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語古義"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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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季氏, 魯大夫, 季孫氏也. 佾, 舞列也. 天子八, 諸侯六, 大夫四, 士二, 毎佾人數如其佾數. 言季氏以陪臣, | + | ○ <font color="green">季氏, 魯大夫, 季孫氏也. 佾, 舞列也. 天子八, 諸侯六, 大夫四, 士二, 毎佾人數如其佾數.</font> 言季氏以陪臣, 而<font color="green">敢僭用天子之禮樂</font>, 是可敢忍爲之事哉, 而<font color="green">尙忍爲之, 則何事不可忍爲.</font><br/> |
+ | <small>※'''초록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논어집주』와 동일한 표현.</small><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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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謝氏曰, “君子於其所不當爲, 不敢須臾處, 不忍故也, 而季氏忍此矣, 則雖弑父與君, 亦何所憚而不爲乎?”<br/> | ● 謝氏曰, “君子於其所不當爲, 不敢須臾處, 不忍故也, 而季氏忍此矣, 則雖弑父與君, 亦何所憚而不爲乎?”<br/> | ||
− | ● 夫子所論當時人物政治得失, 自今觀之, 似或有不甚切于學者. 然孔門弟子, 皆謹書之者, 何也. 夫子嘗曰, | + | <small>※ 사량좌(謝良佐)의 인용구는 『논어집주』와 동일하다.</small><br/><br/> |
+ | ● 夫子所論當時人物政治得失, 自今觀之, 似或有不甚切于學者. 然孔門弟子, 皆謹書之者, 何也. 夫子嘗曰, “<font color="blue">載之空言, 不若著之行事親切著明也.</font><ref> 『사기(史記)』 권130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에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공언을 실으려고(기록하려고) 할진댄, (어떠한) 사안을 집행함에 있어 몹시도 절실하고 현저히 분명한 것에 대해 보여주는 것이 최선이다.’라고 하였다.〔子曰 我欲載之空言 不如見之於行事之深切著明也〕” 하였다.</ref>” 蓋學將以有爲也. 故泛論義理, 不若卽事卽物, 直辨其是非得失之爲愈也. 如此等章, 實與春秋一經相表裏, 此當時諸子, 所以謹書而不遺也歟.<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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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ont face="함초롬돋움"> | ||
+ | ※(질문1) 佾, 舞列也. 天子八, 諸侯六, 大夫四, 士二. 佾의 매체성과 숫자의 의미.<br/> | ||
+ | ※(질문2) 子曰, “我欲載之空言, 不如見之於行事之深切著明也.” 의 의미. '空言'의 맥락.<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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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二章 MD0302'''=== | ||
+ | <html><img src="http://dh.aks.ac.kr/~susinsa/img/pdf_30.png"/></html><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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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font color="green">三家, 魯大夫, 孟孫叔孫季孫之家也. 雍, 周頌篇名. 徹, 祭畢而收其俎也. 天子宗廟之祭, 則歌雍以徹, 是時三家僭而用之.</font><br/> | ||
+ | ○ <font color="green">相, 助也. 辟公, 諸侯</font>及二王之後. <font color="green">穆穆, 深遠之意, 天子之容也. 此雍詩之詞, 孔子引之, 言三家之堂非有此事, 亦何取於此義而用之乎?</font> 擧其無知妄作之一端, 以明其僭禮大類如此.<br/> | ||
+ | <small>※'''초록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논어집주』와 동일한 표현.</small><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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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此通上章共爲三家僭禮而發, 蓋夫子作春秋之意也. 當時之人, 視三家僭禮, 不徒不能規其非, 反擧之以爲美談. 故夫子斥之, 以明其僭妄之罪, 且欲其聞而改之也. 夫位愈盛, 則責愈重, 祿愈高, 則任愈大. 詩曰, “<font color="blue">赫赫師尹, 民具爾瞻.</font>”<ref>[http://db.cyberseodang.or.kr/front/alphaList/BookMain.do?bnCode=jti_1c0202&titleId=C198 『시경·小雅』 「祈父之什」]</ref> 季氏魯之世卿, 衆之所倚賴, 而其無智妄作如此, 旣不足取信當時, 又非所以 ‘<font color="blue">垂裕後昆</font>’<ref>[http://db.cyberseodang.or.kr/front/alphaList/BookMain.do?bnCode=jti_1b0201&titleId=C220 『書經·商書』 「仲虺之誥」]</ref>, 故爲人之上而不知學, 其蔽必至於此.<br/> | ||
+ | ●(대주번역) 이 장은 윗 장(上章)과 통하여 모두 삼가三家가 예를 참람히 해서 발發하신 것이니, 대개 선생께서 춘추春秋를 지으신 뜻이다. 당시 사람들은 삼가三家가 예를 참람히 하는 것을 보고도 그 잘못을 단지 규간規諫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그것을 거론하며 미담美談으로 여겼다. 그래서 선생께서 그것을 배척하시어, 이로써 그 참람하고 망령된 죄를 밝히시고, 또 그 알려진 바를 바로잡고자 하신 것이다. 대저 지위가 성대할수록 책무는 더욱 무겁고, 봉록이 높을수록 임무는 더욱 커진다. 시에 이르기를, “참으로 빛나는 태사 윤씨여, 백성들이 모두 당신을 우르러보네(赫赫師尹, 民具爾瞻.)”라고 하였다. 계씨季氏는 노나라의 세경世卿이며, 뭇 백성이 의지하는 데도 그 무지無智하고 망작妄作함이 이와 같았으니, 이미 당시의 신뢰를 받기에 충분치 않았으며 또 수유후곤(垂裕後昆, 후세에 넉넉히 남김)함도 아니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윗자리에 있으면서도 배움(학문)을 모르면, 그 폐단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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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face="함초롬돋움"> | <font face="함초롬돋움"> | ||
※(질문1) <br/> | ※(질문1) <br/> | ||
− | ※(질문2) | + | ※(질문2)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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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五章 MD0305'''=== | ||
+ | <html><img src="http://dh.aks.ac.kr/~susinsa/img/pdf_30.png"/></html><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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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諸夏, 中國也。亡, 無也。視有如無之謂。此孔子傷時無上下之分而嘆之也。<br/> | ||
+ | ○ 제하는 중국이다. '亡'은 '없다(無)'는 것이다. 있는 것이 없는 것과 같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공자께서 당시 상하의 분별이 없음을 아파하시며 탄식하신 것이다.<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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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夫子毎視時俗之變, 雖一事之小, 必重嘆之, 以其所關係大也。今諸侯禮義之所在<ref> 《論語·季氏》: "天下有道,則禮樂征伐自天子出;天下無道,則禮樂征伐自諸侯出"</ref>, 而曾<font color="forestgreen">夷狄之不若</font color="forestgreen">, 則其爲變亦甚矣。此《春秋》所以作也。當此時, 雖周衰道廢, 禮樂殘缺, 而典章文物, 尚未湮墜, 孰知<font color="forestgreen">諸夏之不若夷狄</font color="forestgreen">? <font color="orangered">然夫子寧捨彼而取此, 則聖人崇實而不崇文之意, 可見矣。其作《春秋》也, 諸侯用夷禮則夷之, 夷而進於中國則中國之, 蓋聖人之心, 即天地之心, 遍覆包涵無所不容, 善其善而惡其惡, 何有於華夷之辨? 後之説《春秋》者, 蓋嚴華夷之辨, 大失聖人之旨矣。</font color="orangered"><br/> | ||
+ | ●(대주번역) 부자께서 매번 시속의 변질됨을 보시면, 비록 하나의 작은 일이라도 반드시 거듭 탄식하셨으니, 그것이 관계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지금 제후들이 예의의 주체가 되어, 이미 <font color="forestgreen">이적만도 못해졌으니</font color="forestgreen"> 그 변질됨이 또한 깊은 것이다. 이것이 《춘추》가 지어진 까닭이다. 이 때에 비록 주나라 왕실이 쇠하고 도가 폐해지고, 예악이 파괴되었지만, 전장·문물이 그래도 아직 민멸되지 않았으니, 누가 <font color="forestgreen">제하가 이적만 못해졌음을 알 수 있었겠는가</font color="forestgreen">? <font color="orangered">그러나 부자께서 차라리 저것(제하)을 버리고 이것(이적)을 취하셨으니, 성인께서 실(實: 예악)을 숭상하고 문(文: 전장·문물)을 숭상하지 않으시는 뜻을 볼 수 있다. 부자께서 《춘추》를 지으시며 제후가 이적의 예를 쓰면 이적으로 취급하셨고, 이적이 중국으로 나오면 중국으로 취급하셨으니, 성인의 마음은 곧 천지의 마음과 같아 두루 덮어주고 널리 감싸안아줌에 포용치 않음이 없으시어, 잘한 것은 잘했다고 해주시고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해주신 것이다. 화이의 분별이 무슨 상관이었겠는가? 후대에 《춘추》를 해설하는 자들이, 화이의 분별을 엄격히 하였으니, 성인의 본뜻을 크게 잃은 것이다. </font color="orangered">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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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六章 MD0306'''=== | ||
+ | <html><img src="http://dh.aks.ac.kr/~susinsa/img/pdf_30.png"/></html><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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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旅, 祭名也。泰山, 山名, 在魯地。《禮》諸侯祭山川在其封内者, 今季氏以陪臣祭之, 非禮也。 <br/> | ||
+ | ○ 여는 제사 이름이다. 태산은 산 이름인데 노나라 땅에 있다. 《예기》에서 제후는 자기 봉토 안에 있는 산천에 제사를 지낸다고 하였는데, 지금 계씨는 배신 주제에 (노나라 봉토 안에 있는 산에) 제사를 지냈으니 예가 아니다.<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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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冉有, 孔子弟子, 名求, 時爲季氏宰. 嗚呼, 歎辭。夫子欲冉有之救正其非, 既而知其不能, 則又美林放以勵之, 亦教誨之也。 <br/> | ||
+ | ○ 염유는 공자의 제자로 이름은 구이며 이 당시에 계씨 아래에서 읍재 노릇을 하고 있었다. '오호'는 탄식하는 말이다. 부자께서 염유가 계씨의 잘못을 구해주기를 바라셨지만, 잠시후 염유가 그리 할 수 없음을 아시게 됨에, 또 임방을 칭찬하여 염유를 면려하셨으니, 또한 염유를 가르치신 것이다.<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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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季氏舞八佾, 歌雍徹, 夫子既斥其僭竊, 今亦欲旅於泰山, 故夫子欲冉有之救之也。夫禮, 人之隄防也。禮立則人心定, 人心定則上下安, 上下安則彝倫得以叙矣, 庶事得以成矣。今季氏以臣僭君, 則是自壞其隄防也。神不享非禮, 民不祭非類, 季氏爲魯國卿, 而所爲如此, 何以率其民? 不智亦甚矣。<br/> | ||
+ | ●(대주번역) 계씨가 팔일무를 추게 하고 《옹》을 부르면서 제사를 물리니, 부자께서 이미 그 참람됨을 공박하셨는데, 지금 또한 태산에 여제사를 지내려 하였으므로, 부자께서 염유가 계씨의 잘못을 구제해주기를 바라신 것이다. 무릇 예란 사람에게 제방과 같은 것이다. 예가 확립되면 사람들의 마음이 안정되고, 사람들의 마음이 안정되면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관계가 편안해지며,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관계가 편안해지면 인륜이 펴지게 되고, 여러 일들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지금 계씨는 신하로서 군주의 예를 참람되이 행했으니, 이는 스스로 그 제방을 무너뜨린 것이다. 신은 예에 맞지 않는 제사는 흠향하지 않고, 백성들은 자기 동류가 아니면 제사 지내지 않는데, 계씨는 노나라의 경이면서도 행동하는 바가 이와 같았으니, 어찌 백성들을 솔선하여 이끌겠는가? 어리석음이 또한 매우 심하다 할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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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七章 MD0307'''=== | ||
+ | <html><img src="http://dh.aks.ac.kr/~susinsa/img/pdf_30.png"/></html><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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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言君子恭遜, 不與人爭, 其或有所爭者, 必也於射禮乎。蓋明其所爭者, 亦皆以禮而他無所爭也。<br/> | ||
+ | ○ 군자는 공손하여 남과 다투지 않으니, 혹여라도 다투는 바가 있다면 반드시 활쏘는 예에 있어서일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군자는 다투는 바 또한 모두 예로써 하고 그밖에는 다투는 바가 없음을 설명한 것이다.<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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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按《儀禮》大射之禮, 耦進三揖而後升堂, 射畢揖降, 以俟衆耦皆降, 勝者乃揖, 不勝者升, 取觶立飲也。照本文'下而飲'之語, 則與'不勝者升, 取觶立飲'不合, 窃謂不勝者下而獨飲, 無衆耦送觶之禮也。<br/> | ||
+ | ○ 《의례(儀禮)》의 대사례(大射禮)를 살펴보건대, 짝지어 나아가 세 번 읍한 뒤에 당에 오르고, 활쏘기가 끝나면 읍하고 내려와, 다른 짝들이 모두 내려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승자가 마침내 읍하면 패자가 올라가 술잔을 취해 선 채로 마신다고 했다. 경문의 '下而飲'이라는 말은 '패자가 올라가서 술잔을 취해 선 채로 마신다'는 말과 합치되지 않으니, 내 생각에는 패자가 내려와서 홀로 마시고, 여러 짝들이 술잔을 보내는 예는 없는 듯하다. <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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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言雍容揖遜如此, 則其爭也便君子, 而非若小人之以利害與人爭也。 <br/> | ||
+ | ○ 부드럽고 공손함이 이와 같으니, 그 다툼마저도 군자다워, 소인들이 이해로써 남들과 다투는 것과는 같지 않음을 말씀하신 것이다.<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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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此言君子唯於射有所爭, 則見君子於事, 總無與人爭也。君子以仁存心, 以禮存心, <ref>《孟子·離婁下》 孟子曰: "君子所以異於人者,以其存心也。君子以仁存心,以禮存心。"</ref>何爭之有? 其與人爭者, 皆小人, 不仁不禮之甚也。讀《論語》者, 至於夫子言'君子'諸章, 則不可不潛心覃思, 佩服體取, 若此章, 最其切要者歟。<br/> | ||
+ | ●(대주번역) 이 장에서는 군자가 오직 활쏘기에서만 다투는 바가 있음을 말했으니, 군자는 남과 다투는 일이 전혀 없음을 알 수 있다. 군자는 인(仁)으로써 마음을 보존하고, 예(禮)로써 마음을 보존하니, 무슨 다툴 것이 있겠는가? 남과 다투는 자는 모두 소인이니, 인하지 못하고 예의가 없는 것이 심하다. 《논어(論語)》를 읽는 사람은 부자께서 '군자'를 말씀하신 여러 장에 이르면, 마음을 침잠하여 깊이 생각하며, 가슴에 새기고 몸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니, 이 장과 같은 것은 가장 긴요한 곳이 아니겠는가.<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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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八章 MD0308'''=== | ||
+ | <html><img src="http://dh.aks.ac.kr/~susinsa/img/pdf_30.png"/></html><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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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此逸詩也。倩, 好口輔也。盼, 目黒白分也。言其美質也。馬氏曰: "絢, 文貌。" 凡畫繢事, 先布衆色, 然後以素分布其間以爲文, 蓋言身章<ref>《左傳‧閔公二年》: “衣, 身之章也。”</ref>之美也。《衛風·竹竿》之詩曰: "巧笑之瑳, 佩玉之儺。" 又言顔色之美, 與服飾之麗相稱, 其語意正相類。子夏適不知畫繢之事, 因讀此詩而有疑, 故爲問。<br/> | ||
+ | ○ 이는 일시(逸詩)이다. 천(倩)은 예쁜 보조개이다. 반(盼)은 눈동자의 검은자와 흰자가 또렷한 것이다. (사람의) 아름다운 바탕을 말한 것이다. 마씨(마융)이 말하기를, "현(絢)은 문채 나는 모양이다."라고 했는데, 무릇 옷에 색을 입힐 때, 먼저 여러 빛깔을 배치하고, 그 뒤에 흰 색을 그 사이사이에 나누어 배치하여 문채를 이루니, 아마도 옷의 아름다움을 말한 듯하다. 《위풍·죽간》편에 "어여삐 웃음에 치아가 곱고, 옥을 차고 걸음에 법도가 있네."라는 말이 있다. 얼굴빛의 아름다움이 복식의 고움과 잘 어울림을 또 말한 것이니, 그 말 뜻이 정말로 비슷하다. 자하가 다만 옷에 색 입히는 일을 몰랐기에, 이 시를 읽고 의문이 생겨 여쭌 것이다.<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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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繪, 畫衣服也。《考工記》云: "凡繪畫之事, 後素功。" 是也。子夏之所疑, 不在上二句, 而在'素以爲絢', 故夫子專以'繪事'告之也。<br/> | ||
+ | ○ 회(繪)는 옷에 색을 입히는 것이다. 《고공기》에 "무릇 색을 입히는 일은 흰색 작업을 뒤에 한다."라고 한 것이 이 예에 해당한다. 자하가 의문을 가진 곳은, 위 2구가 아니라 '素以爲絢'였기에, 부자께서 오로지 '繪事'로만 고해주신 것이다.<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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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子夏因夫子之言而悟"凡物有其質而後可以加文。然則人之於禮, 亦有其質而後可學乎。"<br/> | ||
+ | ○자하가 부자의 말씀을 인하여서 "무릇 만물은 바탕이 있은 뒤에야 문식을 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이 예에 대해서도 바탕이 있은 뒤에야 배울 수 있겠구나."라고 깨달은 것이다.<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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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ig> | ||
+ | ○ 起, 猶發也。言能起發我之志意也。夫子以其能會其意, 故以始可與言詩稱之。<br/> | ||
+ | ○기(起)는 틔워준다는 말과 같다. (자하가) 능히 나의 뜻을 틔워줄 수 있었다는 말이다. 부자께서 자하가 당신의 뜻을 이해했다고 여기셨기에, 더불어 시를 논할 만하다고 칭찬해주신 것이다.<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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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ig> | ||
+ | ● 此章子夏之所問, 夫子之所答, 初只尋常間談而本非有關於學問, 及乎子夏曰'禮後乎'而始爲至論也。夫禮以儉爲本, 至於風氣既開, 日趨繁文, 於是人惟視其繁文, 而不知其本之儉, 故曰: "禮與其奢也寧儉, 喪與其易也寧戚。" 子夏知之, 故曰: "禮後乎。" 苟非得聖人之意於言詞之素者, 其措詞豈能斷然若此乎? 林放聞夫子之論, 而初知禮之本; 子夏因論詩, 而自悟禮之後, 非放之所及也。<br/> | ||
+ | ●(대주번역) 이 장에서 자하의 물음과 부자의 대답은, 초반에는 다만 평범한 담화일 뿐이었으며 애초에는 학문과 관련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자하가 '예가 뒤라는 말이지요?'라고 하는 데 이르러서 비로소 고차원적인 논의가 되었다. 무릇 예는 검소함을 근본으로 하는데, 세상이 생겨나면서부터 날로 번다한 문식을 좇으니, 이에 사람들이 오직 그 번다한 문식만 볼 뿐, 그 근본의 검소함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부자께서) "예는 사치스럽기보다는 차라리 검소한 것이 낫고, 상(喪)은 깔끔하게 잘 치르느니 차라리 애통해하는 게 낫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자하가 이를 알았기에 "예가 뒤라는 말이지요?"라고 말한 것이니, 성인의 뜻을 평소의 말에서 깨달은 자가 아니라면, 그 표현이 어찌 이처럼 분명할 수 있겠는가? 임방이 부자의 말씀을 듣고 비로소 예의 근본을 알았는데, 자하는 시를 논하면서 예가 뒤라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으니, 임방이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다.<br/><br/> | ||
+ | ●論曰: 詩無形也。因物而變, 爲圓爲方; 隨其所見, 或悲或歡; 因其所遭, 一事可以通千理, 一言可以達千義。故非聞一而知二者, 不能盡詩之情。子夏聞畫繢之事而悟禮後之説, 可謂亞聞滄浪之歌而知自取之道者也<ref> 《맹자·이루상》 有孺子歌曰:『滄浪之水清兮,可以濯我纓;滄浪之水濁兮,可以濯我足。』孔子曰:『小子聽之!清斯濯纓,濁斯濯足矣,自取之也。』</ref>。<br/> | ||
+ | ●(논주번역) 시는 고정된 형체가 없다. 사물에 따라 변하여 둥글기도 하고 모나기도 하며, 본 바에 따라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며, 경우에 따라 하나의 일로 천 가지 이치를 꿰뚫기도 하며, 한 마디 말로 천 가지 뜻을 전달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하나를 듣고 둘을 아는 자가 아니라면 시의 뜻을 온전히 알 수 없다. 자하는 (부자로부터) 옷에 색 입히는 일에 대해 듣고서 예가 뒤라는 명제를 깨달았으니, 창랑가를 듣고 스스로 초래하는 이치를 깨달은 것에 버금간다고 할 만하다.<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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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九章 MD0309'''=== | ||
+ | <html><img src="http://dh.aks.ac.kr/~susinsa/img/pdf_30.png"/></html><br/> | ||
+ | <big> | ||
+ | 子曰: "夏禮吾能言</big><font color="orangered">句</font color="orangered"><big>, 之杞不足徴也; 殷禮吾能言</big><font color="orangered">句</font color="orangered"><big>, 之宋不足徴也。文獻不足故也。足則吾能徴之矣。"<br/><br/> | ||
+ | </big> | ||
+ | <big> | ||
+ | ○ 杞、宋, 二國名。杞, 夏之後; 宋, 殷之後。徴, 證也。文, 典籍也。獻, 賢也。言二代之禮, 吾往既聞之而能言其詳, 欲證之於夏殷而之杞、宋, 二國皆不足取以爲證, 以其文獻不足故也。文獻若足, 則吾能相證而傳之後世。蓋聖人不欲言無證之説也。<br/> | ||
+ | ○ 기와 송은 나라 이름이다. 기는 하의 후예이며, 송은 은의 후예이다. 징(徴)은 증명한다는 것이다. 문(文)은 전적이다. 헌(獻)은 현인이다. 다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대(=하, 은)의 예를 내가 예전에 들어서 그 상세함을 말할 수 있지만, 하와 은에 대해 증명하려고 기와 송에 가보니, 두 나라(=기, 송) 모두 취하여 증거로 삼기에 부족했으니, 문헌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문헌이 충분하다면, 내가 능히 증명하여 후세에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성인께서 증거 없는 말을 하고 싶지 않으셨던 듯하다.<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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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ig> | ||
+ | ● 先王之禮, 唯得夫子而後能傳於後世, 言之則存焉, 不言則亡焉。苟以其文獻不足而不言之, 則豈非夏殷之禮自我亡之乎。《中庸》曰: "上焉者, 雖善無徴, 無徴不信, 不信民不從。"<ref>《中庸章句》29장 "上焉者, 雖善無徵, 無徵不信, 不信民弗從. 下焉者, 雖善不尊, 不尊不信, 不信民弗從."이니라</ref> 故君子擇民之可信而言之, 見民之可從而行之。苟不察民之信從與否而強爲之, 則是誣之也。若老佛之説是已。凡渺茫不經, 如存如亡之説, 皆足以起人之惑而啓其好異之心, 故無徴之言, 聖人不道焉。仲尼祖述堯舜, 憲章文武, 是也。<ref>《中庸章句》30장: "仲尼祖述堯舜, 憲章文武; 上律天時, 下襲水土."</ref> 而後世儒者, 動稱伏犧、神農、黄帝, 甚而至於論盤古、燧人之世, 稱天皇、地皇之名, 吾知其非聖人之意也。<br/> | ||
+ | ●(대주번역) 선왕의 예는 오직 공자께서 얻으신 뒤에야 능히 후세에 전해질 수 있었으니, (공자께서) 말씀하시면 보존되었고, 말씀하지 않으시면 망실되었다. 만약 문헌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말하지 않는다면, 하은 2대의 예가 나(=공자)로 말미암아 망실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중용》에 이르기를, "상고시대의 것은 비록 훌륭한 것이라도 증거할 만한 것이 없으니, 증거할 만한 것이 없다면 미덥지 못하고, 미덥지 못하면 백성들이 따르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니, 그러므로 군자는 백성들이 믿을 수 있는 것을 가려내어 말하고, 백성들이 따를 수 있는 것을 보아 실천한다. 만약 백성들이 따를 수 있는지 여부를 살피지 않고 강요한다면, 이는 백성들을 속이는 것이다. 노자나 부처의 학설 같은 것이 이에 해당한다. 아득하고 상식에서 벗어나 있는 듯 없는 듯한 학설은 모두 사람들의 의혹을 일으켜 그 호기심을 자극하므로, 이는 징험할 수 없는 말이며 성인은 그러한 것을 말하지 않는다. 중니께서 요임금과 순임금의 가르침을 조술하시고, 문왕과 무왕의 법을 지키신 것이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후대의 유자들은 걸핏하면 복희·신농·황제를 들먹이며 심지어 반고나 수인씨의 시대를 논하고, 천황·지황의 이름을 들먹이니, 이는 성인의 뜻이 아님을 알겠다.<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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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ig><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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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十章 MD0310'''=== | ||
+ | <html><img src="http://dh.aks.ac.kr/~susinsa/img/pdf_30.png"/></html><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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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ig> | ||
+ | ○ 按經傳稱禘者非一, 其義各殊。此所謂禘者, 謂大廟之祭也。蓋王者既立始祖之廟, 又推始祖所自出之帝, 祀之於始祖廟, 而以始祖配之也。魯以周公之廟爲大廟, 而以文王爲所自出之帝, 祀之於大廟, 以周公配之也。灌者, 方祭用鬱鬯之酒, 灌地以降神也。自灌以前, 有禮之名, 而無禮之實, 及乎灌而降神, 始有其實, 故曰'灌而往者, 吾不欲觀之', 若曰'自始至終, 皆無可觀者也'。蓋魯僭用天子之禮, 故夫子歎之也。<br/> | ||
+ | ○ 살펴보건대, 경전에서 '체(禘)'라고 칭하는 것은 하나가 아니며, 그 뜻과 명칭이 다르다. 여기서 이른바 '체(禘)'라는 것은 태묘(大廟)에서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천자가 시조의 사당을 세운 뒤에 또 시조를 낳아주신 임금을 추숭하여 시조의 사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시조로써 배향한다. 노나라가 주공의 사당을 태묘로 삼고, 문왕을 (시조=주공을) 낳아주신 임금으로 삼아 태묘에서 제사를 지내고 주공으로 배향하였다. 관(灌)이라는 것은 제사 지낼 때를 당하여 울창주를 가지고 땅에 부어 신을 강림시키는 것이다. '관'이전에는 예의 이름만 있고 예의 실질은 없으나, '관'하여 신을 강림시킴에 미쳐서는 비로소 그 실질이 있게 되니, 그러므로 '울창주를 부은 뒤로부터는 내가 보고 싶지 않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볼 만한 바가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아마도 노나라가 천자의 예를 참람되이 사용하였기 때문에 부자께서 탄식하신 듯하다.<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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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ig> | ||
+ | ●實, 本也; 文, 末也。有此實而後有此文, 有此文而後有此禮。苟無此實, 則禮文皆虛而已。魯以侯國, 敢用天子之禮, 其亡實甚矣。宜夫子之不欲觀之也。其曰'不欲觀之'者, 甚嫉之之辭。嘗曰: "居上不寛, 爲禮不敬, 臨喪不哀, 吾何以觀之哉?" 亦甚嫉其無實也。<br/> | ||
+ | ●(대주번역) '실질'은 근본이고, '문식'은 말단이다. 이 실질이 있은 뒤에 이 문식이 있는 것이고, 이 문식이 있은 뒤에 이 예가 있는 것이다. 만약 이 실질이 없다면 예와 문식이 모두 공허한 것일 따름이다. 노나라는 후작국(侯爵國)의 신분으로 감히 천자의 예를 사용했으니, 그 실질을 잃은 것이 심하다. 부자께서 보고 싶어하지 않으신 것도 당연하다. '보고 싶지 않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매우 미워하는 표현이다. 부자께서 일찍이 '윗자리에 거하면서 관대하지 않고, 예를 행하면서 공경하지 않고, 상을 당하여 슬퍼하지 않는다면, 내가 무엇을 보겠는가?"<ref>《論語·八佾26》</ref>라 하셨으니, 역시 그 실질이 없음을 매우 미워하신 것이다.<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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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十一章 MD0311'''=== | ||
+ | <html><img src="http://dh.aks.ac.kr/~susinsa/img/pdf_30.png"/></html><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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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ig> | ||
+ | ○ 禘禮之意, 至深遠矣, 且以王者之祭, 故以不知答之, 蓋爲魯禘也。<br/> | ||
+ | ○ 체례(禘禮)의 뜻은 지극히 심원하고, 또 천자의 제사이기 때문에 '알지 못한다'고 대답하신 것이니, 아마도 노나라에서 체 제사를 지내기 때문인 듯하다.<br/> | ||
+ | ○ 示, 與視同。指其掌, 謂明且易也。弟子從傍, 見夫子言此, 自指其掌, 而記之也。<br/> | ||
+ | ○ 시(示)는 시(視)와 같다. '그 손바닥을 가리킨다'는 것은, 명백하고도 쉽다는 말이다. 제자가 곁에서 부자가 이를 말씀하시고 스스로 그 손바닥을 가리키는 것을 보고 기록한 것이다.<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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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ig> | ||
+ | ●禘者, 先王報本追遠之深意, 非仁孝誠敬之至, 不足以與此。苟通其説, 則於治天下, 何難之有? 蓋治天下之本, 在感應之孚, 而難以政刑智數致之, 故非德之至、誠之極, 則不足與知禘之説, 而於治天下, 亦不免以私意妄作。幸其自治, 非見聞智慮之所能及也。<br/> | ||
+ | ●(대주번역) 체 제사는 선왕이 (자신을 낳아준)뿌리에 보답하고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는 깊은 뜻이니, 인효성경(仁孝誠敬)의 지극함이 아니면 여기에 참여하기 부족하다. 그 내용을 잘 꿰고 있으면, 천하를 다스리는 데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천하를 다스리는 근본은 감응의 정성스러움에 달려 있지, 정형(政刑)이나 지수(智數: 계책)로 이루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지극한 덕과 지극한 정성이 없다면 체 제사의 내용을 아는 데 참여하기 부족하며, 천하를 다스리는 일에 있어서도 사사로운 뜻으로 함부로 하는 것을 면할 수 없다. 요행히 스스로 잘 다스린다 할 지라도, 견문(見聞)이나 지려(智慮)가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다.<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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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十二章 MD0312'''=== | ||
+ | <html><img src="http://dh.aks.ac.kr/~susinsa/img/pdf_30.png"/></html><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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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ig> | ||
+ | ○ 祭, 祭先祖也。祭神, 祭外神也。朱氏曰。此門人記孔子祭祀之誠意。<br/> | ||
+ | ○ 그냥 '祭'라고만 한 것은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것이다. '祭神'이라고 한 것은 천지신명께 제사 지내는 것이다. 주씨(주자)가 말했다. "이는 문인이 공자께서 제사 지내시는 정성스러운 뜻을 기록한 것이다."<br/> | ||
+ | ○ 夫子嘗言: "吾當祭之時, 或有故不得與而使他人攝之, 則此心缺然, 如未嘗祭也。" 以與上文相類, 故附記之。<br/> | ||
+ | ○ 공자께서 일찍이 "내가 마땅히 제사 지내야 할 때에 혹 사정이 생겨 참여할 수 없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대리하게 하면 마음이 제사를 지내지 않은 것처럼 허전하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윗 글과 서로 비슷하므로 덧붙여 기록한 것이다.<br/> | ||
+ | ○ 夫子之於祭祀, 盡其誠如此。<br/> | ||
+ | ○ 공자께서는 제사에 대해 그 정성을 다하심이 이와 같으셨다.<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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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ig> | ||
+ | ●論曰: 祭祀之禮, 人道之本。於是, 不盡其誠, 則人道缺焉, 其復何言? 夫人本於祖, 萬物本於天, 犲獺之賤, 皆知報本, 報本之心, 人之至情, 故聖人因其不得已之至情, 以立之宗廟, 具之犠牲, 陳之簠簋籩豆, 以伸其報本反始之情。若於外神之祭, 或崇其德, 或報其功, 皆盡吾不得已之至情而已爾。豈問其享與不享? "祭, 如在; 祭神, 如神在。" 聖人事神之誠如此。《禮》曰: "齊三日, 乃見其所爲齊者。" <ref>《禮記-祭義》 致齊於內,散齊於外。齊之日:思其居處,思其笑語,思其志意,思其所樂,思其所嗜。齊三日,乃見其所為齊者。</ref>又曰: "祭之日入室, 僾然必有見乎其位; 周還出戸, 肅然必有聞乎其容聲; 出戸而聽, 愾然必有聞其嘆息之聲。"<ref>《禮記-祭義》祭之日:入室,僾然必有見乎其位,周還出戶,肅然必有聞乎其容聲,出戶而聽,愾然必有聞乎其嘆息之聲。</ref> 皆衰世失道之論, 而非聖人崇德之言也。識者以《祭義》篇爲亂道之書, 可謂有見矣。<br/> | ||
+ | ●(대주번역) .다음과 같이 논한다. 제사 지내는 예는 인도(人道)의 근본이다. 따라서 그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인도가 손상되니, 또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무릇 사람은 조상을 뿌리로 삼고, 만물은 하늘을 뿌리로 삼으니, 이리나 수달 같은 천한 짐승도 모두 뿌리에 보답할 줄 알거늘, 뿌리에 보답하느 마음은 사람의 지극한 정이다. 그러므로 성인이 어찌할 수 없는 지극한 정을 말미암아 종묘를 세우셔서 희생을 갖추고 보궤와 변두를 진설하여 뿌리에 보답하고 처음을 돌이키는 정을 펼치셨다. 천지신명께 지내는 제사는 혹 그 덕을 높이고, 혹 그 공덕에 보답하는 것으로, 모두 나의 어찌할 수 없는 지극한 정을 다하는 것일 뿐이다. 흠향함과 흠향하지 않음을 어찌 따질 수 있겠는가? "조상님께 제사를 지낼 때는 조상님이 계신듯 하고, 천지신명께 제사 지낼 때는 천지신명이 강림한 것 같이 하라"고 하셨으니, 성인께서 신을 섬기신 정성이 이와 같았다. 《예기》에 이르기를, "3일간 재계하면 재계하는 대상의 모습을 보게 된다"라 했고, 또 이르기를, "제삿날에 제실로 들어가면 마치 그 자리에 조상님의 모습이 보이는 듯할 것이고, 제사를 마치고 돌아 나가면 숙연하게 조상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 할 것이고, 문 밖으로 나가서 들으면 개연히 조상님의 탄식 소리가 들리는 듯 할 것이다."라 했는데, 이는 쇠퇴한 시대의 도를 상실한 논의요, 성인께서 덕을 숭상하는 말씀이 아니다. 식자들이 《제의》편을 도를 어지럽히는 책으로 여긴 것은, 일리가 있다 할 만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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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十三章 MD0313'''=== | ||
+ | <html><img src="http://dh.aks.ac.kr/~susinsa/img/pdf_30.png"/></html><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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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ig> | ||
+ | ○ 王孫賈, 衛大夫。朱氏曰: "媚, 親順也。室西南隅爲奥。竈者, 五祀之一, 夏所祭也。凡祭五祀, 皆先設主而祭於其所, 然後迎尸而祭於奥, 略如祭宗廟之儀。如祀竈, 則設主於竈陘, 祭畢而設饌於奥以迎尸也。故時俗之語因以奥有常尊而非祭之主, 竈雖卑賤而當時用事, 喩自結於君, 不如阿附權臣也。賈, 衛之權臣, 故以此諷孔子。"<br/> | ||
+ | ○ 왕손가는 위나라 대부이다. 주씨(주자 집주)가 말했다. "'媚'는 가까이 하고 순종한다는 것이다. 방의 서남쪽 모퉁이가 아랫목이 된다. '竈'라는 것은 계절마다 지내는 다섯 제사 가운데 하나로, 여름에 제사 지내는 장소이다. 무릇 다섯 제사를 지낼 때 모두 먼저 그 해당 장소에서 제사를 지낸 뒤에 시동을 맞이하여 아랫목에다가 제사를 지내니, 종묘에서 제사를 지내는 의식과 대략 같다. 부뚜막에 지내는 제사는, 신주를 부뚜막 아궁이에 설치하고 제사가 끝나면 아랫목에 제수를 늘어놓고 시동을 맞이한다. 그러므로 시속의 유행하는 말에 아랫목이 항상 높임을 받지만 제사의 주인이 아니고, 부뚜막은 비록 비천하지만 특정한 시기(=여름)를 당하여 제사를 시행한다. 이것으로써 몸소 임금과 관계를 맺는 것이 권신에게 아부하는 것만 못함을 비유한 것이다. 왕손가는 위나라의 권신이었기에, 이것으로써 공자를 은근히 풍자한 것이다."<br/> | ||
+ | ○ 言"天至尊矣, 非奥竈之可比也。苟獲罪於天, 則媚於奥竈所能禱而免乎?" 明非但不可阿權臣, 雖君亦不可阿。<br/> | ||
+ | ○ 다음과 같은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하늘은 지극히 존귀하니, 아랫목 신이나 부뚜막 신이 비할 바가 아니다. 만약 하늘에 죄를 짓는다면, 아랫목 신이나 부뚜막 신에게 잘 보임으로써 빌어서 면할 수 잇겠는가?" 권신에게 아부하면 안 될 뿐만 아니라, 비록 임금이라도 아부해서는 안 됨을 분명히 하신 것이다.<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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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ig> | ||
+ | ●天之道, 直而已矣。夫火上而水下, 鳥飛而魚潛, 草木植而華實時, 善者天下以爲善, 惡者天下以爲惡, 斯之謂直。天地之間, 渾渾淪淪, 靡非斯道, 其欲以邪枉之道, 立於天地之間者, 猶投氷雪於湯火之中, 有遲有速, 必受其譴, 雖鬼神不能爲之福。故曰: "獲罪於天, 無所禱也。" 《詩》云: "永言配命, 自來多福。"<br/> | ||
+ | ●(대주번역) 하늘의 도(道)는 곧을 뿐이다. 무릇 불은 위로 올라가고 물은 아래로 내려가고,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풀과 나무는 뿌리로부터 자라나고 꽃과 열매는 제 철에 맞고, 선한 것을 천하 사람들이 선하게 여기고, 악한 것을 천하 사람들이 악하게 여기는 것, 이것을 일러 '곧다'고 한다. 하늘과 땅 사이에 흘러 넘치는 것이 이 도가 아님이 없으니, 사특하고 굽은 도로써 하늘과 땅 사이에 서려는 자는, 끓는 물과 불 속에 얼음과 눈을 던지는 자와 같다. 속도의 차이가 있더라도 반드시 그 견책을 받게되니, 비록 귀신이라 할지라도 그를 위해 복을 내려줄 수 없다. 그러므로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시경》에서도 말하기를, "길이 천명에 합치되면, 절로 많은 복이 온다."고 하였다.<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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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十四章 MD0314'''=== | ||
+ | <html><img src="http://dh.aks.ac.kr/~susinsa/img/pdf_30.png"/></html><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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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ig> | ||
+ | ○ 監, 視也。郁郁, 文盛貌。言其視夏商之禮而損益之, 故文章燦然, 以致其盛也。<br/> | ||
+ | ○ '監'은 본다는 것이다. '郁郁'은 문장이 융성한 모양이다. 주나라가 하왕조와 상왕조의 예를 보고서, 부족한 것은 보태고 남는 것은 덜어내었으므로, 문장이 찬란하여 그 융성함을 이루었음을 말한 것이다.<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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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ig> | ||
+ | ●聖人毎惡奢而從儉, 今於周之禮, 則獨從其文之郁郁者, 何哉? 蓋道以得當爲貴, 自治之道, 不可不儉; 朝廷之禮, 不可不備。夏商之禮, 質而不備; 周之禮, 文而得當。此夫子所以特從周也。聖人處事之權衡, 從而可知也。<br/> | ||
+ | ●성인께서는 매번 사치함을 미워하고 검소함을 따르셨거늘, 지금 주나라의 예에 대해서만은 유독 그 문장의 성대함을 따르신 것은 어째서인가? 도는 '마땅함을 얻음'을 귀하게 여기니, 스스로를 다스리는 도는 검소하지 않을 수 없지만, 조정의 예는 필요한 것을 갖추지 않을 수 없다. 하왕조와 상왕조의 예는 질박하여 갖추어지지 않은 바가 있었고, 주왕조의 예는 문장이 화려했으나 마땅함을 얻었다. 이것이 부자께서 특별히 주나라를 따르겠다고 하신 까닭이다. 성인께서 일처리를 하시는 기준을 이로부터 알 수 있다.<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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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十五章 MD0315'''=== | ||
+ | <html><img src="http://dh.aks.ac.kr/~susinsa/img/pdf_30.png"/></html><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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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ig> | ||
+ | ○ 大廟, 魯周公廟。孔子始仕之時, 入而助祭也。<br/> | ||
+ | ○ 태묘는 노나라 주공의 사당이다. 공자가 처음 벼슬할 때에 (태묘에) 들어가서 제사를 도왔다.<br/> | ||
+ | ○ 鄹, 魯邑名。孔子父叔梁紇, 嘗爲其邑大夫。孔子自少以知禮聞, 或人因此譏之。夫子言"不知而問即是禮也。" 蓋'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之意。<br/> | ||
+ | ○ 추(鄹)는 노나라의 고을 이름이다.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이 일찍이 그 고을의 대부였다. 공자는 젊어서부터 예를 잘 안다고 이름이 났기에, 혹인이 이로 인하여 그를 비난한 것이다. 부자께서는 "알지 못하여 묻는 것이 바로 예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니, 이는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다.'의 뜻일 것이다.<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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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ig> | ||
+ | ●聖人之於禮, 固無所不知。然但聞其名, 而於其器物事實, 則或有所未知者。故始入大廟, 毎事問耳, 亦謹之也。或人未知道, 徒以講名物度數爲知禮, 故以此譏之。夫子但曰"是禮也", 其意以爲'不知而問, 何禮如之?' 夫闕疑好問者, 君子之心也。苟以此爲心, 則智明識達, 於天下之事, 無所不得。故曰: "是禮也。" 猶曰: "是道也。"<br/> | ||
+ | ●성인은 예에 대하여 참으로 알지 못하는 바가 없다. 그러나 단지 그 명칭을 듣기만 하고 그 기물이나 사실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바가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태묘에 처음 들어갔을 때 매사를 물어보신 것일 따름이니, 또한 삼가는 태도였다. 혹인은 도를 알지 못하고, 오로지 명물도수에 정통한 것만을 예라고 여겼으므로 이로써 부자를 비난한 것이다. 부자께서 단지 "이것이 예이다"라고 말씀하셨으니, 그 생각에 '알지 못하는 것을 묻는 것, 이만한 예가 또 무엇이겠는가?라고 여기신 것이다. 의심스러운 것은 그대로 두고, 묻기를 좋아하는 것은 군자의 마음이다. 진실로 이것으로써 마음을 삼는다면 지혜가 밝아지고 지식이 통달하여 천하의 모든 일에 대해 터득하지 못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예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것이 도이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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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ig><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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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十六章 MD0316'''=== | ||
+ | <html><img src="http://dh.aks.ac.kr/~susinsa/img/pdf_30.png"/></html><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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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ig> | ||
+ | ○ <font color="green">皮, 革也。布侯而棲革於其中以爲的, 所謂鵠也。科, 等也</font color="green">。古者鄕黨習射之禮, <font color="green">專主於中而不主於貫革, 以人之力有強弱也。</font color="green">曰'古之道也'者, 嘆今之不然也。<br/> | ||
+ | ○ '皮'는 가죽이다. 과녁을 펼쳐서 가죽을 그 가운데에 둠으로써 표적을 삼으니 이른바 곡(鵠)이라는 것이다. '科'는 등급이다. 옛날 향당의 활쏘기를 실습하는 예에서는 오로지 표적에 명중하는 것만을 중시했지 과녁의 가죽을 뚫는 것은 중시하지 않았으니, 사람의 힘에는 강약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바로 옛날의 도이다'라고 하신 것은 오늘날에는 그렇지 못함을 탄식하신 것이다.<br/> | ||
+ | ○ 按: 射不主於皮, 今見于《儀禮·鄕射禮》<ref>《儀禮·鄉射禮》: "禮射, 不主皮. 主皮之射者, 勝者又射, 不勝者降." 鄭玄 注: "禮射, 謂以禮樂射也: 大射·賓射·燕射, 是矣. '不主皮'者, 貴其容體比於禮, 其節比於樂, 不待中爲雋也. 言不勝者降, 則不復升射也. 主皮者, 無侯, 張獸皮而射之, 主於獲也."</ref>, 蓋古射法之語也。<br/> | ||
+ | ○ 활쏘기에서 과녁 가죽을 뚫는 것을 중시하지 않는다는 말이 지금 《의례(儀禮)·향사례(鄕射禮)》에 보이니 아마도 옛날 활쏘는 법과 관련된 말이었던 듯하다.<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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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ig> | ||
+ | ●射之爲藝, 其中可以學而能, 其力不可以強而至。<ref>《논어집주》 "楊氏曰:「中可以學而能,力不可以強而至。聖人言古之道,所以正今之失。」"</ref>此古者之所以射不主皮也。蓋世道之變, 治亂升降之所由而分, 替者不可以復興, 汙者不可以復隆, 毎一變, 必一衰, 故雖服御器物·民俗歌謠之小, 君子必察焉。貫革之興, 其變小也, 然世道之不復古, 於是可見。此夫子之所以深嘆也。<br/> | ||
+ | ●활쏘기라는 기예에서 그 (과녁의 표적에)명중함은 배워서 능히 할 수 있지만, 그 (과녁의 가죽을 꿰뚫는)힘은 억지로 이룰 수 없다. 이것이 옛날에 과녁을 꿰뚫는 것을 중시하지 않은 까닭이다. 세도의 변화는 치란과 승강으로부터 말미암아 분화되는 것인데, 쇠퇴한 것은 다시 흥성할 수 없고, 낮아진 것은 다시 높아질 수 없으니, 한번 변할 때마다 반드시 한번 쇠퇴한다. 그러므로 비록 의복·탈것 같은 기물이나 민속 가요와 같은 사소한 것이라도 군자는 반드시 자세히 살핀다. 과녁의 가죽을 뚫는 것을 중시하는 풍습이 흥한 것은 사소한 변화이긴 하나, 세도가 다시는 옛 모습을 회복할 수 없게된 것을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부자께서 깊이 탄식하신 까닭이다.<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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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ig><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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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十七章 MD0317'''=== | ||
+ | <html><img src="http://dh.aks.ac.kr/~susinsa/img/pdf_30.png"/></html><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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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ig> | ||
+ | ○古者天子常以季冬, 頒來歳十二月之朔於諸侯, 諸侯受而藏之祖廟, 月朔則以特羊告廟, 請而行之, 謂之告朔之禮。餼, 生牲也。魯自文公, 始不視朔, 而有司猶供此羊, 故子貢以爲不行其禮, 徒供此羊, 此虚文耳, 故欲去之也。<br/> | ||
+ | ○옛날 천자가 항상 섣달에 이듬해 열두 달의 달력을 제후들에게 반포하면 제후들은 이를 받아 시조의 사당에 보관해두었는데, 섣달 그믐날이 되면 숫양을 제물로 삼아 사당에 고하여 (새 달력을) 청하여 시행하였는데, 이를 일러 곡삭의 예라 한다. '餼'는 날것의/살아있는 제물이다. 노나라는 문공 때부터 곡삭의 예를 행하지 않았는데, 담당 실무자들은 여전히 이 양을 제물로 바쳤다. 그러므로 자공은 예를 행하지도 않는데 헛되이 이 양만 바치는 것은 허례허식일 뿐이라고 여긴 것이다. 따라서 (양을 바치는 관행을) 없애버리고자 한 것이다. <br/> | ||
+ | ○愛, 猶惜也。夫子言'若汝可謂愛羊, 今我所幸者, 在羊存耳。禮雖廢, 猶得賴羊以識之; 若併去其羊, 則此禮遂亡。此我所以惜之也。'<br/> | ||
+ | ○'愛'는 아까워하다[惜]와 같다. 부자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만약 네가 양을 아까워한다고 말한다면, 내가 다행으로 여기는 바는 양(을 바치는 관행)이 남아 있다는 데 있을 뿐이다. 예가 비록 폐해졌더라도 양(을 바치는 관행)에 힘입어 (곡삭례를) 기억할 수 있지만, 만약 양(을 바치는 관행)까지 아울러 없애버린다면 이 예는 마침내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다. 이것이 내가 양(을 바치는 관행)을 아깝게 여기는 까닭이다."<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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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ig> | ||
+ | ●禮, 理也; 羊, 物也。禮隆則物賤, 禮汚則物貴。蓋禮隆則義爲之主, 用牛不可則用羊, 用羊不可則用豕, 故禮隆則物賤也; 禮汚則文爲之主, 循物則非禮, 故禮汚則物貴也。及乎其益衰也, 則人惟以物識禮, 而禮因物而存亡, 於是物益貴焉。故存羊, 即所以存禮也。子貢欲去餼羊, 其未達於此義乎!<br/> | ||
+ | ●예는 이치이고, 양은 사물이다. 예가 융성하면 사물은 천해지고, 예가 낮아지면 사물이 귀해진다. 무릇 예가 융성해지면 의로움을 위주로 하니, 소를 쓰려다가 안 되면 양을 쓰고, 양을 쓰려다가 안 되면 돼지를 쓴다. 그러므로 예가 융성하면 사물이 천해진다는 것이다. 예가 낮아지면 문식(文飾)을 위주로 하니 사물을 따르다 보면 예가 아니게 되므로, 예가 낮아지면 사물이 귀해진다는 것이다. (세도가) 더욱 쇠해지면 사람들은 오직 사물로써만 예를 기억하게 되니, 예가 사물에 힘입어 존재하고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사물이 더욱 귀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양(을 바치는 관행)을 보존해두는 것은 곧 예를 보존하기 위한 방법인 것이다. 자공이 곡삭례에 바치는 양을 없애고자 한 것은 이 뜻에 통달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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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十八章 MD0318'''=== | ||
+ | <html><img src="http://dh.aks.ac.kr/~susinsa/img/pdf_30.png"/></html><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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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ig> | ||
+ | ○ 魯之人士, 仰夫子之聖德久矣。而夫子自以臣子之禮處之, 於事君之禮, 自莫不盡, 且春秋時, 不知事君之禮, 故時人見夫子事君盡禮, 以爲諂也。<br/> | ||
+ | ○노나라의 선비들이 부자의 성덕을 우러러본 것은 오래돼었다. 그러나 부자께서 스스로 신하된 자의 예로써 처신하여 임금을 섬기는 예에 스스로 다하지 않음이 없었으며, 또 춘추 시대에는 (사람들이)임금을 섬기는 예를 알지 못하였기에 당시 사람들이 부자께서 임금을 섬기는 데 예를 다하시는 것을 보고 아첨이라 여긴 것이다.<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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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ig> | ||
+ | ●此夫子傷當時之薄俗而歎之也。人臣之於君, 以盡禮爲本, 譏夫子以爲諂者, 本非昏愚柔懦之人, 必是揚己敖物, 不知遜讓者之言, 其流必至於賊道, 故君子惡焉。荀子之言曰: "道義重則輕王侯"<ref>《荀子-脩身》: "志意脩則驕富貴,道義重則輕王公: 內省而外物輕矣。"</ref> 非也。王侯豈可輕者耶? 其輕王侯者, 適其所以不知道義也。<br/> | ||
+ | ●이는 부자께서 당시의 박한 풍속을 마음아파하시며 탄식한 것이다. 신하된 자는 임금에 대해 예를 다하는 것을 근본으로 여기니, 부자를 아첨한다고 비판한 자들은 본디 멍청하고 유약한 자들이 아니라, 필시 스스로를 떠벌리고 남들을 거만히 대하며 겸손겸양할 줄 모르는 자들의 말일 것이니, 그 폐해는 분명 도를 해치는 지졍에 이를 것이기에 군자가 (그들을)미워하는 것이다. 순자의 말에서 "도의가 무거워지면 왕과 제후도 가벼이 대할 수 있다"라고 하였지만, 이는 잘못된 말이다. 왕과 제후가 어찌 가벼이 대할 수 있는 자들이겠는가? 왕과 제후를 가벼이 대하는 자는 단지 도의를 알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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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十九章 MD03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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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定公, 魯君, 名宋。<br/> | ||
+ | ○정공은 노나라 군주이니 이름은 송이다.<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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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ig> | ||
+ | ●以尊臨卑, 易以簡, 故爲君之道, 在使臣以禮; 以下事上, 易以欺, 故爲臣之道, 在事君以忠。君而無禮則失臣, 臣而不忠則身戮, 故聖人之言, 猶規矩繩墨乎。從之則吉, 違之則凶, 所以爲天下之極也。非若佛老異端之書, 可以高遠奇特, 求之而得也。<br/> | ||
+ | ●높은 사람(=임금)으로써 낮은 사람(=신하)을 내려다 보면 간편하게 대하기 쉽다. 그러므로 임금 노릇하는 도는 신하를 예로써 부리는 데에 달려 있다. 아랫사람(=신하)으로써 윗사람(=임금)을 섬기다 보면 기만하기 쉽다. 그러므로 신하 노릇하는 도는 임금을 충으로써 섬기는 데 달려 있다. 임금이면서 무례하면 신하를 잃고, 신하면서 불충하면 극형을 당할 것이니, 따라서 성인의 말씀은 규구나 먹줄처럼 올곧은 것이다! 이 말씀을 따르면 길해지고, 어기면 흉해질 것이니, 이것이 바로 성인의 말씀이 천하의 표준이 되는 까닭이다. 이는 불가, 노장 등 이단의 책들이 고원함과 특이함으로써 구해야 얻을 수 있는 것과는 같지 않다.<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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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二十章 MD03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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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關雎》, 《周南》·《國風》詩之首篇也。淫者, 樂之過而失其正也; 傷者, 哀之過而害於和也。蓋《關雎》之樂, 其聲雖樂而不至淫, 雖哀而不至傷, 使聞者自得性情之正, 故夫子贊之。<br/> | ||
+ | ○《관저(關雎)》는 《주남(周南)》과 《국풍(國風)》 시의 첫 편이다. 음란하다는 것은 즐거움이 지나쳐 그 바름을 잃게 되는 것이고, 아파한다는 것은 슬픔이 지나쳐 조화로움에 해가 되는 것이다. 대개 《관저》의 음악은 그 소리가 비록 즐겁지만 음란한 데 이르지 않고, 비록 슬프지만 아파하는 데 이르지 않아,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성정의 바름을 얻도록 한다. 그러므로 부자께서 찬미하신 것이다.<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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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此專美《關雎》聲音之盛而言, 當與'師摯之始, 《關雎》之亂'章參看。夫聲音之玅, 可以感動鬼神, 而況於人乎?<ref>《論語·泰伯》 子曰:「師摯之始,《關雎》之亂,洋洋乎盈耳哉。」</ref>《關雎》之樂, 能合於中和之德而歸于性情之正, 夫子之所以取之也。蓋樂者人情之所宜有, 而哀亦人情之所不免。苟欲去人情之所宜有, 則至於絶物; 欲滅人情之所不免, 則至於害性。但《關雎》之樂, 其音樂而不淫, 哀而不傷, 聞之者邪穢蕩滌, 査滓融化, 自得性情之正, 樂之至美者也。然而'詩言志, 歌永言, 聲依永, 律和聲'<ref>《서경》 〈우서(虞書) 순전(舜典)〉에 “시(詩)는 뜻을 말로 표현한 것이요, 가(歌)는 말을 길게 읊는 것이요, 성(聲)은 길게 읊음에 의지한 것이요, 율(律)은 읊는 소리를 조화시키는 것이다.[詩言志 歌永言 聲依永 律和聲]”라고 하였다.</ref>, 則詩其本也。苟讀詩而善得其志, 則聲音自在其中矣。<br/> | ||
+ | ●이는 오로지 《관저》 음악 소리의 성대함을 찬미하여 말한 것이니, 응당 《논어(論語)·태백(泰伯)》편에 나오는 '師摯之始, 《關雎》之亂' 장과 함께 참고해 봐야 한다. 무릇 음악 소리의 묘함은 귀신도 감동시킬 수 있는데,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는가? 《관저》의 즐거움은 능히 중화의 덕에 합치될 수 있어 성정의 바름으로 귀결될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부자께서 취하신 까닭이다. 대저 즐거움이라는 것은 사람의 감정 중에서 응당 있을 수밖에 없는 바이고, 슬픔 또한 사람의 감정 중에서 피할 수 없는 바이다. 만약 사람의 감정 중에서 응당 있을 수밖에 없는 바를 제거하려고 한다면, 외물을 모두 끊어내는 지경에 이를 것이고, 사람의 감정 중에서 피할 수 없는 바를 없애버리려고 한다면, 본성을 해치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그러나 《관저》의 음악은 그 소리가 즐거우면서도 음란한 데 이르지 않고, 슬퍼하면서도 아파하는 데 이르지 않아, 듣는 이는 (마음 속의) 더러움이 씻겨나가고 찌꺼기가 녹아버려서 절로 성정의 바름을 얻게 되니, 음악 중에서 지극히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시(詩)는 뜻을 말로 표현한 것이요, 가(歌)는 말을 길게 읊는 것이요, 성(聲)은 길게 읊음에 의지한 것이요, 율(律)은 읊는 소리를 조화시키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시가 그 근본이 된다. 만약 시를 읽고서 그 뜻을 잘 터득할 수 있다면, 성음은 절로 그 가운데에 있게 될 것이다. <br/><br/> | ||
+ | ●按: 《小序》云: "《關雎》者, 后妃之德也。" 本不言何王后妃, 蓋言后妃之德宜如此。《鵲巣》, 《關雎》之應也。其序云: "《鵲巣》者, 夫人之德也。" 亦不的言何國夫人, 則所謂后妃, 亦不斥言何王后妃爲是。今觀《小序》之作, 其首句文辭古奥, 實出於古人之手, 其爲國史之作明矣。其下云云者, 猥瑣鄙俚, 不足觀之, 且自相矛盾, 不可據以爲信, 故今據 《小序》首句爲斷。<br/> | ||
+ | ●나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소서(小序)》에서 말하기를, "《관저》는 후비의 덕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여 본디 어느 왕의 후비인지 말하지 않았으니, 아마도 후비의 덕은 응당 이와 같아야 함을 말한 것인 듯하다. (소남의) 《작소(鵲巣)》는 (주남의)《관저》에 대응하는 작품이다. (《작소》의) 《소서(小序)》에서 말하기를, "《작소》는 부인의 덕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또한 어느 제후국의 부인인지 정확히 말하지 않았으니, 이른바 '후비'라는 것도 또한 어느 왕의 후비인지 직접 말하지 않은 게 옳은 듯하다. 지금 《소서》 지어놓은 것을 살펴보건대, 그 첫 구는 글이 고풍스럽고 그윽하여, 참으로 옛사람의 손에서 나온 것이니, 그것이 나라 사관의 작품임은 명백하다. 그(첫 구) 아래 어쩌구 저쩌구 한 것은 좀스럽고 비리하여 볼 만하지 않고, 또 자기들끼리 서로 모순되니, 근거하여 믿을 만하지 않다. 그러므로 지금 《소서》의 첫구만 근거로 하여 판단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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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二十一章 MD0321'''=== | ||
+ | <html><img src="http://dh.aks.ac.kr/~susinsa/img/pdf_30.png"/></html><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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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ig> | ||
+ | ○ 宰我, 孔子弟子, 名予。古者建邦立社, 必植樹以爲主。王者受命王天下, 必改前代之制, 以新人之觀聽。三木皆老蒼堅強, 隨地能生, 故三代建國, 自王朝至於侯國, 植之以爲社主, 至周兼寓使民畏刑之意, 蓋以古者戮人於社也<ref>《서경(書經)·하서(夏書)·감서(甘誓)》 에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사(社)에서 죽이되 나는 너의 자식까지 죽이리라.[不用命 戮于社 豫則努戮汝]”는 말이 나온다.</ref>。戰栗, 恐懼貌。宰我從解周人用栗之意如此。<br/> | ||
+ | ○ 재아는 공자의 제자로 이름은 여이다. 옛날에 나라를 세우고 사직을 건립할 때, 반드시 나무를 심어서 신주로 삼았다. 천자가 천명을 받아 천하에 왕노릇함에 반드시 전대의 제도를 고쳐서 사람들의 눈과 귀를 새롭게 한다. 세 나무는 모두 울창하고 튼튼하여 어느 땅이든 잘 자라므로 삼대에 나라를 세우면 천자국부터 제후국에 이르기까지 이를 심어서 사직의 신주로 삼았는데, 주나라 대에 이르러 백성들이 형벌을 두려워 하게 하는 뜻을 아울러 담았으니, 아마도 옛날에 사직에서 사람을 죽였기 때문인 듯하다. 전율은 두려워하는 모양이다. 재아가 주나라 사람들이 밤나무를 사용한 뜻을 이와 같이 풀이한 것이다.<br/> | ||
+ | ○ 言凡事既成矣, 不可復解説; 已遂矣, 不可復諫止; 已往矣, 不可復追咎。孔子以宰我所對, 既啓時君殺伐之心, 而其言已出不可復救, 故歷言此以深責之, 欲使謹其後也。<br/> | ||
+ | ○ 모든 일은 이미 이루어지면 더는 해설할 수 없고, 이미 끝나면 더는 간쟁하여 멈출 수 없고, 이미 지나가면 더는 쫓아가서 탓할 수 없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공자께서 재아의 대답이 이미 당시 임금(애공)의 잔인한 마음을 열어주었으나 그 말이 이미 내뱉어져서 더는 구제할 수 없다고 여겼으므로, 이를 차례대로 말씀하시며 깊이 꾸짖으신 것이니, 그 다음부터는 (재아로 하여금) 조심하도록 하고자 하신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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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ig> | ||
+ | ●人君之德, 莫大於愛民, 故古之君子, 與人君言, 必以愛民爲本, 救民爲急。夫萌蘖之生, 灌漑培養之, 猶恐其或不得生, 矧可屈折剪伐之以殘其生乎? 故可人君殺伐之心者, 君子諱言之, 恐其傷仁義之良心也。孟子曰: "君子遠庖厨。" 蓋爲此也。夫子之深責宰我, 宜矣。<br/> | ||
+ | ●임금의 덕은 백성을 사랑하는 것보다 큰 것이 없으니, 그러므로 옛날의 군자는 임금과 더불어 말할 때 반드시 백성을 사랑하는 것을 근본으로 여겼고, 백성을 구제하는 것을 급선무로 여겼다. 무릇 싹이 날 때는 물 주고 흙을 북돋아주어도 오히려 잘 자라지 못할까 걱정하거늘, 하물며 꺾어버리고 잘라버려서 그 자라남을 해치면 어떠하겠는가? 그러므로 임금의 잔인한 마음을 열어줄 수 있는 것을, 군자가 말하기 꺼려하는 것은 그것이 인의의 양심을 해칠까 근심해서이다. 맹자께서 "군자는 푸줏간을 멀리한다."라고 하신 것은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부자께서 재아를 심하게 꾸짖으심은 마땅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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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二十二章 MD0322'''=== | ||
+ | <html><img src="http://dh.aks.ac.kr/~susinsa/img/pdf_30.png"/></html><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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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ig> | ||
+ | ○ 管仲, 齊大夫, 名夷吾, 相桓公覇諸侯。器者, 所以成其用也。《春秋傳》曰: '覇王之器'<ref>《春秋左傳·閔公·元年》"親有禮, 因重固, 間携貳, 覆昏亂, 覇王之器也"</ref>, 是也。器小, 謂管仲所執之具甚小, 不濟用也。<br/> | ||
+ | ○ 관중은 제나라 대부로, 이름은 이오이며, 환공을 도와 제후들을 제패했다. 그릇이라는 것은, 그 쓰임을 이루기 위한 바의 것이다. 《춘추좌전》에서 말한 "패왕의 그릇"이 바로 이것이다. 그릇이 작다는 것은, 관중이 사용한 도구가 너무 작아서 쓰임을 이루지 못했음을 말한 것이다.<br/> | ||
+ | ○ 或人疑器小之爲儉。<br/> | ||
+ | ○ 혹인은 '그릇이 작다'는 것이 검소함을 의미하는 것인가 의심했다.<br/> | ||
+ | ○ 三歸, 義未詳, 或曰臺名。攝, 猶兼也。家臣毎一人, 必兼治數事, 管仲不然, 皆言其侈。 <br/> | ||
+ | ○ 삼귀는 뜻이 무엇인지 자세하지 않은데, 어떤 이는 대의 이름이라 한다. 섭(攝)은 '겸하게 하다'와 같다. 가신 한 사람마다 반드시 여러 일을 겸하도록 하게 해야 하는데, 관중은 그러지 않았다. 이는 모두 그 사치스러움을 말한 것이다.<br/> | ||
+ | ○ 爲禮者好備物, 故又疑不儉之爲知禮。<br/> | ||
+ | ○ 예를 차리는 사람은 사물을 갖추어놓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므로 (혹자가) 또다시 '검소하지 않음'이 '예를 아는 것'인가 의심한 것이다.<br/> | ||
+ | ○ 屏, 謂之樹; 塞, 猶蔽也。設屏於内, 以蔽内外也。坫, 在兩楹之間, 獻酬飲畢, 則反爵於其上。黄氏震曰<ref>黄震, 《黄氏日抄》권2: "鄭註謂: '坫在兩楹之間, 反爵其上.' 按: 今世釋奠反爵, 乃以四方板而圓坎其中. 或云: '此反坫之餘制. 然坫字從土, 而云在兩楹間, 豈常設之者歟?' 按《郊特牲》'臺門而旅樹, 反坫', 《雜記》'旅樹而反坫'. 鄭氏亦以樹為屛, 以反坫為反爵之地. 然《内則》載閣食之制, 云: '士於坫'; 《明堂位》載朝㑹之制, 云: '反坫出尊, 崇坫康圭'; 《士虞禮》載苴茅之制, 云: '僎于西坫上', 是則累土而為之者, 皆可名坫, 而坫亦有髙卑東西之不同, 非必反爵之處也. 如'臺門而旅樹', 反坫當是立反坫於臺門之内, 如今行在所之騏驥院·牛羊司與凡營壘, 多於臺門内, 立土牆之類歟. 鄭氏之釋反坫, 皆本《論語》, 其指坫為反爵, 皆本'好'之一字, 意兩君之好, 為飲酒故云耳. 然以坫之反為爵之反, 似異於經文, 又按《汲冢周書》云: '乃立五宫, 咸有四阿反坫', 註云: '反坫, 外向室也', 則反坫又非反爵之地. 反主坫言, 非主爵言也. 反殆向外之名, 坫殆别設大門屛之名. 豈兩君之好, 必欲容其儀衞之衆而為此外向之室歟? 世遠不可知. 若據《郊特牲》以反坫與臺門相聯, 《汲冢書》以反坫與四阿相聯, 則《論語》以反坫與樹塞門相聯, 恐均為宫室僭侈之事."</ref>: "反坫, 累土而爲之, 如今行在所之騏驥院·牛羊司與凡營壘, 多於臺門内, 立土墻之類。按《汲冢周書》云: '乃立五宮, 咸有四阿反坫。' 註云: '反坫, 外向室也。' 豈兩君之好, 必欲容其儀衛, 而爲此外向之室? 世遠不可知。" 此皆諸侯之禮, 而管氏僭之, 夫子所以譏其不知禮也。兩説如此, 然近世多從黄氏之説。<br/> | ||
+ | ○ 병풍을 일러 수(樹)라 한다. 색(塞)은 가린다는 것과 같다. 내부에 병풍을 설치하여 내부와 외부 사이에 가림막을 놓는 것이다. 점(坫)은 두 기둥 사이에 있는데, 술을 따라주고 마시는 일이 끝나면 술잔을 그 위에 되돌려 놓는다. 황진이 말했다. "반점은 흙을 쌓아서 만드는 것이니, 오늘날 행재소의 마굿간·외양간 및 망루 등에서 누대의 문 안에 많이들 세워놓는 흙담 따위의 것과 같다. 《급총주서(汲冢周書)》를 보면, '다섯 궁을 세움에, 모두 네 모서리의 반점이 있다.'는 말이 나오고, 그 주석에 이르기를 '반점은 바깥을 향해 나있는 방이다'라 했다. 어찌 두 군주가 우호를 다질 때, 굳이 의장과 호위를 갖추고서 이런 바깥을 향해 나있는 방을 만들었겠는가? 시대가 멀어졌으니, 알 수가 없다." 이는 모두 제후의 예인데, 관중이 참람되게 이를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부자께서 그가 예를 알지 못한다고 비난하신 까닭이다. 두 개의 설이 이와 같은데, 근세에는 황씨의 설을 많이 따른다.<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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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ig> | ||
+ | ●以德行仁則王, 以力假仁則覇。<ref>《孟子·公孫丑上》: "孟子曰:「以力假仁者霸,霸必有大國,以德行仁者王,王不待大。"</ref>管仲相桓公覇諸侯, 自世俗觀之, 其施爲事業, 固爲赫赫焉。然止於此耳, 若使管仲聞聖賢之學·唐虞三代之治, 豈難致哉? 子游爲武城宰, 以禮樂爲治, 曰: "割雞, 焉用牛刀?" 謂之物小而器大。若管仲之相齊, 專尚覇術, 功利是務, 不能致主於王道, 是割牛用雞刀, 謂之物大而器小。宜夫子譏管仲之器小, 後之居宰職者不可不知所從也。<br/> | ||
+ | ●덕으로써 인을 행하면 왕자이고, 힘으로써 인을 빙자하면 패자이다. 관중이 환공을 도와 제후들을 제패한 것은 세속의 시각에서 보면 그 사업을 시행한 것이 참으로 휘황찬란하다. 그러나 여기에 그쳤을 따름이었으니, 만약 관중이 성현의 학문과 요순삼대의 다스림을 들었다면 어찌 (그것을) 이루기 어려웠겠는가? 자유가 무성의 읍재였을 때 예악으로 고을을 다스리자, 공자께서 "닭잡는데 어찌 소잡는 칼을 쓰느냐?"라고 하셨으니, 대상은 작은데 도구가 큼을 말씀하신 것이었다. 관중이 제나라에서 재상노릇하면서는, 오로지 패술만을 숭상하고 공리에만 힘써서, 임금을 왕도에 이르도록 보좌하지 못했으니, 이것은 소 잡는 데 닭잡는 칼을 쓴 것으로서, 대상이 큰데 도구가 작음을 말씀하신 것이었다. 부자께서 관중의 그릇이 작음을 비판하신 것은 마땅하니, 훗날 재상의 직위에 있는 자들은 좇아야 할 바를 몰라서는 안 될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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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二十三章 MD0323'''=== | ||
+ | <html><img src="http://dh.aks.ac.kr/~susinsa/img/pdf_30.png"/></html><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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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ig> | ||
+ | ○語, 告也。大師, 樂官名。翕, 合也, 聚也。言樂有八音<ref>금(金)ㆍ석(石)ㆍ사(絲)ㆍ죽(竹)ㆍ포(匏)ㆍ토(土)ㆍ혁(革)ㆍ목(木)</ref>, 初起, 氣聚而不舒矣。<br/> | ||
+ | ○'語'는 '고해준다'는 것이다. 태사는 악관의 명칭이다. '翕'은 합해진다, 모인다는 것이다. 음악에는 8음이 있는데, 처음 시작할 때는 (각 음의)기운이 모여서 펴지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br/> | ||
+ | ○ 從, 讀爲縱, 放也。純, 和也。言樂之既放, 和而不乖, 猶五味相濟以相和也。皦, 明也。五音<ref>궁(宮), 상(商), 각(角), 치(徵), 우(羽).</ref>六律<ref>태주(太蔟ㆍ太簇), 고선(姑洗), 황종(黃鍾), 이칙(夷則), 무역(無射), 유빈(蕤賓).</ref>, 明而不混也。繹, 相續不絶如貫珠也。成, 樂之一終也。言樂之節奏如此, 故其感于心者亦然。<br/> | ||
+ | ○ '從'은 '縱'으로 읽으니, 풀어준다는 것이다. '純'은 어우러진다는 것이다. 음악이 한번 풀어지면 (각 음이)어우러지면서 어긋나지 않으니, 5가지 맛이 서로 섞여서 어우러지는 것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皦'는 분명하다는 것이다. 5음과 6률이 분명하여 뒤섞이지 않는 것이다. '繹'은 꿰인 구슬들처럼 서로 이어지면서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成'은 음악이 한번 끝나는 것이다. 음악의 리듬이 이와 같기 때문에 그것(음악)이 마음에 감응하는 것 역시 그러함을 말한 것이다.<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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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ig> | ||
+ | ●當時音樂殘缺, 伶官唯知論五音六律, 而不知樂之節奏有自然之序而其和在於絲毫之間, 況於其通性情心術之微者乎? 夫樂之於天下, 猶柁之於船, 或左或右, 隨其所轉; 將之於卒, 或進或退, 從其指麾。治亂盛衰, 毎與聲音相通, 故夫子爲大師, 一一指點而示之也。<br/> | ||
+ | ●당시에 음악이 쇠락하여 악관들은 오직 5음과 6률만을 알았고, 음악의 리듬에 본연의 질서가 있으며 그것(음악)의 어우러짐이 호리지차에 달려 있음을 알지 못했으니, 하물며 그것(음악)이 성정과 마음씀에 통하는 은미함을 알았겠는가? 무릇 음악과 천하의 관계는 키와 배와 관계와 같아서 왼쪽 오른쪽으로 움직임에 그 방향 전환을 따라 가고, 장수와 졸병의 관계와 같아서 진격하고 퇴각함에 그 지휘를 따른다. (천하의) 치란과 성쇠가 매양 음악 소리와 더불어 상통하므로 부자께서 태사를 위해 하나하나 중요한 지점을 짚어가며 알려주신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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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二十四章 MD0324'''=== | ||
+ | <html><img src="http://dh.aks.ac.kr/~susinsa/img/pdf_30.png"/></html><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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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ig> | ||
+ | ○ 儀, 衛邑。封人, 掌封疆之官。朱氏曰: "蓋賢而隠於下位者也。君子, 謂當時賢者。至此皆得見之, 自言平日不見絶於賢者, 而求以自通也。" <br/> | ||
+ | ○ 의(儀)는 위(衛)나라의 읍이다. 봉인은 국경을 담당하는 관리이다. 주씨(주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마도 어질면서 낮은 지위에 은거한 자였던 듯하다. '군자'는 당시의 어진 이를 말한다. 여기에 이르면 모두 만나봤다는 것은, 평소 어진 이에게 물리침 당하지 않았음을 스스로 말하여서 자기 자신을 알리기를 구한 것이다."<br/> | ||
+ | ○ 朱氏曰: "喪, 謂失位去國。《禮》曰: '喪欲速貧' <ref>《禮記·檀弓上》: "有子問於曾子曰:「問喪於夫子乎?」曰:「聞之矣:喪欲速貧,死欲速朽。」"</ref>是也。木鐸, 金口木舌。蓋施政教時, 所振以警衆者也。" 言天下久亂, 道將自絶, 故天將使夫子爲木鐸, 詔道於萬世, 一時得喪, 豈足以爲患乎? <br/> | ||
+ | ○ 주씨(주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상(喪)은 지위를 잃고 나라를 떠나는 것이다. 《예기》의 '지위를 잃으면 빨리 가난해지려고 한다.'는 용례가 이것에 해당한다. 목탁은 금속으로 된 주둥이 안에 나무로 된 혀가 있는 모양의 물건이다. 대개 정교를 베풀 때 흔들어서 뭇사람들을 경계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천하가 오래도록 어지러워 도가 장차 끊어지려 하므로, 하늘이 장차 부자로 하여금 목탁이 되게 하게 하여 만세에 도를 고하게 할 것이니, 일시적으로 (공자가) 지위를 잃더라도 어찌 걱정할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말한 것이다.<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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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ig> | ||
+ | ●門人親愛夫子深矣, 故不得不以其失位爲患。封人一見夫子, 遽以木鐸稱之, 其所以慰喩弟子者至矣。蓋不以一時得喪爲患, 而以木鐸萬世爲幸, 其見可謂卓矣。嗚呼異哉!<br/> | ||
+ | ●문인들은 부자를 친애하는 정도가 깊어서, 부자의 지위 상실을 근심으로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봉인은 부자를 한번 뵙자마자 대번에 목탁으로 칭하였으니, 그가 제자들을 위로하고 깨우친 바가 지극하다. 일시적인 지위 상실을 근심으로 여기지 말고, 만세에 목탁 노릇함을 다행으로 여기라고 한 것이니, 그 식견이 가히 탁월하다 할 만하다. 아, 참으로 빼어나구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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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二十五章 MD0325'''=== | ||
+ | <html><img src="http://dh.aks.ac.kr/~susinsa/img/pdf_30.png"/></html><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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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ig> | ||
+ | ○ 韶, 舜樂; 武, 武王樂。美者, 聲容之盛; 善者, 美之實也<ref>朱子, 《論語集注》: "韶,舜樂。武,武王樂。美者,聲容之盛。善者,美之實也。"</ref>。<br/> | ||
+ | ○ 소(韶)는 순임금의 음악이고, 무(武)는 무왕의 음악이다. '아름답다'는 것은 (음악)소리와 (춤추는)모습의 성대함이고, '선하다'는 것은 '아름다움'의 실체이다.<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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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ig> | ||
+ | ● 美者, 如鐘鼓管籥之音、干戚羽旄之容是也。善則指其德而言, 所謂"聞其樂而知其德"<ref>《맹자》 〈공손추 상〉 “예를 보면 그 나라의 정사를 알 수 있고 악을 들으면 그 군주의 덕을 알 수 있다.[見其禮而知其政, 聞其樂而知其德.]”</ref>是也。舜以揖遜而有天下, 武王以征伐而得天下。此韶之所以盡美盡善, 而武之未盡善也。聖人右文而左武, 崇德而惡殺, 故其言如此。蓋論其樂云然, 非論舜武之優劣也<ref>朱子, 《論語集注》: "舜紹堯致治,武王伐紂救民,其功一也,故其樂皆盡美。然舜之德,性之也,又以揖遜而有天下;武王之德,反之也,又以征誅而得天下,故其實有不同者。程子曰:「成湯放桀,惟有慚德,武王亦然,故未盡善。堯、舜、湯、武,其揆一也。征伐非其所欲,所遇之時然爾。」"</ref>。<br/> | ||
+ | ● 아름답다는 것은 여러 악기들의 소리나 무용에 쓰이는 소품들의 모습 따위가 이에 해당한다. 선하다는 것은 그 덕을 가리켜 말한 것이니, 이른바 "그 음악을 들으면 그 군주의 덕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이에 해당한다. 순임금은 (요임금의) 선양으로써 천하를 소유하였고, 무왕은 (주왕을) 정벌함으로써 천하를 얻었다. 이것이 바로 소(韶)는 지극히 아름답고 지극히 선하지만 무(武)는 지극히 선하지 못한 까닭이다. 성인께서 문을 높이고 무를 낮추시며, 덕을 숭상하고 살육을 미워하시므로 그 말이 이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 음악이 그렇다는 것을 논했을 뿐, 순임금과 무왕의 우열을 논하신 것은 아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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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二十六章 MD0326'''=== | ||
+ | <html><img src="http://dh.aks.ac.kr/~susinsa/img/pdf_30.png"/></html><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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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居上者以寛爲道, 而不欲好察; 禮以敬爲本, 而不在文飾。喪以哀爲主, 而不在備物。居上不寛, 則下無全人<ref>《論語集注·子路》仲弓爲季氏宰, 問政. 子曰: "先有司, 赦小過, 擧賢才." 集注: "范氏曰: 「不先有司, 則君行臣職矣; 不赦小過, 則下無全人矣. 不擧賢才, 則百職廢矣.」"</ref>; 爲禮不敬、臨喪不哀, 則本實既亡, 何所觀感邪?<br/> | ||
+ | ○ 윗자리에 있는 사람은 관대함으로써 도를 삼아야지 너무 깐깐하게 살피고자 해서는 안 된다. 예는 공경함을 근본으로 삼아야지 겉으로 꾸미는 데에 치중하면 안 된다. 상례는 슬퍼함을 위주로 해야지, 예물을 갖추는 데 치중해서는 안 된다. 윗자리에 있으면서 관대하지 못하면 아랫 사람들 가운데 온전한 사람이 없게 된다. 예를 행하면서 공경하지 않고 상례에 임하여 슬퍼하지 않는다면 근본과 실질이 이미 망실되어 버리니, 보고 느낄 만한 바가 무엇이겠는가?<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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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ig><br/><br/> | ||
=='''「子張」 MD19'''== | =='''「子張」 MD19'''== |
2022년 12월 26일 (월) 17:47 기준 최신판
목차
- 1 「學而」 MD01
- 2 「爲政」 MD02
- 2.1 一章 MD0201
- 2.2 二章 MD0202
- 2.3 三章 MD0203
- 2.4 四章 MD0204
- 2.5 五章 MD0205
- 2.6 六章 MD0206
- 2.7 七章 MD0207
- 2.8 八章 MD0208
- 2.9 九章 MD0209
- 2.10 十章 MD0210
- 2.11 十一章 MD0211
- 2.12 十二章 MD0212
- 2.13 十三章 MD0213
- 2.14 十四章 MD0214
- 2.15 十五章 MD0215
- 2.16 十六章 MD0216
- 2.17 十七章 MD0217
- 2.18 十八章 MD0218
- 2.19 十九章 MD0219
- 2.20 二十章 MD0220
- 2.21 二十一章 MD0221
- 2.22 二十二章 MD0222
- 2.23 二十三章 MD0223
- 2.24 二十四章 MD0224
- 3 「八佾」 MD03
- 3.1 一章 MD0301
- 3.2 二章 MD0302
- 3.3 五章 MD0305
- 3.4 六章 MD0306
- 3.5 七章 MD0307
- 3.6 八章 MD0308
- 3.7 九章 MD0309
- 3.8 十章 MD0310
- 3.9 十一章 MD0311
- 3.10 十二章 MD0312
- 3.11 十三章 MD0313
- 3.12 十四章 MD0314
- 3.13 十五章 MD0315
- 3.14 十六章 MD0316
- 3.15 十七章 MD0317
- 3.16 十八章 MD0318
- 3.17 十九章 MD0318
- 3.18 二十章 MD0320
- 3.19 二十一章 MD0321
- 3.20 二十二章 MD0322
- 3.21 二十三章 MD0323
- 3.22 二十四章 MD0324
- 3.23 二十五章 MD0325
- 3.24 二十六章 MD0326
- 4 「子張」 MD19
- 5 주석, Footnote
「學而」 MD01
一章 MD0101
○學, 效也, 覺也. 考諸古訓, 驗之見聞, 有所效法而覺悟也. 習, 溫習也. 說, 悅同, 喜也. 言旣學矣, 而時時溫習, 則智開道明, 猶大寐頓覺, 跛者忽起, 而有不堪其悅者矣. 蓋道之浩浩, 唯學得以盡之, 而非習, 則亦不能造其極, 故聖人以學爲貴, 而習爲要也.
○朋, 同類也. 其學足以被乎遠, 則君子善與人同之志得遂, 而足以見我德之不孤, 何樂如之.
○慍, 怒也. 君子, 成德之稱, 言德備於己, 則富貴爵祿, 毁譽得喪, 一切無所動乎其中, 故雖人不知而輕賤之, 毫無所怒, 學之至也. 蓋其道愈大, 則識之者愈少, 是君子之所以不慍也.
●此夫子自言其意中之事, 以勸勉人也. 言適其心則悅, 遂其願則樂, 皆人情之所同然, 而人未知誠悅樂也, 君子者, 人之所仰慕, 而人未知識君子也. 故學而時習, 則所得日熟, 是爲誠悅矣. 有朋自遠方來, 則善與人同, 是爲誠樂矣. 而至於上不怨天, 下不尤人, 無入而不自得焉, 則不啻免爲鄕人, 是爲誠君子矣. 而朋來之樂, 不慍之君子, 皆由學而得焉, 則學之爲功, 不其大乎? 夫子所以爲天地立道, 爲生民建極, 爲萬世開太平者, 亦學之功也. 故論語以學之一字, 爲一部開首, 而門人以此章置諸一書之首, 蓋一部小論語云.
二章 MD0102
○有子, 孔子弟子, 名若. 犯上, 謂干犯在上之人. 鮮, 少也. 亂, 謂逆理亂常之事也. 言孝弟之人, 不待學問『近思錄集解』, 自不爲不善也. 蓋明孝弟爲本然之善也.
○務, 專力也. 本, 猶根也. 言君子凡事, 專用力於根本, 根本旣立, 則其道生生不已也. 孝弟者至於仁之本歟, 故爲仁者, 以孝弟爲本, 則仁道充大, 而足以保四海也『孟子』.[1]
●此章總贊孝弟之爲至德也. 蓋其爲人也孝弟者, 其性之最美而近道者也, 則其必無犯上作亂之事, 可知矣. 此則進德作聖之基本, 而可以至於仁矣. 仁者, 道也, 孝弟者, 其本也. 苟自此本而充之, 則所謂道者生生不已, 猶有源之水, 導之而放于四海『孟子』, 有根之木, 培之則可以參天. 故曰,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 可知道云者, 乃指仁也, 而孝弟其根本也. 編者以此置諸首章之次, 蓋明孝弟乃學問之本根也. 有旨哉.
◎論曰: 仁者, 天下之達道『中庸』, 而人之所不可不由焉而行者也, 而循其本, 則人性之善, 具此四端, 苟知擴而充之, 則可以至於仁矣. 故孟子曰, “人皆有所不忍, 達之於其所忍, 仁也.『孟子』” 又曰, “惻隱之心, 仁之端也.『孟子』” 又曰, “親親, 仁也. 無他達之天下也.『孟子』” 有子以孝弟爲仁之本, 其言相符, 蓋孟子祖述之也. 先儒之說以爲, “仁義者, 人性所具之理, 性中只有仁義禮智四者而已, 曷嘗有孝弟來?” 若如其說, 則仁體而爲本, 孝弟用而爲末. 於是與有子之言, 似相枘鑿. 故曰, “爲仁, 以孝弟爲本. 論性, 以仁爲孝弟之本.” 然旣曰, “其爲人也孝弟.” 又曰, “本立而道生.” 則其以孝弟爲仁之本, 可知矣. 然則孟子, 以仁義爲固有者『近思錄集解』, 何也? 蓋謂人之性善, 故以仁義爲其性也. 此以仁義名性也, 非直以仁義爲人之性也. 毫釐千里之謬, 正在于此, 不容不辨焉.
三章 MD0103
○巧, 好, 令, 善也. 鮮, 少也. 言好其言語, 善其顔色, 致飾於外, 則是僞焉耳, 何仁之有?
●孔門之敎, 以仁爲學問之宗旨[2], 而平生受用, 莫不從事於此. 故不言道, 不言德, 或以仁命之, 如此章是也. 蓋德以仁爲主, 而仁以誠爲本. “剛毅木訥[3].” 質乎外而實乎內, 故曰, “近.” “巧言令色.” 似乎外而僞乎內, 故曰, “鮮.” 其辨誠僞[4]於幾微之間, 至嚴矣.
四章 MD0104
○曾子, 孔子弟子, 名參, 字子輿. 三省, 如三復[5]三令[6]之類, 丁寧反復而省其身也. 凡三字在句首者, 爲三次之義, 如'三復白圭『論語』', '三以天下讓『論語』[7]', 是也. 在句尾者, 爲數目之字, 如'君子所貴乎道者三『論語』[8], '君子之道者三『論語』[9], 是也.
○孔氏曰, “忠謂盡中心『論語注疏』.” 信, 實也. 何氏曰, “傳不習乎, 言凡所傳授之事, 得無素不講習而妄傳乎『論語注疏』?”
●此曾子於此三者, 常常無忘於心, 又每日三次, 竦動興起, 自省其身若此. 蓋斯三者, 皆爲人不苟之事. 曾子以此自省其身, 則古人所以修身者, 專以愛人爲本, 故其所自省者, 亦在爲人, 而非如後世之學, 以絶外誘屛思慮, 爲省身之要也, 可從而知矣.
◎論曰, 古者道德盛, 而議論平, 故其修己治人之間, 專言孝弟忠信, 而未嘗有高遠微玅之說也. 聖人旣沒, 道德始衰, 道德始衰, 而議論始高, 及乎其愈衰也, 則議論愈高, 而去道德愈益甚矣. 人唯知悅議論之高, 而不知其實去道德益遠也. 佛老之說, 後儒之學, 是已. 蓋天地之道, 存于人, 人之道莫切於孝弟忠信, 故孝弟忠信, 足以盡人道矣. 若曾子之言, 後世學者, 孰能識其造於至極, 而無復可加者乎哉. 觀後篇答孟敬子將死之語, 與此章意, 若出一轍, 則知此章蓋出於其晩年, 而非初年之言也. 然則曾子一生之學, 謂此章盡之, 可矣. 先儒惜其嘉言善行不盡傳於世者, 亦非深知論語者也.
五章 MD0105
○包氏[10]曰, “道, 治也.” 千乘之國, 諸侯之國, 其地可出兵車千乘者也. 敬事而信者, 敬愼民事, 而信以接下也. 人, 通臣民而言. 時, 謂農隙之時. 言治國之要, 本在於所存, 而非專任政事也.
○治千乘之國, 其事固難, 而其功最大矣. 然以此爲本, 則亦無難治者, 卽孟子所謂, 事在易『孟子』[11]之意.
○楊氏[12]曰, “上不敬則下慢, 不信則下疑, 下慢而疑, 事不立矣. 敬事而信, 以身先之也. 『易』曰, ‘節以制度, 不傷財, 不害民.’ 蓋侈用則傷財, 傷財必至於害民, 故愛民必先於節用. 然使之不以其時, 則力本者不獲自盡, 雖有愛人之心, 而人不被其澤矣. 然此特論其所存而已, 不及爲政也. 苟無是心, 則雖有政, 不行焉.”
六章 MD0106
○汎, 廣也, 衆, 謂衆人, 言廣愛衆人, 無所憎嫉也. 仁, 謂仁者, 言親近有德之人也. 餘力, 猶言間暇, 以, 用也, 謂用間暇也. 文者, 先王之遺文. 言孝弟謹信, 汎愛而親仁, 則修身之本立矣, 而其有餘力, 則亦考遺文, 以驗其所行之得失也.
●此言學問當愼其初也. 孝弟者人倫之本, 謹信者力行之要, 汎愛親仁者, 成德之基, 餘力學文者, 亦就有道而正焉之意, 言在爲弟子時, 果能如此, 則學自正, 德自修, 而終身之業得矣.
◎論曰, 凡學須愼其初, 所入一差, 必貽終身之害. 後世學者, 不知以德行爲主, 而專以學文爲事, 故其卒也必爲異端俗儒之流. 蓋古者以德行爲學問, 故學問旣成而道德自立, 見聞益廣而躬行益篤矣. 後世以德行爲德行, 以學問爲學問, 故旣學矣, 而又修德行, 以副其意, 故毎有文學勝而德行不及之患矣. 或有未及德行而流, 至於記誦文詞而止者矣. 其初之不可不愼也如此.
七章 MD0107
○子夏, 孔子弟子, 姓卜, 名商.
○賢人之賢而變易顔色[13]言, 好善之有誠也. 致, 猶委也, 致其身, 謂不有其身也.
○子夏言, 學者求如是而已, 苟有如是之人, 雖或未嘗爲學, 我必謂之旣學道之人矣.
●游氏[14]曰, “三代之學, 皆所以明人倫也, 能是四者, 則於人倫厚矣. 學之爲道, 何以加此? 子夏以文學名[15], 而其言如此, 則古人之所謂學者, 可知矣.”
●愚謂, 子夏得親炙於聖人, 而篤信深守焉, 則固當眞得聖人之意, 而今其言如此, 則聖門所謂學者, 可知矣. 故學者能得子夏之意, 而後可以讀書, 不然則雖文學可觀, 而與未學之人同, 可不察乎?
八章 MD0108
○重, 厚重, 威, 威嚴, 言君子不厚重, 則無威嚴, 而民不敬. 夫子多爲當時賢士大夫說, 故凡稱君子者, 大類指在位之人而言.
○孔氏曰, “固, 蔽也, 言君子亦當爲學以致其道, 不然則有蔽固不通之病.”
○主者, 對賓之稱, 忠信, 學問之本, 故學必以忠信爲主.
○朱氏[16]曰, “無, 毋通, 禁止辭也. 友, 所以輔仁, 不如己, 則無益而有損. 勿, 亦禁止之辭, 憚, 畏難也. 自治不勇, 則惡日長, 故有過則當速改, 不可畏難而苟安也.”
●此章一句各是一事, 皆切要之言也. 凡論語諸章, 有直記一時之言者, 有倂錄異日之語者, 有綴輯數言以爲一章者, 如此章是也. 蓋孔門諸子, 綴輯夫子平生格言, 以作一章, 自相傳授之也. 後之學者, 亦當自佩服焉.
◎論曰, 主忠信, 孔門學問之定法, 苟不主忠信, 則外似而内實僞, 言是而心反非, 難與並爲仁者有矣, 色取仁行違者有矣. 後儒徒知持敬, 而不以主忠信爲要, 亦獨何哉.
九章 MD0109
○愼終而不忽者, 用慮之周也. 慕遠而不遺者, 好善之厚也. 上之所好如此, 則下民化之, 而無所不厚也.
●世之不知道者, 必速目前之近効, 而忽於愼終, 習末俗之苟簡, 而遺於追遠, 如此者, 其所以自修者旣薄矣. 何以能化其民, 使之歸厚耶. 然則其爲國, 亦可知也.
十章 MD0110
○子禽, 姓陳, 名亢, 子貢, 姓端木, 名賜, 皆孔子弟子. 或曰, “亢, 子貢弟子.” 今據此章及後篇問子貢章[17], 爲子貢弟子爲是. 抑, 語辭. 子禽見夫子所至之邦, 必與聞其政, 而怪其感應之速, 故問若此.
○溫, 和厚也, 良, 易直也, 恭, 致敬也, 儉, 無飾也, 讓, 謙遜也, 皆不自高之意. 其諸, 語辭也. 言溫良恭儉讓, 皆與抗顔盛容以待人者相反. 夫子雖不有意取人之信, 然盛德之至, 時君敬信, 自以其政, 就而問之, 此夫子之所求也, 非若他人之求而後得也.
●自爲高尙者, 人欽其道之高, 務爲矜飾者, 人疑其德之盛, 天下之通患也. 若溫良恭儉讓五者, 皆和順易直, 謙己自卑, 不足以起人之瞻仰. 夫子雖以此存心, 然盛德之至, 愈抑愈揚, 愈謙愈光, 不意取人, 而人自感之, 此謂不求之求也. 嘗告子張曰, “質直好義, 慮以下人, 在邦必達, 在家必達.”[18] 又曰, “我待賈者也.”[19] 子貢知此, 故曰, “溫良恭儉讓以得之.” 若子貢可謂善觀聖人者矣, 學者所當潛心而勉學也.
十一章 MD0111
○曰志曰行, 皆以善而言. 道者, 指其良法而言. 父在, 則唯觀其志于善而已, 父沒然後, 其行之善, 可觀也. 所志所行旣善, 則可謂孝矣. 然父沒三年之間, 乃改作之時, 於是善奉其道, 永久無替焉, 則爲能盡其孝也.
● 夫孝者, 以立身行道不失令名爲本, 以繼志述事不墜先業[20]爲盡. 故其志行不善, 則雖日用三牲之養, 猶爲不孝. 況父沒之後, 自徇己意, 改其良法, 則實不孝之甚矣. 嘗論孟莊子之孝曰, “其不改父之政與父之臣, 是爲難能焉.”[21] 卽此之謂也. 或曰, “若父之道善, 則終身守之, 可也.”[22] 曰三年無改者, 何哉? 且爲人之父者, 難保其必皆善, 如何? 曰, 人之父, 固有良有不良, 其不良者, 蓋置而不論, 夫子特就其良者而言之. 凡中人以上, 各隨其人, 而不能無良法, 故爲之子者, 雖微善不可以不奉行焉. 三年無改者, 謂永久守之, 非謂三年之後, 便可改之也. 其以三年言者, 蓋以過三年而後,卽己之道, 不可謂父之道也.
十二章 MD0112
○用, 以也. 『禮記』作 ‘禮之以和爲貴’[23], 是也. 和者, 無乖戾之謂, 蓋‘禮勝則離, 故行禮必以和爲貴.’[24]
○有子, 先借先王之道, 以明禮之不可一於和也. 言若先王之道, 固雖爲美, 然世有升降, 時有隆汚, 悉由之而不改焉, 則有所牴牾而不行矣.[25]
○此承上文而言禮之不可一于和也. 言知專貴和, 而不節之以禮, 則委靡頽敗, 亦不可行, 猶雖先王之道, 然小大由之, 無所取舍, 則有所不行也.
●和者美德, 而禮之所貴也. 故人皆知貴之, 而不知其所弊亦在於此. 蓋道之所廢, 必生於所弊, 所弊必生於所貴, 能視其所弊, 而早反之爲難, 故曰, ‘不以禮節之, 則亦不可行也’, 可謂明且盡矣.
◎論曰, 舊註曰, ‘禮之爲體雖嚴, 然其爲用必從容而不迫.’ 蓋體用之說, 起於宋儒, 而聖人之學, 素無其說, 何者? 聖人之道, 不過倫理綱常之間, 而各就其事實用工, 而未嘗澄心省慮, 求之于未發之先也. 故所謂仁義禮智, 亦皆就已發用工, 而未嘗及其體也. 唯佛氏之說, 外倫理綱常, 而專守一心, 而亦不能已於人事之應酬, 故說眞諦說假諦, 自不能不立體用之說. 唐僧[26]『華嚴經疏』云, ‘體用一源, 顯微無間’, 是也. 其說浸淫乎儒中, 於是理氣體用之說興, 凡仁義禮智, 皆有體有用, 未發爲體, 已發爲用, 遂使聖人之大訓, 支離決裂, 爲有用無體之言. 且說體用, 則體重而用輕, 體本而用末, 故人皆不得不捨用而趨體, 於是無欲虚静之說盛, 而孝弟忠信之旨微矣. 不可不察.
十三章 MD0113
○朱氏曰, “信, 約信[27]也. 復, 踐言也.” 孔氏曰, “宗, 猶敬也.”
○言信恭雖善, 然不合于義禮, 則必有其弊. 旣近于義禮矣, 又因而與人不失其和, 則亦可宗而敬之, 非止‘言可復’, ‘遠恥辱’而已也.
●禮義者人之大閑[28], 而百行之所取法也. 故‘大人言不必信, 行不必果, 唯義之所在’[29], 所以‘信近於義’, 然後其‘言可復’也. ‘恭而無禮則勞, 愼而無禮則葸’[30], 所以‘恭近於禮’, 然後能‘遠恥辱’也. 苟能如此, 則固可謂善矣. 然硬守堅執, 不近人情, 則亦未爲至也. 故因有此質, 而亦能與人交, 不失其親, 則學問之熟, 道德之成, 旣有所守, 亦能有容, 所以亦可宗也. 與前章‘禮之用和爲貴’章, 意相同.
十四章 MD0114
○不求安飽, 專心致志, 而汲汲於求道也. 敏於事者, 急於行也. 愼於言者, 不妄言也. 又不敢自是, 必就有道之人, 以正其是非, 則可謂眞好學矣.
●此言君子不可不務學也. 夫好學之益, 在小人猶爲大, 況在居大位執大事者乎? 故以好學爲君子之美稱. 今夫不求安飽, 而愼其言動, 則固可美也. 然學最難講, 而道最易差, 苟師心自用, 不就有道之人而正焉, 則是非取捨無所涇渭, 殆誤其一生者多矣. 故必就有道而正, 而後可謂好學也.
十五章 MD0115
○諂, 佞悅也. 驕, 矜肆也. 子貢以此爲至, 故問以質之.
○可者, 僅可而有所未盡之辭. 言無諂無驕, 則固知自守矣. 然處貧富而無過耳, 不若貧而樂富而好禮者之飽德樂道, 而不自知其貧富之爲至也.
○詩, 衞風淇澳篇[31]. 治骨曰切, 象曰磋, 玉曰琢, 石曰磨. 子貢自以無諂無驕爲至, 及聞夫子之言, 又知學問硏究之無窮, 故引詩以贊之也.
○告往知來, 謂告之以旣往之事, 則自能知將來之變也. 詩之玅變化無窮, 隨取隨有, 非告往知來者, 則不能盡詩之情, 夫子到此, 始知唯子貢之可與言之也.
●學者, 不以貧爲憂而後能樂, 不以富爲樂而後能好禮, 適見其飽德樂道而不知貧富之爲貧富也. 蓋貧而樂, 顔子其人也. 富而好禮, 周公其人也. 但貧而樂者, 卽富而能好禮, 富而好禮者, 必貧而能樂. 非有優劣, 易地皆然.
◎論曰, 詩活物也[32]. 其言初無定義, 其義初無定準, 流通變化, 千彙萬態, 挹之而愈不竭, 叩之而愈無窮. 高者見之而爲之高, 卑者見之而爲之卑, 上自王公大人, 下至於田夫賤隷, 吉凶憂樂, 悲歡榮辱, 各莫不因其情而感通. 唐棣之詩[33], 夫子以明道之在乎至近, 旱麓之章[34], 子思以示道之察乎上下, 古人讀詩之法, 蓋如此. 子貢知之, 故曰, “始可與言詩已矣.” 若今經生, 唯見詩之訓詁事實如何便了, 則詩之旨委地矣.
十六章 MD0116
○言學者當不患人之不知己之善, 而患己不知人之善也. 蓋非善有於己, 則亦不能知人之善, 故君子以爲患也.
●晏嬰之賢, 而不知孔子, 荀子之學, 而不知子思孟子, 甚乎‘不知人’之爲患也. 若鮑叔之知管子, 蕭何之知韓信, 似矣. 然未也. 非孔子, 則不知堯舜之當祖述焉.[35] 非孟子, 則不知孔子之聖, 生民以來, 未嘗有也.[36] 斯之謂‘能知人’也, 難矣哉.
「爲政」 MD02
一章 MD0201
○德者, 仁義禮智之總名. 北辰, 北極, 天之樞也. 居其所, 不移也. 共, 向也. 言爲政以德, 則其象猶北辰居其所, 而衆星四面旋繞, 而歸向之也.
●此言爲政以德, 則無爲而天下歸之也. 若夫不知爲政以德, 徒欲以智力持之, 則勞攘叢脞, 愈理愈不理, 此古今之患者也. 後世講經濟之學者, 不知斯之務, 徒區區求於儀章制度之間, 鄙哉.
●范氏曰, “爲政以德, 則不動而化, 不言而信, 無爲而成. 所守者至簡而能御煩, 所處者至静而能制動, 所務者至寡而能服衆.”
二章 MD0202
○詩, 三百十一篇, 言三百者, 擧大數也. 蔽, 猶蓋也. 思無邪, 魯頌駉篇[37]之辭. 言詩之爲經, 雖其敎無窮, 然不過使人之所思無邪曲耳.
●思無邪, 直也. 夫子讀詩到此, 有合於其意者, 故擧而示之, 以爲思無邪一言, 足以蔽盡詩之義也. 夫詩夫子之所雅言[38], 則豈徒蔽三百篇而已哉. 雖曰, ‘蔽盡夫子之道’, 可也.
◎論曰, 仁義禮智, 謂之道德, 人道之本也. 忠信敬恕, 謂之修爲, 所以求至夫道德也. 故語道德, 則以仁爲宗, 論修爲, 必以忠信爲要. 夫子以思無邪一言, 爲蔽三百篇之義者, 亦主忠信之意. 先儒或以仁爲論語之要, 性善爲孟子之要, 執中爲書之要, 時爲易之要, 一經各有一經之要, 而不相統一, 不知聖人之道, 同歸而殊塗, 一致而百慮[39]. 其言雖如多端, 一以貫之. 然則思無邪一言, 實聖學之所以成始而成終也.
三章 MD0203
○道, 猶引導, 謂先之也. 政, 謂法制禁令也. 齊, 所以一之也, 道之而不從者, 有刑以一之也. 免而無恥, 謂苟免刑罰, 而無所羞愧.
○道之以德者, 孟子所謂謹庠序之敎, 申之以孝悌之義[40]也. 禮, 謂制度品節也. 格, 正也, 言民有所羞恥, 又能自修而歸于正也.
●道之以政者, 禁其邪志, 齊之以刑者, 繩其犯法, 皆以法而不以德. 故雖使民不敢爲惡, 而爲惡之心未嘗息也. 道之以德者, 養其德性, 齊之以禮者, 勵其行義, 皆以德而不以法. 然民有所觀感羞恥, 而雖使之爲惡, 而不敢爲. 蓋政刑之功, 雖速, 而其效小也. 德禮之效, 似緩, 而其化大也. 其效小, 故治遂不成, 其化大, 故其治愈久而無窮. 此風俗醇醨之所由分, 國祚修短之所由判, 王覇之別, 專在于此. 先王非偏恃德禮而廢政刑也. 特其所恃者, 在此而不在彼耳.
四章 MD0204
○堯舜禹湯文武周公治天下之大經大法, 謂之道. 志於學者, 欲以其道修己治人, 爲天下開太平也.
○立者, 自立于道也. 學旣爲己有, 而不爲利禄邪說, 所變移搖動也.
○不惑, 謂心之所思欲, 自得其理, 而不惑於是非之間也. 後篇曰, “旣欲其生, 又欲其死, 是惑也.”[41] 又曰, “一朝之忿, 忘其身, 以及其親, 非惑歟.”[42] 照此二語, 則自曉惑字之義.
○天者, 莫之爲而爲, 命者, 莫之致而至[43], 皆非人力之所能及. 惟善可以獲乎天, 惟德可以膺乎命, 知此則務於自修, 而不萌一毫希望之心. 此智致其精, 而學到至處也.
○耳順者, 毁譽之來, 耳受而不逆也. 言向也雖已知天命, 然毁譽之入于耳, 猶有所礙, 然到此, 則一切漠然, 不覺其入也.
○矩, 法度之器, 所以爲方者也. 雖隨其心之所欲, 而自不過於法度, 蓋聖而不可知之境[44], 道與我一也.
●此夫子自陳其平生學問履歷, 以示人也. 先言其志于學者, 蓋言雖聖人之資, 必待學問, 然後有所至, 以歸功於學問也. 自立而至於不踰矩, 是其效也. 夫聖人生知安行, 而其有階級者, 何哉. 道之無窮, 故學亦無窮. 唯聖人極誠無妄,日新不已, 自少到老, 自不失其度. 故能覺其進, 而自信其然. 蓋人之於一生, 自少而壯而老, 年到于此, 則其智自別, 雖聖人之資, 不能無老少之異焉, 則又不能無老少之別, 猶天之有四時, 自春而夏, 而秋而冬, 其寒燠溫涼, 自應其節. 此卽聖人生知安行之玅, 而所以與天地合其德, 與日月合其明, 與四時合其序也. 徒曰, ‘爲學者立法者.’ 非矣.
◎論曰, 孟子旣歿, 斯道不明乎天下, 世儒之所講求者, 不過訓詁文字之間. 及宋氏興, 鉅儒輩出, 崇正黜邪, 漢唐之陋, 爲之一洗, 其功固偉矣. 然當時禪學盛行, 以其遺說, 解聖人之旨者, 實爲不少. 於是專貴一心, 而以明鏡止水, 爲修身之極功. 胡氏云, ‘一疵不存, 萬理明盡, 隨所意欲, 莫非至理.’ 是也. 夫操則存, 舍則亡, 出入無時, 莫知其鄕[45], 心之不可恃, 而不可不道以存之, 如此. 故夫子之聖, 猶至七十, 始曰, “從心所欲, 不踰矩.” 蓋聖德之至, 從容中道, 而非 ‘一疵不存, 萬理明盡’之謂也.
五章 MD0205
○孟懿子, 魯大夫仲孫氏, 名何忌. 無違, 謂無違於禮也.
○樊遲, 孔子弟子, 名須. 御, 爲孔子御車也. 孟孫, 卽仲孫也. 夫子又恐懿子不達無違之旨, 故語樊遲以發其意.
○生事以禮之爲孝, 猶或知之, 至於葬祭以禮之爲孝, 則其所不能知焉, 故夫子爲懿子丁寧之也.
●夫孝者不以飮食奉養爲至, 而以立身行道[46]爲要. 故生事葬祭, 皆無違于禮, 則孝親之道盡矣. 蓋富而好禮, 善之至也. 懿子魯之世卿, 而民所具瞻, 故夫子以此告之. 況生時之孝, 猶易爲力, 至於沒後之孝, 則非躬自盡道, 光其先業, 垂裕後昆[47]者, 則不能. 故曰, ‘葬之以禮, 祭之以禮’, 實孟氏之藥石哉.
六章 MD0206
○武伯, 懿子之子, 名彘. 人子事父母之間, 其當憂者甚多矣, 然不若疾病之最爲可憂也.
●父母已老, 則侍養之日旣少, 況一旦染病, 則雖欲爲孝, 不可得也. 故以父母之疾爲憂, 則愛日之誠[48], 自不能已, 而愛慕之心, 無所不至, 雖欲不爲孝, 得乎. 所以警武伯者, 深矣. ○武伯父子, 倶爲魯之卿, 而告懿子者, 其義大矣, 告武伯者, 其意切矣. 告懿子者, 蓋夫子之特旨, 而非常人之所能及, 故重告樊遲丁寧之, 學者當深翫焉.
七章 MD0207
○子游, 孔子弟子, 姓言, 名偃. 養, 謂飮食供奉也. 敬者, 敬其事也.
○言古人所謂孝者, 其事固大矣, 在今時人, 唯謂能養爲孝, 亦未爲不可也. 然子弟婢僕, 以至於犬馬之賤, 皆有養之, 而不使其至死亡, 苟養親, 而敬不至焉, 則與夫養卑賤者, 何所分別乎? 所謂敬者, 左右使令, 晨省夕定, 至於飮食衣服寒暖之節, 敬而不怠, 是也.
●此夫子因子游之問, 而戒世之事親者, 多流於不敬而不自知也, 觀今之孝者, 可見矣. 聖人答門弟子之問, 面就其人之病而警之, 然又或有因門人之問, 而廣爲世戒者, 若此章, 是也. 不可執一而泥焉.
八章 MD0208
○(色難) 謂事親之際, 惟有愉色爲難.
○先生, 父兄也. 饌, 飮食之也. 曾, 則也. 言服勞奉養, 乃事親之常, 未足爲孝也.
●事親之道, 愛敬爲本矣. 然敬猶或可勉而能, 至於愉色, 則非誠有深愛, 而終始不衰者, 不能. 故曰, ‘色難’. 先儒(程子)謂, 子夏能直義而或少溫潤之色, 故告之. 蓋就子夏之所不足而誠之也. ○道愈虛, 則言愈高, 德愈實, 則言愈卑, 自然之符也. 故天下之言, 得能爲其高, 而不能爲卑, 無其德也. 若武伯問孝以下三章, 天下之言, 莫卑於此, 亦莫實於此, 惟孔子能言之, 而他人之所不能言焉, 所以爲聖言也.
九章 MD0209
○回, 孔子弟子, 姓顔, 字子淵. 夫子與之言, 終日之間, 無一言之違逆, 如愚者然, 有聽受而無問難也.
○私, 謂燕居獨處, 非進見請問之時. 言及省其私, 亦足以發揮夫子之道, 故夫子深喜之. 又言‘不愚’, 以明前言‘如愚’者, 乃其所不可及也.
●此夫子稱顔子不事聰明, 深造玅契[49], 非常人之所能及也. 聖人終日之談, 皆平淡易直, 無駭人之聽聞者, 顔子聰明, 一聞之, 則實有以知其包天地, 貫古今, 無復餘蘊, 不啻若口之悅芻豢[50]. 故其所與言者, 不待問辨詰難, 而發露乎言行之間, 猶艸木之經時雨而勃然興起, 非若他人聽了便休也. 夫子及乎省其私, 而便知其然, 故曰, ‘回也不愚’, 重歎之也. 夫其智之可見者, 智之未深者也. 智而不可見, 乃是智之最深者也. 譬諸川流之淺, 雖其勢駛漲, 猶或可渉, 淵海之深, 汪洋乎不可測也. 所謂如愚者, 是也. 非去智絶聖[51], 昏默守愚之謂, 其不事聰明, 是其智之所以愈深也.
十章 MD0210
○朱氏曰, “以, 爲也. 爲善爲君子, 爲惡爲小人. 觀, 比視爲詳矣. 由, 從也. 事雖爲善, 而意之所從來者, 有未善焉, 則亦不得爲君子矣. 察, 則又加詳矣. 安, 所樂也. 所由雖善, 而心之所樂者, 不在於是, 則亦矜持耳. 豈能久而不變哉. 焉, 何也. 庾, 匿也. 重言以深明之.”
●君之於臣, 人之於朋友, 其所倚賴, 甚大, 不可不愼所擇. 夫人之難知, 堯舜其猶病諸[52], 至佞似才, 至奸似直, 諂諛者似忠, 矜持者似德. 故我明不足以察之, 則必至於以黒爲白, 以枉爲直, 小人爲君子, 君子爲小人, 而政事日非, 身辱國亡, 可不懼哉.
●(대주번역) 군주가 신하에 대해 사람이 붕우(朋友)에 대해 그 의지하는 바가 몹시도 크니, 신중히 택하지 않을 수가 없다. 대저 사람을 알기 어려움은, 요순(堯舜)도 오히려 병통으로 여긴 바이니, 아첨이 지극하면 재능이 있는 것 같고, 간계가 지극하면 강직한 것 같으며, 첨유자(諂諛者)는 충신처럼 보이고, 긍지자(矜持者)는 덕있는 자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나의 명철함이 그것을 살피기에 부족하면, 필시 검은 것을 흰 것이라 하고, 굽은 것을 곧은 것이라 하며 소인은 군자로 여기고 군자는 소인이라 여겨, 정사(政事)가 날로 어긋나 자신이 욕되고 나라가 망하는 데 이를 것이니, (이를 어찌) 두려워 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十一章 MD0211
○溫, 尋也. 溫故而知新者, 尋繹舊聞, 而時有新益也.
●此言師道之甚難也, 人之爲學, 不溫故, 則必忘其所能, 不知新, 則無得其所亡[53]. 蓋天下之事無限, 而天下之變無窮, 苟能尋繹舊聞, 而復有新得, 則應之愈不竭, 施之當其可[54], 而後可以爲人之師矣. 夫師者人之模範也, 人材之所由成就, 世道之所由維持, 以韋帶之賤, 與人君並稱, 其責甚重, 其任甚大, 可不謹乎.
十二章 MD0212
○器者, 用而有適之謂, 言君子之德, 可大用, 而不可小用.
●君子雖道宏德邵, 無施不可, 然或有於事不能者, 若孔子不學軍旅, 不能辭命之類, 可謂不適其用矣. 然而論聖人之才之德, 則不在是. 故曰, “君子不可小知, 而可大受也.”[55] 若夫廣綜衆藝, 精幹小事者, 人之所悅, 而致遠恐泥[56], 不可以此論君子也.
十三章 MD0213
●張氏栻曰, “君子主於行, 而非以言爲先也. 故言之所發, 乃其力行所至, 而言隨之也.” 夫主於行而後言者, 爲君子, 則夫易於言, 而行不踐者, 是小人之歸矣.
十四章 MD0214
○ 周, 普徧也, 比, 偏黨也, 皆就所與人親厚而言之.
●此言君子小人用心之別也, 學問之要, 在辨君子小人趣向如何, 否則欲爲君子, 而反爲小人之歸者多矣. 『論語』毎以君子小人, 對擧而論之者, 蓋爲學者示其嚮方也.
十五章 MD0215
●稽於古訓之謂學, 求于己心之謂思. 會天下之善而一之者, 學之功也, 極深硏幾[57], 與鬼神同功者, 思之至也. 學之功也實, 思之至也神. 學而不思, 則實無所得, 故罔. 思而不學, 則師心自用[58], 故殆. 是故非思則無以能學, 非學則無以達思, 兩者相待, 而後得成也. 又曰, “古之學者, 所思多於所學, 今之學者, 所學多於所思”, 而古人所謂學, 與今人所謂學者, 亦大異矣. 此亦不可不察也.
十六章 MD0216
○ 攻, 治也. 異端, 古之方語, 謂其端相異而不一也. 言不用力於根本, 而徒治其端之所異, 則無益而有害也.
○(소주번역)
공攻은 다스리는 것(治)이다. '이단異端'은 옛 방어方語이니, 그 단초端初가 서로 달라 하나로 묶을 수 없음을 가리킨다. (이 장절은), 근본에 힘쓰지 않으면서, 그저 그 단초端初의 차이만을 다스리려고 한다면 보탬은 없고, 해로움만 있으리라 말한 것이다.
● 言學問之道, 用力其本, 則末自治焉. 徒修其末, 則必遺其本, 必然之理也. 後世之學, 不用力於道德仁義, 而徒從事於記誦詞章, 爭其多寡, 較其短長, 此亦攻異端之類焉耳. 本末倒置, 輕重易所, 其害有不可勝言者也.
●(대주번역)
(이 편장은) 학문學問의 도道가 그 근본에 힘쓰면 말단이 절로 다스려질 것임을 말한다. 그저 그 말단을 닦기만 하면 필시 그 근본을 버리게 되는 것이 필연적 이치이다. 후세의 학문이 도덕인의道德仁義에 힘쓰지 않고 단지 기송사장記誦詞章하는 것만을 일삼아 그 다과多寡와 단장短長만을 다투어 견주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이단異端을 공攻하는 그러한 부류일 것이다. 본말本末과 경중輕重이 자리를 뒤바꾸면, 그 해로움이 이루 말할 수 없게 된다.
◎ 論曰, 異端之稱, 自古有之, 後人專指佛老之敎爲異端者, 誤矣. 孟子之時, 或稱邪說暴行, 或直稱楊墨之徒, 可見其時猶未有異端之稱. 若夫佛老之敎, 卽所謂邪說暴行, 而亦在異端之上, 豈待攻而後有害耶.
◎(논주번역)
다음과 같이 논한다. '이단異端'이라는 표현은 옛날부터 있던 것으로, 후대 사람들이 부처와 노장의 가르침을 전적으로 가리켜 '이단'으로 삼은 것은 잘못이다. 맹자 당시에는 혹 '사설邪說'이나 '포행暴行'이라 표현하기도 하고, 혹 '양주와 묵자의 무리(楊墨之徒)'라 직설적으로 가리키기도 하였으니, 그 시대에 오히려 '이단'이라는 표현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저 부처나 노장의 가르침이 곧 이른 바 '사설'이나 '포행'이면서 또한 '이단'의 근처에 있는 것이라면, 어찌 공攻하기를 기다린 뒤에서야 해로움이 있겠는가!
十七章 MD0217
○ 由, 孔子弟子, 姓仲, 字子路. 子路性剛, 以盡知天下之事爲知, 故夫子告之曰, “汝所爲知之者, 未必眞知之, 今誨汝知之者乎? 其所知者, 自以爲知, 所不知者, 便以爲不知, 是謂之知也.” 蓋知者務知其所當知者, 而知而無益者, 不必求知之, 以其不在盡知天下之事也.
○(소주번역)
유由는, 공 선생님의 제자니 성은 중仲이요 자는 자로子路라. 자로는 성품이 강하여, 세상 일을 전부 아는 것을 앎이라 여겼기 때문에 공 선생님께서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자네가 안다고 여기는 바의 것은 실제로 잘 모르는 것이기 마련이니, 지금 자네에게 무언가를 안다는 것에 대해 가르쳐줄까? 그 아는 바의 것은 스스로 안다 여기고, 모르는 바의 것은 곧 모른다고 여기는 것, 이을 일러 앎이라 하네.” 대개 지자知者는 당연히 알아야 할 것을 알고자 힘쓰는 자인데, 알지만 보탬이 없는 것에 대해서는 꼭 알려고 하지 않으며, 이로써 그것이 세상 일을 모두 아는 데 달려 있지도 않다.
● 天下之事無窮, 而一人之知有限. 況事之多端, 有可得而知者矣, 有不可得而知者矣, 欲知不可得而知者, 則失之鑿矣. 雖可得而知者, 欲盡知之, 則流于濫矣. 故曰, “君子於其所不知, 蓋闕如也[59].” 不以盡知天下之事爲知故也. 孟子曰, “堯舜之知而不徧物, 急先務也[60].” 是堯舜所以爲大聖, 而學者所當取法也. 後之儒者, 動欲盡知天下之事, 是欲能堯舜之所不能, 其得爲智哉.
●(대주번역)
세상 일은 한도가 없는데 일개 사람의 앎이란 한계가 있다. 하물며 일에 있어 다양한 단서는, 알 수 있는 것도 있고, 알 수 없는 것도 있는데, 알 수 없는 것을 알고자 한다면 천착하는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비록 알 수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전부 다 알고자 한다면 남발하는 데로 흐르게 된다. 그러므로 (공 선생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촌놈이구나 중유야) 군자는 모르는 바에 대해서는 그냥 냅두는 것이다.” 세상 일을 모두 아는 것을 앎으로 여기지 않는 까닭이다. 맹 선생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요임금이나 순임금의 앎도 만물에 두루 걸치지 않았던 것은, 먼저 힘써야 할 것을 급히 해서이다.” 이는 요와 순 임금이 위대한 성인인 까닭이며, 배우는 자가 마땅히 취해 본받아야 할 바이다. 후대의 유자들이 걸핏하면 세상 일을 전부 알고자 하는데, 이는 요와 순임금께서도 하지 못하셨던 바이니, 참 잘도 지혜롭다고 하겠다.
十八章 MD0218
○ 子張, 孔子弟子, 姓顓孫, 名師. 干, 求也. 朱氏曰, “祿, 仕之俸也.[61]”
○ 呂氏曰, “疑者, 所未信, 殆者, 所未安, 尤, 過也.”
○ 祿在其中者, 謂不爲人所棄, 而衣食自給也, 非指受穀而言之也.
(소주번역)
○ 자장은 공자의 제자니 성은 顓孫이요, 이름은 師이다. 干은 구한다는 뜻이다. 주희가 말했다. “祿은 벼슬아치의 봉급이다.”
○ 여대림이 말했다. “疑는 믿지 못하는 것이고, 殆는 안정되지 못한 것이며, 尤는 허물을 의미한다.”
○ ‘祿이 그 가운데 있다는 것(祿在其中)’은, 남에게 좌지우지 되지 않으면서 입고 먹는 것을 자급自給함(자세)을 의미하니, 급여를 받는〔受穀〕 것(상태)를 가리켜서 말한 것이 아니다.
● 得于學問者, 深而周, 得于見聞者, 近而實. 子張旣知學, 故夫子擧得于見聞者告之. 蓋多見聞, 則足廣其智, 而有所則傚, 而亦必闕疑殆, 而愼言行, 則外無受人之尤, 内無生己之悔. 言行有實, 而足爲人之所信, 孰敢不服從, 亦孰敢不薦引? 是祿在其中也.
●(대주번역)
배우고 묻는 데서 얻는 것은 심원深遠하고 주밀周密하며, 보고 듣는 데서 얻는 것은 친근親近하고 충실充實하다. 자장은 이미 배움〔學〕을 알았기 때문에 선생께서 ‘보고 듣는 데서 얻는 것’을 들어 말씀하신 것이다. 대개 보고 듣는 것이 많으면 족히 그 앎〔智〕을 넓혀 본받는〔則傚〕 바가 있을 것이며, 또한 의심되고 위태로운 것은 반드시 빼놓으면서 말과 행동을 신중히 한다면, 밖으로는 남에게서 허물 살 일이 없고 안으로는 스스로 후회가 생길 일이 없다. 말과 행동에 내실이 있으면서 남으로부터 믿음을 얻기에 충분하다면, 누가 감히 따르지 않을 것이며 또한 누가 감히 추천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祿이 그 가운데 있다는 것(祿在其中)’이다.
十九章 MD0219
○ 哀公, 魯君, 名蔣. 時哀公失政, 而民不服, 故問之.
○ 錯, 捨置也, 諸, 衆也, 言擧錯得當, 則民服, 否則不服.
● 哀公意以爲, 服民必有術, 以能之. 孔子告之, 以擧錯得當, 則民服, 擧錯失當, 則不服也. 蓋好直而惡枉, 天下之同情, 順之則得, 逆之則不得, 非可以術能也. 故治國之道, 顧其所以處之者如何耳, 非可以私意小智濟之也.
●(대주번역)
애공(哀公)은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백성을 복종시키는 데 필시 술(術)이 있고, 그것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는데, 공자(孔子)가 고하기를, 거조(擧錯)함에 마땅함을 얻는다면 백성이 복종할 것이요, 거조함에 마땅함을 잃는다면 백성이 복종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것이다. 대개 바른 것(直)을 좋아하고 굽은 것(枉)을 싫어함은 세상 사람들의 공통된 마음으로, 그것을 따르면 얻고, 그것을 어기면 얻지 못하는 것이지 술(術)로써 능히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라를 다스리는 도는, 그 처리하는 바의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보는 데 있을 따름이지, 사사로운 마음과 하찮은 지혜로 일을 처리해서는 안된다.
二十章 MD0220
○ 季康子, 魯大夫, 季孫氏, 名肥. 時季氏僭濫, 民不心服, 亦不從其所令. 故問之.
○ 包氏曰, “莊, 嚴也. 臨民以嚴, 則民敬其上. 上孝於親, 下慈於民, 則民忠矣. 擧用善人, 而敎不能者, 則民勸勉.”[62]
● 此章亦與前章同意. 蓋王者之治, 以德而不以法, 其効若迂, 而其化無窮. 覇者之政, 以法而不以德, 其効若速, 而無益於治. 故知治國之本, 在自正其身, 而不得以智術爲之也. 康子之意, 在求速效, 而夫子之所答, 專在於自治. 若使康子達夫子之意, 其所以治魯國者, 豈有不得如其所欲邪? 禮曰, ‘君子不出家, 而成敎於國. 孝者所以事君也, 弟者所以事長也, 慈者所以使衆也.’[63] 蓋述夫子之言者也.
●(대주번역)
이 장章 역시 이전 장과 같은 뜻이다. 대개 왕도王道의 다스림은 덕德으로 하며 법法으로 하는 것이 아니니, 그 효과는 아득히 먼 것 같은데, 그 조화란 다함이 없다. 패도覇道의 정사는 법으로 하며 덕으로 하는 것이 아니니, 그 효과는 빠른 것 같은데, 다스리는 데 보탬이 없다. 그러므로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은 스스로 자기 몸을 바루는 데 있지, 지술智術을 가지고서는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계강자의 마음은 속히 효과가 있기를 구하는 데 있었는데, 선생께서 답하신 바는 오로지 스스로 다스리는 데 있었다. 만약 계강자에게 선생의 뜻을 이해시켰다면, 그가 노나라를 다스린 방도(所以)가 어찌 그가 원하는 바와 같이 되지 못함이 있었겠는가? 『예기』에 이르기를, ‘군자는 집안을 벗어나지 않고서도 나라에 교화를 이룬다. 효孝는 임금을 섬기는 방도요, 제弟는 어른을 섬기는 방도요, 자慈는 무리를 부리는 방도다.’라고 하였으니, 선생의 말씀을 기술한 것이다.
二十一章 MD0221
○ 定公初年, 孔子不仕, 故或人疑其不居官爲政也.
○ 書文, 今見古文尙書君陳篇[64], 而無‘孝乎’二字, 當以此爲正, 孝乎惟孝者, 美孝之辭. 言善事父母者, 必友于兄弟, 而施及於有政, 孔子引之言, 如此則是亦爲政矣. 何必以居位, 爲爲政乎?
● 孝友者, 人之善行也. 夫孰不美焉, 亦孰不從焉? 以此心自修, 則身修, 以此心治人, 則人治. 雖家國天下, 莫不從焉, 而家居講學者, 每有不能有爲於世之歎, 殊不知居家理. 故治可移于官[65], 奚以不居官爲政, 爲慊乎? 孟子曰, “其子弟從之, 則孝弟忠信, 不素餐兮, 孰大於是.”[66] 與居官爲政者奚異.
●(대주번역) 효孝와 우友는 사람의 선행善行이다. 무릇 누가 그것을 아름답에 여기지 않으며, 또한 누가 그것을 따르지 않겠는가? 이러한 마음으로 스스로 닦으면, 자신이 닦이고, 이러한 마음으로 남을 다스리면, 남이 다스려진다. 비록 가家와 국國과 천하天下가 이를 따르지 않음이 없다 하더라도, 집에서 공부(講學)하는 자는 매번 세상에서 유위有爲하지 못하는 한탄이 있어, 도무지 집안살림에 대해서는 몰라, 이 때문에 다스림이 관官으로 이행할 수 있으니, 어찌 관직에 있으면서 정사를 행함을 하지 않는다 해서 혐의하겠는가? 맹 선생께서 말씀하기를, “그 자제子弟가 따르면 효孝하고 제弟하고 충忠하고 신信하니, 공짜밥을 먹지 않는 것이, 무엇이 이보다 크겠는가?”라고 하였으니, 관직에 있으면서 정치를 하는 자와 무엇이 다르랴.
二十二章 MD0222
○ 大車, 謂平地任載之車, 輗, 轅端横木, 縛軛以駕牛者. 小車, 謂田車、兵車、乘車, 軏, 轅端上曲, 鉤衡以駕馬者. 言人而無信, 猶車無此二者, 豈可得行乎?
● 信者, 人道之本. 人而無信, 則不可以一日立於天地之間, 猶大車之無輗, 小車之無軏, 不可以行也. 君不君, 臣不臣, 父不父, 子不子, 一皆由此, 夫子就其最所易見者, 以喩人必不可無信也.
●(대주번역) 신信은 인도人道의 근본이다. 사람인데 신信이 없으면, 하루도 세상살이에서 존립할 수 없으니, 큰 수레에 예輗가 없고, 작은 수레에 월軏이 없어서 수레가 갈 수 없는 것과 같다.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고 어버이가 어버이답지 않고 자식이 자식답지 않아서, 하나같이 모두 이로 말미암아, 선생께서 그 가장 쉽게 인지할 수 있는 것에 나아가, 이것을 가지고 사람이 반드시 신信이 없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비유하신(깨우쳐 주신) 것이다.
二十三章 MD0223
○ 陸氏[67]曰, “也, 一作乎.”
○ 朱氏曰, “王者易姓受命爲一世.” 子張見夫子聰明睿智, 無所不知, 故問十世之遠, 可以前知乎.
○ 言三代之有天下, 雖各有一代之制, 然不能盡改人之觀聽, 故皆因前代之禮而作之, 惟其所損益者, 今皆可知而已. 旣往已如此, 則將來亦不過如此.
○(소주번역) 다음을 말한 것이다. 삼대(三代, 하은주)가 천하를 소유함이 각기 한 시대의 제도를 가진 것이라고는 하나, 사람들이 보고 들은 것을 모조리 바꿀 수 없기 때문에, (하은주 삼대는) 모두 전대의 예에 기인해 제도를 지은 것이니, 생각건대 그 덜고 더한 바의 것이, 지금 모두 알만할 따름이다. 이미 지나가버린 것이 이와 같으니, 장차 올 것도 이와 같음에 지나지 않는다.
● 此言古今之事不甚相遠, 不可好求迂怪不經, 不可窮詰之說. 蓋世道之變, 雖相尋無窮, 然本無有可愕可怪之事. 冠以加首, 履以藉足, 舟以濟水, 車以行陸, 君尊而臣卑, 父老而子繼, 千古之前如此, 千古之後亦如此. 所謂禮也者, 亦不過因此而損益焉耳. 苟以此推之, 則雖千歲無窮之變, 皆可坐而致焉. 子張之問, 旣涉於怪僻, 故夫子言此以斥之.
●(대주번역) 이 장절은 고금古今의 일이 서로 먼 것이 그렇게 심하지 않아서, 우괴迂怪하고 불경不經한 것을 좋아해 찾아서는 안 되며, 추궁하고 힐문하는 이야기를 해서도 안됨을 말한 것이다. 대개 세도世道의 변화가 끝없이 서로 이어진다 하더라도, 본디 놀랍게 여기거나 기이하게 여길만한 일이란 것은 없다. 갓을 써서 머리에 더하고, 신을 신어서 발에 깔고, 배를 써서 물을 건너고, 수레를 써서 뭍을 다니고, 인군은 높으며 신하는 낮고, 어버이가 연로해서 자식이 잇는 것은, 오랜 세월 이전에도 이와 같았으며, 오랜 세월 이후에도 이와 같을 것이다. 이른바 '예禮'라는 것도 이로 인하여 덜고 더하는 것에 불과할 따름이다. 진실로 이것을 가지고 유추해보면, 비록 천세의 끝없는 변화라도 모두 앉아서 가 닿을만 하다. 자장의 질문은 이미 괴벽怪僻한 데로 건너 갔으니, 이 때문에 선생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어 그것을 물리치신 것이다.
二十四章 MD0224
○ 非其鬼, 謂非其所當祭之鬼. 諂者, 謂瀆近鬼神也. 知義之所在而不爲, 是無勇也.
● 陳氏櫟曰, “此章欲人不惑于鬼之不可知, 而惟用力于人道之所宜爲[68]. 他日語樊遲曰, ‘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69]’, 亦以鬼神對義而言. 蓋嘗驗之天下之人, 其諂瀆[70]鬼神者, 必不能專力於民義, 其專力於民義者, 必不諂瀆於鬼神, 二者常相因云.”
※(질문1) 귀신에게 제사지내는 것과 민의(民義)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論語』「雍也」20章, 「公冶長 」17章 내용과의 관계적 이해)
※(질문2) 용(勇)이란 무엇인가?
「八佾」 MD03
一章 MD0301
○ 季氏, 魯大夫, 季孫氏也. 佾, 舞列也. 天子八, 諸侯六, 大夫四, 士二, 毎佾人數如其佾數. 言季氏以陪臣, 而敢僭用天子之禮樂, 是可敢忍爲之事哉, 而尙忍爲之, 則何事不可忍爲.
※초록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논어집주』와 동일한 표현.
● 謝氏曰, “君子於其所不當爲, 不敢須臾處, 不忍故也, 而季氏忍此矣, 則雖弑父與君, 亦何所憚而不爲乎?”
※ 사량좌(謝良佐)의 인용구는 『논어집주』와 동일하다.
● 夫子所論當時人物政治得失, 自今觀之, 似或有不甚切于學者. 然孔門弟子, 皆謹書之者, 何也. 夫子嘗曰, “載之空言, 不若著之行事親切著明也.[71]” 蓋學將以有爲也. 故泛論義理, 不若卽事卽物, 直辨其是非得失之爲愈也. 如此等章, 實與春秋一經相表裏, 此當時諸子, 所以謹書而不遺也歟.
※(질문1) 佾, 舞列也. 天子八, 諸侯六, 大夫四, 士二. 佾의 매체성과 숫자의 의미.
※(질문2) 子曰, “我欲載之空言, 不如見之於行事之深切著明也.” 의 의미. '空言'의 맥락.
二章 MD0302
○ 三家, 魯大夫, 孟孫叔孫季孫之家也. 雍, 周頌篇名. 徹, 祭畢而收其俎也. 天子宗廟之祭, 則歌雍以徹, 是時三家僭而用之.
○ 相, 助也. 辟公, 諸侯及二王之後. 穆穆, 深遠之意, 天子之容也. 此雍詩之詞, 孔子引之, 言三家之堂非有此事, 亦何取於此義而用之乎? 擧其無知妄作之一端, 以明其僭禮大類如此.
※초록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논어집주』와 동일한 표현.
● 此通上章共爲三家僭禮而發, 蓋夫子作春秋之意也. 當時之人, 視三家僭禮, 不徒不能規其非, 反擧之以爲美談. 故夫子斥之, 以明其僭妄之罪, 且欲其聞而改之也. 夫位愈盛, 則責愈重, 祿愈高, 則任愈大. 詩曰, “赫赫師尹, 民具爾瞻.”[72] 季氏魯之世卿, 衆之所倚賴, 而其無智妄作如此, 旣不足取信當時, 又非所以 ‘垂裕後昆’[73], 故爲人之上而不知學, 其蔽必至於此.
●(대주번역) 이 장은 윗 장(上章)과 통하여 모두 삼가三家가 예를 참람히 해서 발發하신 것이니, 대개 선생께서 춘추春秋를 지으신 뜻이다. 당시 사람들은 삼가三家가 예를 참람히 하는 것을 보고도 그 잘못을 단지 규간規諫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그것을 거론하며 미담美談으로 여겼다. 그래서 선생께서 그것을 배척하시어, 이로써 그 참람하고 망령된 죄를 밝히시고, 또 그 알려진 바를 바로잡고자 하신 것이다. 대저 지위가 성대할수록 책무는 더욱 무겁고, 봉록이 높을수록 임무는 더욱 커진다. 시에 이르기를, “참으로 빛나는 태사 윤씨여, 백성들이 모두 당신을 우르러보네(赫赫師尹, 民具爾瞻.)”라고 하였다. 계씨季氏는 노나라의 세경世卿이며, 뭇 백성이 의지하는 데도 그 무지無智하고 망작妄作함이 이와 같았으니, 이미 당시의 신뢰를 받기에 충분치 않았으며 또 수유후곤(垂裕後昆, 후세에 넉넉히 남김)함도 아니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윗자리에 있으면서도 배움(학문)을 모르면, 그 폐단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된다.
※(질문1)
※(질문2)
五章 MD0305
○ 諸夏, 中國也。亡, 無也。視有如無之謂。此孔子傷時無上下之分而嘆之也。
○ 제하는 중국이다. '亡'은 '없다(無)'는 것이다. 있는 것이 없는 것과 같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공자께서 당시 상하의 분별이 없음을 아파하시며 탄식하신 것이다.
● 夫子毎視時俗之變, 雖一事之小, 必重嘆之, 以其所關係大也。今諸侯禮義之所在[74], 而曾夷狄之不若, 則其爲變亦甚矣。此《春秋》所以作也。當此時, 雖周衰道廢, 禮樂殘缺, 而典章文物, 尚未湮墜, 孰知諸夏之不若夷狄? 然夫子寧捨彼而取此, 則聖人崇實而不崇文之意, 可見矣。其作《春秋》也, 諸侯用夷禮則夷之, 夷而進於中國則中國之, 蓋聖人之心, 即天地之心, 遍覆包涵無所不容, 善其善而惡其惡, 何有於華夷之辨? 後之説《春秋》者, 蓋嚴華夷之辨, 大失聖人之旨矣。
●(대주번역) 부자께서 매번 시속의 변질됨을 보시면, 비록 하나의 작은 일이라도 반드시 거듭 탄식하셨으니, 그것이 관계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지금 제후들이 예의의 주체가 되어, 이미 이적만도 못해졌으니 그 변질됨이 또한 깊은 것이다. 이것이 《춘추》가 지어진 까닭이다. 이 때에 비록 주나라 왕실이 쇠하고 도가 폐해지고, 예악이 파괴되었지만, 전장·문물이 그래도 아직 민멸되지 않았으니, 누가 제하가 이적만 못해졌음을 알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부자께서 차라리 저것(제하)을 버리고 이것(이적)을 취하셨으니, 성인께서 실(實: 예악)을 숭상하고 문(文: 전장·문물)을 숭상하지 않으시는 뜻을 볼 수 있다. 부자께서 《춘추》를 지으시며 제후가 이적의 예를 쓰면 이적으로 취급하셨고, 이적이 중국으로 나오면 중국으로 취급하셨으니, 성인의 마음은 곧 천지의 마음과 같아 두루 덮어주고 널리 감싸안아줌에 포용치 않음이 없으시어, 잘한 것은 잘했다고 해주시고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해주신 것이다. 화이의 분별이 무슨 상관이었겠는가? 후대에 《춘추》를 해설하는 자들이, 화이의 분별을 엄격히 하였으니, 성인의 본뜻을 크게 잃은 것이다.
六章 MD0306
○ 旅, 祭名也。泰山, 山名, 在魯地。《禮》諸侯祭山川在其封内者, 今季氏以陪臣祭之, 非禮也。
○ 여는 제사 이름이다. 태산은 산 이름인데 노나라 땅에 있다. 《예기》에서 제후는 자기 봉토 안에 있는 산천에 제사를 지낸다고 하였는데, 지금 계씨는 배신 주제에 (노나라 봉토 안에 있는 산에) 제사를 지냈으니 예가 아니다.
○ 冉有, 孔子弟子, 名求, 時爲季氏宰. 嗚呼, 歎辭。夫子欲冉有之救正其非, 既而知其不能, 則又美林放以勵之, 亦教誨之也。
○ 염유는 공자의 제자로 이름은 구이며 이 당시에 계씨 아래에서 읍재 노릇을 하고 있었다. '오호'는 탄식하는 말이다. 부자께서 염유가 계씨의 잘못을 구해주기를 바라셨지만, 잠시후 염유가 그리 할 수 없음을 아시게 됨에, 또 임방을 칭찬하여 염유를 면려하셨으니, 또한 염유를 가르치신 것이다.
● 季氏舞八佾, 歌雍徹, 夫子既斥其僭竊, 今亦欲旅於泰山, 故夫子欲冉有之救之也。夫禮, 人之隄防也。禮立則人心定, 人心定則上下安, 上下安則彝倫得以叙矣, 庶事得以成矣。今季氏以臣僭君, 則是自壞其隄防也。神不享非禮, 民不祭非類, 季氏爲魯國卿, 而所爲如此, 何以率其民? 不智亦甚矣。
●(대주번역) 계씨가 팔일무를 추게 하고 《옹》을 부르면서 제사를 물리니, 부자께서 이미 그 참람됨을 공박하셨는데, 지금 또한 태산에 여제사를 지내려 하였으므로, 부자께서 염유가 계씨의 잘못을 구제해주기를 바라신 것이다. 무릇 예란 사람에게 제방과 같은 것이다. 예가 확립되면 사람들의 마음이 안정되고, 사람들의 마음이 안정되면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관계가 편안해지며,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관계가 편안해지면 인륜이 펴지게 되고, 여러 일들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지금 계씨는 신하로서 군주의 예를 참람되이 행했으니, 이는 스스로 그 제방을 무너뜨린 것이다. 신은 예에 맞지 않는 제사는 흠향하지 않고, 백성들은 자기 동류가 아니면 제사 지내지 않는데, 계씨는 노나라의 경이면서도 행동하는 바가 이와 같았으니, 어찌 백성들을 솔선하여 이끌겠는가? 어리석음이 또한 매우 심하다 할 것이다.
七章 MD0307
○ 言君子恭遜, 不與人爭, 其或有所爭者, 必也於射禮乎。蓋明其所爭者, 亦皆以禮而他無所爭也。
○ 군자는 공손하여 남과 다투지 않으니, 혹여라도 다투는 바가 있다면 반드시 활쏘는 예에 있어서일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군자는 다투는 바 또한 모두 예로써 하고 그밖에는 다투는 바가 없음을 설명한 것이다.
○ 按《儀禮》大射之禮, 耦進三揖而後升堂, 射畢揖降, 以俟衆耦皆降, 勝者乃揖, 不勝者升, 取觶立飲也。照本文'下而飲'之語, 則與'不勝者升, 取觶立飲'不合, 窃謂不勝者下而獨飲, 無衆耦送觶之禮也。
○ 《의례(儀禮)》의 대사례(大射禮)를 살펴보건대, 짝지어 나아가 세 번 읍한 뒤에 당에 오르고, 활쏘기가 끝나면 읍하고 내려와, 다른 짝들이 모두 내려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승자가 마침내 읍하면 패자가 올라가 술잔을 취해 선 채로 마신다고 했다. 경문의 '下而飲'이라는 말은 '패자가 올라가서 술잔을 취해 선 채로 마신다'는 말과 합치되지 않으니, 내 생각에는 패자가 내려와서 홀로 마시고, 여러 짝들이 술잔을 보내는 예는 없는 듯하다.
○ 言雍容揖遜如此, 則其爭也便君子, 而非若小人之以利害與人爭也。
○ 부드럽고 공손함이 이와 같으니, 그 다툼마저도 군자다워, 소인들이 이해로써 남들과 다투는 것과는 같지 않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 此言君子唯於射有所爭, 則見君子於事, 總無與人爭也。君子以仁存心, 以禮存心, [75]何爭之有? 其與人爭者, 皆小人, 不仁不禮之甚也。讀《論語》者, 至於夫子言'君子'諸章, 則不可不潛心覃思, 佩服體取, 若此章, 最其切要者歟。
●(대주번역) 이 장에서는 군자가 오직 활쏘기에서만 다투는 바가 있음을 말했으니, 군자는 남과 다투는 일이 전혀 없음을 알 수 있다. 군자는 인(仁)으로써 마음을 보존하고, 예(禮)로써 마음을 보존하니, 무슨 다툴 것이 있겠는가? 남과 다투는 자는 모두 소인이니, 인하지 못하고 예의가 없는 것이 심하다. 《논어(論語)》를 읽는 사람은 부자께서 '군자'를 말씀하신 여러 장에 이르면, 마음을 침잠하여 깊이 생각하며, 가슴에 새기고 몸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니, 이 장과 같은 것은 가장 긴요한 곳이 아니겠는가.
八章 MD0308
○ 此逸詩也。倩, 好口輔也。盼, 目黒白分也。言其美質也。馬氏曰: "絢, 文貌。" 凡畫繢事, 先布衆色, 然後以素分布其間以爲文, 蓋言身章[76]之美也。《衛風·竹竿》之詩曰: "巧笑之瑳, 佩玉之儺。" 又言顔色之美, 與服飾之麗相稱, 其語意正相類。子夏適不知畫繢之事, 因讀此詩而有疑, 故爲問。
○ 이는 일시(逸詩)이다. 천(倩)은 예쁜 보조개이다. 반(盼)은 눈동자의 검은자와 흰자가 또렷한 것이다. (사람의) 아름다운 바탕을 말한 것이다. 마씨(마융)이 말하기를, "현(絢)은 문채 나는 모양이다."라고 했는데, 무릇 옷에 색을 입힐 때, 먼저 여러 빛깔을 배치하고, 그 뒤에 흰 색을 그 사이사이에 나누어 배치하여 문채를 이루니, 아마도 옷의 아름다움을 말한 듯하다. 《위풍·죽간》편에 "어여삐 웃음에 치아가 곱고, 옥을 차고 걸음에 법도가 있네."라는 말이 있다. 얼굴빛의 아름다움이 복식의 고움과 잘 어울림을 또 말한 것이니, 그 말 뜻이 정말로 비슷하다. 자하가 다만 옷에 색 입히는 일을 몰랐기에, 이 시를 읽고 의문이 생겨 여쭌 것이다.
○ 繪, 畫衣服也。《考工記》云: "凡繪畫之事, 後素功。" 是也。子夏之所疑, 不在上二句, 而在'素以爲絢', 故夫子專以'繪事'告之也。
○ 회(繪)는 옷에 색을 입히는 것이다. 《고공기》에 "무릇 색을 입히는 일은 흰색 작업을 뒤에 한다."라고 한 것이 이 예에 해당한다. 자하가 의문을 가진 곳은, 위 2구가 아니라 '素以爲絢'였기에, 부자께서 오로지 '繪事'로만 고해주신 것이다.
○子夏因夫子之言而悟"凡物有其質而後可以加文。然則人之於禮, 亦有其質而後可學乎。"
○자하가 부자의 말씀을 인하여서 "무릇 만물은 바탕이 있은 뒤에야 문식을 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이 예에 대해서도 바탕이 있은 뒤에야 배울 수 있겠구나."라고 깨달은 것이다.
○ 起, 猶發也。言能起發我之志意也。夫子以其能會其意, 故以始可與言詩稱之。
○기(起)는 틔워준다는 말과 같다. (자하가) 능히 나의 뜻을 틔워줄 수 있었다는 말이다. 부자께서 자하가 당신의 뜻을 이해했다고 여기셨기에, 더불어 시를 논할 만하다고 칭찬해주신 것이다.
● 此章子夏之所問, 夫子之所答, 初只尋常間談而本非有關於學問, 及乎子夏曰'禮後乎'而始爲至論也。夫禮以儉爲本, 至於風氣既開, 日趨繁文, 於是人惟視其繁文, 而不知其本之儉, 故曰: "禮與其奢也寧儉, 喪與其易也寧戚。" 子夏知之, 故曰: "禮後乎。" 苟非得聖人之意於言詞之素者, 其措詞豈能斷然若此乎? 林放聞夫子之論, 而初知禮之本; 子夏因論詩, 而自悟禮之後, 非放之所及也。
●(대주번역) 이 장에서 자하의 물음과 부자의 대답은, 초반에는 다만 평범한 담화일 뿐이었으며 애초에는 학문과 관련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자하가 '예가 뒤라는 말이지요?'라고 하는 데 이르러서 비로소 고차원적인 논의가 되었다. 무릇 예는 검소함을 근본으로 하는데, 세상이 생겨나면서부터 날로 번다한 문식을 좇으니, 이에 사람들이 오직 그 번다한 문식만 볼 뿐, 그 근본의 검소함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부자께서) "예는 사치스럽기보다는 차라리 검소한 것이 낫고, 상(喪)은 깔끔하게 잘 치르느니 차라리 애통해하는 게 낫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자하가 이를 알았기에 "예가 뒤라는 말이지요?"라고 말한 것이니, 성인의 뜻을 평소의 말에서 깨달은 자가 아니라면, 그 표현이 어찌 이처럼 분명할 수 있겠는가? 임방이 부자의 말씀을 듣고 비로소 예의 근본을 알았는데, 자하는 시를 논하면서 예가 뒤라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으니, 임방이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論曰: 詩無形也。因物而變, 爲圓爲方; 隨其所見, 或悲或歡; 因其所遭, 一事可以通千理, 一言可以達千義。故非聞一而知二者, 不能盡詩之情。子夏聞畫繢之事而悟禮後之説, 可謂亞聞滄浪之歌而知自取之道者也[77]。
●(논주번역) 시는 고정된 형체가 없다. 사물에 따라 변하여 둥글기도 하고 모나기도 하며, 본 바에 따라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며, 경우에 따라 하나의 일로 천 가지 이치를 꿰뚫기도 하며, 한 마디 말로 천 가지 뜻을 전달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하나를 듣고 둘을 아는 자가 아니라면 시의 뜻을 온전히 알 수 없다. 자하는 (부자로부터) 옷에 색 입히는 일에 대해 듣고서 예가 뒤라는 명제를 깨달았으니, 창랑가를 듣고 스스로 초래하는 이치를 깨달은 것에 버금간다고 할 만하다.
九章 MD0309
子曰: "夏禮吾能言句, 之杞不足徴也; 殷禮吾能言句, 之宋不足徴也。文獻不足故也。足則吾能徴之矣。"
○ 杞、宋, 二國名。杞, 夏之後; 宋, 殷之後。徴, 證也。文, 典籍也。獻, 賢也。言二代之禮, 吾往既聞之而能言其詳, 欲證之於夏殷而之杞、宋, 二國皆不足取以爲證, 以其文獻不足故也。文獻若足, 則吾能相證而傳之後世。蓋聖人不欲言無證之説也。
○ 기와 송은 나라 이름이다. 기는 하의 후예이며, 송은 은의 후예이다. 징(徴)은 증명한다는 것이다. 문(文)은 전적이다. 헌(獻)은 현인이다. 다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대(=하, 은)의 예를 내가 예전에 들어서 그 상세함을 말할 수 있지만, 하와 은에 대해 증명하려고 기와 송에 가보니, 두 나라(=기, 송) 모두 취하여 증거로 삼기에 부족했으니, 문헌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문헌이 충분하다면, 내가 능히 증명하여 후세에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성인께서 증거 없는 말을 하고 싶지 않으셨던 듯하다.
● 先王之禮, 唯得夫子而後能傳於後世, 言之則存焉, 不言則亡焉。苟以其文獻不足而不言之, 則豈非夏殷之禮自我亡之乎。《中庸》曰: "上焉者, 雖善無徴, 無徴不信, 不信民不從。"[78] 故君子擇民之可信而言之, 見民之可從而行之。苟不察民之信從與否而強爲之, 則是誣之也。若老佛之説是已。凡渺茫不經, 如存如亡之説, 皆足以起人之惑而啓其好異之心, 故無徴之言, 聖人不道焉。仲尼祖述堯舜, 憲章文武, 是也。[79] 而後世儒者, 動稱伏犧、神農、黄帝, 甚而至於論盤古、燧人之世, 稱天皇、地皇之名, 吾知其非聖人之意也。
●(대주번역) 선왕의 예는 오직 공자께서 얻으신 뒤에야 능히 후세에 전해질 수 있었으니, (공자께서) 말씀하시면 보존되었고, 말씀하지 않으시면 망실되었다. 만약 문헌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말하지 않는다면, 하은 2대의 예가 나(=공자)로 말미암아 망실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중용》에 이르기를, "상고시대의 것은 비록 훌륭한 것이라도 증거할 만한 것이 없으니, 증거할 만한 것이 없다면 미덥지 못하고, 미덥지 못하면 백성들이 따르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니, 그러므로 군자는 백성들이 믿을 수 있는 것을 가려내어 말하고, 백성들이 따를 수 있는 것을 보아 실천한다. 만약 백성들이 따를 수 있는지 여부를 살피지 않고 강요한다면, 이는 백성들을 속이는 것이다. 노자나 부처의 학설 같은 것이 이에 해당한다. 아득하고 상식에서 벗어나 있는 듯 없는 듯한 학설은 모두 사람들의 의혹을 일으켜 그 호기심을 자극하므로, 이는 징험할 수 없는 말이며 성인은 그러한 것을 말하지 않는다. 중니께서 요임금과 순임금의 가르침을 조술하시고, 문왕과 무왕의 법을 지키신 것이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후대의 유자들은 걸핏하면 복희·신농·황제를 들먹이며 심지어 반고나 수인씨의 시대를 논하고, 천황·지황의 이름을 들먹이니, 이는 성인의 뜻이 아님을 알겠다.
十章 MD0310
○ 按經傳稱禘者非一, 其義各殊。此所謂禘者, 謂大廟之祭也。蓋王者既立始祖之廟, 又推始祖所自出之帝, 祀之於始祖廟, 而以始祖配之也。魯以周公之廟爲大廟, 而以文王爲所自出之帝, 祀之於大廟, 以周公配之也。灌者, 方祭用鬱鬯之酒, 灌地以降神也。自灌以前, 有禮之名, 而無禮之實, 及乎灌而降神, 始有其實, 故曰'灌而往者, 吾不欲觀之', 若曰'自始至終, 皆無可觀者也'。蓋魯僭用天子之禮, 故夫子歎之也。
○ 살펴보건대, 경전에서 '체(禘)'라고 칭하는 것은 하나가 아니며, 그 뜻과 명칭이 다르다. 여기서 이른바 '체(禘)'라는 것은 태묘(大廟)에서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천자가 시조의 사당을 세운 뒤에 또 시조를 낳아주신 임금을 추숭하여 시조의 사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시조로써 배향한다. 노나라가 주공의 사당을 태묘로 삼고, 문왕을 (시조=주공을) 낳아주신 임금으로 삼아 태묘에서 제사를 지내고 주공으로 배향하였다. 관(灌)이라는 것은 제사 지낼 때를 당하여 울창주를 가지고 땅에 부어 신을 강림시키는 것이다. '관'이전에는 예의 이름만 있고 예의 실질은 없으나, '관'하여 신을 강림시킴에 미쳐서는 비로소 그 실질이 있게 되니, 그러므로 '울창주를 부은 뒤로부터는 내가 보고 싶지 않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볼 만한 바가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아마도 노나라가 천자의 예를 참람되이 사용하였기 때문에 부자께서 탄식하신 듯하다.
●實, 本也; 文, 末也。有此實而後有此文, 有此文而後有此禮。苟無此實, 則禮文皆虛而已。魯以侯國, 敢用天子之禮, 其亡實甚矣。宜夫子之不欲觀之也。其曰'不欲觀之'者, 甚嫉之之辭。嘗曰: "居上不寛, 爲禮不敬, 臨喪不哀, 吾何以觀之哉?" 亦甚嫉其無實也。
●(대주번역) '실질'은 근본이고, '문식'은 말단이다. 이 실질이 있은 뒤에 이 문식이 있는 것이고, 이 문식이 있은 뒤에 이 예가 있는 것이다. 만약 이 실질이 없다면 예와 문식이 모두 공허한 것일 따름이다. 노나라는 후작국(侯爵國)의 신분으로 감히 천자의 예를 사용했으니, 그 실질을 잃은 것이 심하다. 부자께서 보고 싶어하지 않으신 것도 당연하다. '보고 싶지 않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매우 미워하는 표현이다. 부자께서 일찍이 '윗자리에 거하면서 관대하지 않고, 예를 행하면서 공경하지 않고, 상을 당하여 슬퍼하지 않는다면, 내가 무엇을 보겠는가?"[80]라 하셨으니, 역시 그 실질이 없음을 매우 미워하신 것이다.
十一章 MD0311
○ 禘禮之意, 至深遠矣, 且以王者之祭, 故以不知答之, 蓋爲魯禘也。
○ 체례(禘禮)의 뜻은 지극히 심원하고, 또 천자의 제사이기 때문에 '알지 못한다'고 대답하신 것이니, 아마도 노나라에서 체 제사를 지내기 때문인 듯하다.
○ 示, 與視同。指其掌, 謂明且易也。弟子從傍, 見夫子言此, 自指其掌, 而記之也。
○ 시(示)는 시(視)와 같다. '그 손바닥을 가리킨다'는 것은, 명백하고도 쉽다는 말이다. 제자가 곁에서 부자가 이를 말씀하시고 스스로 그 손바닥을 가리키는 것을 보고 기록한 것이다.
●禘者, 先王報本追遠之深意, 非仁孝誠敬之至, 不足以與此。苟通其説, 則於治天下, 何難之有? 蓋治天下之本, 在感應之孚, 而難以政刑智數致之, 故非德之至、誠之極, 則不足與知禘之説, 而於治天下, 亦不免以私意妄作。幸其自治, 非見聞智慮之所能及也。
●(대주번역) 체 제사는 선왕이 (자신을 낳아준)뿌리에 보답하고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는 깊은 뜻이니, 인효성경(仁孝誠敬)의 지극함이 아니면 여기에 참여하기 부족하다. 그 내용을 잘 꿰고 있으면, 천하를 다스리는 데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천하를 다스리는 근본은 감응의 정성스러움에 달려 있지, 정형(政刑)이나 지수(智數: 계책)로 이루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지극한 덕과 지극한 정성이 없다면 체 제사의 내용을 아는 데 참여하기 부족하며, 천하를 다스리는 일에 있어서도 사사로운 뜻으로 함부로 하는 것을 면할 수 없다. 요행히 스스로 잘 다스린다 할 지라도, 견문(見聞)이나 지려(智慮)가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十二章 MD0312
○ 祭, 祭先祖也。祭神, 祭外神也。朱氏曰。此門人記孔子祭祀之誠意。
○ 그냥 '祭'라고만 한 것은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것이다. '祭神'이라고 한 것은 천지신명께 제사 지내는 것이다. 주씨(주자)가 말했다. "이는 문인이 공자께서 제사 지내시는 정성스러운 뜻을 기록한 것이다."
○ 夫子嘗言: "吾當祭之時, 或有故不得與而使他人攝之, 則此心缺然, 如未嘗祭也。" 以與上文相類, 故附記之。
○ 공자께서 일찍이 "내가 마땅히 제사 지내야 할 때에 혹 사정이 생겨 참여할 수 없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대리하게 하면 마음이 제사를 지내지 않은 것처럼 허전하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윗 글과 서로 비슷하므로 덧붙여 기록한 것이다.
○ 夫子之於祭祀, 盡其誠如此。
○ 공자께서는 제사에 대해 그 정성을 다하심이 이와 같으셨다.
●論曰: 祭祀之禮, 人道之本。於是, 不盡其誠, 則人道缺焉, 其復何言? 夫人本於祖, 萬物本於天, 犲獺之賤, 皆知報本, 報本之心, 人之至情, 故聖人因其不得已之至情, 以立之宗廟, 具之犠牲, 陳之簠簋籩豆, 以伸其報本反始之情。若於外神之祭, 或崇其德, 或報其功, 皆盡吾不得已之至情而已爾。豈問其享與不享? "祭, 如在; 祭神, 如神在。" 聖人事神之誠如此。《禮》曰: "齊三日, 乃見其所爲齊者。" [81]又曰: "祭之日入室, 僾然必有見乎其位; 周還出戸, 肅然必有聞乎其容聲; 出戸而聽, 愾然必有聞其嘆息之聲。"[82] 皆衰世失道之論, 而非聖人崇德之言也。識者以《祭義》篇爲亂道之書, 可謂有見矣。
●(대주번역) .다음과 같이 논한다. 제사 지내는 예는 인도(人道)의 근본이다. 따라서 그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인도가 손상되니, 또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무릇 사람은 조상을 뿌리로 삼고, 만물은 하늘을 뿌리로 삼으니, 이리나 수달 같은 천한 짐승도 모두 뿌리에 보답할 줄 알거늘, 뿌리에 보답하느 마음은 사람의 지극한 정이다. 그러므로 성인이 어찌할 수 없는 지극한 정을 말미암아 종묘를 세우셔서 희생을 갖추고 보궤와 변두를 진설하여 뿌리에 보답하고 처음을 돌이키는 정을 펼치셨다. 천지신명께 지내는 제사는 혹 그 덕을 높이고, 혹 그 공덕에 보답하는 것으로, 모두 나의 어찌할 수 없는 지극한 정을 다하는 것일 뿐이다. 흠향함과 흠향하지 않음을 어찌 따질 수 있겠는가? "조상님께 제사를 지낼 때는 조상님이 계신듯 하고, 천지신명께 제사 지낼 때는 천지신명이 강림한 것 같이 하라"고 하셨으니, 성인께서 신을 섬기신 정성이 이와 같았다. 《예기》에 이르기를, "3일간 재계하면 재계하는 대상의 모습을 보게 된다"라 했고, 또 이르기를, "제삿날에 제실로 들어가면 마치 그 자리에 조상님의 모습이 보이는 듯할 것이고, 제사를 마치고 돌아 나가면 숙연하게 조상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 할 것이고, 문 밖으로 나가서 들으면 개연히 조상님의 탄식 소리가 들리는 듯 할 것이다."라 했는데, 이는 쇠퇴한 시대의 도를 상실한 논의요, 성인께서 덕을 숭상하는 말씀이 아니다. 식자들이 《제의》편을 도를 어지럽히는 책으로 여긴 것은, 일리가 있다 할 만하다.
十三章 MD0313
○ 王孫賈, 衛大夫。朱氏曰: "媚, 親順也。室西南隅爲奥。竈者, 五祀之一, 夏所祭也。凡祭五祀, 皆先設主而祭於其所, 然後迎尸而祭於奥, 略如祭宗廟之儀。如祀竈, 則設主於竈陘, 祭畢而設饌於奥以迎尸也。故時俗之語因以奥有常尊而非祭之主, 竈雖卑賤而當時用事, 喩自結於君, 不如阿附權臣也。賈, 衛之權臣, 故以此諷孔子。"
○ 왕손가는 위나라 대부이다. 주씨(주자 집주)가 말했다. "'媚'는 가까이 하고 순종한다는 것이다. 방의 서남쪽 모퉁이가 아랫목이 된다. '竈'라는 것은 계절마다 지내는 다섯 제사 가운데 하나로, 여름에 제사 지내는 장소이다. 무릇 다섯 제사를 지낼 때 모두 먼저 그 해당 장소에서 제사를 지낸 뒤에 시동을 맞이하여 아랫목에다가 제사를 지내니, 종묘에서 제사를 지내는 의식과 대략 같다. 부뚜막에 지내는 제사는, 신주를 부뚜막 아궁이에 설치하고 제사가 끝나면 아랫목에 제수를 늘어놓고 시동을 맞이한다. 그러므로 시속의 유행하는 말에 아랫목이 항상 높임을 받지만 제사의 주인이 아니고, 부뚜막은 비록 비천하지만 특정한 시기(=여름)를 당하여 제사를 시행한다. 이것으로써 몸소 임금과 관계를 맺는 것이 권신에게 아부하는 것만 못함을 비유한 것이다. 왕손가는 위나라의 권신이었기에, 이것으로써 공자를 은근히 풍자한 것이다."
○ 言"天至尊矣, 非奥竈之可比也。苟獲罪於天, 則媚於奥竈所能禱而免乎?" 明非但不可阿權臣, 雖君亦不可阿。
○ 다음과 같은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하늘은 지극히 존귀하니, 아랫목 신이나 부뚜막 신이 비할 바가 아니다. 만약 하늘에 죄를 짓는다면, 아랫목 신이나 부뚜막 신에게 잘 보임으로써 빌어서 면할 수 잇겠는가?" 권신에게 아부하면 안 될 뿐만 아니라, 비록 임금이라도 아부해서는 안 됨을 분명히 하신 것이다.
●天之道, 直而已矣。夫火上而水下, 鳥飛而魚潛, 草木植而華實時, 善者天下以爲善, 惡者天下以爲惡, 斯之謂直。天地之間, 渾渾淪淪, 靡非斯道, 其欲以邪枉之道, 立於天地之間者, 猶投氷雪於湯火之中, 有遲有速, 必受其譴, 雖鬼神不能爲之福。故曰: "獲罪於天, 無所禱也。" 《詩》云: "永言配命, 自來多福。"
●(대주번역) 하늘의 도(道)는 곧을 뿐이다. 무릇 불은 위로 올라가고 물은 아래로 내려가고,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풀과 나무는 뿌리로부터 자라나고 꽃과 열매는 제 철에 맞고, 선한 것을 천하 사람들이 선하게 여기고, 악한 것을 천하 사람들이 악하게 여기는 것, 이것을 일러 '곧다'고 한다. 하늘과 땅 사이에 흘러 넘치는 것이 이 도가 아님이 없으니, 사특하고 굽은 도로써 하늘과 땅 사이에 서려는 자는, 끓는 물과 불 속에 얼음과 눈을 던지는 자와 같다. 속도의 차이가 있더라도 반드시 그 견책을 받게되니, 비록 귀신이라 할지라도 그를 위해 복을 내려줄 수 없다. 그러므로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시경》에서도 말하기를, "길이 천명에 합치되면, 절로 많은 복이 온다."고 하였다.
十四章 MD0314
○ 監, 視也。郁郁, 文盛貌。言其視夏商之禮而損益之, 故文章燦然, 以致其盛也。
○ '監'은 본다는 것이다. '郁郁'은 문장이 융성한 모양이다. 주나라가 하왕조와 상왕조의 예를 보고서, 부족한 것은 보태고 남는 것은 덜어내었으므로, 문장이 찬란하여 그 융성함을 이루었음을 말한 것이다.
●聖人毎惡奢而從儉, 今於周之禮, 則獨從其文之郁郁者, 何哉? 蓋道以得當爲貴, 自治之道, 不可不儉; 朝廷之禮, 不可不備。夏商之禮, 質而不備; 周之禮, 文而得當。此夫子所以特從周也。聖人處事之權衡, 從而可知也。
●성인께서는 매번 사치함을 미워하고 검소함을 따르셨거늘, 지금 주나라의 예에 대해서만은 유독 그 문장의 성대함을 따르신 것은 어째서인가? 도는 '마땅함을 얻음'을 귀하게 여기니, 스스로를 다스리는 도는 검소하지 않을 수 없지만, 조정의 예는 필요한 것을 갖추지 않을 수 없다. 하왕조와 상왕조의 예는 질박하여 갖추어지지 않은 바가 있었고, 주왕조의 예는 문장이 화려했으나 마땅함을 얻었다. 이것이 부자께서 특별히 주나라를 따르겠다고 하신 까닭이다. 성인께서 일처리를 하시는 기준을 이로부터 알 수 있다.
十五章 MD0315
○ 大廟, 魯周公廟。孔子始仕之時, 入而助祭也。
○ 태묘는 노나라 주공의 사당이다. 공자가 처음 벼슬할 때에 (태묘에) 들어가서 제사를 도왔다.
○ 鄹, 魯邑名。孔子父叔梁紇, 嘗爲其邑大夫。孔子自少以知禮聞, 或人因此譏之。夫子言"不知而問即是禮也。" 蓋'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之意。
○ 추(鄹)는 노나라의 고을 이름이다.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이 일찍이 그 고을의 대부였다. 공자는 젊어서부터 예를 잘 안다고 이름이 났기에, 혹인이 이로 인하여 그를 비난한 것이다. 부자께서는 "알지 못하여 묻는 것이 바로 예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니, 이는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다.'의 뜻일 것이다.
●聖人之於禮, 固無所不知。然但聞其名, 而於其器物事實, 則或有所未知者。故始入大廟, 毎事問耳, 亦謹之也。或人未知道, 徒以講名物度數爲知禮, 故以此譏之。夫子但曰"是禮也", 其意以爲'不知而問, 何禮如之?' 夫闕疑好問者, 君子之心也。苟以此爲心, 則智明識達, 於天下之事, 無所不得。故曰: "是禮也。" 猶曰: "是道也。"
●성인은 예에 대하여 참으로 알지 못하는 바가 없다. 그러나 단지 그 명칭을 듣기만 하고 그 기물이나 사실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바가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태묘에 처음 들어갔을 때 매사를 물어보신 것일 따름이니, 또한 삼가는 태도였다. 혹인은 도를 알지 못하고, 오로지 명물도수에 정통한 것만을 예라고 여겼으므로 이로써 부자를 비난한 것이다. 부자께서 단지 "이것이 예이다"라고 말씀하셨으니, 그 생각에 '알지 못하는 것을 묻는 것, 이만한 예가 또 무엇이겠는가?라고 여기신 것이다. 의심스러운 것은 그대로 두고, 묻기를 좋아하는 것은 군자의 마음이다. 진실로 이것으로써 마음을 삼는다면 지혜가 밝아지고 지식이 통달하여 천하의 모든 일에 대해 터득하지 못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예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것이 도이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十六章 MD0316
○ 皮, 革也。布侯而棲革於其中以爲的, 所謂鵠也。科, 等也。古者鄕黨習射之禮, 專主於中而不主於貫革, 以人之力有強弱也。曰'古之道也'者, 嘆今之不然也。
○ '皮'는 가죽이다. 과녁을 펼쳐서 가죽을 그 가운데에 둠으로써 표적을 삼으니 이른바 곡(鵠)이라는 것이다. '科'는 등급이다. 옛날 향당의 활쏘기를 실습하는 예에서는 오로지 표적에 명중하는 것만을 중시했지 과녁의 가죽을 뚫는 것은 중시하지 않았으니, 사람의 힘에는 강약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바로 옛날의 도이다'라고 하신 것은 오늘날에는 그렇지 못함을 탄식하신 것이다.
○ 按: 射不主於皮, 今見于《儀禮·鄕射禮》[83], 蓋古射法之語也。
○ 활쏘기에서 과녁 가죽을 뚫는 것을 중시하지 않는다는 말이 지금 《의례(儀禮)·향사례(鄕射禮)》에 보이니 아마도 옛날 활쏘는 법과 관련된 말이었던 듯하다.
●射之爲藝, 其中可以學而能, 其力不可以強而至。[84]此古者之所以射不主皮也。蓋世道之變, 治亂升降之所由而分, 替者不可以復興, 汙者不可以復隆, 毎一變, 必一衰, 故雖服御器物·民俗歌謠之小, 君子必察焉。貫革之興, 其變小也, 然世道之不復古, 於是可見。此夫子之所以深嘆也。
●활쏘기라는 기예에서 그 (과녁의 표적에)명중함은 배워서 능히 할 수 있지만, 그 (과녁의 가죽을 꿰뚫는)힘은 억지로 이룰 수 없다. 이것이 옛날에 과녁을 꿰뚫는 것을 중시하지 않은 까닭이다. 세도의 변화는 치란과 승강으로부터 말미암아 분화되는 것인데, 쇠퇴한 것은 다시 흥성할 수 없고, 낮아진 것은 다시 높아질 수 없으니, 한번 변할 때마다 반드시 한번 쇠퇴한다. 그러므로 비록 의복·탈것 같은 기물이나 민속 가요와 같은 사소한 것이라도 군자는 반드시 자세히 살핀다. 과녁의 가죽을 뚫는 것을 중시하는 풍습이 흥한 것은 사소한 변화이긴 하나, 세도가 다시는 옛 모습을 회복할 수 없게된 것을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부자께서 깊이 탄식하신 까닭이다.
十七章 MD0317
○古者天子常以季冬, 頒來歳十二月之朔於諸侯, 諸侯受而藏之祖廟, 月朔則以特羊告廟, 請而行之, 謂之告朔之禮。餼, 生牲也。魯自文公, 始不視朔, 而有司猶供此羊, 故子貢以爲不行其禮, 徒供此羊, 此虚文耳, 故欲去之也。
○옛날 천자가 항상 섣달에 이듬해 열두 달의 달력을 제후들에게 반포하면 제후들은 이를 받아 시조의 사당에 보관해두었는데, 섣달 그믐날이 되면 숫양을 제물로 삼아 사당에 고하여 (새 달력을) 청하여 시행하였는데, 이를 일러 곡삭의 예라 한다. '餼'는 날것의/살아있는 제물이다. 노나라는 문공 때부터 곡삭의 예를 행하지 않았는데, 담당 실무자들은 여전히 이 양을 제물로 바쳤다. 그러므로 자공은 예를 행하지도 않는데 헛되이 이 양만 바치는 것은 허례허식일 뿐이라고 여긴 것이다. 따라서 (양을 바치는 관행을) 없애버리고자 한 것이다.
○愛, 猶惜也。夫子言'若汝可謂愛羊, 今我所幸者, 在羊存耳。禮雖廢, 猶得賴羊以識之; 若併去其羊, 則此禮遂亡。此我所以惜之也。'
○'愛'는 아까워하다[惜]와 같다. 부자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만약 네가 양을 아까워한다고 말한다면, 내가 다행으로 여기는 바는 양(을 바치는 관행)이 남아 있다는 데 있을 뿐이다. 예가 비록 폐해졌더라도 양(을 바치는 관행)에 힘입어 (곡삭례를) 기억할 수 있지만, 만약 양(을 바치는 관행)까지 아울러 없애버린다면 이 예는 마침내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다. 이것이 내가 양(을 바치는 관행)을 아깝게 여기는 까닭이다."
●禮, 理也; 羊, 物也。禮隆則物賤, 禮汚則物貴。蓋禮隆則義爲之主, 用牛不可則用羊, 用羊不可則用豕, 故禮隆則物賤也; 禮汚則文爲之主, 循物則非禮, 故禮汚則物貴也。及乎其益衰也, 則人惟以物識禮, 而禮因物而存亡, 於是物益貴焉。故存羊, 即所以存禮也。子貢欲去餼羊, 其未達於此義乎!
●예는 이치이고, 양은 사물이다. 예가 융성하면 사물은 천해지고, 예가 낮아지면 사물이 귀해진다. 무릇 예가 융성해지면 의로움을 위주로 하니, 소를 쓰려다가 안 되면 양을 쓰고, 양을 쓰려다가 안 되면 돼지를 쓴다. 그러므로 예가 융성하면 사물이 천해진다는 것이다. 예가 낮아지면 문식(文飾)을 위주로 하니 사물을 따르다 보면 예가 아니게 되므로, 예가 낮아지면 사물이 귀해진다는 것이다. (세도가) 더욱 쇠해지면 사람들은 오직 사물로써만 예를 기억하게 되니, 예가 사물에 힘입어 존재하고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사물이 더욱 귀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양(을 바치는 관행)을 보존해두는 것은 곧 예를 보존하기 위한 방법인 것이다. 자공이 곡삭례에 바치는 양을 없애고자 한 것은 이 뜻에 통달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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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八章 MD0318
○ 魯之人士, 仰夫子之聖德久矣。而夫子自以臣子之禮處之, 於事君之禮, 自莫不盡, 且春秋時, 不知事君之禮, 故時人見夫子事君盡禮, 以爲諂也。
○노나라의 선비들이 부자의 성덕을 우러러본 것은 오래돼었다. 그러나 부자께서 스스로 신하된 자의 예로써 처신하여 임금을 섬기는 예에 스스로 다하지 않음이 없었으며, 또 춘추 시대에는 (사람들이)임금을 섬기는 예를 알지 못하였기에 당시 사람들이 부자께서 임금을 섬기는 데 예를 다하시는 것을 보고 아첨이라 여긴 것이다.
●此夫子傷當時之薄俗而歎之也。人臣之於君, 以盡禮爲本, 譏夫子以爲諂者, 本非昏愚柔懦之人, 必是揚己敖物, 不知遜讓者之言, 其流必至於賊道, 故君子惡焉。荀子之言曰: "道義重則輕王侯"[85] 非也。王侯豈可輕者耶? 其輕王侯者, 適其所以不知道義也。
●이는 부자께서 당시의 박한 풍속을 마음아파하시며 탄식한 것이다. 신하된 자는 임금에 대해 예를 다하는 것을 근본으로 여기니, 부자를 아첨한다고 비판한 자들은 본디 멍청하고 유약한 자들이 아니라, 필시 스스로를 떠벌리고 남들을 거만히 대하며 겸손겸양할 줄 모르는 자들의 말일 것이니, 그 폐해는 분명 도를 해치는 지졍에 이를 것이기에 군자가 (그들을)미워하는 것이다. 순자의 말에서 "도의가 무거워지면 왕과 제후도 가벼이 대할 수 있다"라고 하였지만, 이는 잘못된 말이다. 왕과 제후가 어찌 가벼이 대할 수 있는 자들이겠는가? 왕과 제후를 가벼이 대하는 자는 단지 도의를 알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十九章 MD0318
○ 定公, 魯君, 名宋。
○정공은 노나라 군주이니 이름은 송이다.
●以尊臨卑, 易以簡, 故爲君之道, 在使臣以禮; 以下事上, 易以欺, 故爲臣之道, 在事君以忠。君而無禮則失臣, 臣而不忠則身戮, 故聖人之言, 猶規矩繩墨乎。從之則吉, 違之則凶, 所以爲天下之極也。非若佛老異端之書, 可以高遠奇特, 求之而得也。
●높은 사람(=임금)으로써 낮은 사람(=신하)을 내려다 보면 간편하게 대하기 쉽다. 그러므로 임금 노릇하는 도는 신하를 예로써 부리는 데에 달려 있다. 아랫사람(=신하)으로써 윗사람(=임금)을 섬기다 보면 기만하기 쉽다. 그러므로 신하 노릇하는 도는 임금을 충으로써 섬기는 데 달려 있다. 임금이면서 무례하면 신하를 잃고, 신하면서 불충하면 극형을 당할 것이니, 따라서 성인의 말씀은 규구나 먹줄처럼 올곧은 것이다! 이 말씀을 따르면 길해지고, 어기면 흉해질 것이니, 이것이 바로 성인의 말씀이 천하의 표준이 되는 까닭이다. 이는 불가, 노장 등 이단의 책들이 고원함과 특이함으로써 구해야 얻을 수 있는 것과는 같지 않다.
二十章 MD0320
○ 《關雎》, 《周南》·《國風》詩之首篇也。淫者, 樂之過而失其正也; 傷者, 哀之過而害於和也。蓋《關雎》之樂, 其聲雖樂而不至淫, 雖哀而不至傷, 使聞者自得性情之正, 故夫子贊之。
○《관저(關雎)》는 《주남(周南)》과 《국풍(國風)》 시의 첫 편이다. 음란하다는 것은 즐거움이 지나쳐 그 바름을 잃게 되는 것이고, 아파한다는 것은 슬픔이 지나쳐 조화로움에 해가 되는 것이다. 대개 《관저》의 음악은 그 소리가 비록 즐겁지만 음란한 데 이르지 않고, 비록 슬프지만 아파하는 데 이르지 않아,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성정의 바름을 얻도록 한다. 그러므로 부자께서 찬미하신 것이다.
●此專美《關雎》聲音之盛而言, 當與'師摯之始, 《關雎》之亂'章參看。夫聲音之玅, 可以感動鬼神, 而況於人乎?[86]《關雎》之樂, 能合於中和之德而歸于性情之正, 夫子之所以取之也。蓋樂者人情之所宜有, 而哀亦人情之所不免。苟欲去人情之所宜有, 則至於絶物; 欲滅人情之所不免, 則至於害性。但《關雎》之樂, 其音樂而不淫, 哀而不傷, 聞之者邪穢蕩滌, 査滓融化, 自得性情之正, 樂之至美者也。然而'詩言志, 歌永言, 聲依永, 律和聲'[87], 則詩其本也。苟讀詩而善得其志, 則聲音自在其中矣。
●이는 오로지 《관저》 음악 소리의 성대함을 찬미하여 말한 것이니, 응당 《논어(論語)·태백(泰伯)》편에 나오는 '師摯之始, 《關雎》之亂' 장과 함께 참고해 봐야 한다. 무릇 음악 소리의 묘함은 귀신도 감동시킬 수 있는데,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는가? 《관저》의 즐거움은 능히 중화의 덕에 합치될 수 있어 성정의 바름으로 귀결될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부자께서 취하신 까닭이다. 대저 즐거움이라는 것은 사람의 감정 중에서 응당 있을 수밖에 없는 바이고, 슬픔 또한 사람의 감정 중에서 피할 수 없는 바이다. 만약 사람의 감정 중에서 응당 있을 수밖에 없는 바를 제거하려고 한다면, 외물을 모두 끊어내는 지경에 이를 것이고, 사람의 감정 중에서 피할 수 없는 바를 없애버리려고 한다면, 본성을 해치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그러나 《관저》의 음악은 그 소리가 즐거우면서도 음란한 데 이르지 않고, 슬퍼하면서도 아파하는 데 이르지 않아, 듣는 이는 (마음 속의) 더러움이 씻겨나가고 찌꺼기가 녹아버려서 절로 성정의 바름을 얻게 되니, 음악 중에서 지극히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시(詩)는 뜻을 말로 표현한 것이요, 가(歌)는 말을 길게 읊는 것이요, 성(聲)은 길게 읊음에 의지한 것이요, 율(律)은 읊는 소리를 조화시키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시가 그 근본이 된다. 만약 시를 읽고서 그 뜻을 잘 터득할 수 있다면, 성음은 절로 그 가운데에 있게 될 것이다.
●按: 《小序》云: "《關雎》者, 后妃之德也。" 本不言何王后妃, 蓋言后妃之德宜如此。《鵲巣》, 《關雎》之應也。其序云: "《鵲巣》者, 夫人之德也。" 亦不的言何國夫人, 則所謂后妃, 亦不斥言何王后妃爲是。今觀《小序》之作, 其首句文辭古奥, 實出於古人之手, 其爲國史之作明矣。其下云云者, 猥瑣鄙俚, 不足觀之, 且自相矛盾, 不可據以爲信, 故今據 《小序》首句爲斷。
●나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소서(小序)》에서 말하기를, "《관저》는 후비의 덕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여 본디 어느 왕의 후비인지 말하지 않았으니, 아마도 후비의 덕은 응당 이와 같아야 함을 말한 것인 듯하다. (소남의) 《작소(鵲巣)》는 (주남의)《관저》에 대응하는 작품이다. (《작소》의) 《소서(小序)》에서 말하기를, "《작소》는 부인의 덕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또한 어느 제후국의 부인인지 정확히 말하지 않았으니, 이른바 '후비'라는 것도 또한 어느 왕의 후비인지 직접 말하지 않은 게 옳은 듯하다. 지금 《소서》 지어놓은 것을 살펴보건대, 그 첫 구는 글이 고풍스럽고 그윽하여, 참으로 옛사람의 손에서 나온 것이니, 그것이 나라 사관의 작품임은 명백하다. 그(첫 구) 아래 어쩌구 저쩌구 한 것은 좀스럽고 비리하여 볼 만하지 않고, 또 자기들끼리 서로 모순되니, 근거하여 믿을 만하지 않다. 그러므로 지금 《소서》의 첫구만 근거로 하여 판단한다.
二十一章 MD0321
○ 宰我, 孔子弟子, 名予。古者建邦立社, 必植樹以爲主。王者受命王天下, 必改前代之制, 以新人之觀聽。三木皆老蒼堅強, 隨地能生, 故三代建國, 自王朝至於侯國, 植之以爲社主, 至周兼寓使民畏刑之意, 蓋以古者戮人於社也[88]。戰栗, 恐懼貌。宰我從解周人用栗之意如此。
○ 재아는 공자의 제자로 이름은 여이다. 옛날에 나라를 세우고 사직을 건립할 때, 반드시 나무를 심어서 신주로 삼았다. 천자가 천명을 받아 천하에 왕노릇함에 반드시 전대의 제도를 고쳐서 사람들의 눈과 귀를 새롭게 한다. 세 나무는 모두 울창하고 튼튼하여 어느 땅이든 잘 자라므로 삼대에 나라를 세우면 천자국부터 제후국에 이르기까지 이를 심어서 사직의 신주로 삼았는데, 주나라 대에 이르러 백성들이 형벌을 두려워 하게 하는 뜻을 아울러 담았으니, 아마도 옛날에 사직에서 사람을 죽였기 때문인 듯하다. 전율은 두려워하는 모양이다. 재아가 주나라 사람들이 밤나무를 사용한 뜻을 이와 같이 풀이한 것이다.
○ 言凡事既成矣, 不可復解説; 已遂矣, 不可復諫止; 已往矣, 不可復追咎。孔子以宰我所對, 既啓時君殺伐之心, 而其言已出不可復救, 故歷言此以深責之, 欲使謹其後也。
○ 모든 일은 이미 이루어지면 더는 해설할 수 없고, 이미 끝나면 더는 간쟁하여 멈출 수 없고, 이미 지나가면 더는 쫓아가서 탓할 수 없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공자께서 재아의 대답이 이미 당시 임금(애공)의 잔인한 마음을 열어주었으나 그 말이 이미 내뱉어져서 더는 구제할 수 없다고 여겼으므로, 이를 차례대로 말씀하시며 깊이 꾸짖으신 것이니, 그 다음부터는 (재아로 하여금) 조심하도록 하고자 하신 것이다.
●人君之德, 莫大於愛民, 故古之君子, 與人君言, 必以愛民爲本, 救民爲急。夫萌蘖之生, 灌漑培養之, 猶恐其或不得生, 矧可屈折剪伐之以殘其生乎? 故可人君殺伐之心者, 君子諱言之, 恐其傷仁義之良心也。孟子曰: "君子遠庖厨。" 蓋爲此也。夫子之深責宰我, 宜矣。
●임금의 덕은 백성을 사랑하는 것보다 큰 것이 없으니, 그러므로 옛날의 군자는 임금과 더불어 말할 때 반드시 백성을 사랑하는 것을 근본으로 여겼고, 백성을 구제하는 것을 급선무로 여겼다. 무릇 싹이 날 때는 물 주고 흙을 북돋아주어도 오히려 잘 자라지 못할까 걱정하거늘, 하물며 꺾어버리고 잘라버려서 그 자라남을 해치면 어떠하겠는가? 그러므로 임금의 잔인한 마음을 열어줄 수 있는 것을, 군자가 말하기 꺼려하는 것은 그것이 인의의 양심을 해칠까 근심해서이다. 맹자께서 "군자는 푸줏간을 멀리한다."라고 하신 것은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부자께서 재아를 심하게 꾸짖으심은 마땅하다.
二十二章 MD0322
○ 管仲, 齊大夫, 名夷吾, 相桓公覇諸侯。器者, 所以成其用也。《春秋傳》曰: '覇王之器'[89], 是也。器小, 謂管仲所執之具甚小, 不濟用也。
○ 관중은 제나라 대부로, 이름은 이오이며, 환공을 도와 제후들을 제패했다. 그릇이라는 것은, 그 쓰임을 이루기 위한 바의 것이다. 《춘추좌전》에서 말한 "패왕의 그릇"이 바로 이것이다. 그릇이 작다는 것은, 관중이 사용한 도구가 너무 작아서 쓰임을 이루지 못했음을 말한 것이다.
○ 或人疑器小之爲儉。
○ 혹인은 '그릇이 작다'는 것이 검소함을 의미하는 것인가 의심했다.
○ 三歸, 義未詳, 或曰臺名。攝, 猶兼也。家臣毎一人, 必兼治數事, 管仲不然, 皆言其侈。
○ 삼귀는 뜻이 무엇인지 자세하지 않은데, 어떤 이는 대의 이름이라 한다. 섭(攝)은 '겸하게 하다'와 같다. 가신 한 사람마다 반드시 여러 일을 겸하도록 하게 해야 하는데, 관중은 그러지 않았다. 이는 모두 그 사치스러움을 말한 것이다.
○ 爲禮者好備物, 故又疑不儉之爲知禮。
○ 예를 차리는 사람은 사물을 갖추어놓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므로 (혹자가) 또다시 '검소하지 않음'이 '예를 아는 것'인가 의심한 것이다.
○ 屏, 謂之樹; 塞, 猶蔽也。設屏於内, 以蔽内外也。坫, 在兩楹之間, 獻酬飲畢, 則反爵於其上。黄氏震曰[90]: "反坫, 累土而爲之, 如今行在所之騏驥院·牛羊司與凡營壘, 多於臺門内, 立土墻之類。按《汲冢周書》云: '乃立五宮, 咸有四阿反坫。' 註云: '反坫, 外向室也。' 豈兩君之好, 必欲容其儀衛, 而爲此外向之室? 世遠不可知。" 此皆諸侯之禮, 而管氏僭之, 夫子所以譏其不知禮也。兩説如此, 然近世多從黄氏之説。
○ 병풍을 일러 수(樹)라 한다. 색(塞)은 가린다는 것과 같다. 내부에 병풍을 설치하여 내부와 외부 사이에 가림막을 놓는 것이다. 점(坫)은 두 기둥 사이에 있는데, 술을 따라주고 마시는 일이 끝나면 술잔을 그 위에 되돌려 놓는다. 황진이 말했다. "반점은 흙을 쌓아서 만드는 것이니, 오늘날 행재소의 마굿간·외양간 및 망루 등에서 누대의 문 안에 많이들 세워놓는 흙담 따위의 것과 같다. 《급총주서(汲冢周書)》를 보면, '다섯 궁을 세움에, 모두 네 모서리의 반점이 있다.'는 말이 나오고, 그 주석에 이르기를 '반점은 바깥을 향해 나있는 방이다'라 했다. 어찌 두 군주가 우호를 다질 때, 굳이 의장과 호위를 갖추고서 이런 바깥을 향해 나있는 방을 만들었겠는가? 시대가 멀어졌으니, 알 수가 없다." 이는 모두 제후의 예인데, 관중이 참람되게 이를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부자께서 그가 예를 알지 못한다고 비난하신 까닭이다. 두 개의 설이 이와 같은데, 근세에는 황씨의 설을 많이 따른다.
●以德行仁則王, 以力假仁則覇。[91]管仲相桓公覇諸侯, 自世俗觀之, 其施爲事業, 固爲赫赫焉。然止於此耳, 若使管仲聞聖賢之學·唐虞三代之治, 豈難致哉? 子游爲武城宰, 以禮樂爲治, 曰: "割雞, 焉用牛刀?" 謂之物小而器大。若管仲之相齊, 專尚覇術, 功利是務, 不能致主於王道, 是割牛用雞刀, 謂之物大而器小。宜夫子譏管仲之器小, 後之居宰職者不可不知所從也。
●덕으로써 인을 행하면 왕자이고, 힘으로써 인을 빙자하면 패자이다. 관중이 환공을 도와 제후들을 제패한 것은 세속의 시각에서 보면 그 사업을 시행한 것이 참으로 휘황찬란하다. 그러나 여기에 그쳤을 따름이었으니, 만약 관중이 성현의 학문과 요순삼대의 다스림을 들었다면 어찌 (그것을) 이루기 어려웠겠는가? 자유가 무성의 읍재였을 때 예악으로 고을을 다스리자, 공자께서 "닭잡는데 어찌 소잡는 칼을 쓰느냐?"라고 하셨으니, 대상은 작은데 도구가 큼을 말씀하신 것이었다. 관중이 제나라에서 재상노릇하면서는, 오로지 패술만을 숭상하고 공리에만 힘써서, 임금을 왕도에 이르도록 보좌하지 못했으니, 이것은 소 잡는 데 닭잡는 칼을 쓴 것으로서, 대상이 큰데 도구가 작음을 말씀하신 것이었다. 부자께서 관중의 그릇이 작음을 비판하신 것은 마땅하니, 훗날 재상의 직위에 있는 자들은 좇아야 할 바를 몰라서는 안 될 것이다.
二十三章 MD0323
○語, 告也。大師, 樂官名。翕, 合也, 聚也。言樂有八音[92], 初起, 氣聚而不舒矣。
○'語'는 '고해준다'는 것이다. 태사는 악관의 명칭이다. '翕'은 합해진다, 모인다는 것이다. 음악에는 8음이 있는데, 처음 시작할 때는 (각 음의)기운이 모여서 펴지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 從, 讀爲縱, 放也。純, 和也。言樂之既放, 和而不乖, 猶五味相濟以相和也。皦, 明也。五音[93]六律[94], 明而不混也。繹, 相續不絶如貫珠也。成, 樂之一終也。言樂之節奏如此, 故其感于心者亦然。
○ '從'은 '縱'으로 읽으니, 풀어준다는 것이다. '純'은 어우러진다는 것이다. 음악이 한번 풀어지면 (각 음이)어우러지면서 어긋나지 않으니, 5가지 맛이 서로 섞여서 어우러지는 것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皦'는 분명하다는 것이다. 5음과 6률이 분명하여 뒤섞이지 않는 것이다. '繹'은 꿰인 구슬들처럼 서로 이어지면서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成'은 음악이 한번 끝나는 것이다. 음악의 리듬이 이와 같기 때문에 그것(음악)이 마음에 감응하는 것 역시 그러함을 말한 것이다.
●當時音樂殘缺, 伶官唯知論五音六律, 而不知樂之節奏有自然之序而其和在於絲毫之間, 況於其通性情心術之微者乎? 夫樂之於天下, 猶柁之於船, 或左或右, 隨其所轉; 將之於卒, 或進或退, 從其指麾。治亂盛衰, 毎與聲音相通, 故夫子爲大師, 一一指點而示之也。
●당시에 음악이 쇠락하여 악관들은 오직 5음과 6률만을 알았고, 음악의 리듬에 본연의 질서가 있으며 그것(음악)의 어우러짐이 호리지차에 달려 있음을 알지 못했으니, 하물며 그것(음악)이 성정과 마음씀에 통하는 은미함을 알았겠는가? 무릇 음악과 천하의 관계는 키와 배와 관계와 같아서 왼쪽 오른쪽으로 움직임에 그 방향 전환을 따라 가고, 장수와 졸병의 관계와 같아서 진격하고 퇴각함에 그 지휘를 따른다. (천하의) 치란과 성쇠가 매양 음악 소리와 더불어 상통하므로 부자께서 태사를 위해 하나하나 중요한 지점을 짚어가며 알려주신 것이다.
二十四章 MD0324
○ 儀, 衛邑。封人, 掌封疆之官。朱氏曰: "蓋賢而隠於下位者也。君子, 謂當時賢者。至此皆得見之, 自言平日不見絶於賢者, 而求以自通也。"
○ 의(儀)는 위(衛)나라의 읍이다. 봉인은 국경을 담당하는 관리이다. 주씨(주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마도 어질면서 낮은 지위에 은거한 자였던 듯하다. '군자'는 당시의 어진 이를 말한다. 여기에 이르면 모두 만나봤다는 것은, 평소 어진 이에게 물리침 당하지 않았음을 스스로 말하여서 자기 자신을 알리기를 구한 것이다."
○ 朱氏曰: "喪, 謂失位去國。《禮》曰: '喪欲速貧' [95]是也。木鐸, 金口木舌。蓋施政教時, 所振以警衆者也。" 言天下久亂, 道將自絶, 故天將使夫子爲木鐸, 詔道於萬世, 一時得喪, 豈足以爲患乎?
○ 주씨(주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상(喪)은 지위를 잃고 나라를 떠나는 것이다. 《예기》의 '지위를 잃으면 빨리 가난해지려고 한다.'는 용례가 이것에 해당한다. 목탁은 금속으로 된 주둥이 안에 나무로 된 혀가 있는 모양의 물건이다. 대개 정교를 베풀 때 흔들어서 뭇사람들을 경계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천하가 오래도록 어지러워 도가 장차 끊어지려 하므로, 하늘이 장차 부자로 하여금 목탁이 되게 하게 하여 만세에 도를 고하게 할 것이니, 일시적으로 (공자가) 지위를 잃더라도 어찌 걱정할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말한 것이다.
●門人親愛夫子深矣, 故不得不以其失位爲患。封人一見夫子, 遽以木鐸稱之, 其所以慰喩弟子者至矣。蓋不以一時得喪爲患, 而以木鐸萬世爲幸, 其見可謂卓矣。嗚呼異哉!
●문인들은 부자를 친애하는 정도가 깊어서, 부자의 지위 상실을 근심으로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봉인은 부자를 한번 뵙자마자 대번에 목탁으로 칭하였으니, 그가 제자들을 위로하고 깨우친 바가 지극하다. 일시적인 지위 상실을 근심으로 여기지 말고, 만세에 목탁 노릇함을 다행으로 여기라고 한 것이니, 그 식견이 가히 탁월하다 할 만하다. 아, 참으로 빼어나구나!
二十五章 MD0325
○ 韶, 舜樂; 武, 武王樂。美者, 聲容之盛; 善者, 美之實也[96]。
○ 소(韶)는 순임금의 음악이고, 무(武)는 무왕의 음악이다. '아름답다'는 것은 (음악)소리와 (춤추는)모습의 성대함이고, '선하다'는 것은 '아름다움'의 실체이다.
● 美者, 如鐘鼓管籥之音、干戚羽旄之容是也。善則指其德而言, 所謂"聞其樂而知其德"[97]是也。舜以揖遜而有天下, 武王以征伐而得天下。此韶之所以盡美盡善, 而武之未盡善也。聖人右文而左武, 崇德而惡殺, 故其言如此。蓋論其樂云然, 非論舜武之優劣也[98]。
● 아름답다는 것은 여러 악기들의 소리나 무용에 쓰이는 소품들의 모습 따위가 이에 해당한다. 선하다는 것은 그 덕을 가리켜 말한 것이니, 이른바 "그 음악을 들으면 그 군주의 덕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이에 해당한다. 순임금은 (요임금의) 선양으로써 천하를 소유하였고, 무왕은 (주왕을) 정벌함으로써 천하를 얻었다. 이것이 바로 소(韶)는 지극히 아름답고 지극히 선하지만 무(武)는 지극히 선하지 못한 까닭이다. 성인께서 문을 높이고 무를 낮추시며, 덕을 숭상하고 살육을 미워하시므로 그 말이 이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 음악이 그렇다는 것을 논했을 뿐, 순임금과 무왕의 우열을 논하신 것은 아니다.
二十六章 MD0326
○ 居上者以寛爲道, 而不欲好察; 禮以敬爲本, 而不在文飾。喪以哀爲主, 而不在備物。居上不寛, 則下無全人[99]; 爲禮不敬、臨喪不哀, 則本實既亡, 何所觀感邪?
○ 윗자리에 있는 사람은 관대함으로써 도를 삼아야지 너무 깐깐하게 살피고자 해서는 안 된다. 예는 공경함을 근본으로 삼아야지 겉으로 꾸미는 데에 치중하면 안 된다. 상례는 슬퍼함을 위주로 해야지, 예물을 갖추는 데 치중해서는 안 된다. 윗자리에 있으면서 관대하지 못하면 아랫 사람들 가운데 온전한 사람이 없게 된다. 예를 행하면서 공경하지 않고 상례에 임하여 슬퍼하지 않는다면 근본과 실질이 이미 망실되어 버리니, 보고 느낄 만한 바가 무엇이겠는가?
「子張」 MD19
六章 MD1906
●博學則求之也精, 篤志則信之也實, 切問則無泛然之患, 近思則無馳遠之弊. 學能如此, 則雖不足以謂之仁, 而爲事不苟, 必實之於身, 故曰, “仁在其中矣.”
주석, Footnote
- ↑ 仁道充大, 而足以保四海也: 《맹자》 〈公孫丑 上〉 제6장에 “무릇 나에게 있는 四端을 다 넓혀서 채울 줄 알면 마치 불이 처음 타오르며 샘물이 처음 나오는 것과 같을 것이니, 만일 능히 이것을 채운다면 사해를 보전할 수 있고, 채우지 못한다면 부모도 섬길 수 없을 것이다.[凡有四端於我者 知皆擴而充之矣 若火之始然 泉之始達 苟能充之 足以保四海 苟不充之 不足以事父母]”라는 내용이 보인다.
- ↑ 孔門之敎, 以仁爲學問之宗旨: 『童子問』卷上 〈44章〉에서의 핵심 질문.
- ↑ 剛毅木訥: 『論語』 「子路」13章
- ↑ 其辨誠僞: 『語孟字義』卷下 〈誠〉에서 僞와 대조하여 誠의 의미를 강조함.
- ↑ 三復: “南容三復白圭” 『論語』 「先進」5章
- ↑ 三令: 세 번 명령하고 다섯 번 신칙한다는 '삼령오신(三令五申)'의 줄임말. 지휘관이 부하를 철저하게 단속하며 훈련시키는 것을 말한다. 손자(孫子)가 오왕(吳王) 합려(闔閭) 앞에서 여자들을 부하로 삼아 시범을 보일 적에 “일단 약속을 정하여 선포한 다음에 부월을 설치해 놓고는 곧바로 세 번 명령하고 다섯 번 신칙하였다.〔約束旣布 乃設鈇鉞 卽三令五申之〕”라는 말이 『사기(史記)』권65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에 나온다.
- ↑ 『論語』 「泰伯」1章
- ↑ 『論語』 「泰伯」4章
- ↑ 『論語』 「憲問」28章
- ↑ 包氏는 包咸.
- ↑ 孟子曰, “道在爾而求諸遠, 事在易而求諸難, 人人, 親其親, 長其長, 而天下平.” 『孟子』「離婁」上
- ↑ 楊氏는 楊時.
- ↑ 伊川云, 見賢而變易顔色.
- ↑ 游氏는 游酢.
- ↑ 『논어』 「선진」 '공문십철'.
- ↑ 朱氏는 주희를 가리키는 호칭인 듯.
- ↑ 『논어』 「자장」25章.
- ↑ 『논어』 「안연」20章. 동양고전종합DB
- ↑ 『논어』 「자한」12章. 동양고전종합DB
- ↑ 『中庸』19章. 동양고전종합DB. 해당 부분의 원문은 “夫孝者, 善繼人之志, 善述人之事者也”이다.
- ↑ 『論語』 「子張」18章. 동양고전종합DB. 해당 부분의 원문은 “其不改父之臣與父之政, 是難能也”이다.
- ↑ 『논어집주』 尹氏曰, “如其道, 雖終身無改, 可也.”
추가 참고자료. 『大學衍義』卷6. 동양고전종합DB. 해당 부분의 원문은 “夫父之道善者, 當守之終身”이다. - ↑ 『禮記』「儒行」, “儒有博學而不窮, 篤行而不倦, 幽居而不淫, 上通而不困. 禮之以和爲貴, 忠信之美, 優游之法. 擧賢而容衆, 毁方而瓦合, 其寬裕有如此者.”
- ↑ 『논어집주』 程子曰, “禮勝則離, 故禮之用, 和爲貴.”
- ↑ 『語孟字義』「仁義禮智」, “禮字義本分明. 然於禮之理, 甚多曲折, 非學明識達者, 不能識焉. 蓋禮之難知, 不在於節文度數繁縟難識, 而專在於斟酌損益時措之宜, 何則? 古禮多不宜於今, 而俗禮亦不可全用. 漢禮多不通於本國, 而俗禮本無意義. 若欲準古酌今, 隨於土地, 合於人情, 上自朝廷, 下至於閭巷, 使人循守而樂行之, 則非明達君子, 不能作焉. 故聖人之所謂知禮者, 不在識名物度數之詳, 而在知禮之理而能損益之也.”
- ↑ 당나라 승려는 화엄종의 제4조 징관(澄觀, 738~839)
- ↑ 『예기』 「曲禮下」, “約信者, 以言語, 相要約爲信也, 用誓禮.”
- ↑ 『논어』 「자장(子張)」, “大德不踰閑, 小德出入可也.”
- ↑ 『맹자』 「離婁下」, 孟子曰, “大人者, 言不必信, 行不必果, 惟義所在.”
- ↑ 『논어』 「태백(泰伯)」, “子曰, ‘恭而無禮則勞, 愼而無禮則葸, 勇而無禮則亂, 直而無禮則絞. 君子篤於親, 則民興於仁, 故舊不遺, 則民不偸.’”
- ↑ 동양고전종합DB 『시경집전』 「衞風」, 〈淇澳〉
- ↑ 《詩》,活物也。遊、夏以後,自漢至宋,無不說《詩》者。不必皆有當於《詩》,而皆可以說《詩》。其皆可以說《詩》者,即在不必皆有當於《詩》之中。非說《詩》者之能如是,而《詩》之為物,不能不如是也。何以明之?孔子,親刪《詩》者也。而七十子之徒,親受《詩》於孔子而學之者也。以至春秋列國大夫,與孔子刪《詩》之時,不甚先後,而聞且見之者也。以至韓嬰,漢儒之能為《詩》者也。且讀孔子及其弟子之所引《詩》、列國盟會聘享之所賦《詩》與韓氏之所傳《詩》者,其事、其文、其義,不有與《詩》之本事、本文、本義絕不相蒙而引之、賦之、傳之者乎?既引之,既賦之,既傳之,又覺與《詩》之事、之文、之義未嘗不合也。其故何也?夫《詩》,取斷章者也。斷之於彼,而無損於此;此無所予,而彼取之。說《詩》者盈天下,達於後世,屢遷數變,而《詩》不知,而《詩》固已明矣,而《詩》固已行矣。然而《詩》之為《詩》自如也,此《詩》之所以為經也。今或是漢儒而非宋,是宋而非漢,非漢與宋而是己說,則是其意以為《詩》之指歸,盡於漢與宋與己說也,豈不隘且固哉!漢儒說《詩》據《小序》,每一詩,必欲指一人、一事實之。考亭,儒者,虛而慎,寧無其人、無其事,而不敢傳疑,故盡廢《小序》不用。然考亭所間指為一人、一事者,又未必信也。考亭注有近滯者、近癡者、近疏者、近累者、近膚者、近迂者。考亭之意,非以為《詩》盡於吾之注,即考亭自為說《詩》,恐亦不盡於考亭之注也。凡以為最下者,先分其章句,明其訓詁。若曰有進於是者,神而明之,引而伸之,而吾不敢以吾之注,畫天下之為《詩》者也。故古之制禮者從極不肖立想,而賢者聽之;解經者從極愚立想,而明者聽之。今以其立想之處,遂認為究極之地,可乎?國家立《詩》於學官,以考亭注為主。其亦曰有進於是者,神而明之,引而伸之云爾。
- ↑ 동양고전종합DB 『논어집주』 「자한」 30장
- ↑ 동양고전종합DB 『중용장구』12장 , 『시경집전』 「대아」, 〈한록〉
- ↑ 『中庸』30章, “仲尼祖述堯舜 憲章文武.” 『論語注疏』권10 「先進」. “仲尼祖述堯舜 憲章文武 生値亂時而君不用 三子不能相時 志在爲政 唯曾晳獨能知時 志在澡身浴德 詠懷樂道 故夫子與之也”
- ↑ 『孟子』 「公孫丑上」
- ↑ 동양고전종합DB 『詩經』「魯頌·駉」
- ↑ 동양고전종합DB 『논어』「述而」17章
- ↑ 『易經』 咸(함)괘,계사전
- ↑ 『孟子』 「梁惠王上」
『童子問』28장, 問王霸之辨. 曰, “王者以子養民, 霸者以民治民. (후략)”
『童子問』29장, 問, “何謂以子養民?” 曰, “先王視民猶赤子, 惟恐民之不得其所. 故制民之産, 仰足以事父母, 俯足以畜妻子. 又設爲庠序學敎, 申之以孝悌之義. 斯之謂以子養民也. (후략)” - ↑ 동양고전종합DB 『논어』 「안연」10章
- ↑ 동양고전종합DB 『논어』 「안연」22章
- ↑ 『맹자』 「만장 상(萬章上)」, “그렇게 하려 하지 않는데도 그러한 일을 하게 되는 것이 하늘이요, 그렇게 되게끔 한 것이 없음에도 그러한 상황에 이르는 것이 명이다.〔莫之爲而爲者 天也 莫之致而至者 命也〕”
- ↑ 『맹자』 「진심 하(盡心下)」, “대인이면서 화의 경지에 들면 성인이라 하고, 성인이면서 알 수 없는 경지에 이르면 신인이라고 한다.〔大而化之之謂聖 聖而不可知之之謂神〕”
- ↑ 『맹자』 「고자 상(告子上)」, “夫操則存, 舍則亡, 出入無時, 莫知其鄕”
- ↑ 立身行道: 『孝經』 「開宗明義章」, “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
- ↑ 『書經』 「仲虺之誥」, “以義制事 以禮制心 垂裕後昆”
- ↑ 『논어』 「이인」 21장. 주희의 주석.
- ↑ 『近思錄集解』권3 「致知」
- ↑ 『맹자』 「고자 상(告子上)」, “義理之悅我心, 猶芻豢之悅我口.”
- ↑ 『老子』19장, “絶聖棄智 民利百倍 絶仁棄義 民復孝慈 絶巧棄利 盜賊無有.”
- ↑ 출천이 어디일까.
- ↑ 『論語』 「子張」, “子夏曰, 日知其所亡, 月無忘其所能, 可謂好學也已矣.”
- ↑ 『禮記』 「學記」, “大學之法, 禁於未發之謂豫, 當其可之謂時, 不陵節而施之謂孫, 相觀而善之謂摩.”
- ↑ 『論語』 「衛靈公」
- ↑ 『論語』 「子張」, 子夏曰, “雖小道, 必有可觀者焉. 致遠恐泥, 是以君子不爲也.”
- ↑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 “『역』은 성인께서 심오함을 극진히 하시어 그 기미를 살피신 것이다(夫易, 聖人之所以極深而硏幾也).”
- ↑ '사심(師心)'은 자기의 마음을 스승으로 삼아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것. ‘자용(自用)’은 남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만 하는 것.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 “어찌 감화시키는 데 미칠 수 있겠는가. 여전히 자신의 마음을 스승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夫胡可以及化? 猶師心者也).”
- ↑ 『논어』 「자로」13. 동양고전종합DB
- ↑ 『맹자』 「盡心」上. 동양고전종합DB
- ↑ 한유(韓愈) 「쟁신론(爭臣論)」 『고문관지(古文觀止)』, “古之人有云, 仕不爲貧, 而有時乎爲貧, 謂祿仕者也. 宜乎辭尊而居卑, 辭富而居貧, 若抱關擊柝者, 可也. 蓋孔子嚐爲委吏矣, 嚐爲乘田矣, 亦不敢曠其職, 必曰, ‘會計當而已矣’, 必曰, ‘牛羊遂而已矣.’” 네이버 블로그 링크
- ↑ 『論語正義』
- ↑ 『禮記正義』卷60, 「大學」42 ‘군자는 집안을 벗어나지 않고서도 나라에 교화를 이룬다. 효孝는 임금을 섬기는 방도요, 제弟는 어른을 섬기는 방도요, 자慈는 무리를 부리는 방도다.’ 동양고전종합DB
- ↑ 『書經集傳』권9 「周書·君陳」 동양고전종합DB
- ↑ 『書經集傳』권9 「周書·君陳」 동양고전종합DB
- ↑ 『孟子集註』, 「盡心章句 上」42, 동양고전종합DB
- ↑ 陸元朗. 중국역대인물초상화 '육원랑' 기사
- ↑ 『論語』「雍也」20章의 집주 내용.
- ↑ 『論語』「雍也」20章
- ↑ 『論語』「公冶長」17章의 집주 내용. 동양고전종합DB.
- ↑ 『사기(史記)』 권130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에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공언을 실으려고(기록하려고) 할진댄, (어떠한) 사안을 집행함에 있어 몹시도 절실하고 현저히 분명한 것에 대해 보여주는 것이 최선이다.’라고 하였다.〔子曰 我欲載之空言 不如見之於行事之深切著明也〕” 하였다.
- ↑ 『시경·小雅』 「祈父之什」
- ↑ 『書經·商書』 「仲虺之誥」
- ↑ 《論語·季氏》: "天下有道,則禮樂征伐自天子出;天下無道,則禮樂征伐自諸侯出"
- ↑ 《孟子·離婁下》 孟子曰: "君子所以異於人者,以其存心也。君子以仁存心,以禮存心。"
- ↑ 《左傳‧閔公二年》: “衣, 身之章也。”
- ↑ 《맹자·이루상》 有孺子歌曰:『滄浪之水清兮,可以濯我纓;滄浪之水濁兮,可以濯我足。』孔子曰:『小子聽之!清斯濯纓,濁斯濯足矣,自取之也。』
- ↑ 《中庸章句》29장 "上焉者, 雖善無徵, 無徵不信, 不信民弗從. 下焉者, 雖善不尊, 不尊不信, 不信民弗從."이니라
- ↑ 《中庸章句》30장: "仲尼祖述堯舜, 憲章文武; 上律天時, 下襲水土."
- ↑ 《論語·八佾26》
- ↑ 《禮記-祭義》 致齊於內,散齊於外。齊之日:思其居處,思其笑語,思其志意,思其所樂,思其所嗜。齊三日,乃見其所為齊者。
- ↑ 《禮記-祭義》祭之日:入室,僾然必有見乎其位,周還出戶,肅然必有聞乎其容聲,出戶而聽,愾然必有聞乎其嘆息之聲。
- ↑ 《儀禮·鄉射禮》: "禮射, 不主皮. 主皮之射者, 勝者又射, 不勝者降." 鄭玄 注: "禮射, 謂以禮樂射也: 大射·賓射·燕射, 是矣. '不主皮'者, 貴其容體比於禮, 其節比於樂, 不待中爲雋也. 言不勝者降, 則不復升射也. 主皮者, 無侯, 張獸皮而射之, 主於獲也."
- ↑ 《논어집주》 "楊氏曰:「中可以學而能,力不可以強而至。聖人言古之道,所以正今之失。」"
- ↑ 《荀子-脩身》: "志意脩則驕富貴,道義重則輕王公: 內省而外物輕矣。"
- ↑ 《論語·泰伯》 子曰:「師摯之始,《關雎》之亂,洋洋乎盈耳哉。」
- ↑ 《서경》 〈우서(虞書) 순전(舜典)〉에 “시(詩)는 뜻을 말로 표현한 것이요, 가(歌)는 말을 길게 읊는 것이요, 성(聲)은 길게 읊음에 의지한 것이요, 율(律)은 읊는 소리를 조화시키는 것이다.[詩言志 歌永言 聲依永 律和聲]”라고 하였다.
- ↑ 《서경(書經)·하서(夏書)·감서(甘誓)》 에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사(社)에서 죽이되 나는 너의 자식까지 죽이리라.[不用命 戮于社 豫則努戮汝]”는 말이 나온다.
- ↑ 《春秋左傳·閔公·元年》"親有禮, 因重固, 間携貳, 覆昏亂, 覇王之器也"
- ↑ 黄震, 《黄氏日抄》권2: "鄭註謂: '坫在兩楹之間, 反爵其上.' 按: 今世釋奠反爵, 乃以四方板而圓坎其中. 或云: '此反坫之餘制. 然坫字從土, 而云在兩楹間, 豈常設之者歟?' 按《郊特牲》'臺門而旅樹, 反坫', 《雜記》'旅樹而反坫'. 鄭氏亦以樹為屛, 以反坫為反爵之地. 然《内則》載閣食之制, 云: '士於坫'; 《明堂位》載朝㑹之制, 云: '反坫出尊, 崇坫康圭'; 《士虞禮》載苴茅之制, 云: '僎于西坫上', 是則累土而為之者, 皆可名坫, 而坫亦有髙卑東西之不同, 非必反爵之處也. 如'臺門而旅樹', 反坫當是立反坫於臺門之内, 如今行在所之騏驥院·牛羊司與凡營壘, 多於臺門内, 立土牆之類歟. 鄭氏之釋反坫, 皆本《論語》, 其指坫為反爵, 皆本'好'之一字, 意兩君之好, 為飲酒故云耳. 然以坫之反為爵之反, 似異於經文, 又按《汲冢周書》云: '乃立五宫, 咸有四阿反坫', 註云: '反坫, 外向室也', 則反坫又非反爵之地. 反主坫言, 非主爵言也. 反殆向外之名, 坫殆别設大門屛之名. 豈兩君之好, 必欲容其儀衞之衆而為此外向之室歟? 世遠不可知. 若據《郊特牲》以反坫與臺門相聯, 《汲冢書》以反坫與四阿相聯, 則《論語》以反坫與樹塞門相聯, 恐均為宫室僭侈之事."
- ↑ 《孟子·公孫丑上》: "孟子曰:「以力假仁者霸,霸必有大國,以德行仁者王,王不待大。"
- ↑ 금(金)ㆍ석(石)ㆍ사(絲)ㆍ죽(竹)ㆍ포(匏)ㆍ토(土)ㆍ혁(革)ㆍ목(木)
- ↑ 궁(宮), 상(商), 각(角), 치(徵), 우(羽).
- ↑ 태주(太蔟ㆍ太簇), 고선(姑洗), 황종(黃鍾), 이칙(夷則), 무역(無射), 유빈(蕤賓).
- ↑ 《禮記·檀弓上》: "有子問於曾子曰:「問喪於夫子乎?」曰:「聞之矣:喪欲速貧,死欲速朽。」"
- ↑ 朱子, 《論語集注》: "韶,舜樂。武,武王樂。美者,聲容之盛。善者,美之實也。"
- ↑ 《맹자》 〈공손추 상〉 “예를 보면 그 나라의 정사를 알 수 있고 악을 들으면 그 군주의 덕을 알 수 있다.[見其禮而知其政, 聞其樂而知其德.]”
- ↑ 朱子, 《論語集注》: "舜紹堯致治,武王伐紂救民,其功一也,故其樂皆盡美。然舜之德,性之也,又以揖遜而有天下;武王之德,反之也,又以征誅而得天下,故其實有不同者。程子曰:「成湯放桀,惟有慚德,武王亦然,故未盡善。堯、舜、湯、武,其揆一也。征伐非其所欲,所遇之時然爾。」"
- ↑ 《論語集注·子路》仲弓爲季氏宰, 問政. 子曰: "先有司, 赦小過, 擧賢才." 集注: "范氏曰: 「不先有司, 則君行臣職矣; 不赦小過, 則下無全人矣. 不擧賢才, 則百職廢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