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8일

pattern
최원재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10월 13일 (일) 00:54 판 (새 문서: 二十八日,大雨,吳鑒又來,曰:“今日治任將行,天雨雨奈何?”臣曰:“以我式端之心,難過一刻之留,憂此兩者,我一人而已,今年大旱,自二月不雨...)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이동: 둘러보기, 검색

二十八日,大雨,吳鑒又來,曰:“今日治任將行,天雨雨奈何?”臣曰:“以我式端之心,難過一刻之留,憂此兩者,我一人而已,今年大旱,自二月不雨,以至于今,幸而得雨,則其喜之者,人與萬物也,天實為之,謂之何哉?”璽日:“正是正是。”O遼東舊我高句麗之都,為唐高宗所滅,割屬中原,五代時為渤源(太)[大]氏所有,後又為遼、金、胡元所併,城中有都司、察院、布政司、大僕分司、閱馬司,又有左·右·中·前·後衛,自城西昇平橋,以至肅清、迎恩、澄清、楊武、威振、四路等門及進士門八座,以至高麗市間,民居可謂繁夥,揆之江南,可與嘉興府相頡頑矣,但嘉興城外,市間相接,遼東城外,雞鳴狗吠,不得相聞,海子路傍,土飄飄耳,城東又別築東寧衛城,首山、千山、木場、駱駝、太子、杏花諸山,環拱于城之西南東,其北則平曠無現之野,

큰비가 내렸습니다.

오새가 또 와서 말하기를,

“오늘은 행장을 차려 떠나려 했는데 하늘이 비를 내리시니 어찌하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나의 조급한 마음으로는 한 순간도 머물기 어려워 이 비를 근심하는 사람은 나 한 사람뿐입니다. 올해에는 크게 가물어 2월부터 비가 내리지 않다가 오늘에야 다행히 비가 내리니 사람과 만물이 모두 기뻐합니다. 실로 하늘이 하신 일인데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옳습니다! 옳습니다!"

요동219은 곧 옛날 우리 고구려의 도읍이었는데[1][2][3][4] 당고종(唐高宗)에게 멸망을 당하여 중원에 예속되었습니다.[5]

오대(五代) 시대에 발해(渤碑) 대씨(大氏)의 차지가 되었으나 후에 또 요(遼)나라 금(金)나라 원(元)나라에게 병탄되었습니다.

성안에 도사(都司)·찰원(察院)·포정사(布政司)·태복분사(太僕分司)·열마사(馬司)가 있고, 또 좌위(左衛)·우위(右衛)·중위(中衛)·전위(前衛)·후위(後衛)가 있었습니다.

성 서쪽의 승평교(昇平橋)에서 숙청문(肅淸門)·영은문(迎恩門)·징청문(澄淸門)·양무문(揚武門)·위진문(威振門)·사로문(四路門) 및 진사문(進士門) 등 팔좌(八座)로부터 고려시(高麗市) 사이에 민가는 번창하다고 할 만하니, 강남으로 가늠한다면 가흥부(嘉興府)와 서로 겨룰 만하였습니다.

다만 가흥은 성 밖에까지 시가(市街)가 잇닿아 있었는데 요동의 성 밖은 닭 울음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서로 들리지 않았으며 해자(字) 길 가에는 흙먼지만이 가득할 뿐이었습니다.

성 동쪽에는 또 동녕위성(東寧衛城)을 별도로 쌓았는데 수산(首山)222 · 천산(千山)·목장산(木場山)·낙타산(協駝山)·태자산(太子山)·행화산(杏花山) 등 여러 산들이 성 서쪽 남쪽 · 동쪽으로 빙둘러 있었으며, 그 북쪽은 평평하고 툭 트여서 끝이 없는 벌판이었습니다.

28th Day. Heavy rain.

Wu Hsi came again and said, “Today we were to pack the baggage and start, but it is raining hard; what shall we do?” I said, “It is hard for me, impatient as I am, to delay a moment. I alone am distressed by the rain. There has been a severe drought this year; it has not rained since the Second Month. Now that we are fortunate enough to get rain, men and all things are happy. If Heaven truly has done it, what can I say?” Wu Hsi said, “True, true.” XXX Liao-tung was the capital of our old Koguryo. It was taken and attached to China by T’ang Kao Tsung [r. 650-683]. Originally in the Five Dynasties period, it was held by the overlords of Po-hsieh.48 Later it was absorbed by Liao, Chin, and Barbarian Yuan. Inside the wall are the Regional Military Commission, the Office of Surveillance [Ch’a-yüan], the Provincial Administration Office, the Local Office of the Imperial Stud, and the Inspectorate of Horses. 49 There are also Left, Right, Center, Forward, and Rear garrisons. From Sheng-p'ing Bridge west of the wall to Su-ch’ing, Ying-en, Ch’eng-ch'ing, Yang-wu, Wei-chen, and Ssu-lu gates; and between Chin-shih-men-pa-tso and Koreatown, the houses can be called dense. By standards south of the Yangtze, [the city] can be pitted against Chia-hsing Prefecture. But outside the wall of Chia-hsing Prefecture, villages stretch one after another; outside the wall of Liao-tung, neither the crowing of cocks nor the barking of dogs is to be heard. Along the Hai-tzu Road, there is nothing but great altars stretching like beads on a string. The wall of Tung-ning Garrison is built separately east of the city. Mt. Shou, Mt. Ch’ien; Mu-ch’ang, Lo-to, T'ai-tzu, and Hsing-hua mountains circle the city to the east, south, and west. To the north is a flat, endless plain. XXX

219. 요동은 넓게는 遼河의 以東 지방을 가리키지만, 여기에서는 가장 좁은 의미의 遼東 즉 遼東都司가 위치한 遼陽을 가리킨다. 220. 唐의 제3대 황제(재위 649-683)로서 즉위 초기에 永徽律令과 律疏를 제정하고 《五經正義》를 반포 발행하여, 唐의 典章制度를 모두 마무리지었다. 655년 새로 則天武后를 황후로 맞아들인 뒤부터는, 武后에게 점차 권력을 빼앗기게 되었다. 221. 渤海의 시조인 高王(재위 699-719) 大祚榮을 가리킨다. 696년 李盡忠 등이 이끈 거란족의 반란을 이용하여 고구려 유민[6][7][8][9]과 말갈족을 이끌고 자립을 꾀하였다. 699년 지금 의 吉林省 敦化縣 지역인 東牟山에 도읍하여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되어 국호를 震, 연호를 天統이라 하였다. 이후 唐은 유화정책으로 나와 唐中宗이 705년 사신을 보내 왔고, 大祚榮도 아들 大武藝를 唐에 보냄으로써 답례하였다. 713년에 국호를 渤海로 바꾸었다.

222.《遼史》에 의하면 당태종이 고구려에 원정할 때 이곳에 주둔하고 石碑를 세워 戰功을 기록했다고 한다. 民國《遼陽縣志》 권2, 山川.
  1. 여호규 교수, ‘고구려, 광개토왕 때도 요동 벗어나지 못했다’,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즈2017.10.27
  2. [역사산책 고구려와 한나라의 요동 전쟁, 동포뉴스, 2016.04.21]
  3. 고구리의 요동·요서는 어디인가? (4부), 고구려역사저널, 2015.10.10
  4. 태조대왕의 요동진격 이야기, 민플러스, 2018.05.24
  5. 삼국사기 > 髙句麗本紀 第十 > 보장왕(寶藏王) > 당 고종이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한 준비를 하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6. [한국 속 중국 고선지 장군, 중국 역사를 만든 고구려의 후손, 중앙일보, 2018.01.29]
  7. "'고구려 유민' 고선지 장군, 나폴레옹보다 낫다", 오마이뉴스, 2011.04.04
  8. 고구려 후손 고선지 장군①…파미르 고원을 넘다, 오피니언유스, 2018.04.07
  9. 고구려 유민들의 디아스포라… 20여만명 끌려가, 오피니언뉴스, 2018.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