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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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재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12월 10일 (목) 18:11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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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十九日,過玉田縣,遇天使於道上,是日晴,過扣鋪,至宋亭橋,橋跨藍水河,至玉田縣,由藍田門入城,至藍田遞運所,小泉·徐無等山,俱在東北二三十里間,燕山在西北,距城二十餘里,蘇軾詩所謂燕山如長虫也,千里限夷漢者也,臣間諸張述祖曰:“傅聞此地乃漢右北平之地,李廣射虎沒羽之石,在何方?”述祖曰:“距此東北三十里有無終山,山下有無終國舊基及北平城遺址,城即李廣出獵遇石之處,山上又有燕昭王之嫁”臣等又過孝子李茂雄門,出城東門,門即興州左衛之門也,行過韓家莊二里許,遇有二官人乘轎而至,有節鐵、鋼牌,前導者呼曰:“下馬,”臣即下馬,二宫人呼臣來前,日:“你是何許人?”臣未及對,上官人令臣寫其手掌,有張仲英奄至,備陳臣之姓名及遭風漂還之事,上官人顧謂臣曰:“你國人已知你生到中國”云云,臣謝辑而退,問其官人為誰,仲英曰:“前去者乃翰林學士董越,後者乃給事中王敬,前月間奉皇帝,往頒你國,今是回還之時也。”又過兩家店、沙流河鋪,至永濟驛。



옥전현(玉田縣)을 지나 천사(天使)를 길에서 만났습니다.

이 날은 맑았습니다.

구유포(加諭鋪)를 지나서 채정교(采亭橋)에 이르니 채정교는 남수하(藍水河)에 걸쳐져 있었습니다.

달려서 옥전현에 이르러 남전문(藍田門)을 통하여 성안으로 들어가 남전체운소(藍田遞運所)에 이르렀습니다.

소천산(小泉山)과 서무산(徐無山)은 모두 동북방의 20-30리 사이에 있고 연산(燕山)[1]은 서북방에 있어 성과의 거리가 20여 리였는데, 곧 소철(蘇轍)[2]의 시에 이른바 '연산(燕山)은 긴 뱀과 같아, 천리에 걸쳐 오랑캐와 중국을 갈라놓았네'[3][4]144라고 한 곳이었습니다.

신이 장술조에게 묻기를, “전해 듣건대 이 지방은 곧 한(漢)나라 우북평(右北平)의 땅이라 하니, 이광(李廣)이 범을 쏘아서 활촉이 박혔다는 바위[5][6]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

이곳에서 동북으로 30리 떨어진 지점에 무종산(無終山)이 있고, 무종산 아래에 무종국(無終國)[7]의 옛 터와 북평성(北平城)[8]의 유지(遺址)가 있습니다. 북평성이 바로 이광이 사냥하러 나가서 바위를 만났던 곳입니다.

산 위에는 연소왕(燕昭王)의 무덤도 있습니다.”

신 등은 효자(孝子) 이무(李茂)의 정문(産門)을 지나서 성의 동문으로 나왔는데, 동문은 곧 홍주좌둔위(興州左屯衛)의 문이었습니다.

가다가 한가장(韓家莊)을 지나서 2리가량을 가니 두 관인이 교자를 타고 왔습니다.

절월(節鍼)과 납패(鎭牌)를 가지고 앞에서 인도하는 사람이, “말에서 내리시오”라며 소리치기에 신은 즉시 말에서 내렸습니다.

두 관인은 신을 불러 앞에 오게 하고 말하기를, “당신은 어떤 사람이오?”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미처 대답하기 전에 상관인(上官人)이 신으로 하여금 자기 손바닥에 쓰도록 했는데, 장중영(張仲英)이 재빨리 나타나 신의 성명과 함께 바람을 만나 표류되었다가 돌아가는 일을 상세히 진술하였습니다.

상관인은 신을 돌아보고, “당신 나라 사람들은 그대가 살아서 중국에 도착한 것을 이미 알고 있소” 운운하였습니다.

신은 감사하여 읍(__)하고 물러 나와 그 관인이 누구인가를 물으니 장중영이 말하기를,

“앞에 가신 분이 한림학사(翰林學士) 동월(董越)이고, 뒤 에 가신 분이 급사중(給事中) 왕창(王敬)입니다. 지난 달 황제의 칙서(勅書)를 받들고 당신 나라에 가서 반포하고 지금 돌아오는 길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9]

또 양가점(兩家店), 사류하포(沙流河鋪)를 지나서 영제역(永濟驛)에 이르렀습니다.




29th Day. Passing Yü-tien County and Meeting Imperial Envoys on the Road. This day was fair.

We passed K'ou-lun Stop and came to Ts’ai-t’ing Bridge, which spanned the Lan-shui River. Soon we came to Yü-t’ien County, entered the wall through Lan-t'ien Gate, and came to Lan-t'ien Transfer Station. Hsiao-ch'uan, Hsü-wu, and other mountains were twenty or thirty li to the northeast. The Yen Mountains were in the northwest, about twenty li from the wall. It is of them that it is said in Su Che's poem, “The Yen-shan are like a long snake,/ Separating Chinese from barbarians for a thousand li.”

I asked Chang Shu-tsu a question: “I have heard it said that this land was the land of Yu-pei-p’ing of Han. Where is the rock in which Li Kuang, shooting for a tiger, buried [the arrow] to the feathers ?”

Chang Shu-tsu said, “Thirty li northeast of here is Wu-chung Mountain, and at the bottom are the old site of Wu-chung-kuo and the ruins of the wall of Pei-p'ing. The wall was the place from which Li Kuang went out hunting and came upon a rock. On top of the mountain is also the tomb of Yen Chao Wang (traditionally r. 311 B.C.–279].”

We then passed the banner gate of Filial Son Li Mao and went out the east gate of the wall, which was the Gate of Hsing-chou-tso-t’un Garrison. When we had gone about two li past Han-chia Village, we met two officials, who rode up in sedan-chairs. They had tallies and halberds and pewter shields. The scouts shouted, “Dismount!” I dismounted. The two officials called to me to come forward and said, “Who are you?”

Before I had answered, the senior official ordered me to write in the palm of his hand. Chang Chung-ying came up quickly and issued a statement of my name and the circumstances of my meeting winds, going adrift, and returning. The senior official turned and said to me, “Your countrymen already know that you reached China alive.”

I bowed in thanks and left. When I asked who the officials were, Chung-ying said, “The one in front is Tung Yüeh, Chancellor of the Hanlin Academy, and the second one is Wang Ch'ang, a Supervising Secretary. Last month they received orders from the Emperor to go to your country with gifts, and now they are returning.”

We passed Liang-chia Stop and Sha-liu-ho Stop and came to Yung-chi Station.




  • 지명
  • 기후
  • 지리
  • 관직
  • 고증
  • 고사
  • 제도(교통)
  • 사회?유학?(말에서 내리시오)
  • 인명
  • 제도(외교)



표해록역주 p.443
  1. 조선 후기 고지도를 통해 살펴보는 조선의 국경
  2. 명(明)과 원(元)은 (송과 달리) 동류가 아니다 (동북공정 관련 기록)
  3. 명나라계주는 북경시이다
  4. [1]
  5. 중석몰시, 제주신문, 2015.10.20
  6. 서한때 비강군이라 불린 장수는? gameY
  7. 중원(中原)을 두렵게 한 고조선(古朝鮮) 거수국(渠帥國), 산융(山戎), 2018.12.07
  8. [2]
  9. 성종실록 287권, 성종 25년 2월 14일 계유 2번째기사, 1494년 명 홍치(弘治) 7년, 우의정 허종의 졸기