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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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재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11월 20일 (금) 00:39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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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七日, 捨舟登陸, 是日雨, 遲明, 所謂六船擁來, 語臣等曰:“看你也是好人,隨我可行,你有奇物,送些與我:”臣答曰:“漂流已久,所賣之物,盡撒海中,若指我生路,所乘船楫,皆焦的所有.”因問人居遠近,其一人曰:“此地也,近官,你要去不妨,一人曰:“過前一里,便有人家,一人曰:“此處人家便遠,不可止此,”臣又問官路遠近,其一人曰:“台州府距此一百八十里,” 一人曰:“一百五十里,一人曰:“二百四十里,”其語端彼此有違,不可信也.

其人等相率鬧擾,爭入臣船,目前寓雖些小物,無不壤歌,謂臣等曰:“不同我去,我當作怒,安義請舍船,乘其人船,隨其所去,李植欲擊殺一人以却之,臣曰:“爾等之計皆非也,觀彼人其言不實,劫奪又甚,情偽淺深,未可知也,彼若昔者下山海賊之類,則從安義之計而從歸,則彼必掉至絕島,沈殺我等,以減其跡,彼若或漁船若防禦之船,則從李慎之計而擊殺,則彼必掩其所為,反以我為異國人來劫殺人云爾,則大國之邊境騷然,我為戚,語且不通,難以辨明,必皆為邊將所戮,爾等之計,皆自取死途也,莫若權辭以 觀其勢,”臣謂其人曰:“我浮海日多,飢渴困德之極,危命僅一線耳,請做飯療飢,然後同行.”其人等復曰:“你少留緩行”即掉舟少却,可二三里許,復環臣船而泊,以兩故皆入船倉中,無觀望者,臣謂同舟人曰:“看彼人言語動止,也甚荒唐,看此山已連陸路,必通人居,不於此時善處,則我等之命,懸其掌握,終必為海曲之鬼,”遂率陪吏等先下船,諸軍人接踵而下,冒雨穿林,逃遁奔匿,過二嶺,領皆枕海,有石如甬道,行六七里,得一里社,臣謂陪史軍人等日:“同此生死之苦,無異骨肉之親,自此相保,則可以全身而還,汝等若遇患難則同救之,得一飯則分吃之,有疾病則相扶持之,無一人亡失可也.”皆曰:“唯命.”又曰:“我國本禮義之國,雖漂奔窘遠之間,亦當示以威儀,使此地人知我國禮節如是,凡所到處,陪吏等拜跪於我,軍人等拜跪於陪史,無有過差,且或於里前,或於城中,有墓聚來觀者,必作揖禮,無

p.366 敢肆突.”皆曰:“唯命.”至其里,則里中人老少男女爭怪臣等,觀者如墙,臣與從者而辑,皆合袖鞠躬以答之,臣即告以來自朝鮮之故,有二人,其容貌該非庸人,謂臣等:“你是朝鮮國人,緣何入我國界?你若是賊人,若是進貢之人,若是被風無定之人,逐一寫來,遞送還國.”臣曰:“我本朝鮮國臣,奉王命往海島,奔父喪過海,遭風風見漂,得到海岸,舍舟緣陸,望尋人煙而來,乞諸大人,聞于官府,以活垂死之命,”即以所費印信、冠帶、文書示之,其二人覽畢,指臣前鎮撫、陪吏等以次羅跪,末端軍人等亦以次俯 伏,謂臣曰:“聞貴國禮義邦久矣,果所聞,”即叫家僮,將米漿茶酒以體偏及軍人,任其所飲,指里前佛堂,曰:“你可住此堂安歇.”臣至佛堂,解濕衣以風,未幾,其二人又做飯來饋,果皆忠厚人也,而亡其職姓名,俄而其二人來言:“你可起身,送你好處,” 臣問曰:“好處幾里?”其二人謊辭曰:“還有二里,”曰:“其地名何?”曰:“西里堂也”曰:“雨甚路濤,時又向晚,奈何?” 曰:“去處不遠,不須憂矣.”臣從其言,率從者登途而行,則里中人或帶杖劍,或擊鋅鼓,前途有聞鋅鼓之聲者,羣聚如雲,叫號虞突,夾左右擁前後而驅,次次遞送,前里如是,後里又如是,行過五十餘里,夜已央矣,

배를 버려두고 상륙하였습니다.

이 날은 비가 내렸습니다.

날이 샐 녘에 앞서 말한 6척의 배가 빙 둘러싸고 와서 신 등에게 말하기를, “보아하니 당신들은 좋은 사람들 같소. 우리를 따라 오시오.

당신들에게 진기(珍奇)한 물건[1][2]이 있으면 조금 주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대답하기를, “바다에 표류한 지 이미 오래라, 가졌던 물건은 모두 바다에 버렸소. 만약 우리의 살길을 가르쳐 준다면 타고 온 배와 노는 모두 당신들에게 주겠소”라고 하였습니다.

이어서 마을과의 거리를 물으니, 그중의 한 사람이 말하기를, “이곳은 관부(官府)에 가까우니 당신들이 갈 수도 있소”라고 하였습니다. 한 사람은 “앞으로 1리[3]만 가면 곧 인가가 있소”라 하고, 한 사람은 “여기는 인가와 먼 곳이니,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오”라 하였습니다.

신이 또 관청과의 거리를 물으니, 그중 한 사람은 "태주부(台州府)는 이곳에서 180리나 떨어졌소”라 하고, 한 사람은 150리오.”라 하고, 한 사람은 “240리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의 말이 서로 어긋나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시끄럽게 떠들면서 신의 배에 다투어 들어와, 눈에 보이는 것은 비록 보잘것없는 물건일지라도 모두 빼앗았습니다.

신 등에게 말하기를,“우리와 같이 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화를 내고 말 것이오.”라고 하였습니다.

안의는 배를 버려두고 그들의 배에 타고 따라 가기를 청하였습니다. 이정은 그중 한 사람을 쳐 죽여서 그들을 물리치자고 하였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너희들의 계책은 모두 옳지 않다. 살펴보건대 저들은 그 말이 성실하지 못하고 물건을 겁탈하는 것 또한 심하니,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가 없다. 저들이 전일의 하산의 해적과 같은 부류라면, 안의의 계책대로 저들을 따라 가는 경우 저들은 반드시 노를 저어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에 이르러 우리를 물에 빠뜨려 죽이고는 흔적을 없애버릴 것이다. 저들이 어선(漁船)이나 방어선(防禦船)이라면, 이정의 계책에 따라 쳐 죽이는 경우 저들은 반드시 자신들이 한 짓은 숨기고 도리어 우리 이국인(異國人)이 와서 약탈을 하고 사람을 죽였다 할 것이니, 그렇다면 대국(大國)의 변경이 시끄러워지는 결과가 된다. 우리를 도적으로 무고하는데 말도 통하지 않아 해명하기가 어렵게 되면 반드시 모두가 변장(邊將)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다. 너희들의 계책은 모두 스스로 죽을 길을 취하는 것이니, 임시변통의 말을 하여 그 형세를 살펴보는 것만 같지 못하다”라고 하였습니다.


(조) 길이 아니면 가지 마라. 조선선비의 정도, 학문하는 이유=격몽요결[4]


그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바다에 떠다닌 지 오래고, 굶주리고 목말라 피곤함이 극도에 이르러, 위태한 목숨은 겨우 한 오라기 실과 같소. 청컨대 밥을 지어먹어 시장기를 면하고 난 후에 같이 가도록 하겠소”라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들이 다시 말하기를, “당신들은 조금 머물렀다가 천천히 가도록 하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즉시 노를 저어 2-3리가량 조금 물러가더니 다시 신의 배를 둘러싸고 정박하였습니다.

비 때문에 모두 선창(船__)속에 들어갔으므로 망을 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신은 같이 배를 탄 사람에게 말하기를, “보아하니 저 사람들의 말과 거동이 매우 황당하다. 이 산을 살펴보면 육로에 잇닿아 있으니 반드시 인가에 통할 것이므로, 이때에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하면 우리들의 목숨은 저들의 손에 달려 있어, 끝내는 반드시 바다 한 모퉁이의 귀신이 되고 말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마침내 배리(陪吏) 등을 거느리고 먼저 배에서 내리고, 여러 군인들도 잇달아 내려 비를 무릅쓰고 숲 사이를 뚫고 도망해 숨어 들어갔습니다.

두 고개를 넘었는데, 고개는 모두 바다에 잇닿아 있으며 길 양쪽으로 돌담을 쌓아 놓았습니다.

6-7리를 가니 한 마을이 있었습니다.

신은 배리와 군인들에게 말하기를,“이처럼 생사의 괴로움을 함께 하니 골육과 다름이 없다. 이제부터 서로 보호한다면 몸을 온전히 하여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너희들이 만약 재난을 당한다면 함께 구조하고 한 그릇의 밥을 얻으면 나누어 먹고, 질병이 있으면 함께 돌보아 한 사람의 목숨도 잃어서는 안 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우리나라는 본래 예의의 나라[5][6]이니 비록 표류하고 도망하여 급박한 가운데 놓이더라도, 또한 마땅히 위의(威儀)를 보여 이 땅의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의 예절이 이 같은 것임을 알도록 해야 한다. 이르는 곳마다 배리들은 나에게 엎드려 절하고 꿇어앉고, 군인들은 배리에게 엎드려 절하고 꿇어앉아 틀림이 없도록 하라. 또 마을 앞에서나 성(城) 안에서나 떼 지어 와서 구경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반드시 읍하는 예의를 차리고 감히 방자하게 굴어서는 안 된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그 마을에 이르니 마을 안의 남녀노소가 다투어 신 등을 괴이하게 여겨, 구경꾼이 담처럼 둘러 서 있었습니다.

신은 종자(從者)와 함께 앞으로 나아가 읍하니 모두 소매를 모아 몸을 굽혀 답례[7]하였습니다.

신은 즉시 조선에서 온 연유를 알렸습니다.

용모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두 사람이 신 등에게 말하기를,“당신들이 조선국 사람이라면 어떤 사연으로 우리나라 국경을 넘어 들어오게 되었소? 당신들이 해적인지 진공(進貢)하는 사람인지, 혹은 바람을 만나 정처 없이 표류해 온 사람인지, 낱낱이 써 내면 본국으로 돌려보내 주게 될 것이오”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본디 조선국 신하로 왕명을 받들어 해도(海島)에 갔다가 부친상을 당하여 급히 돌아가던 중, 바다를 건너다 바람을 만나 표류하다가 해안에 도착하여 배를 버려두고 육지를 따라 인가를 바라보고 찾아 왔으니, 원컨대 대인(大人)[8]들께서는 관부(官府)에 알려 다 죽어 가는 목숨을 살려 주십시오.”

곧 가지고 온 인신(印信)·관대(冠帶)· 문서(文書)를 그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 두 사람은 다 보고 나서, 신의 앞에 진무(鎭撫), 배리 등이 차례로 늘어 꿇어앉고, 말단 군인들도 차례로 부복한 것을 가리키면서 신에게 말하기를, “귀국이 예의의 나라임을 들은 지 오래였는데 과연 듣던 바와 같구려” 라고 하였습니다.

곧 가동(家童)[9]을 불러 미음[10]과 다주(茶酒)를 가져다 접대케 하는데, 군인들에게까지도 두루 마시게 하였습니다.

  • 미음=米漿미장

마을 앞의 불당(佛堂)을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당신들은 이 불당에 머물러 편히 쉬도록 하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신은 불당에 이르러 젖은 옷을 벗어서 바람을 쏘였습니다.

얼마 후에 그 두 사람은 또 밥을 지어 와 접대했는데 과연 모두 충후(忠厚)한 사람이었지만 그들의 관직과 성명은 잊어버렸습니다.

조금 후에 그 두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떠나야만 하겠습니다. 당신들을 좋은 곳으로 보내 드리겠소”라고 하였습니다.

“그 곳이 몇 리나 됩니까?”

그 두 사람은 속여서 말하기를, “2리쯤 더 가면 됩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 지명은 무엇입니까?”

“서리당(西里堂)입니다.”

“비가 많이 오고 길이 진흙길인 데다 해가 또 저물어 가는데 어찌하겠습니까?”

“가는 곳이 멀지 않으니 걱정할 것은 없습니다.”

신은 그 말에 따라 종자(從者)들을 거느리고 길을 떠나니, 마을 사람들이 몽둥이와 칼을 집어 들고 징과 북을 치기도 하였습니다.

앞길에서 그 징과 북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서, 소란스럽게 큰 소리를 지르면서 사방에서 밀려들어 차례로 교대하며 호송하였습니다.

앞마을에서도 뒷마을에서도 다 이와 같이 하였습니다.

50여 리를 지나니 밤이 벌써 깊었습니다.

17th Day. Leaving the Boat and Landing. This day it rained. At dawn the six boats came crowding round. They addressed us: “You are law-abiding men, we see. Come with us; if you have rare things, give us a few.” I answered, “We have drifted a long time. All the things we had have been scattered in the sea. If you show me the way to rescue, the boat and oars by which we sailed are all yours as they are.” Then I asked how far we were from the nearest settlement. One of the men said, “This place is near a public office. If you want to go there, it is no trouble.” Another man said, “If you go ahead one li there is a settlement.” Another said, “Even though a settlement is far from here, you must not stop here.” Then I asked whether the public road was far. One of the men said, “T'ai-chou Prefecture is 180 li from here.” Another said, “150 li.” Another said, “240 li.” There were contradictions among them, and they could not be trusted. The men, jostling and shoving one after the next, fought to come into my boat. Whatever their eyes fell on, though small, worthless things, they seized. They said to us, “If you do not go with us, we shall be angry.” An Ŭi asked me, “Leave the boat, get into their boat, and go where they go.” Yi Chồng wanted to attack one man and kill him, to drive them away. I said, “Neither of your plans will do. It seems to me that since what they say is untrue and since they have been robbing us greedily, it is impossible to tell how honest they are. If they are of the type of the previous ones, the Hsia-shan pirates, and we follow An Ui's plan and go with them, they will row to a remote island and drown us to cover their tracks. If they are fishing boats or defense boats and we follow Yi Chong's plan and attack and kill [a man], they will cover up what they have done and instead will make us out to be foreigners who have come to plunder and kill men. Then there will be an uproar along the coast of China and we shall be falsely accused of being pirates. Our language, moreover, is different, so that it will be hard for us to argue our case. We shall all be executed by the coast guards. By either of your plans, we should bring death upon ourselves. For the time being, it is best to refuse and see what their attitude is.” I said to the men, “We have sailed on the sea for many days. In extremities of hunger, thirst, and suffering, our lives hung by a thread. Please let us make a meal to satisfy our hunger, and after that we shall go with you.” The men replied, “Stay here a little and do not go.” They rowed their boats off a bit and about two or three li away encircled my boat again and anchored. Because of the rain they all went into the cabins of the boats. No one was looking out. I said to the men in the boat with me, “I see that the speech and actions of those men are untrustworthy. I see that this mountain joins a way to the mainland: it must lead to a settlement. If we do not make the best of this moment, our lives will lie in their grasp, and eventually we shall be ghosts in the briny deep.” I then led the secondary officials off the boat first, and the troops followed in our footsteps. We fled hiding into the rain and woods. We crossed two ridges that overlooked the sea. There were rocks like those of a walled road. When we had gone six or seven li, we reached a village. I said to the secondary officials and the troops, “You share with me this mortal suffering; there is no difference between us. If we defend each other from now on, we can return home safe and sound. If, when you meet troubles you overcome them together, when you get a meal you divide it to eat, when there is sickness you support each other, we can manage without losing a single man.” They all said, “As you command.” I said, “Our country is a country of propriety and morality. Though we are in flight and distressed, we ought still to show a dignified bearing and let the people of this land know that the formality of our country is as it is. Whereever we go, the secondary officials should bow to me, and the troops should bow to the secondary officials. There should be no skipping over ranks. When, moreover, crowds come and look at us in front of villages or in walled towns, we must bow with hands folded and not venture to be too abrupt.” They all said. “As you command.” When we came to the village, the people, young and old, male and female, all marveled at us. The onlookers were like a wall. I and my staff advanced and folded our hands in greeting. They all brought their sleeves together and bowed in answer. Then I informed them about how we had come from Korea. There were two men whose appearance showed that they were not common. They said to us, “If you are Koreans, why did you enter our country? Write it all out for us, whether you are pirates, or bringers of tribute, or men displaced by a wind. We shall send you back to your country.” I said, “I am a minister of Korea. I received the King's command and went to an island. Hurrying into mourning for my father, I was crossing the sea and met a wind. I was blown adrift and came to a sea coast. I left the boat, went ashore, and, seeking human settlement, came here. I beg you gentlemen to inform the public office of this and save us from impending death.” Then I showed them the seal, cap, sash, and documents that I had. When the two men had finished looking at them, they pointed to the Security Officer and secondary officials in front of me, who were prostrated in order of rank. [The two men) said to me, “We have long heard that your country is a land of protocol and morality. This indeed proves what we have heard.” Then they summoned house servants and had rice water, tea, and wine brought to us all, including the troops. They let us drink and then pointed to a Buddhist temple in front of the village. They said, “You may stay in that temple and rest.” I went to the temple, took off my damp clothes, and aired them. Soon the two men had more food prepared, brought, and served to us. They were truly worthy men, but I have forgotten their names and positions. Suddenly, the two men came and said, “You must get up. We shall send you to a good place.” I asked, “How many li away is this good place?” They lied and said, “It is two li more.” I said, “What is the name of the place?” They said, “Hsi-li-t'ang." I said, “It is raining hard, and the road is muddy, and, too, it is toward evening. How can we go now?” They said, “The place where you are going is not far. You must not worry.” I did as they said. As I set out at the head of my staff, some of the people of the village took up staves and swords and some beat gongs and drums. I heard the sound of gongs and drums on the road ahead, [and when we advanced that far] people gathered round like clouds and shouted at us threateningly. They pressed in on our left and right, crowded before and behind us, and drove us on. They passed us on successively, each new village like the previous one. When we had gone more than fifty li, the night was already well advanced.

  • 사건: 상륙, 약탈, 도망
  • 기후: 비가 내렸습니다, 비가 많이 오고,
  • 시간: 날이 샐 녘, 해가 또 저물어, 밤이 벌써 깊었습니다
  • 제도(교통)-중국: 6척의 배
  • 지명-중국: 태주부(台州府),서리당(西里堂)
  • 지리-중국: 두 고개를 넘었는데, 고개는 모두 바다에 잇닿아 있으며, 6-7리를 가니 한 마을이 있었습니다, 50여 리를 지나니
  • 풍경-중국: 길 양쪽으로 돌담을 쌓아 놓았습니다, 길이 진흙길
  • 사회-중국: 마을 안의 남녀노소가 다투어 신 등을 괴이하게 여겨, 구경꾼이 담처럼 둘러 서 있었습니다, 해적, 진공하는 사람, 표류해 온 사람,
  • 비유-중국: 마을 안의 남녀노소가 다투어 신 등을 괴이하게 여겨, 구경꾼이 담처럼 둘러 서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서
  • 유학-중국: 나아가 읍하니 모두 소매를 모아 몸을 굽혀 답례
  • 풍습(음식)-중국: 미음, 다주, 밥
  • 의전-중국
  • 인물-중국
  • 심리-중국: 감동(귀국이 예의의 나라임을 들은 지 오래였는데 과연 듣던 바와 같구려), 속임,
  • 기물-중국: 몽둥이와 칼을 집어 들고 징과 북,
  • 행정-중국: 교대하며 호송하였습니다
  • 심리(최부): 의심
  • 인명-조선: 안의, 이정
  • 모화: 대국
  • 리더십-조선: 너희들의 계책은 모두 스스로 죽을 길을 취하는 것이니, 임시변통의 말을 하여 그 형세를 살펴보는 것만 같지 못하다, 보아하니 저 사람들의 말과 거동이 매우 황당하다. 이 산을 살펴보면 육로에 잇닿아 있으니 반드시 인가에 통할 것이므로, 이때에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하면 우리들의 목숨은 저들의 손에 달려 있어, 끝내는 반드시 바다 한 모퉁이의 귀신이 되고 말 것이다, 이처럼 생사의 괴로움을 함께 하니 골육과 다름이 없다. 이제부터 서로 보호한다면 몸을 온전히 하여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너희들이 만약 재난을 당한다면 함께 구조하고 한 그릇의 밥을 얻으면 나누어 먹고, 질병이 있으면 함께 돌보아 한 사람의 목숨도 잃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본래 예의의 나라이니 비록 표류하고 도망하여 급박한 가운데 놓이더라도, 또한 마땅히 위의(威儀)를 보여 이 땅의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의 예절이 이 같은 것임을 알도록 해야 한다. 이르는 곳마다 배리들은 나에게 엎드려 절하고 꿇어앉고, 군인들은 배리에게 엎드려 절하고 꿇어앉아 틀림이 없도록 하라. 또 마을 앞에서나 성(城) 안에서나 떼 지어 와서 구경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반드시 읍하는 예의를 차리고 감히 방자하게 굴어서는 안 된다.
  • 유학-조선: 골육, 위의(威儀), 예절, 예의, 나아가 읍하니 모두 소매를 모아 몸을 굽혀 답례, 왕명, 진무(鎭撫), 배리 등이 차례로 늘어 꿇어앉고, 말단 군인들도 차례로 부복한 것, 귀국이 예의의 나라임을 들은 지 오래였는데 과연 듣던 바와 같구려,
  • 지명-조선: 조선
  • 제도(관직)-조선: 신하, 진무(鎭撫), 배리, 군인
  • 기물-조선: 인신(印信)·관대(冠帶)· 문서(文書)
  • 지리-조선: 해도
  • [1]
  • 성종실록 46권, 성종 5년 8월 6일 무자 2번째기사, 1474년 명 성화(成化) 10년, 정괄의 청에 따라 유수의 집에서 기르고 있는 해청을 놓아 보내라 명하다
  • 조선시대 10리는 4km가 아니다, 메트로신문, 2010.11.17
  • 격몽요결 서문
  • 예교 문화의 관점에서 본 조선과 중국
  • [2]
  • 중국인은 허리 숙여 인사하지 않는다, 한겨레신문, 2018.09.27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8043001072612000001 ‘니’는 ‘너’가 아니다]
  • [3]
  • 죽과 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