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한용운과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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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재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2년 8월 19일 (금) 20:3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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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자결주의

1918년에 끝난 세계 1차 세계대전은 피압박민족에게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민족자결 원칙’을 주장했는데, 이것은 오스트리아 제국과 러시아 제국 및 터키 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유럽의 백인 기독교도들에게 적용되는 원칙이었다. 민족자결 원칙에 따라 유고슬라비아,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등 8개국 유럽 나라들이 해방과 독립을 맞게 되었다.

민족자결이라는 복음

그러나 아시아 아프리카의 비백인, 비기독교도 식민지 민족에게는 이 민족자결 원칙이 적용되지 않았다. 심지어 베르사이유 조약안 440개 조항 가운데 조선 문제는 아예 포함되지 않았다. 이처럼 민족자결 원칙이 현실적으로 전승국 식민지에 적용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3·1운동은 전승국 제국주의자들의 의도에 개의치 않고 세계사적인 반전을 기하려고 기선을 제압한 것이다. 말하자면 ‘민족자결’이라는 복음을 “제 것으로 만들려고 용감히 일어선 최초의 민족이 우리 민족”이요 이 원칙을 자기의 운명에 적용시켜 궐기한 최초의 봉화가 3·1운동이었다(노명식).

근대 서구 개념

만해가 주목한 근대사조는 자유주의, 평등, 박애, 구세주의, 세계주의, 사회진화론, 사회주의 등이었지만 그러나 이 모두는 서구 근대 개념을 그대로 이행한 것은 아니었다. 만해의 자유는 양계초와 칸트의 진아론을 논하면서 비판적으로 전개된 것인데, 이는 단순히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하는 정치적・종교적 자유뿐만 아니라 궁극적 진리와 깨달음에 이르는 근원적 자유를 내포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