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6일
二十六日, 過寧海縣, 是日雨, 巡檢司對岸有越溪鋪,自鋪前舍舟乘陸,從溪岸而步,溪之通海口甚廣闊,不知其源之所從來,行過西洋嶺、許家 山,至市奥鋪,鋪中人體茶數棕,又行至白崎嶺,有軍卒二十餘人,擔轎來迎臣等,臣等八人,又乘過進士坊,至寧海縣之白崎驛,驛在縣治之中,有知縣姓唐者,供饋臣等,期至於飽,因乘轎冒雨而行,過桐山鋪、梅林铺、江淮嶺、紅寨鋪、海口鋪,其間有三大川、二大橋,亡其名,夜二更,至西店驛以信,驛有甲兵警成,如防禦所,
영해현을 지났습니다.
이 날은 비가 내렸습니다.
순검사의 건너편 언덕에 월계포(越溪鋪)196가 있었습니다.
월계포 앞에 배를 놓아두고 육지에 올라 시냇가의 언덕을 따라서 걸었습니다.
시내의 바다로 통하는 어귀는 매우 넓었는데 그 원류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가다가 서양령(西洋嶺) 허가산(許家山)[1]을 지나서 시오포(市奧鋪)에 이르니, 포(鋪) 안의 사람이 차 몇 사발을 대접하였습니다.
또 가다가 백교령(白嶠嶺)에 이르니, 군졸 20여 인이 가마를 메고 와서 신 등을 맞이하였습니다.
신 등 여덟 사람은 또 가마를 타고 진사방(進士坊)을 지나서 영해현의 백교역(白嶠驛)197에 이르렀습니다.
역은 현치(縣治) 안에 있었습니다. 당(唐)이란 성을 가진 지현(知縣)198이 신 등에게 음식을 배부르게 먹였습니다.
가마를 타고 비를 무릅쓰고 길을 떠나서 동산포(桐山鋪), 매림포(梅林鋪), 강격령(江__嶺), 항공포(__空鋪), 해구포(海口鋪)를 지났습니다.
그 중간에 큰 내 셋과 큰 다리 둘이 있었는데, 그 이름을 잊었습니다.
밤 2경쯤에 서점역(西店驛)이에 이르러 유숙하였습니다.
서점역에는 갑병(甲兵)202 이 경비하고 있었는데 방어소(防禦所) 같았습니다.
- 기후
- 지명
- 인명
- 지리
- 풍습
- 심리(급함), 국법<--비를 무릅쓰고 갔다는 것이 나타내는 것은?
26th Day. Passing Ning-hai County. This day it rained.
On the shore opposite the police station was Yüeh-ch’i Stop [P’u]. We left the boat in front of the stop and went by land. We walked along the bank of the stream, the mouth of which, where it entered the sea, was very wide. I do not know the source from which it came. We crossed Hsi-yang Range and Hsü-chia Mountain and came to Shih-ao Stop. The people at the stop served us many cups of tea. We went on and reached Pai-ch'iao Range. Over twenty soldiers had come there carrying sedan-chairs to greet us. Eight of us riding again, we passed Chin-shih-fang and came to Pai-ch'iao Station [I] of Ning-hai County. The station was in the county seat, and the County Magistrate, T'ang, served us food. We ate enough to be full and then got into the sedan-chairs and went on, braving the rain. We passed T’ung-shan Stop, Mei-lin Stop, Chiang[chi?] Range, Kang-k’ung Stop, and Hai-k'ou Stop. In the interval there were three big rivers and two big bridges, the names of which I have forgotten. In the second watch of the night we came to Hsi-tien Station and put up there. The station was guarded like a defense point by armed men.
196 - 鋪 즉 急遞鋪는 공문을 遞送하기 위하여 연도에 설치한 기구로서 규모와 직능이 驛站보다 작았다. 중요한 일은 驛站, 사소한 일은 鋪를 이용하였다. 洪武26년의 규정에 의하면 10里마다 1鋪를 두었는데 鋪長은 1명, 鋪兵은 要路와 偏路에 따라 10명에서 45명 등이었다. 鋪兵은 부근의 丁力田糧이 15斗에서 2% 이하의 戶에서 點充하였다. 萬曆《明會典》권149, 兵部32, 驛傳五;《諸司職掌》 권5, 兵部 등 참조. 197. 즉 水馬驛은 공문의 遞送과 官物의 운송 및 왕래하는 관원이 잠시 쉬기 위한 곳으로 병부 소속이었다. 洪武元年 전국 각지에 水馬站과 急遞鋪를 둔 바 있는데 水馬站은 洪武9년에 水馬驛으로 바뀌었다. 馬驛은 衝要의 정도에 따라 所定의 馬驢를 구비했 고, 驛站 부근의 人戶를 馬夫로 點充하였다. 水驛도 정도에 따라 소정의 驛船과 水夫를 두어 대비하였다. 萬曆《明會典》권145, 兵部28, 驛傳一, 水馬驛上;《諸司職》 권5, 兵部 등 참조. 한편 白嶠驛은 縣治에서 서쪽으로 160步 떨어진 곳에 위치한 다. 원래는 동으로 100보 거리에 이름도 迎恩이었는데 元 至正23년(1363)에 현재의 | 위치로 옮기면서 백교로 改名하였다. 崇禎《寧海縣志》 권2, 建置. 197.? 198. 弘治元年(1488) 寧海 知縣은 江(字는 景吳)으로 지방지의 名宮傳에 실려 있다. 당시에 이란 성을 가진 知縣은 찾을 수 없는데 姓氏 혹은 관직에 대한 최부의 착각이 있었던 듯하다. 崇禎《寧海縣志》 권2, 建置. 그렇지 않다면 다른 현의 知縣을 역임했거나 휴직으로 현지에 내려와 살던 唐이란 성을 가진 어떤 鄕紳을 지칭할 가능성도 199. 鋪에는 司 1명과 兵 4명이 배치되어 있었다. 이하의 포도 동일하다. 崇禎《寧海縣志》 권2, 建置, 200. 治에서 40리의 거리에 있는 1窯얘를 가리키는 듯하다. 崇禎《寧海縣志》권2, 建置. 201. 봉화현치에서 남쪽으로 70리 거리인데 台州府 寧海縣과의 경계에 위치한다. 洪武 19년(1386) 信國公 湯和가 置하였고, 21년 驛丞을 두었다. 成化《寧波府志》권5, 佛字考, 한편 光緖《奉化縣志》 권2, 建置上에는 그 거리가 60리, 置한 연도는 홍무 20년으로 되어 있다.
202. 무장한 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