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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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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음악의 출발점을 [[들국화(밴드)|들국화]]로 꼽고 있으며, [[한국외국어대학교]] 재학 시절 '아카시아', '셀프서비스[SS]' 등의 '''헤비메탈 밴드'''를 결성하는 등 이승환 음악의 시작점은 록 음악이다. 이후에도 오태호와 함께 파고다 극장 언더그라운드의 여러밴드를 거쳤다.[* 이 시절 오태호는 기타리스트다.]
 
  
본인의 발언에 따르면 이 시기 가죽 자켓에 쇠사슬을 매달고 무대 위를 뛰어다녔다고 한다.[* 이 시절 파고다 극장 공연에서 온몸에 쇠사슬을 감고 무대에 멋지게 등장했는데 제일 앞자리 여자 관객이 '''어머 여기는 중학생이 보컬인가 봐!'''라고 이야기하는 걸 듣고 좌절했다고 한다.][* 또한 이 시절에 가수를 꿈꾸는 아들이 재능은 있는건지 궁금한 아버지가 평소 알고 지내던 작곡가 길옥윤에게 평을 듣고자 밴드 공연에 온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 당시 욕 들어간 외국 메탈곡을 한국화해야 한다며 걸쭉한 욕을 쩌렁쩌렁한 샤우팅으로 내뱉는 바람에 어르신들이 당황했다고 한다. 어찌 됐건 이 공연을 계기로 첫 음반을 위한 부친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를 테면 1집의  데뷔곡 '[[텅 빈 마음]]'[* 다만 본인은 이 앨범, 특히 이 당시 본인의 보컬톤을 상당히 부끄러워 하는 듯하다. 스스로 '''바람난 중딩'''이라면서 디스한다.]의 경우에도 분명 음악 장르적 분법으로는 발라드에 속하지만, 곡 진행과 사운드의 활용에 있어 록적인 요소를 가미했으며, 동 앨범의 다른 트랙들, 특히 '좋은 날이'나 '그냥 그런 이야기'[* 그래서 라이브에서는 아예 록으로 싹 뒤엎어서 부른다.]는 아예 록적인 접근이 더 두드러진다. 그리고 데뷔 이후 계속된 음악 작업에서는 전통적인 문법에 따른 록 음악을 추구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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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음악의 출발점을 들국화로 꼽고 있으며, 한국외국어대학교 재학 시절 '아카시아', '셀프서비스[SS]' 등의 헤비메탈 밴드를 결성하는 등 이승환 음악의 시작점은 록 음악이다. 이후에도 오태호와 함께 파고다 극장 언더그라운드의 여러밴드를 거쳤다.
  
사실 이런 록적인 본색은 본인 스스로도 [[이오공감]]의 앨범에서 많이 드러냈다고 고백을 한 적이 있고[* 그래서 이오공감의 앨범은 오태호의 발라드 곡 때문에 많이 팔렸다고 스스로 인정했다.] 3집부터는 1, 2집에 비하면 록적인 접근이 훨씬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렇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당시의 이승환 본인에게 있었던 일도 어느 정도 영향을 준 모양이다. 3집부터 내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할 정도다.[* 그래서 3집의 타이틀이 '''My Story'''다.]
 
  
다만 [[메이저]] 데뷔가 [[발라드]]로부터 시작했으며, 이때 당시 큰 활약을 했던 [[오태호]]와의 콤비로 엄청난 대중성을 발휘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그 후 앨범에서도 록적인 요소가 가미된 곡이나 록 음악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앨범의 타이틀곡은 발라드였으므로, 추구하는 장르가 어떻든지 대중은 이승환을 발라드 가수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이승환 본인의 말로는 록 보컬로는 자신의 음색에 강한 한계를 느껴서 결국 발라드와 록 사이의 미묘한 줄타기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로는 같은 무명 시절에 파고다 극장 무대에 선 '''[[김종서(가수)|김종서]]'''의 공연을 보고 '''쟤 때문에 난 록은 안 되겠다'''라고 느껴서 방향을 틀었다고 한다. 또 하나는 [[이문세]]의 '''소녀'''가 본인을 발라드로 전향하게 만든 곡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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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발언에 따르면 이 시기 가죽 자켓에 쇠사슬을 매달고 무대 위를 뛰어다녔다고 한다.이를 테면 1집의  데뷔곡 '텅 빈 마음'<ref>[https://namu.wiki/w/%ED%85%85%20%EB%B9%88%20%EB%A7%88%EC%9D%8C '텅 빈 마음']</ref>경우에도 분명 음악 장르적 분법으로는 발라드에 속하지만, 곡 진행과 사운드의 활용에 있어 록적인 요소를 가미했으며, 동 앨범의 다른 트랙들, 특히 '좋은 날이''그냥 그런 이야기'는 아예 록적인 접근이 더 두드러진다. 그리고 데뷔 이후 계속된 음악 작업에서는 전통적인 문법에 따른 록 음악을 추구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팬들도 발라드 가수 이승환을 좋아하는 팬들과, 록 음악을 하는 이승환까지 좋아하는 팬들로 나뉘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난 이승환 옛날엔 좋았는데 요즘은 별로야'''라면 전자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다만 노래 중간중간에 나오는 메탈릭한 샤우트 보컬은 곡의 전개에 큰 의미가 없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4집의 '너의 나라'와 6집의 '나의 영웅'을 들어보면 된다. 골수팬들이야 좋다고는 하지만 발라드 가수로만 아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으로 느껴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4집에서 다수 수록된 록적인 트랙을 듣고 '''변절자'''라면서 돌아선 팬들도 상당수 있었다. 이와는 반대로 1, 2집 시절의 이승환을 낯설어하는 사람들도 예상 외로 많은 편이다.]
 
이에 따라 4집 Human에서는 'Fire'와 'Water', 6집에서는 '정상'과 '비정상', 7집에서는 'Sunny Side-Up'과 'Over Easy' 등으로 앨범을 이분하여 앞부분에는 발라드를 위시한 팝 적인 분위기의 곡들, 뒷부분에는 록 위주의 곡들을 수록하여 양쪽 모두의 팬들을 끌어들이려 하였지만 음악적 퀄리티와는 무관하게 그다지 성공한 시도로는 평가받지 못한다. 발라드 팬들은 뒷부분을 싫어하고 록음악 팬들은 앞부분을 싫어하니 결국 불만은 그대로. 게다가 음반 자체로서의 연결성과 완결성이 떨어진다는 비판까지 나왔었다. 그래서 '''Serious Day'''라는 록 음악에 집중한 음반을, '''Monglong'''이라는 발라드에 집중한 비정규 음반을 내기도 했다. 정규 9집과 10집은 락과 발라드를 잘 섞어서 한 장의 음반으로 발매했다. 또 발라드로만 구성되어있는 His Ballad I, His Ballad II 앨범을 내기도 했다. 이 앨범들엔 주로 예전에 나온 노래를 다시 녹음하거나 새 곡을 넣었다.
 
  
사실 '천 일 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 곡을 김동률이 작사하고 작곡까지 한 노래로 알고 있는데 이 곡은 이승환이 가사를 쓰고 김동률이 멜로디를 쓴 곡이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 9년 선후배 사이다. 김동률은 본인이 고등학교 2학년 때 당시 학교 가요제의 손님으로서 이승환을 본 기억이 있다고 회상했다. 천 일 동안은 김동률이 이승환 집에 놀러와서 피아노로 멜로디를 연주해줬을 때 이승환이 그 자리에서 '다만이랑 함께 이 곡을 수록하겠다'고 바로 알려줬다고 한다.] 등의 초히트 발라드곡에 묻혀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이승환의 록 음악은 어느 수준 이상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사운드 측면에서는. 다만 전통적인 록/메탈씬에서는 발라드 가수 출신인 이승환을 그다지 높게 평가하지 않으며, 이승환 스스로도 전통적인 문법에 따른 록 음악보다는 가스펠을 도입하고 Choir를 강조하는등 변형된 록 음악을 추구하고 있기에 실제보다는 낮게 평가받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싱어송라이터]]다.''' 데뷔 앨범만 하더라도 수록곡 10곡 중 7곡을 자작곡으로 넣을 정도며, 매 앨범마다 꾸준히 자작곡을 채우는 사람이다.[* 다만 5집 이후부터 작곡 부분은 공동으로 하는 비중이 많이 늘고 있다.] 문제는 유명한 곡들 대다수가 다른 뮤지션 혹은 작곡가들의 곡이거나 아님 공동 작사/작곡이라는 것. 특히 공동 작사/작곡인 경우에는 엄밀히 말해서 일단 이승환이 먼저 곡을 쓰고 그것을 공동 작사/작곡으로 명시되는 뮤지션과 공동으로 수정, 보완하는 식으로 완성하는데 문제는 이게 그 공동 작곡가의 곡이라고만 알려진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본인도 '''내가 곡을 쓴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유희열의 인터뷰에 의하면 '''전체적인 아이디어의 대다수는 해당 뮤지션(이승환, 윤종신)이 하고 본인은 그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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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록적인 본색은 본인 스스로도 이오공감<ref>[https://namu.wiki/w/%EC%9D%B4%EC%98%A4%EA%B3%B5%EA%B0%90 이오공감]</ref>의 앨범에서 많이 드러냈다고 고백을 한 적이 있고 3집부터는 1, 2집에 비하면 록적인 접근이 훨씬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렇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당시의 이승환 본인에게 있었던 일도 어느 정도 영향을 준 모양이다. 3집부터 내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할 정도다.
  
한편, 가수 유재하 다음으로 가수 본인이 직접 자신의 음반을 제작한 가수이다. 1집을 제작한 '우리기획'은 이승환이 아버지에게 돈을 빌려서 차린 회사다. 이후 1997년, 우리기획[* 불후의 명곡으로 알려진 더 클래식의 마법의 성, 그게 이 양반이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이름을 감춘 이유는 그 당시 '가수가 왜 제작을 하느냐'는 주변의 눈총(그 시절에는 가수가 제작은 하는 것에 대해서 시선이 고운 편이 아니었다고 한다.) 때문에 숨긴 것이라고 밝혔다. 소속 가수로 따지면 더 클래식이 바로 우리기획 소속 가수 1호.]을 확장시켜 '드림팩토리'라는 종합 연예기획사를 만들어 휘하에 공연 스탭 양성 학교, 음반 녹음 스튜디오, 연예 매니지먼트 사업부, 캐릭터 디자인 사업 등을 하였으나 국내 음반 시장의 전체적인 부진과 더불어 그리 전문적이지 못했던 경영 등의 이유로 시원하게 말아먹고 대부분 철수 혹은 분리하였고, 직접 매니지먼트하던 [[박신혜]], 정성미, [[김시후]] 등은 모두 다른 기획사로 이적하게 됐다.
 
  
이후로 드림팩토리에 본인만 남은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인디 뮤지션들에 대한 제작과 지원의 끈은 아직도 유지하고 있는 듯 했으나, 드림팩토리클럽은 '''잠정 휴업'''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241&aid=0002200404|들어갔었다]].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윤상(가수)|윤상]]과 같은 소속사였고, 지금은 오드뮤직에서 나와 1인 기획사 형태로 드림팩토리를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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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메이저 <ref>[https://namu.wiki/w/%EB%A9%94%EC%9D%B4%EC%A0%80 메이저]</ref>데뷔가 발라드로부터 시작했으며, 이때 당시 큰 활약을 했던 <ref>[https://namu.wiki/w/%EC%98%A4%ED%83%9C%ED%98%B8 오태호]</ref>와의 콤비로 엄청난 대중성을 발휘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그 후 앨범에서도 록적인 요소가 가미된 곡이나 록 음악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앨범의 타이틀곡은 발라드였으므로, 추구하는 장르가 어떻든지 대중은 이승환을 발라드 가수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이승환 본인의 말로는 록 보컬로는 자신의 음색에 강한 한계를 느껴서 결국 발라드와 록 사이의 미묘한 줄타기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로는 같은 무명 시절에 파고다 극장 무대에 선 김종서<ref>[https://namu.wiki/w/%EA%B9%80%EC%A2%85%EC%84%9C(%EA%B0%80%EC%88%98 김종서]</ref>의 공연을 보고 쟤 때문에 난 록은 안 되겠다라고 느껴서 방향을 틀었다고 한다. 또 하나는 이문세<ref>[https://namu.wiki/w/%EC%9D%B4%EB%AC%B8%EC%84%B8 이문세]</ref>의 소녀가 본인을 발라드로 전향하게 만든 곡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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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팬들도 발라드 가수 이승환을 좋아하는 팬들과, 록 음악을 하는 이승환까지 좋아하는 팬들로 나뉘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난 이승환 옛날엔 좋았는데 요즘은 별로야라면 전자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다만 노래 중간중간에 나오는 메탈릭한 샤우트 보컬은 곡의 전개에 큰 의미가 없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인맥관계==
 
==인맥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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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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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2020년 7월 1일 (수) 19:44 기준 최신판

개요

1996.jpg


출생

1965.12.13


직업

가수

소속

드림팩토리클럽 (1989 ~ 2014) 오드뮤직 (2014 ~ 2015) 드림팩토리클럽 (2015~)

별명

어린왕자, 공연의 신, 공장장, 새벽고딩, 이철민 아쟐, 라이브의 황제

경력

  • ~2005.12 드림팩토리 대표
  • 2003.03~2012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 명예홍보대사

종교

무종교

학력

  •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영문학 중퇴
  • 휘문고등학교
  • 보성중학교
  • 혜화초등학교

수상

  • 2011 MBC 방송연예대상 쇼버라이어티부문 특별상
  • 2011 제1회 한국음악저작권대상 공연문화상
  • 2011 제3회 멜론 뮤직 어워드 공연문화상
  • 2002 기자들이 뽑은 2001년 최고의 선행 연예인
  • 2002 Mnet KM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PIONEER상
  • 1997 Mnet KM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올해의 발라드상
  • 1997 Mnet KM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베스트비디오상
  • 1993 KBS 가요대상 올해의 가수상
  • 1993 대한민국영상음반대상 골든디스크상 본상
  • 1992 대한민국영상음반대상 골든디스크상 본상
  • 1992 서울가요대상
  • 1991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 신인가수상

데뷔

1989년 1집 B.C 603


출연작품

  • A.B.B.D

2019.10.19 ~ 2019.10.19 하나투어 브이홀 (구 레진코믹스 브이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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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XZ 페스티벌

2019.10.19 ~ 2019.10.20 노들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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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렛츠락 페스티벌

2019.09.21 ~ 2019.09.22 난지 한강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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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환 콘서트

2019.07.04 ~ 2019.07.04 신한카드 FAN(판)스퀘어_라이브홀


R.jpg


  • 이승환 콘서트

2019.04.13 ~ 2019.04.21 이화여자대학교 삼성홀


T.jpg


  • 이승환 콘서트

2019.06.27 ~ 2019.06.27 하나투어 브이홀 (구 레진코믹스 브이홀)


Y.jpg

음악


스스로 음악의 출발점을 들국화로 꼽고 있으며, 한국외국어대학교 재학 시절 '아카시아', '셀프서비스[SS]' 등의 헤비메탈 밴드를 결성하는 등 이승환 음악의 시작점은 록 음악이다. 이후에도 오태호와 함께 파고다 극장 언더그라운드의 여러밴드를 거쳤다.


본인의 발언에 따르면 이 시기 가죽 자켓에 쇠사슬을 매달고 무대 위를 뛰어다녔다고 한다.이를 테면 1집의 데뷔곡 '텅 빈 마음'[1]의 경우에도 분명 음악 장르적 분법으로는 발라드에 속하지만, 곡 진행과 사운드의 활용에 있어 록적인 요소를 가미했으며, 동 앨범의 다른 트랙들, 특히 '좋은 날이'나 '그냥 그런 이야기'는 아예 록적인 접근이 더 두드러진다. 그리고 데뷔 이후 계속된 음악 작업에서는 전통적인 문법에 따른 록 음악을 추구하기도 하였다.


사실 이런 록적인 본색은 본인 스스로도 이오공감[2]의 앨범에서 많이 드러냈다고 고백을 한 적이 있고 3집부터는 1, 2집에 비하면 록적인 접근이 훨씬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렇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당시의 이승환 본인에게 있었던 일도 어느 정도 영향을 준 모양이다. 3집부터 내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할 정도다.


다만 메이저 [3]데뷔가 발라드로부터 시작했으며, 이때 당시 큰 활약을 했던 [4]와의 콤비로 엄청난 대중성을 발휘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그 후 앨범에서도 록적인 요소가 가미된 곡이나 록 음악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앨범의 타이틀곡은 발라드였으므로, 추구하는 장르가 어떻든지 대중은 이승환을 발라드 가수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이승환 본인의 말로는 록 보컬로는 자신의 음색에 강한 한계를 느껴서 결국 발라드와 록 사이의 미묘한 줄타기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로는 같은 무명 시절에 파고다 극장 무대에 선 김종서[5]의 공연을 보고 쟤 때문에 난 록은 안 되겠다라고 느껴서 방향을 틀었다고 한다. 또 하나는 이문세[6]의 소녀가 본인을 발라드로 전향하게 만든 곡이라고 했다.


그래서 팬들도 발라드 가수 이승환을 좋아하는 팬들과, 록 음악을 하는 이승환까지 좋아하는 팬들로 나뉘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난 이승환 옛날엔 좋았는데 요즘은 별로야라면 전자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다만 노래 중간중간에 나오는 메탈릭한 샤우트 보컬은 곡의 전개에 큰 의미가 없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인맥관계

微信截图 20200624222835.png


각주

  1. '텅 빈 마음'
  2. 이오공감
  3. 메이저
  4. 오태호
  5. 김종서
  6. 이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