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
初八日,過前衛,是日陰,高嶺驛人,頑悍暴橫之無甚者,臣之軍人文者催聽時,驛人以杖杖文之頭顱进血,張述祖與臣等行至前衛,于衛管軍都指揮晟銘,即差人拿其辱人,臣等至衛,將近城,城西二里有石子河,由城南門而入,過迎恩、承恩、治政、永安等門,至衛館,指揮楊相來暫話,容貌魁偉者,又出城東崇禮門而行,前衛城即舊大寧路瑞州之地,有大山,西連山海關而來鎮于衛之東北,即三山,俗謂之三山頂,又過東嶽廟,至沙河驛,城西所過小水,即沙河也,
전둔위를 지났습니다.
이 날은 흐렸습니다.
고령역 사람은 비할 데 없이 사나웠습니다.
신의 군인 문회(文廻)란 자가 당나귀를 재촉할 적에 그 역 사람이 몽둥이로 문회의 머리를 때려서 머리에서 피가 솟았습니다.
장술조가 신 등과 함께 가다가 전둔위에 이르러 전둔위의 관군도지휘(管軍都指揮) 성명(__銘)에게 사실을 호소했더니 즉시 사람을 보내어 그 역 사람을 잡아 왔습니다.
신 등이 전둔위에 이르러 성 가까이 갔는데 성 서쪽 2리에 석자하(石子河)가 있어 성 남문을 경유하여 들어갔습니다.
영은문(迎恩門)·승은문(承恩門)·치정문(治政門)·영안문(永安門) 등을 거쳐서 전둔위의 객관에 이르니 지휘양상(__楊相)이 와서 잠깐 동안 이야기했는데 체구가 크고 훤칠하였습니다.
또 성 동쪽의 숭례문(崇禮門)으로 나가서 앞으로 갔습니다.
전둔위성(前屯衛城)은 곧 옛날 대녕로(大寧路) 서주(瑞州)의 땅이었습니다.
서쪽으로 산해관과 접한 큰산이 전둔위의 동북을 제압하고 있었습니다.
이 산이 바로 삼산(三山)으로 세상에서는 삼산정(三山頂)이라 부르고 있었습니다.
또 동악묘를 지나서 사하역성(沙河驛城)에 이르렀습니다.
성의 서쪽을 지나는 작은 강이 사하(沙河)[1]였습니다.
8th Day. Passing Ch’ien-t'un Garrison. This day was cloudy.
The men of Kao-ling Station were exceedingly cruel and overbearing. When Munhoe, one of my soldiers, was urging his donkey forward, a man from the station struck him on the head with a stick, making blood spurt forth. Chang Shu-tsu went with us to the Ch'ien-t'un Garrison and complained to Sheng Ming, Commissioner for the Garrison Forces, [Wei-kuan-chün tu-chih-hui], who sent men to arrest the man at the station.
[We went on to a place west of Sha-ho St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