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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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재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12월 6일 (일) 14:58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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初九日,在杭州,是日晴,昨來取弓刀官人又來,曰:“你弓刀,鎮守老爹留下看:”臣曰:“唯命.”顧壁又來,言曰:“海上軍官行來文書,開說你還有船一十四隻在海涅功,今巡按御史說既有船十隻,原何不捉拿來?”以此罪他,鎭守及三司,議論不一,緣你供辭明辨,審知非倭,今已議定,差了指揮楊旺,送你赴京,轉送你回,並無他話,還有三四日在此,你宜可寬心,”又布政司大人徐圭、按察司副使魏福,同坐驛客館,引臣等曰:“送你還國,你可放心好還,”臣即做詩以謝,還退舍,北京人李節來見臣之衣服系藍縷,面目蒙垢,謂臣曰:“此地人以冶容是尚,故凡看你等,皆驚笑,以謂朝鮮人類皆若是,可於面陽地,洗灌你身:”臣即令從者各自沉醉,遂與程保等面陽環坐,洗去塵垢,李節又來,指點臣之皮膚盡換,足爪脫落,曰:“此是困於患難,不恤身膚之驗也,”臣曰:“我在海時,喉嘔血數,口無津三日,今又認為碱水所砭而換,足為徒險阻而傷,嘗聞身體髮膚,不敢毀傷,孝之始也,我之體膚之傷若此,其真不孝之子爾.”節曰:“無傷也,非你欲傷,天實傷你,雖傷何傷?不須傷心,李節之友人,失其姓名,袖《小學》一部,因節以遺臣,欲求詩,臣曰:“無功而受人之賜,是傷廉之地,敢辭,”節日:“此人欲求一試以為記爾”臣曰:“做得詩不好,舉得筆亦不好,以不好易人之好,非所欲也.”其人還袖去,李節謂臣曰:“交以道,接以禮,則孔子亦受,是何(部)(__)之之甚?”臣曰:“彼人非是肯捨册也,意在得詩,則交不以道,接不以禮,我若一受,則是賣詩取直,故(部)(卻之”節唯唯而退,夕,李節.

p.390 與其友金太等三人來饋臣及從者,

항주에 머물렀습니다.

이 날은 맑았습니다.

어제 활과 칼을 가져 간 관인이 또 와서 말하기를, “당신의 활과 칼은 진수(鎭守) 나으리께서 남겨두었다가 살펴보려 하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신은“분부대로 하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고벽이 또 와서 말하기를, “해상의 군관(軍官)이 보내온 문서는 당신이 배 14척을 가지고 바다에서 겁략하고 있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지금 순안어사(巡按御史)는, '이미 배 14척이 있었다면 당초에 어찌 잡아오지 않았는가?'라 하면서 이 일로 그에게 죄를 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진수와 삼사(三司)의 의논이 일치하지 않았으나 당신의 공술이 명확하여 왜적이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은 이미 의논이 정해져 지휘(指揮) 양왕(楊班)을 시켜 당신을 북경으로 보낸 뒤 귀국시키기로 하고 별다른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3-4일 동안은 이곳에 있어야 하겠지만 당신은 이제 마음을 놓아도 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포정사(布政司)의 대인 서규(徐圭)와 안찰사부사(按察司副使) 위복(魏福)이 역의 객관(客館)에 함께 앉아서 신 등을 불러 말하기를,

“당신을 보내어 본국으로 돌아가게 할 터이니, 당신은 돌아갈 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좋소”라고 하였습니다.

신은 곧 시를 지어 사례하고 사관으로 물러갔습니다.

북경 사람 이절(李節)이 와서 신의 의복이 남루하고 얼굴에 때가 묻은 것을 보고 신에게 말하기를,

“이 지방 사람들은 용모 가꾸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당신들을 보면 모두 놀라고 비웃으면서 조선 사람들은 모두 이와 같다고 생각할 것이니, 양지바른 곳에서 당신 몸을 깨끗이 씻는 것이 좋겠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신은 곧 종자들에게 명하여 각자 스스로 몸을 씻도록 하고, 드디어 정보 등과 함께 볕을 향하여 빙 둘러앉아서 먼지와 때를 씻어내었습니다. 이절은 또 와서 신의 피부가 모두 벗겨지고[1] 발톱이 빠진 것을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이것은 환란에 시달려서 몸을 돌볼 수 없었던 표가 되겠군요”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내가 바다에 있을 때 목구멍에서 피를 두어 움큼이나 토하고 입에는 침이 마른 지가 3일이나 되었습니다. 지금은 또 피부가 짠물에 찌들어 벗겨졌고, 발은 맨발로 험한 땅을 밟아 다친 것입니다. 일찍이 '몸과 모발과 피부에 상처를 내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다'이라 들었지만 나의 몸과 피부의 상처가 이와 같으니 참으로 불효자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절이 말하기를, “그럴 것 없습니다. 당신이 상처를 내고자 한 것이 아니라 하늘이 실로 당신을 상하게 한 것이니 비록 상처가 났더라도 뭐 상심할 게 있겠습니까? 상심할 필요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성명은 잊었지만 이절의 벗이 《소학(小學)》 1부를 소매 속에 넣어 이절을 통하여 신에게 주고 시를 청하고자 하였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공로도 없으면서 남이 주는 것을 받는다면 이는 염치없는 짓이므로 감히 사양합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절이 말하기를, “이 사람은 시가(詩歌) 한 장을 구하여 기념으로 삼고자 하는 것뿐입니다”라고 하여,

“시를 잘 짓지도 못하고 글씨도 또한 좋지 못한데 좋지 못한 것으로서 남의 좋은 것과 바꾸는 일은 바라는 바가 아닙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책을 도로 소매 속에 넣고 가버렸습니다.

이절이 신에게 말하기를, “도리로써 사귀고 예절로써 대접하면 공자(孔子)께서도 또한 받았사온데, 어찌 그리도 심하게 물리치시는 것인지요?”라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책을 기꺼이 주려는 것이 아니고 생각이 시를 얻는 데 있었습니다.

도리로써 사귐이 아니고 예절로써 대접함이 아니니, 내가 만약 한번 받는다면 이는 시를 값을 받고 파는 셈이므로 이를 물리친 것입니다.”

이절은 “예, 예, 그렇습니다.” 하면서 물러갔습니다. 저녁에 이절은 그의 벗 김태(金太) 등 3인과 함께 와서 신과 종자들을 접대하였습니다.


9th Day. At Hang-chou. This day was fair.

The officials who had come the day before and taken the bow and sword came again and said, “Old Grand Defender has kept your bow and sword to look at." I said, “As you command.” Ku Pi came again and said, “A dispatch came from the naval officers setting forth that you were cruising about with fourteen boats, scourging the sea. Now the Regional Inspector16 says that if there were fourteen boats, why were they not seized in the first place and brought in? For that he has brought charges against them. The Grand Defender and the Three Authorities discussed the matter without reaching agreement, but since your deposition explained things clearly, they have adjudged that you are not Japanese. They have made their findings and have commissioned Commander [Chih-hui] Yang Wang to escort you to the capital, from which you will be sent home. “There was nothing else. You will be here another three or four days. You may put your mind at ease.” Next, His Excellency the Provincial Administration Commissioner Hsü Kuei and Surveillance Vice Commissioner Wei Fu sat together in the guest house of the station and had us brought to them. They said, “We are sending you back to your country; you may be easy in your mind that you will go home all right.” I wrote a poem to thank them and went back from the house. Li Chieh, a man from Peking, came and saw that my clothes were tattered and my appearance filthy and said to me, “The people here set store by appearances. That is why all who see you laugh in amazement; they take it that all Koreans are like that. You might wash yourself in a sunny place.” I ordered each of my staff to wash his clothes. Then I sat with Chòng Po and others in a circle in the sun and bathed away the dirt. Li Chieh came and pointed to the places where my skin had peeled off and my toe-nails fallen out and said, “That is proof that in your sufferings there was no mercy for your body.” I said, “While I was at sea, I vomited several handfuls of blood. There was no saliva in my mouth for three days. Now I realize that my skin, pierced by salt water, has been peeling off and that my feet have been hurt from tramping over difficult ground. I have heard that not daring to injure any part of one's body is the beginning of filial piety. With my body hurt like this, I am certainly not a filial son.” Chieh said, “There is no harm in that. It is not that you have deliberately hurt yourself, Heaven has hurt you. What does it matter, therefore, that you have been hurt? You need not feel badly about it.' Li Chieh's friend, whose name I have lost, had a copy of a handbook [hsiao-hsüeh] in his sleeve and had Li Chieh present it to me. He wanted a poem. I said, “Accepting someone's gift without merit damages integrity. I make bold to decline it.” Li Chieh said, “This man wants a poem to remember you by.” I said, “I cannot write poems well; I cannot even handle a brush well. I do not want to exchange something not good for something good from him.” The man returned the book to his sleeve and left. Li Chieh said to me, “When the exchange accorded with the Way and the meeting accorded with etiquette, even Confucius accepted something. Why were you so firm in refusing him?” I said, “That man did not want to give away a book, his mind was on getting a poem. Thus the exchange would not have accorded with the Way, and the meeting would not have accorded with etiquette. Once I accepted, it would have been receiving payment for a poem I had sold. That is why I refused him.” Li Chieh agreed and left. In the evening, Li Chieh, his friend Chin T’ai, and two other men came and served me and my staff f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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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648527.html 조선의 왕들이 덜덜덜 떨던 바로 그것 2014-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