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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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재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10월 15일 (목) 08:49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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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十四日,至健跳所,是日晴,曉過穿岩里,里西有山,戴石壁,屹立写隆,有大寶洞,望如虹門,里之得名以此.又過田嶺,嶺上有僧作佛字横道路,行人從寺中以過,臣等平地雖或乘轎,領峻路險下轎步行為多,至此寺百技跛行,寺僧憐之,煎茶以供,少留,行至海浦,有兵船具戎器,循浦上下,示以水戰之狀,臣從鼻居以渡,則乃是健跳所也,城臨海岸,所千戶李昂,軀幹壯大,容儀丰美,具甲胃兵戎,導臣等入城門,門皆重城,鼓角號师,聲震海岳,其嗩吶等大小角末端皆上曲鉤,向吹者眉目間,城中人物弟宅視桃诸所尤豐盛,李昂引臣至一客館,與翟勇、許清、王匡、王海等及所之有姓莊也尹也,亡其名,俱是厚重老官人,皆環立卓之左右,問臣以漂 流之故,略陳首末云云,李昂請升堂行賓主之禮,昂由階,臣由東階而上,相對再拜後,昂饋臣茶果,又饋臣之從者以酒肉,頗示忠款之意,姓尹老官人引程保等,請私靠飲食之,因見其妻妾子女以展禮,其人心淳彪如此,有一人以丙午年登科小錄來示臣曰:“此吾的登科第榜錄也.”又指點錄中‘張輔’二字,曰:“此吾的姓名也.”因問曰:“你國亦貴其登科者乎?”曰:“然.”曰:“我國制,草茅士登第者,皆官給俸祿,確表門閭,刺銜亦書賜進士及第某科某等人”云云. 引臣至其家,則其家前街果以雕龍石柱,作二層三間之門,金碧眩曜,其上大書丙午科張輔之家之標,輔盖以己之登第誇示臣. 臣亦以浮誕之言之,曰:“我再中科第,歲受米二百石,难門三層,足下其不及於我矣.”輔曰:“何以知之?”臣曰:“我之族門,遠莫致之,我有文科重試小錄在此,”即撥示之,輔於錄中,見臣職姓名,下跪曰:“我不及矣.”

  • 浮誕: 경박하고 허황됨. [1]

건도소(健跳所)185에 도착하였습니다.

이 날은 맑았습니다.

새벽에 천암리(穿岩里)를 지났습니다.

마을 서쪽에 있는 산 위쪽으로 석벽이 높게 솟아있는데, 홍문(虹門)186처럼 보이는 동굴이 있었기 때문에 천암(穿岩)이라 불리는 것이었습니다.

또 전령(田嶺)을 지나니 전령 위에는 중이 불사(佛舍)를 짓느라 도로를 가로막았으므로, 행인들이 절 가운데로 지나갔습니다.

신 등은 평지에서는 더러 가마도 탔지만 고개가 높고 길이 험하므로 가마에서 내려 걷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 절에 이르러 온갖 모양으로 절룩거리며 걸으니 그 절의 중이 불쌍히 여겨 차를 끓여 대접하였습니다.

조금 머물렀다가 출발해서 바닷가에 이르니 무기를 갖춘 병선(兵船)이 물가를 따라 오르내리며 수전(水戰)을 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2]

신은 거룻배를 타고 건넜는데 바로 이곳이 건도소였습니다.

건도소성(城)은 해안에 붙어 있었습니다.

건도소의 천호인 이앙(李扇)은 신체가 장대하고 용모가 준수하였는데, 갑주(甲周)와 무장을 갖추고 신 등을 이끌어 성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문은 모두 겹성이었고, 고각(鼓角)187과 총통의 소리는 바다와 산을 진동시켰습니다.

그 쇄납(噴网) 등 크고 작은 피리는 끝이 모두 위가 굽어 있어 부는 사람의 미간(眉間)을 향하였습니다.

성 안의 사람과 저택은 도저소에 비해 더욱 많았습니다.

이앙은 신을 이끌고 한 객관(客館)에 이르러서, 적용, 허청, 왕광, 왕해 등 및 이름은 잊었지만 성이 장(莊)이니 윤(尹)이니 하는 중후하고 나이 든 건도소 관인들과 함께 탁자의 좌우에 빙 둘러서서 신에게 표류된 까닭을 물었습니다.

신은 대략 그 전말을 진술하였습니다.

이앙은 신에게 당(堂)에 올라서 빈주(賓主)의 예를 행하기를 청하였습니다.

이앙은 서계(西階)로부터 올라가고 신은 동계(東階)로부터 올라가서 서로 마주보고 두 번 절한 뒤에 이앙이 신에게 다과를 접대하고, 또 신의 종자들에게도 술과 고기를 먹여 자못 환대하는 뜻을 보였습니다.

성이 윤(尹)인 노령의 관인은 정보 등을 이끌고 사저로 가서 음식을 먹이고 이어 그 처첩과 자녀로 하여금 인사 올리게 하였습니다.

그 인심의 순박하고 두터움이 이와 같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병오년에 등과(登科)한 소록(小錄)을 가지고 와서 신에게 보이면서 말하기를 “이것은 내가 과거에 합격한 방록(榜錄)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또 방록 가운데 '장보(張輔)'189 (장푸, 送朝鮮崔校理序를 썼음) 란 두 글자를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이것이 내 이름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어서 묻기를, “당신 나라에서도 등과한 사람을 귀하게 여깁니까?”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제도는 초야에 있던 선비로서 등과한 사람은 모두 관청에서 봉록을 주고 문가에 정문(陸門)을 세워주며, 명함에도 무슨 과 몇 등으로 진사급 제한 자 등이라고 써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는 신을 이끌고 자기 집에 이르렀습니다.

그 집 앞의 네거리에 과연 용(龍)을 아로새긴 석주(石柱)로 2층 3간의 문을 만들었는데, 노란빛과 푸른빛이 눈이 부시도록 빛났고, 그 위에는 병오과(丙午科)189장보(張輔)의 가(家)'라는 글씨가 크게 씌어 있었습니다. 

장보는 자기의 등과를 신에게 과시한 것입니다.

신 또한 떠벌리는 말로 그에게 자랑하며 말하기를, “나는 두 번이나 과거[3]에 합격하여 해마다 쌀 200석을 받았고 정문이 3층이나 되니 족하가 나에게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을 어찌 알 수 있습니까?”

신은 “나의 정문은 먼 곳에 있으니 보일 수 없지만, 내게 문과(文科) 중시(重試)의 소록(小錄)이 있습니다”라고 하고 펼쳐 보였습니다.

장보는 소록 속에 신의 관직과 성명이 있는 것을 보고 무릎을 꿇으며 말하기를, “내가 미치지 못하는 듯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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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th Day. Arrival at Chien-t'iao Chiliad. This day was fair.

At dawn we passed Pierced Cliff Village. West of the village was a mountain, and on it were stone cliffs. Its peak was lofty and arched and had a great hole that looked like an arched gate. The village got its name from that. We crossed T'ien Range. At the peak, priests had built a Buddhist temple across the road, and travelers passed through the temple. Though on level ground we sometimes rode in the sedan-chairs, we frequently got out of the sedan-chairs and walked where the ranges were steep and the road difficult. When we came to that temple, we were limping along by whatever means we could. The priests of the temple pitied us, boiled tea and served us, and we stayed a little while. Going on, we reached a bay in which were warships, all armed and patrolling up and down, looking as if they were in a sea battle. I crossed over in a tender to Chien-t'iao Chiliad. The wall overlooked the shore. The Chiliarch of the place, Li Ang, of powerful physique and handsome appearance, wore armor and carried weapons. He led us through a gate of the wall. The gates were all doubled-walled. The sounds of drums, horns, and fire weapons shook the sea and the hills. All the sournas and other large and small horns curved up in a hook at the ends and faced back toward the blowers' foreheads. The people and houses in the town were even more prosperous than those of T’ao-chu Chiliad. Li Ang led me to a guest house. He and Chai Yung, Hsü Ch’ing, Wang K’uang, Wang Hai, and a Chuang and Yin from the place, I have forgotten their given names; they were both fat old officials - stood at the left and right of a table. They asked me how I had come to sail adrift, which I briefly outlined to them. Li Ang asked that we go up to the main hall and perform the ceremony between host and guest. Ang went up by the west stairs, I by the east, and we bowed twice to each other. Afterwards, Ang served me tea and fruit and my staff wine and meat. He showed a marked spirit of true hospitality. The old official named Yin took Chong Po and others to his own house. After giving them food and drink, he introduced his wife, concubines, sons and daughters, and they extended greetings. The man's heart was as pure and full as that. A man brought an abbreviated examination list for 1486 and showed it to me. He said, “This is the notice of my placing in the examinations.” He pointed to the two characters “Chang” and “Fu” on the notice and said, “There is my name.”?46 Then he asked, “In your country, do they honor those who place on the lists, too?" I said, “Yes.” He said, “Under our system, all provincial scholars who place on the lists are given public stipends. Banners are displayed at their gates, and on their name cards is written the rank Chin-shih of Such-and-such Place in Suchand-such Section.'” He took me to his house, and in front of the house in the street was, indeed, a gate of two stories and three doors, built of stone pillars carved with dragons. Its glitter and brightness were dazzling. At the top was written large the sign.“House of Chang Fu, Examination of 1486.” The reason Chang Fu had shown me this was to boast. I, too, boasted extravagantly: “I placed on the list twice. I receive two hundred shih of rice annually,47 and my banner gate has three stories. You are not my equal." Chang Fu said, “How do I know that?”' I said, “My banner gate is far away, and I cannot bring it here, but I have a short list of the Civil Service Second Examination here.” I opened it and showed it to him.

When Chang Fu saw my name and position in the list, he knelt and said, “I am not at all your equal.”
  1. [1]
  2. 정지장군
  3. 사이버 조선왕조 과거 제도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