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한용운과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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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자결주의

1918년에 끝난 세계 1차 세계대전은 피압박민족에게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민족자결 원칙’을 주장했는데, 이것은 오스트리아 제국과 러시아 제국 및 터키 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유럽의 백인 기독교도들에게 적용되는 원칙이었다. 민족자결 원칙에 따라 유고슬라비아,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등 8개국 유럽 나라들이 해방과 독립을 맞게 되었다.

민족자결이라는 복음

그러나 아시아 아프리카의 비백인, 비기독교도 식민지 민족에게는 이 민족자결 원칙이 적용되지 않았다. 심지어 베르사이유 조약안 440개 조항 가운데 조선 문제는 아예 포함되지 않았다. 이처럼 민족자결 원칙이 현실적으로 전승국 식민지에 적용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3·1운동은 전승국 제국주의자들의 의도에 개의치 않고 세계사적인 반전을 기하려고 기선을 제압한 것이다. 말하자면 ‘민족자결’이라는 복음을 “제 것으로 만들려고 용감히 일어선 최초의 민족이 우리 민족”이요 이 원칙을 자기의 운명에 적용시켜 궐기한 최초의 봉화가 3·1운동이었다(노명식).

근대 서구 개념

만해가 주목한 근대사조는 자유주의, 평등, 박애, 구세주의, 세계주의, 사회진화론, 사회주의 등이었지만 그러나 이 모두는 서구 근대 개념을 그대로 이행한 것은 아니었다. 만해의 자유는 양계초와 칸트의 진아론을 논하면서 비판적으로 전개된 것인데, 이는 단순히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하는 정치적・종교적 자유뿐만 아니라 궁극적 진리와 깨달음에 이르는 근원적 자유를 내포한 것이었다.

「조선독립의 서」에 나타난 세계평화와 인류공생론 토론문

전한성 선생님의 이번 연구는 만해 한용운이 보여주는 전 지구적 이념인 자유와 평화의 뿌리가 어디에서 연유하는지 그의 사상의 한 토막을 읽어내고 있습니다. 사실 만해 한용운은 불교와 관련되어서만 연구되는 수많은 인물 중에 자리하고 있지만, 이들과는 달리 불교를 초월해야만 더 깊이 연구될 수 있는 인물입니다. 불교도가 아니라 하더라도 최근 불거지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이미 제시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해 한용운은 조선이라는 공간을 위도와 경도로 재단된 인간 정치·지리학적 하나의 영토로 보았다기보다는 자외선과 적외선 사이에서 인간 눈에만 잡히는 빛의 가시 공간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자외선과 적외선과 같은 비(非)가시 스펙트럼을 철학적으로 모든 인류 공동체에 대입하려고 했습니다. 특히 아래와 같은 전한성 선생님의 설명은 만해의 팽창적 철학관과 세계관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독립 자존의 길은 곧 자유주의 실현인데 이는 모든 생명이 추구하는 가치로 만물이 평등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조선 독립은 민족 자결을 통해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는 것인데 이는 동양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요, 나아가 세계평화를 영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인류공생의 원동력이 되는 순환관계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순환성의 유지는 항상성을 가능하게 하고 이는 상호의존성에 기반을 둔 생명과 환경 간의 안정된 상호작용체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인류공생의 비전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 부분을 시작으로 토론자는 한 가지 여쭙고 싶습니다. 과연 만해는 그의 자유와 평화 신념을 불교에만 토대를 둔 것이었을까요? 연구자께서는 아래의 설명에서처럼

“이렇게 만해가 보여주었던 자유와 평등사상은 철저히 불교에서 기인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만해의 사상이 불교에 기인한 바를 강조하셨습니다만 「조선독립의 서」에 나타나는‘평화의 신’, ‘지옥’ 등의 단어를 접할 때 전통적인 불교에 대한 성격이라기보다는 불교 외 다른 사상체계나 종교에 대한 무언가가 만해에게 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전통적인 불교 세계가 아닌 독일, 체코, 폴란드, 아일랜드를 언급하는 부분에서도 만해가 불교로만 연관된 생각을 한 것은 아니라고 보입니다. 또한 연구자의 아래 설명도 이러한 토론자의 질문에 어느 정도 타당성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만해는 불교를 토대로 근대 계몽의 태도를 취하면서도 ‘자연’에 보이지 않는 이러한 인과론적 질서가 내재되어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카오스모스적인 인과론적 질서에 의해 우주가 운행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주가 물질과 에너지로만 구성되지 않고 그 너머에 초감각적인 세계가 감각적인 것들과 서로 뒤엉켜 있다고 생각했다.”

이에 대해 연구자께서는 어떤 생각이신지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사실 이번 기회에 전한성 선생님께 여쭙는 토론자의 질문에 대한 답은 만해를 연구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은 해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쉽게 찾을 수 있는 대답이 아니라는 점도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독립의 서」는 불교도만을 위한 글이 아니었다는 사실과 당시 만해의 기독교 인사들과의 교류를 고려했을 때 반드시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오늘날에 다시 만해를 불러내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입니다. 뜻깊은 자리에 토론의 기회를 허락해 주셔서 연구자께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