 지금의 글이 옛날의 글과 같다) 이는 박지원이 써서 박제가에게 준 것으로, '정유각집' 전반을 관통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가치관이 두드러진다고 해석할 수 있다.
분석 '출혜화문'과 '북둔도화하점운'에는 각각 我輩十年無此人(우리들은 이런 사람이 10년 동안 없었으니), 那堪雅集十年稀(어찌 좋은 모임이 10년간 없었음을 견뎌냈을까)가 언급된다.
시사점 시각적으로 출력한 데이터와 함께 후술하겠지만, 두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감정(impression) 노드는 '한가로움'과 '즐거움'이다. 북사동 혹은 북둔을 방문하며 예전에는 인식하지 못하였던 여유와 즐거움을 느낀 대목을 확인할 수 있다. 익숙한 공간에서 새로운 인상을 느낀 이 과정에서도 박제가의 '법고창신' 정신이 녹아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눈으로만 텍스트를 읽으면 박제가의 파편화되고 단순한 인상이겠지만, 데이터 분석을 통해 사상적인 배경까지 참고할 수 있었다.
'성시전도응령'
배경 작품명에 응령(應令)이 들어갔는데 이는 정조 임금의 명령에 응하였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당대에는 한양의 모습을 상세하게 담은 '城市全圖'가 여러 판본으로 나왔는데, 정조는 이를 바탕으로 박제가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에게 시를 짓도록 명령하였다. 이번 데이터 분석을 통해 그 박제가는 독특하게도, 한양을 조선의 일부가 아닌 전체성을 지닌 도시로 묘사하며, 말 그대로 조감(鳥瞰)하는 새로운 시도를 하였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특징 상술한 번역을 참고하면 알 수 있듯, 박제가는 한양 일반 백성들의 현실적 감각에 초점을 두어, 사회 현실과 취미생활에 관심이 많았다. 감정(impression) 노드를 통해, 작품에서 묘사한 한양이 매우 생명력 있음을 확인하였고, 특히 이는 시장의 풍경과 놀이(광대와 사당패, 지패놀이 등)를 묘사한 장면에서 더욱더 두드러진다.
의의 성시전도에 대해 글을 남긴 다른 학자와 박제가의 차별점은 '평범'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점이다. 선행 연구에 따르면 신광화, 이덕무, 이만수, 유득공의 작품에는 한양의 제왕적 권위가 강하게 드러난다. 즉, 한양이 조선의 정치와 교육의 중심지로만 그려졌다는 것이다. 중화사상도 이와 더불어, 중국의 대도시와 비교하는 문장도 종종 확인되었다. 반면 박제가의 글에는 주로 상업과 거리가 그 묘사 대상이며, 인구가 조밀하고 물자가 풍부한 도시공간을 담았다. 이후 이학교, 신관호 등의 학자에게도 한양 백성의 평범한 모습에 주목하도록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작품에서 상당수의 사물이 시장의 분주함을 표현하는 데에 직결되어 있다. 이에 '분주함' 노드에 '표현(expresses)' 엣지로 연결된 경우가 가장 많았다. 그 다음으로 '호기심'과 '아름다움'의 감정이 많이 연결되어 있었다. 당대 서울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그 가운데에서 아름다움을 느낀 인상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한가로운 일반 백성의 삶은 물론, 분주한 시장의 풍경까지를 한양의 주된 풍경으로 묘사하였다.
(2) 공간정보(place)와 감정(impression) 사이의 관계
파란 장소 노드를 보면 당연하게도 서울에서 뻗어나간다. 그리고 연결되는 감정은 '애국심' 노드가 가장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여전히 분주함과 놀라움까지 보인다. 쓸쓸함과 한가로움의 감정 역시 유의미한 분량을 확인할 수 있다. 박제가는 북학파로도 이름이 널리 알려진 학자로, 좌상단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작품 전반에서 중국을 수 차례 언급한 바 있다. 이는 중국의 대도시와 서울을 단순히 비교한 것으로 해석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북학을 중시하면서도, 이미 상당 수준으로 발전한 서울의 도시적 면모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양의 발전 잠재성과 가능성을 통찰하였다고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