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황순원 문학상 심사평"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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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본 문서는 대담의 형식으로 진행된 심사평(김윤식 대표집필, 「2001년도 중·단편 읽기」)의 일부를 발췌했음을 알린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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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움에 대하여』 | + | '''『그리움에 대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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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퇴역레슬러』 | + | '''『퇴역레슬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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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착오’가 이 작가의 강점. 귀향한 이 노인이 처음으로 고향의 냄새를 기억하는 장면, 양파 냄새가 그것이지요. 유년기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후각과 청각이란 고향의 섬을 가득 채운 푸른 보리밭과 그 냄새였을 터인데, 그가 떠난 지 훨씬 뒤에야 이 고장엔 양파 재배가 시작되지 않았던가. 있지도 않은 양파 냄새 맡기란 무엇인가. 이 감각적 치매 현상이 바로 이데올로기의 색깔 착오에 대응된다는 것이니까.” | “‘기억의 착오’가 이 작가의 강점. 귀향한 이 노인이 처음으로 고향의 냄새를 기억하는 장면, 양파 냄새가 그것이지요. 유년기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후각과 청각이란 고향의 섬을 가득 채운 푸른 보리밭과 그 냄새였을 터인데, 그가 떠난 지 훨씬 뒤에야 이 고장엔 양파 재배가 시작되지 않았던가. 있지도 않은 양파 냄새 맡기란 무엇인가. 이 감각적 치매 현상이 바로 이데올로기의 색깔 착오에 대응된다는 것이니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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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두려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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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째서 주님의 종으로 살아온 윤여은의 임종의 말이 ''저는 주님을 만나기가 두려워요''였을까. 바로 이 대목 아닙니까. 두려움의 이유는 두 가지. 여학교 적 그녀를 사랑한 남학생의 죽음에 대한 것을 그 누구에게도 고해하지 않음, 정욕을 이기기 위해 감행해온 고통 등이 그것. 이 둘은 누가 보아도 영혼이 울리는 그런 통회이기보다는 너무 소박한 한 여인의 개인사적 사건에 지나지 않지요. 그러니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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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러니까, 윤여은이 경험한 기독교의 한계이겠지요. 비록 그것이 좀더 사실에 가깝더라도 아쉬움이 든다고나 할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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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필 한덕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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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적 감각 혹은 역사감각이란 문학이 갖출 수 있는 소중한 요소임을 더욱 밀도 있게 보여주기 위해 작가는 이 집안의 장남을 내세웁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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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경이되 고객 없음이란 무엇인가. 익명성, 곧 민중을 고객으로 한 글쓰기가 그것. 그것은 아비와 맞서는 정치적 감각, 곧 좌익의 선전 비라용으로 둔갑합니다. 깨알 같은 글쓰기, 그것이 바로 ‘비밀주의’에 막바로 통하는 것. 장남이 좌익으로 숨고 끝내 한국전쟁 중 객사한 것이 이른바 이 나라 정치적 감각이 빚은 한 결과이겠지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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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의 향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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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생의 지적대로 월식임엔 분명한데 월식치고는 조금 유별나지 않습니까. 스리랑카에서 본 월식과 한국에서 본 월식의 동시적 전개랄까, 병치 현상이 그것. 이 병치 현상이 그대로 작품 구성원리로 작동되어 있기조차 합니다. 아마도 작가의 역량이겠지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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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 보셨습니다. 모종의 이유로 주인공의 몸은 ‘누와라엘리야’라는 불교국가 스리랑카의 산간 마을에서 그곳 월식을 보고 있으면서 마음은 한국에 와 있고, 이 이중성이 작품의 구성원리이지만, 이 모두는 ‘눈썹 같은 초승달’과 ‘신갈나무’사이에 위치해 있습니다. 너도밤나무과에 딸린, 잎이 달걀 모양이고 톱니가 있으며 뒷면에 털이 약간 있는 신갈나무란 초승달만큼 신선한 느낌을 주지 않습니까. 더구나 그 신갈나무의 꽃은 6월에 피는데 ‘암수 한 그루’로 된다는 점도 유의할 대목이고요. 그러나 무엇보다 ‘신갈나무’라는 그 울림에 주목할 것입니다. 뭔가 신성한, 정결한 그런 나무, 그런 여인, 그런 인간이 연상되지 않습니까. ‘초승달’도 마찬가지. ‘눈썹 같은’이라 할 때도 갈 데 없는 정결한 여성적 이미지이고요. 그 사이에 월식이 벌어지고 있지요. 아니, 월식 같은 것은 있지도 않았지요. ‘누와라엘리야’ 속으로, 초승달도 신갈나무도 물론 월식조차도 흡수되고 있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달이 지닌 종래의 이미지가 흐릿한 색깔, 그러니까 눈썹 같은 초승달이었지만, 또 이를 신갈나무의 청색으로 보강했지만,결국은 ‘누와라엘리야’ ‘스리랑카’ 등의 울림(음향) 속에 흡수되었다 함은 작가 윤씨의 창작방법론이 지닌 블랙홀이라고나 할까. 모든 것이 ‘울림’으로 흡수되어버리기가 그것. 그 속에 작가 스스로를 소멸시키기, 거기에다 글쓰기의 최종 목표 두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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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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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작품에서 보면 사랑ᄋᆜ 한 가지 변종인 불륜에 관련되어 있지요. 일식스런 현상으로서의 불륜 말입니다. 일식이란 무엇이겠는가. 태양이 송두리째 사라지는 현상 아니겠는가. 인간은 그 누구도 자기의 죽음과 태양을 직시할 수 없는 법. 만고의 진리 아닙니까. 그런데 그 일식을 맨눈으로 보고자 덤볐다면 어떻게 될까. 작가는 이 점에 썩 민첩하여 인상적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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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꼭 마찬가지로, ‘사랑’의 변종인 ‘불륜’도 감행해서는 안 되는 법. 금기 사항에의 도전은 파멸(죽음)을 의미하니까, 보지 말아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맨눈으로 보아서는 망막이 불탄다는 것, 거기까지 알 만한데, 문제는 ‘어째서’ 아닙니까. 왜 인간은 목숨을 걸고 그런 짓을 감행하는가, 왜 그런 짓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에 있겠는데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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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도 그 점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어 보입니다. 작가는 이 난처한 물음을 외면한 채 열대야 속의 초승달과 주인공 영월이 어울리지 않음을 되풀이 강조해놓습니다. 거실 여기저기에 숨어 살고 있는 열대지역 특유의 작은 도마뱀을 아주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기법으로 말입니다. 그렇기는 하나, 주제 자체가 워낙 막연한 것이어서 단편으로는 투명도가 약해졌다고나 할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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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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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촌이란 거룩한 희생물이라는 것. 도시를, 근대를 위한 제물의 일종이라는 것. 이러한 속죄양 의식이 만들어낸 도식이란 불을 보듯 뻔한 것. 도시=근대=악종이며 이들은 한결같이 살기를 띤 독종이며 반생명적‧반전통적‧반인간적 존재이며 이들이 어떤 기기묘묘한 수완, 방법으로 생명적‧전통적‧인간적 가치를 갈가리 찢고 망가뜨리는가를 묘파함으로써 모종의 쾌감조차 얻어내고 있지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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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 성씨의 자질이 빛나는 곳은 따로 있는데, ‘토끼고개’ 에피소드가 그것. 대한민국의 근대가 몸과 마음이 ‘팔 푼’인 황만근을 수용할 수 없겠다는 것. 이 대목에서 작가는 놀라운 장면을 펼쳐 보임으로써 황만근의 ‘팔 푼’을 ‘십 푼’(온전함)으로 이끌어올립니다. 이에 비하면 도시(근대)의 살인적 간악스러움이 황만근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식의 결말 부분은 한갓 통속적인 마무리 찾기의 넋두리가 아닐 것인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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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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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작품에서 ‘습니다체’ 도입은 여인의 ‘바람기’와 교묘히 엉겨붙어 있어 분리되기 어려운 형국. 간촌죄로 피소된 여인의 자기 변호인 까닭이지요. 어째서 나는 간통죄로 기소되었느낙, 내게 그 부당함 혹은 정당함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며 외치는 자기 변론이 궁극적으로는 ‘자기 고백’의 형식을 띠는 것은 문학이 제일 잘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닐 것인가. 신 앞에서 이 점을 제일 잘하는 것은 종교이겠지만. 그동안 수천 년 갈고 닦은 종교 쪽의 ‘고백 스타일’이 의외로 이 법정에서는 안중에도 없는데, 그만큼 작가의 수사학에 대한 무신경함의 탓이 아닐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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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작품에 드러난 색기란, 농촌/도시, 본래적 가치/시장가치, 근대/반근대 틈에 낀 색기라는 점. ‘그는 착하나 바보다’ 또는 ‘그는 바보이지만 착하다’를 넘어설 수 있는 부분이란 뜻에 지나지 않는 것. 색기란 무엇이겠는가. 단순명쾌합니다. 사람은 저마다 ‘향기로운 우물’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는 것. 이 꿈을 그 누구도 짓밞을 수 없다는 것. 농촌이라고 해서 도시라고 해서 이 점에 뭐가 다르겠는가. 이 순간 도시=악당, 농촌=희생의 이분법적 지적도가 조금 허물어지거나 적어도 그 강도가 약화될 수 있다는 것. 이때 중요한 것은 색기랄까, 바람기 도입이 자칫하면 통속성과 혼동되기 쉽다는 점입니다. 이 나라 소설판에서는 이 점에 대한 인식이 너무 경직되어 있지 않았던가요. 이 작가는 따라서 그동안 매우 불리한 처지에 있었던 셈이지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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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리스마스 캐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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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시민성을 위협하는 암적 존재인 조진숙이 그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진숙의 존재는 결코 떨쳐버릴 수 없다는 것. 베란다 창문을 열고 던져버려도 여전히 그치지 않고 울리고 있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입력된 그 단조로운 전자 칩 멜로디의 여운처럼 존재하며 괴롭히고 있다는 것.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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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것이 어쩌면 소시민 중산층의 자화상이 아닐까. 거울에 비친 자화상. 그 거울을 깨버려도 여전히 금이 간 채로 존속하는 거울이라는 것.”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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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13일 (토) 13:57 기준 최신판
본 문서는 대담의 형식으로 진행된 심사평(김윤식 대표집필, 「2001년도 중·단편 읽기」)의 일부를 발췌했음을 알린다.
수상작
『그리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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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작
『퇴역레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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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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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필 한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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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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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식』
“작가도 그 점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어 보입니다. 작가는 이 난처한 물음을 외면한 채 열대야 속의 초승달과 주인공 영월이 어울리지 않음을 되풀이 강조해놓습니다. 거실 여기저기에 숨어 살고 있는 열대지역 특유의 작은 도마뱀을 아주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기법으로 말입니다. 그렇기는 하나, 주제 자체가 워낙 막연한 것이어서 단편으로는 투명도가 약해졌다고나 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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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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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우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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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캐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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